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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가오리 연 / 신경재

 

"앗싸. 또 이겼다."

딱지는 거북이 배 뒤집듯 발라당 뒤집어졌다. 준모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숨을 내몰아 쉬며 씩씩거렸다. 옆에서 보던 재우가 가자미눈을 떴다. 나는 히죽히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오늘 딴 딱지를 두 손으로 싹싹 쓸어 모았다. 딱지를 모두 가방에 차곡차곡 챙겨 넣고 막 일어서는데 준모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야! 내 딱지 내놔."

"왜 이래? 내가 땄잖아. 딴 사람이 가지는 거 아니야?"

나는 준모의 손을 휙 뿌리쳤다. 잠시 휘청하던 준모는 자세를 바로잡고 나를 흘겨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내 팔을 꽉 물었다.

"아야! 이 자식이."

나도 모르게 준모에게 주먹이 날아갔다. 주먹이 준모의 얼굴에 퍽 하고 닿는가 싶은 순간 준모는 모래 위로 털썩 쓰러졌다.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재우는 뒤에서 팔을 둘러 내 목을 졸랐다. 그 사이 준모는 벌떡 일어나 내 얼굴에 한 움큼 모래를 뿌렸다.

"으악!"

준모는 내 가방을 번쩍 들어 거꾸로 쏟아버렸다. 가방 안에 있던 책과 공책, 필통이 딱지와 함께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준모와 재우 일당은 오늘 딴 딱지뿐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딱지까지 박박 쓸어 담아 가져가 버렸다. 눈물인지 땀인지 손에 모래가 묻은 것도 잊은 채 눈을 비볐다. 비빌수록 눈은 더 따가웠다. 입으로 모래가 들어와 침을 퉤 내뱉었다.

"내놔. 내 거란 말이야."

엉금엉금 기어 준모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준모는 나를 뿌리쳤다. 재우가 껄껄 혀를 차며 말했다.

"이런 가오리 넙치야!"

"뭐라고?"

벌떡 일어나 재우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재우는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재우는 바닥에 떨어진 피를 보더니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너 인마. 우리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너희 아빠 다시는 우리 배 못 타게 하라고. 동네에서 쫓아내라고 할 거야. 두고 봐."

마을의 모든 배는 재우네 배였다. 우리 아빠는 아직 배를 살 돈이 없어서 재우 아빠에게 돈을 주고 배를 빌려 탄다고 했다. 그것 때문인지 재우는 크고 작은 싸움이 있을 때마다 자기 아빠한테 일러바쳤다. 덕분에 우리 아빠는 재우네 집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굽신굽신 허리를 굽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피가 안 통할 만큼 꽉 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가오리, 머저리. 어디 두고 보자."

준모와 재우는 옷을 탈탈 털더니 휘파람을 불어 재끼며 가버렸다.

파도가 집 마당까지 들어와 넘실거리는 마을. 부두에서 조금 떨어진 비탈에 예닐곱 채의 집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다. 양철지붕 집, 마당 넓은 집, 담장 낮은 집. 그중 가장 낮은 곳에 우리 집이 있다. 여름마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가자 주인이 버리다시피 싸게 내준 집이었다. 담이 낮아 멀리서 봐도 마당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엄마는 평상에 앉아 그물을 꿰매고 있다. 나는 애먼 대문을 발로 쾅쾅 차면서 들어갔다. 엄마는 화들짝 놀란 얼굴을 들어 나를 봤다.

"진수 왔니? 아니, 근데 너 얼굴이 왜 이래?"

엄마 손이 상처에 와 닿자 몹시 따끔했다.

"아! 아야.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획 돌리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엄마는 나를 잡아 세웠다.

"너 또 친구들이랑 싸운 거야? 아이고, 이 녀석 싸움하고 다니지 말라고 해서 안 했어?"

엄마는 색이 바랜 앞치마에 손을 쓱쓱 문질러 닦고 부엌으로 가서 물 한 대접을 들고나왔다.

"세상에, 이번엔 모래에 뒹굴었니? 자, 입부터 헹궈봐."

나는 입을 한 번 헹궈서 퉤하고 내뱉었다. 물그릇 위로 깔깔 웃던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분한 마음이 다시 올라와 남은 물을 마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찬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저녁 무렵 부둣가로 나갔다. 갈매기들은 겁이 없다. 사람이 있건 없건 부두 가까이 날아와 그물을 힐끔힐끔하더니 내 발치까지 다가왔다.

