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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메리 고 라운드 / 윤주호

 

등장인물 : 메리, 남자

장소: 메리와 남자의 침실

1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그리고 침묵.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 짜증 섞인 신음.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침묵.

느닷없이, 한꺼번에 모든 조명이 켜지고, 깜짝 놀란 메리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침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침실. 사이드 테이블에는 부부의 사진이 놓여 있다. 메리의 옆자리에는, 누군가 밤새 몸을 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보아 아침이다.

메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혹은 조난자의 절박함으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일말의 단서라도 찾고자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침대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문이 있다. 왼쪽은 거실로 통하는 문이고, 오른쪽은 드레스 룸으로 통하는 문이다.

왼쪽 문, 그러니까 거실에서 남자가 들어온다.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 넥타이는 매고 있지 않다.

메리가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며 이불을 그러모아 몸을 가린다.

남자는 그런 메리를 신경도 쓰지 않고 침실을 지나 오른쪽 문, 그러니까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남자: (소리) 일어났어?

메리는 대답 없이 방금 남자가 나간 문만 바라본다.

남자가 넥타이를 매며 침실로 돌아온다.

남자: 잘 잤어?

메리는 말없이, 공연히 이불만 계속 그러모은다.

남자: 뭐야.

(상체를 메리 쪽으로 내밀며) 오랜만에 하려니까 잘 안되네, 자기가 좀 해주라.

남자가 넥타이를 매 달라며 상체를 내밀자, 메리는 남자를 피해 침대 반대쪽으로 달아난다. 그제야 메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겁먹은 메리를 마주 본다.

남자: …왜?

넥타이를 손에 쥔 채로 어정쩡하게 상체를 내민 남자와 이불로 간신히 몸을 가린 메리가 대치하고 있는데,

메리가, 처음 조명이 켜지던 순간처럼, 갑작스레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메리: 아.

남자: 응?

메리: 아…

남자: 왜 그래.

메리: 아니야.

남자: 뭔데?

메리: (남자에게 다가가며) 아니야.

남자: (넥타이를 내밀며) 이거 좀 해줘.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매주기 시작한다.

남자: 혹시…또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아니다.

사이.

남자: 자기가 너무 잘 자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 요즘 피곤했잖아.

아침 해놨으니까 준비하고 먹어. 아직 시간은 괜찮을 거야.

괜찮아?

메리: 응?

남자: 괜찮냐고.

메리: 응.

남자: 그래.

메리는, 여러 번 해본 솜씨로, 딱 알맞은 길이로 남자의 넥타이를 매어 준다.

남자: (거실로 나가며) 고마워.

침실에 혼자 남은 메리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듯이, 얼떨떨하다.

남자가 다시 침실로 들어온다. 이제는 정장 상의도 입고 있다.

남자: 우리 부모님이랑 내일 밥 먹는 거 어디랬지?

메리: 밥?

남자: 응. 저번에 자기가 예약한다고 했잖아.

사이.

남자: 기억 안 나?

내일 우리 부모님이랑 밥 먹는 거, 내가 예약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나 없을 때 간 어떤 식당이 부모님 모시고 가기에 딱 좋다고 자기가 예약하겠다고 그랬잖아.

메리: 내가?

남자: 어. 자기가 그랬잖아.

사이.

메리: 아.

남자: 이제 생각났어?

메리: 아…

사이.

남자: 괜찮아?

메리: 어, 예약했어.

남자: 그래?

메리: 응.

자기 부모님 집에서도 가까워.

남자: 어. 나중에 위치 보내주라. 부모님한테도 보내주게.

(다시 거실로 나가며) 자기도 이제 준비해야 하지 않아?

메리: 응.

그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던 메리.

잠시 후, 메리가 서서히 일어나서는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메리가 나간 뒤 침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더 밝아졌다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정장을 입은 메리가 거실을 통해 침실로 들어온다. 하루치의 피곤을 덧입은 모습이다. 침실을 지나 드레스 룸으로 나간 메리가, 잠시 후 아침과 똑같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침실로 돌아온다. 침실로 돌아온 메리는 거실로 다시 나가려다가, 잠시 멈춰 서서는 침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부부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성큼 다가가 사진을 들고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남자가, 아침의 정장을 그대로 입은 채, 거실을 통해 들어온다.

남자: 일찍 왔네?

메리: …어.

남자: (드레스 룸으로 나가며) 저녁은?

메리: 응?

남자: (소리) 난 먹고 왔는데. 자기 저녁은?

메리: 나도 간단하게 먹었어.

남자: (소리) 그럼 맥주나 한잔 할까?

메리: 응.

메리는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방향을 본다.

남자: (소리) 혹시 자기가 엄마한테 전화했어?

메리: 뭐라고?

남자: (침실로 들어오며) 자기가 혹시 우리 엄마한테 전화했냐고.

메리: 내가?

남자: 응.

메리: 왜?

남자: 내일 식당 어딘지 우리 엄마가 이미 알고 있던데?

메리: 아.

안 했어.

남자: 진짜?

메리: 응.

남자: 근데 우리 엄마가 어떻게 식당이 어딘지를 알고 있지?

메리: …모르지.

남자: 이상하네…

(거실로 나가며) 안주 뭐 해줄까?

메리: 아냐, 배불러.

남자가 나간 뒤, 메리는 한동안 더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원래 그 자리에 놓은 뒤, 거실로 나간다.

암전.

2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그리고 침묵.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 짜증 섞인 신음.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침묵.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메리가 눈을 뜬다.

메리의 옆에는 남자가 누워있다. 곤히 잠든 모습.

남자를 발견한 메리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뛰쳐나온다.

소란 탓에 남자가 깬다.

남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뭐야.

메리는 경악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이다.

남자: 뭐야?

여전히 대답 없는 메리.

남자: (몸을 일으키며) 왜 그래?

메리: …누구세요?

침묵.

남자: (한숨을 쉬고 마른세수를 하며) 또야?

어제도 못 잤단 말이야. (자리에 눕는다.)

메리는 남자에게서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지려고 벽에 몸을 붙인 채 웅크린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이 든다.

새근새근, 남자의 고른 숨소리만 들리는데,

사이드 테이블 위의 사진을 발견한 메리가, 남자와 자신이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한동안 그 사진을 계속 바라보다가, 자포자기한 발걸음으로 남자 옆으로 가 침대에 몸을 누인다.

메리가 침대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남자가 잠에서 깬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하…나도 모르겠다, 이제.

사이.

메리: 잘 자.

암전.

3장

침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며 침대를 비춘다.

아침이다.

침대에는 남자만 누워있고, 그동안 메리가 누워 있었던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남자의 고른 숨소리.

메리가 거실에서 침실로 들어온다. 화려한 무늬의 앞치마를 하고, 성큼성큼, 즐거운 발걸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멈칫하지만 애써 진정하며 침대 맡으로 가서는,

메리: (남자를 흔들며) 여보.

남자의 짜증스러운 신음.

메리: 여보.

남자: (잠에서 덜 깬 목소리) 5분만.

메리: 아까도 5분만 했잖아.

남자: 진짜, 진짜 5분만.

메리: 지각이야.

남자: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짜증스럽게) 진짜.

메리: 진짜로 이러다가 지각이라고.

남자: 알았어.

메리: 일단 씻고 나와. 아침 해뒀어.

남자: 알았어.

남자가 드레스 룸으로 나가고, 메리는 거실로 나간다.

잠시 후, 수건만 두른 남자가 침실로 들어온다. 남자의 머리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다.

남자: 오늘이지?

메리: (소리) 뭐라고?

남자: (큰 목소리로) 엄마 아빠 만나러 가는 거, 오늘이지?

메리: (침실로 들어오며) 그치?

남자: 요즘 날짜 감각이 없네.

부모님한테 식당 어딘지는 전달 드렸나?

메리: 내가 전달 드렸어.

남자: 자기가?

메리: 응.

남자: 어…

고마워.

메리: 당연하지.

메리가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남자가 깜짝 놀라 움찔한다.

메리도 놀라서 뒷걸음질한다.

남자: (애써 침착한 척하며, 다시 드레스 룸으로 나가며) 옷 입고 나올게. 아침 뭐야?

메리: 그냥 있는 걸로.

남자: (소리) 맛있겠다. 고마워.

남자가 나간 뒤, 메리는 사이드 테이블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이드 테이블로 다가가 사진이 보이지 않게 액자를 엎는다.