"야! 너도 내가 우습냐?"

돌멩이를 하나 주워 갈매기를 향해 힘껏 던졌다. 갈매기는 잽싸게 날아오르는 시늉만 하더니 이내 다시 내려와 그물 사이로 남은 생선 찌꺼기를 콕 집어물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듯 끼룩 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를 빙 한 바퀴 돌았다.

부왕―부왕― 멀리서 들리던 뱃고동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아빠다. 멀리 가오리 배가 보였다. 가오리 마크가 그려진 빨간 돛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있는 힘껏 배를 향해 뛰었다.

"아빠~"

배에서 아빠가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진수야!"

닻을 내리자마자 배에 올랐다. 갑판 위에 가오리들이 널려 있었다. 가오리는 악몽을 꾸는지 눈을 옆으로 가늘게 뜨고 지느러미를 겨우 펄럭거렸다.

"와, 많이 잡았네요."

아빠는 가오리를 상자로 옮겨 담았다. 미끼로 쓰는 까나리, 고등어 상자는 비어 있었다. 갈고리에 걸린 가오리가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아빠가 갈고리를 꽉 움켜쥐자 시커먼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날 저녁상을 물리고 아빠는 광에 들어가서 연 만드는 연살과 얼레를 들고나왔다. 아빠는 익숙한 솜씨로 연살을 곱게 다듬었다. 한지를 잘라 붙이고 가오리의 긴 꼬리를 달았다.

"자! 받아라."

아빠는 연과 얼레를 내밀었다.

"싫어요. 애들이 가오리라고 놀린단 말이에요."

"왜? 가오리가 어때서? 너 가오리가 얼마나 멋진 동물인 줄 아니? 제일 깊은 바다에 살고 나는 것처럼 헤엄칠 줄 알지 또 싸움을 걸지 않으면 먼저 덤비지 않아. 녀석들이 가오리가 얼마나 멋진지 모르고 그러네. 하하하."

아빠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껄껄 웃었다. 나는 슬그머니 가오리연을 받아 들었다.

"아빠는 가오리 연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보면 속이 뻥 뚫리더라. 가오리는 바다를 날고 가오리연은 하늘을 날지, 진수야 너도 한번 날려 봐."

나는 하늘로 가오리연을 번쩍 들어 보았다. 바람이 불자 연의 긴 꼬리가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연살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내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며칠 뒤 아빠는 다시 배에 올랐다. 나는 부두까지 따라가 아빠를 배웅했다.

"아빠, 이번엔 며칠쯤 걸려요?"

"글쎄, 얼마나 걸릴지."

아빠는 잠시 손을 멈추고 내 어깨를 토닥였다. 부르릉~ 배의 시동이 걸리자 고요하던 바다가 울렁였다. 아빠와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힘차게 닻을 올렸다.

"속상할 때는 하늘 높이 연을 날려봐. 아빠가 한 말 기억해."

아빠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배는 조금씩 멀어졌다. 나는 배가 조그맣게 거의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부두로 나갔다. 세찬 바람이 볼을 할퀴듯이 지나갔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연을 띄웠다. 바람이 세게 부는가 싶더니 갑자기 멈췄다. 연은 스르르 뜨다 말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언제 왔는지 준모와 재우가 내 뒤에 서서 연 날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야! 너 연 날리냐?"

준모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것도 못하냐? 이리 줘 봐. 내가 띄워 볼게."

준모는 내 손에 꼭 쥔 얼레를 뺏다시피 했다.

"돌려줘. 우리 아빠가 만들어 준 연이란 말이야."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준모는 내 손을 밀쳐내더니 얼레를 마구 휘감았다. 연은 바람을 만나 높이 올라가는가 싶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에이, 이게 뭐야. 날지도 못하잖아."

준모가 얼레를 툭 던져 버렸다.

"이건 지난번에 네가 내 코피 터트린 복수다."

옆에 있던 재우가 씩 웃더니 가오리연을 발로 꾹 내리밟았다. 우두둑, 연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재우를 밀치고 연부터 살폈다. 종이는 찢어지고 연살이 부러져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부르르 떨며 재우를 노려봤다. 주먹을 쥐고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자, 준모와 재우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멀리 도망가 버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연부터 고치기 시작했다. 찢어진 부분은 종이를 몇 번 더 덧대고 부러진 연살은 실로 감아 단단히 연결했다. 서투른 손이 연살에 찔려 피가 났다.