남자: (소리) 자기야, 내 넥타이 못 봤어?

메리: 넥타이?

남자: (소리) 응, 넥타이.

메리: 거기 세 번째 서랍에 있지 않아?

남자: (소리) 없는데?

메리: 그럼 다섯 번째 서랍에는?

남자: (소리) 없어.

메리: 잠깐만.

메리가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잠시 후, 메리가 한 손에 넥타이를 들고 침실로 들어온다. 대충 옷을 걸친 남자도 따라서 들어온다.

메리: (침대를 가리키며) 앉아, 내가 매어 줄게.

남자: …그래?

메리: 응.

남자가 떨떠름하게 침대에 앉는다.

메리가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어 주기 시작한다.

메리: 요즘 이렇게 넥타이까지 매어 주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메리: 안 그래?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너무 꽉 조이는지, 남자가 불편해한다.

메리: 자기는 참 복 받았다, 그지?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남자가 캑캑대기 시작한다.

메리: 안 그래?

남자: 그만.

메리: (넥타이를 계속 조이며) 안 그래?

남자: 그만!

메리: (넥타이를 계속 조이며) 안 그러냐고!

남자: (메리를 뿌리치며) 그만하라고!

사이.

남자: 왜 그러는데.

메리: 뭐가?

남자: 왜 그러냐고.

메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복에 겨워서는.

메리가 거실로 나간다.

남자가 어이없어서 씩씩대다가, 메리를 따라서 거실로 나간다.

암전.

4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에 희미하게 침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방 한구석에 웅크린 메리가 핏발 선 눈으로 곤히 잠든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다.

잠꼬대를 하던 남자가 잠결에 메리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다.

남자: 뭐…뭐…뭐야?

메리: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남자: 뭐…뭐가?

메리: (계속)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남자: 뭔데?

메리: (갑자기) 너 누구야?

남자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메리: 너 누구냐고.

남자: 무슨 소리야.

메리: 오늘이 몇 번째야?

남자: 아직 한밤이잖아.

메리: 어제 걔는 어디로 갔어?

남자: 악몽이라도 꿨어?

메리: 그 전날은? 그 전날은? 그 전날은?

남자: 뭐야. 뭔데.

사이.

남자: 또야?

메리: 그 전날은? 그 전날은? 그 전날은?

남자: 그 전날은 뭐?

메리: (아주 큰 소리로) 그 전날은!

침묵.

메리: 너 누구야?

남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메리: 아니야, 너는.

남자가 침대에서 나와 메리에게 육박한다.

남자: 뭐가 아닌데?

메리: (고개를 돌리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봐.

메리: (더 세차게 고개를 돌리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메리의 턱을 잡아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으며, 위협적으로) 보라고!

메리: (눈을 감으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나야.

메리는 거의 울먹이며 가까스로 눈을 떠서 남자를 본다.

남자: 나라고.

메리: 누구야!

남자: 나라고.

메리: 누군데!

남자: 나라고!

사이.

남자: (메리를 안으며) 그래, 나야.

남자에게 안긴 메리는 온몸에 힘이 빠져서는 축 늘어진다.

암전.

5장

갑작스럽게 모든 조명이 켜지면,

곤히 잠들어있는 남자 곁으로 침대 맡에 메리가 서 있다.

메리는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있다.

잠든 남자를 한참 지켜보던 메리는 곧 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지그시 누른다.

암전.

6장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일어나. 일어나.

갑작스럽게 켜지는 조명. 이전과는 다르게 모두 백색 형광등이다.

창백한 조명 아래서 침실은 이제 병실처럼 보이고, 잠든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메리도 환자복을 입고 있다.

메리가 눈을 뜨고 익숙한 듯 주위를 둘러보는데, 때마침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 메리 씨, 일어나셨네요.

사이.

남자: 메리 씨?

메리: 네.

남자: 오늘은 컨디션이 좀 어떠세요?

메리: 꿈을 꿨어요, 선생님.

남자: 꿈이요?

메리: 네.

남자: 어떤 꿈을 꾸셨나요?

메리: 선생님이 제 남편이 되는 꿈을요.

사이.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네.

메리: 이 꿈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남자: 그건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해도 꿈의 표면 내용과는 다른 의미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씨.

메리: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사이.

남자: 그걸 우리가 함께 알아가는 작업 중이었어요.

메리 씨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

우리가 함께, 그걸 알아가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지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사이.

메리: 그러니까.

선생님이 남편이었던 꿈이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데.

그쪽이 차라리 현실 같은데.

그러면...

그러면 이게 꿈인가요?

아니.

이게 꿈이 아니라면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이렇게 하면 되나.

메리가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린다.

남자가 그런 메리를 말린다.

남자: 메리 씨!

사이.

메리: 선생님.

남자 :그러지 마세요, 메리 씨.

여기서는 그러시면 안 돼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씨.

메리: 자기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메리가 대답 없는 남자에게로 튀어 나간다.

메리: (남자의 멱살을 잡고) 대답해! 대답하라고!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대답하라고! 야!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지고.

메리: 대답해! 대답해! 대답하라고!

남자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메리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곧이어 남자가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메리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정적.

7장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메리가 침대 헤드보드에 기대앉아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있고,

남자는 곤히 잠들어 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자리를 옮겨 남자의 얼굴을 비추고,

남자가 짜증스러운 신음과 함께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려 해보지만 소용없다.

남자: 뭐해?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좀 더 자지, 뭐해?

메리: 일어나야지.

남자: 벌써?

메리: 늦었어.

사이.

남자: 그래?

사이.

남자: (등을 돌리며) 난 좀 더 잘게.

남자가 다시 잠에 든다.

남자의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만 소심한 반향을 일으키며 극장에 울린다.

그때, 어디선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가, “일어나, 일어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 위에 겹친다. 이전 장면에서 메리가 했던, “대답해”라는 말을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 더.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하나 더.

목소리가 하나 더.

이윽고 이전 장면에서 메리가 했던 모든 말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겹쳐서, 내용은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한꺼번에 들리기 시작한다. 시끄럽다.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메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 속삭이는 목소리의 지글거림이 갑자기 그치면,

메리 이제 일어나야지.

암전.

막.

 

 

  <당선소감>

 

   맘껏 희곡 써도 된다는 허락에 감사

저는 희곡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 몇 가지 안 되지만, 사실 이것 말고 하나라도 있나 싶지만, 희곡 쓰기만큼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희곡은 공연을 위한 글인 만큼 공연이 되지 못한 글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희곡을 쓸 동력을 잃을까 무서웠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아니, 더 자신이 없어진 것도 같습니다. ‘같습니다’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쓴 걸 보니 정말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 신춘문예를 계기로 좋아하는 희곡 쓰기를 마음껏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말을 썼다면, 모두 제 삶에 의미를 보태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입니다. 지수, 주한, 동명, 리, 다솔, 현준, 윤아야, 덕분에 연극을 좋아하게 됐어. 유진 님, 민아 님, 상호 님, 같이 읽고 같이 고민해 줘서 감사합니다. 박상현 선생님, 고연옥 선생님,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예지야, 기다려 줘서 고마워. 가족이자 연인이자 친구인 슬기야 고마워. 멍멍아 건강하자! 부족한 이야기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부산일보 관계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92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재학.


 

  <심사평>

  

  읽으면 읽을수록 더 다양한 사고 불러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111편에 달하는 희곡과 시나리오가 투고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극 장르의 특성상 희곡·시나리오에는 우리의 현실과 세상을 닮은 공간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그 안의 세상 역시 조용한 태풍을 간직한 곳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은 ‘메리 고 라운드’, ‘수족관’, 그리고 ‘핑크색 옷은 절대로 입지 않아요, 돼지의 스킨색이니까’였다. ‘핑크색…’은 시멘트 교반기를 통해 인간의 개조와 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경우였다. 다만 작품이 겨냥해야 할 궁극적인 의미라는 측면에서 아직은 성숙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메리 고 라운드’와 ‘수족관’은 깔끔한 대사와 대담한 터치가 신인답지 않은 유연함을 보인 경우였다. 특히 ‘수족관’은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대사의 기능이 확연하게 발휘된 경우였다. 하지만 ‘메리 고 라운드’의 구조적 안정감과 언어의 윤환성이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서는 손색이 없었으나, 현장 대본으로서의 특성이 강조된 ‘수족관’에 비해 정통적 극작술과 희곡적 짜임새가 앞세운 ‘메리 고 라운드’가 더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하겠다. 비록 ‘수족관’이 이번 심사의 최종 영예를 안지 못했으나, 공연 대본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메리 고 라운드’는 여러 차례 읽으면 더 다양한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을 동반한 희곡이었다. 앞으로 극작가로서 활동할 때, 희곡의 구성과 사유의 폭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아쉽게 물러나야 했던 경쟁자에게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시국이 인정되고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가 다시 이 땅에서 피어나기를 바란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 김문홍 극작가·김남석 연극 평론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이 말하는 것: “메리”와 “merry-go-round”