"아야!"

"진수야, 무슨 일이야?"

엄마가 손을 호호 불고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줬다.

"어휴, 그나저나 아빠는 왜 이리 소식이 없으실까."

엄마는 마당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저녁밥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려는데 뉴스 속보가 나왔다. 오늘 밤 제법 큰 태풍이 온다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연을 날릴 때, 부두에 배들이 급히 들어오던 생각이 났다. 나는 슬그머니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부두로 나갔다. 아까보다 바람은 훨씬 거칠었다. 어부들은 배를 단단히 묶고 있었다. 저 멀리 있던 파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이내 부두 가까이 덮쳐 올 것만 같았다. 배를 묶는 사람 중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빠와 친한 아저씨였다.

"아저씨, 가오리 배 못 보셨어요?"

"글쎄. 속보를 들었으면 항구로 돌아올 텐데. 쯧쯧. 뭐 별일 있겠냐? 네 아빠는 베테랑 아니냐."

울먹울먹하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찼다. 그날 밤늦은 시각 태풍은 마을을 그냥 두지 않았다. 비는 밤새 양철지붕을 무섭게 때렸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났다. 안방 문을 열어 보니 엄마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희멀건 얼굴로 이마에는 수건을 올리고 누워 있었다.

"엄마, 아직 안 일어났어?"

엄마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 이마를 짚어 보니 앗 소리가 날 정도로 뜨거웠다.

"엄마 약 먹었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일 없다. 너희 아빠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도 안 되는데 병원은 무슨 병원이야?"

엄마는 이를 악물더니 다시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나는 우산을 쓰고 부두로 나갔다. 거센 바람에 우산살이 우두둑 휘어졌다. 두 손으로 우산을 꽉 움켜쥐고 한 걸음씩 조심스레 발을 떼었다. 태풍에 쓸려 온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배도 보였다. 어부들은 거의 부서지다시피 한 배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단단히 묶고 또 묶었다.

"아빠~~."

빗속에 목소리는 멀리까지 가지 못했다. 먼바다에서 빈 메아리가 들릴 듯 말 듯 돌아왔다. 집으로 뛰어가니 엄마는 물수건을 들고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우산을 내팽개치고 광에 가서 연과 얼레를 들고나오자 엄마는 깜짝 놀랐다.

"아니,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연은 뭐 하려고?"

나는 대답 대신 비옷을 챙겨 입고 장화 속에 발을 욱여넣었다.

"진수야, 어디 가려고? 우리 조금만 기다려 보자. 무슨 소식이 있겠지."

엄마는 내 팔을 부여잡았다. 나는 엄마 손을 뿌리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부두에 좀 갔다 올게요."

비가 조금 약해진 부두에서 사람들은 굿을 올릴 준비가 한창이었다. 알록달록 빨갛고 노란 옷을 입은 무당은 부채와 칼을 들고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빌고 기도를 드렸다. 사람들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비에 젖어 엉망이 된 땅에 코를 박고 엎드려 빌었다.

머리에 시커먼 띠를 질끈 묶은 고수는 콰광 북을 두드렸다. 북소리는 보슬비를 뚫고 멀리 바다로 울려 퍼졌다. 옆에서 꽹과리가 재재쟁 울렸다.

"뭐 해? 인마. 엎드리지 않고?"

재우 아빠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라고 손짓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부두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잠시 기다렸다가 높은 바람에 연을 띄웠다. 드센 바람에 연은 제멋대로 춤췄다. 굿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북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무당은 다 젖은 버선발로 진흙 마당을 펄쩍펄쩍 뛰었다. 사람들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잠시 후 땀인지 비인지 다 젖은 무당은 입술을 꽉 물고는 허리춤에 묶었던 큰 칼을 빼서 휘이휘이 흔들더니 멀리 휙 집어던졌다.

챙챙― 소리와 함께 칼이 땅에 내리꽂혔다. 북소리는 탕탕탕, 꽹과리는 괘갱갱갱, 무당의 방울 소리와 사람들의 울음 섞인 기도가 저 깊은 바다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듯했다.

나는 얼레를 풀었다 감아쥐었다 몇 번을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가오리연은 순해진 바람에 멈칫하면서도 다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아이고, 저기 저거 진수 아버지 배 아닌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다를 봤다. 저만치 조그맣게 보일 듯 말 듯 돛 하나가 보였다. 빨간 가오리가 그려진 돛. 배가 돌아온다. 가오리 배다.

 

 

  <당선소감>

 

   "아이들에게 '다정한 세상' 만나게 할 것"

당선 소감의 첫 문장은 무엇이어야 할까,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쓰는 사람에게 처음 문장은 늘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당선 소감을 쓰는 날이 오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삶의 크고 작은 균열이 있을 때마다 쓰기를 중단했지만, 잠시 쉴 뿐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열어본 저의 노트북 '동화' 폴더에는 늘 주인공들이 먼저 저를 반깁니다. "아직 우리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 덕분에 저는 다시 문장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 공단의 작은 골목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스팔트가 울퉁불퉁하게 팬 길, 집집마다 서로 다른 높이의 대문, 프레스기가 쾅쾅 돌아가는 소음, 용접기에서 튀던 강렬한 불꽃, 쇠와 기름, 땀이 뒤섞인 냄새가 골목을 떠나지 않던 곳. 해 질 무렵이면 하루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돌아오던 노동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 골목이 제 글의 시작이 될 줄은요. 그곳에는 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와, 기록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 목소리를 대신 옮겨 적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외롭고 더딘 시간 속에서도 제 글을 믿어준 가족과 친구들,

동화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손을 잡아 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주시고, 가능성을 발견해 주신 심사위원 안오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상은 제게 "계속 써도 된다"라는 다정한 허락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저는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소외되고 삭제된 목소리,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서 있던 아이들, 질문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던 마음들을 동화로 옮기고 싶습니다. 동화를 쓰는 이유도 그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출발인 광주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집 앞 골목에서, 누군가의 일터에서, 누군가의 학교 앞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들이 모여 결국 세상을 바꾸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가장 잘 품을 수 있는 장르가 동화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이야기 속에서,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놓지 않고, 오래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77년 대구 출생  영남외국어대 유아교육 전공  ● 혜암아동문학


 

  <심사평>

  

"얼레 쥔 손을 놓지 않길 바라며"

이번 동화 응모작은 총 134편이었다. 적지 않은 응모 작품들을 보면서 아동문학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작품 한 편씩 볼 때마다 응모자의 삶에 대한 시선과 해석을 엿볼 수 있었다. 동화는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글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상태로 인간의 진실을 전하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린이의 눈높이를 유지해야 하고 아이의 마음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훈보다는 공감이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유념하며 한 편 한 편 살펴보았다.

응모작의 소재는 치매, 이혼, 기후 위기, 귀농, 역사, AI 등 시의성에 맞는 것들이 많았다. 많은 소재가 등장한 만큼 그 접근 방식 또한 다양했다. 그래서 읽는 맛은 났지만 소재를 살리지 못한 구성, 과한 설정, 너무 쉬운 해결 등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공식적이고 어떤 작품은 어른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재 중 AI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AI 소재 문학이 많아진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확인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AI 소재 응모 작품들 주제가 너무 평이해 아쉬웠다. 좀 더 AI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했다.

응모작을 살펴보면서 선뜻 이거다, 라는 독보적인 작품이 보이지 않아 많이 고민됐다. 심사숙고해 몇 편을 골랐고 거기서 다시 문학적 장치가 조금 더 돋보이는 작품 신미래 씨의 '가오리연'을 당선작으로 골랐다. 가오리연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속성을 지닌다. 이는 꿈, 희망, 자유 또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영혼의 비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연줄이 끊어지면 연은 자유를 얻는 동시에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불안정한 존재가 된다. 이는 현실과 이상의 관계 맺음과 괴리를 동시에 나타낸다.

친구들의 따돌림과 놀림에 속상한 아들에게 가오리연 만드는 걸 알려주는 아빠는 가오리배를 타는 어부이다. 여기서 가오리배는 육지를 떠나 미지의 영역인 바다를 탐색하며, 때로는 풍랑과 싸우는 고독한 주체의 공간이다. 아빠는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가장 깊은 바다에서 그 무게감을 버티며 사는 멋있는 가오리에 관해 얘기하며, 속상할 때마다 가오리연을 띄워보라고 한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지만, 얼레 쥔 손을 놓지 않는다면 결국 제 방향을 밀고 나가는 가오리연을 보며 속이 뻥 뚫릴 거란 의미를 내심 전달하면서.