  • **메리(Mary)**는 인물 이름이면서, 영어의 **merry(명랑한)**와 겹칩니다. 그런데 작품 속 메리는 명랑하지 않죠. 제목은 “명랑한 회전목마”의 이미지를 빌려와 실은 끔찍한 반복을 보여주는 역설입니다.
  • “고 라운드”는 돌아감이자,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운명입니다. 이 희곡은 사건이 전진하는 듯 보이다가도 매번 “다시 아침, 다시 침실, 다시 남자”로 되감깁니다.

2) 공간 분석: “생활의 흔적이 없는 침실”이 왜 중요한가

무대지문이 아주 노골적이에요.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침실”

이건 두 가지로 읽힙니다.

  1. 실제 부부의 ‘삶’이 부재한 관계
    침실은 결혼의 친밀함을 상징하는 공간인데, 그곳에 생활감이 없다는 건 관계가 이미 기능만 남은 상태라는 신호예요. (역할만 남은 부부)
  2. 현실이 아니라 ‘세팅’된 공간
    병실/치료시설/실험실처럼, “누군가가 관찰하고 조정하는 공간”의 느낌을 줍니다. 뒤에서 6장에서 침실이 병실처럼 보이는 조명으로 전환되며, 1장의 “무흔적 침실”은 그 복선이 됩니다.

3) 반복되는 호출 “일어나, 일어나”의 의미

이 속삭임은 작품 전체의 엔진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기상 알람처럼 들리는데, 진행될수록 의미가 뒤집혀요.

  • 표면: 잠에서 깨어나라
  • 심층: 역할에서 깨어나라 / 현실을 자각하라 / 혹은 통제에 복종하라

특히 4장에서 메리가 남자에게 “일어나”를 되돌려 주면서, 이 문장은 단순한 알람이 아니라 권력의 언어가 됩니다. 누가 누구를 깨우는가(지배/각성)는 곧 누가 현실을 규정하는가로 연결돼요.


4) 1장 해석: “또야?”로 드러나는 관계의 권력 구조

1장은 관객이 가장 빨리 “이상함”을 감지하는 장면이고, 동시에 남자가 상황을 장악하는 방식이 드러납니다.

  • 메리가 남자를 “낯선 침입자”로 경계 → 곧 “아.” 하고 이해
    이 “아.”는 단순한 기억 회복이 아니라 학습된 순응의 순간처럼 보여요. (이 상황을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익숙해진 반응)
  • 남자의 대사 “혹시…또야?”
    메리에게 어떤 증상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그 증상을 메리 개인의 문제로 처리합니다. 동시에 남자는 그 증상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행동해요.
  • “괜찮아?”를 반복하는데, 실제로는 메리의 감정에 관심을 두기보다 일상이 굴러가야 한다는 체크리스트처럼 들립니다.
  • “내일 부모님 식사 예약”은 아주 중요합니다.
    메리가 기억을 잃든 말든, 사회적 의무(며느리 역할, 가족 행사)는 유지되어야 해요. 기억 상실이 비극이 아니라 가사·관계 노동을 흔드는 장애물로만 취급되는 순간.

요약하면 1장은 메리가 ‘부부’라는 역할로 빠르게 복귀하도록 강제되는 장면이고, 남자의 다정함은 다정함이 아니라 시스템 유지 장치로 기능해요.


5) 2장 해석: “누구세요?”가 만든 균열, 그리고 사진(증거)의 폭력

2장에서 메리는 처음으로 “타자”의 언어를 씁니다.

“누구세요?”

이 한마디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법정/경계의 언어예요. 그런데 곧 남자가 “또야?”로 받아치고, 메리는 벽에 웅크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메리의 공포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설명 부재는 관객에게 불안의 빈칸을 남겨두죠.