가오리연과 가오리배, 두 상징을 사용한 문학적 장치가 눈길을 더 잡았다. 물론 군데군데 살짝 어색한 문장과 표현의 아쉬움은 있었다. 앞으로 작품 활동하면서 보완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동화 작품 쓰기에 매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 안오일 동화작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이야기의 핵심 갈등: “힘의 질서” vs “버티는 손”

마을 권력 구조

  • 재우는 “우리 아빠한테 이를 거야”라는 말로 상대를 눌러요.
  • 이유는 간단해요. **마을의 배가 ‘재우네 배’**이기 때문.
    → 아이들의 폭력은 “개인 성격”이 아니라 **어른들의 경제 권력 구조(배를 빌려 타는 관계)**에서 힘을 얻어요.

진수의 분노

  • 진수의 분노는 ‘딱지’ 하나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굽신거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 현실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먹을 “피가 안 통할 만큼” 쥐죠.
    → 이 작품은 아이의 싸움을 가정의 생계·존엄 문제와 바로 연결시킵니다.

2) ‘가오리’가 하는 일: 놀림(모욕) → 상징(자부심)

아이들이 진수를 “가오리 넙치”라고 부르는 건,

  • 납작하고 힘없고 멍청하다는 식의 모욕이에요.

그런데 아빠는 “가오리가 얼마나 멋진 동물인지”를 말해요.

  • “제일 깊은 바다에 살고”
  • “나는 것처럼 헤엄치고”
  • “먼저 덤비지 않는다”

이 대목이 작품의 전환점이에요.
‘가오리 = 약자’라는 프레임을 ‘가오리 = 깊이를 버티는 존재’로 재정의하거든요.
그래서 ‘가오리연’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진수가 자기를 다시 바라보는 도구가 됩니다.


3) 가오리연의 상징: “날아오르되, 줄로 연결된 용기”

연은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해요.

  1. 바람(외부 조건): 바람이 없으면 못 떠요.
  2. 얼레(손의 붙잡음): 손이 놓이면 방향을 잃어요.

작품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바로 이거예요.

  • 바람이 멈추면 연이 곤두박질치고
  • 준모·재우가 연을 부러뜨리고
  • 태풍이 와서 마을 전체가 불안해지지만

진수는 얼레를 놓지 않아요.
연을 ‘다시 고치고’, ‘다시 들고’, ‘다시 띄웁니다.’
→ 폭력에 맞서는 방식이 “더 세게 때리기”가 아니라 손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져요. 동화답게 의미 있는 선택이죠.


4) 가장 좋은 장면: “굿”과 “연”이 같은 하늘을 향하는 순간

태풍이 오고, 사람들은 굿을 올려요.

  • 무당, 북, 꽹과리, 기도, 칼…
    이건 마을이 오래 써온 방식의 ‘살고 싶음’이에요.

그 한가운데서 진수는 연을 띄웁니다.
어른들이 “엎드리지 않고 뭐해?”라고 말하는데도, 진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기 방식으로 빌고, 부르고, 연결해요.

여기서 연은

  • 아빠에게 닿는 마음이고,
  • 바다에 보내는 신호고,
  • 무엇보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는 몸짓이에요.

그래서 결말에서 가오리 돛이 보이는 순간은,
‘기적’이라기보다 계속 붙잡은 결과처럼 느껴지게 설계돼 있어요.


5) 인물 해석 한 줄씩

  • 진수: 맞서고 싶지만 더 크게는 “아빠·엄마를 지키고 싶은 아이”. 분노를 ‘손의 기술’로 바꾸는 성장.
  • 아빠: 현실은 약하지만, 아이에게 **해석을 바꾸는 언어(가오리의 멋)**와 **행동(연 만들기)**를 주는 사람.
  • 준모/재우: 아이 악역이면서 동시에 마을 권력 구조의 “작은 대리인”. (특히 재우는 ‘배’라는 권력을 휘두름)
  • 엄마: 불안의 한복판에서 버티는 사람. “소식이 없으실까”라는 말에 이 작품의 생활감이 있어요.

6) 주제 정리

이 동화는 “복수해서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욕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예요.

  • 가오리처럼 깊은 바다를 견디고
  • 가오리연처럼 바람에 흔들려도
  • 얼레 쥔 손을 놓지 않는 것

그게 진수가 얻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