그리고 메리는 사이드테이블 사진을 발견합니다.
이 사진은 흔히 “추억”이지만, 이 희곡에서는 “증거”에 가까워요.

  • 메리에게 사진은 “내가 이 남자와 다정했다”는 증거
  • 그런데 그 증거는 메리를 안심시키기보다 자포자기로 몰아갑니다.
    “내가 틀렸나? 내가 미쳤나?”
    즉 사진은 추억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붕괴를 촉발합니다.

마지막의 “잘 자.”는 아이러니해요.
사랑의 인사가 아니라, 붕괴한 자아가 선택한 최소한의 생존 언어처럼 들립니다.


6) 3장 해석: ‘정상 연기’의 과잉이 폭발로 바뀌는 순간

3장은 전환점입니다. 메리가 처음엔 매우 ‘정상적인 아내’로 등장하죠.

  • 앞치마, 즐거운 발걸음, “여보”, “아침 해뒀어”
    → 메리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완벽함이 오히려 불안해요. 왜냐하면 이전 장면들과 연결될수록 “이건 진짜 메리인가, 연기인가”가 의심되거든요.

그리고 가장 섬뜩한 장치:

(1) 사진 액자를 엎는다

사진은 ‘증거’였죠. 메리는 이제 그 증거를 가린다.
즉, “진실 확인”이 아니라 “진실 차단”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광기라기보다, 반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통제 욕망이에요.

(2) 넥타이 장면: 돌봄이 폭력으로 전환

넥타이는 1장에서 “아내의 손길”이었어요.
3장에서는 그 똑같은 행위가 목을 조르는 행위로 바뀝니다.

  • “요즘 이렇게 넥타이까지 매어 주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 돌봄의 언어로 시작해
  • “복 받았다”를 반복하며 조인다
    → 돌봄이 ‘희생’이 되고, 희생이 ‘원망’이 되며, 원망이 ‘폭력’이 됩니다.

이 장면은 관계의 본질을 찌릅니다.
**사랑의 기술(넥타이 매기)**은 권력의 기술로 언제든 전환될 수 있다.


7) 4~5장 해석: “너 누구야?”의 되풀이와 살해 충동의 등장

4장은 관계가 완전히 공포의 장으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 메리가 구석에서 남자를 노려본다
  • “일어나”를 주문처럼 반복한다
  • “어제 걔는 어디로 갔어? 그 전날은?”
    → 남자가 ‘같은 남자’가 아니라, 매번 다른 버전으로 교체되는 존재처럼 느끼는 거죠.

이때 남자가 메리의 턱을 잡고 “보라고!” 하는 장면은, 사실상 현실 강요입니다.
“나야” “나라고”를 반복하는데, 그 반복이 설득이 아니라 협박처럼 들려요.
현실의 이름을 누가 붙이느냐의 싸움이 여기서 격화됩니다.

5장은 더 짧고 잔혹해요.

메리가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베개로 얼굴을 누른다

  • 콧수염은 “남자 흉내”이자 “남성 권력의 가면”처럼 읽힙니다.
    메리가 남자의 얼굴을 눌러버리는 것은 단순한 살의가 아니라, 그 권력 구조 자체를 눌러 지우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 동시에, 이것은 “남자를 죽이고 싶다”가 아니라
    “이 반복을 끝내고 싶다”에 더 가깝습니다.
    회전목마를 멈추려는 절박함.

8) 6장 해석: 병실 전환이 주는 충격 — “설명”이 아니라 “더 큰 의심”

6장에서 조명은 “백색 형광등”, 침실은 병실처럼 보이고 메리는 환자복. 남자는 의사 가운.

여기서 흔히 관객은 “아, 사실은 치료 중이었구나”라고 정리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정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메리의 핵심 질문: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이 질문은 단순한 정신병리의 증상이 아니라, 희곡 전체의 철학입니다.

  • 부부 침실의 현실이 더 생생했고
  • 병실의 현재가 오히려 덜 현실 같고
  • 그러면 무엇이 현실인가?

그리고 메리가 남자를 “선생님”에서 “자기야”로 호칭 전환할 때, 남자는 대답하지 않죠.
이 침묵은 남자의 무정함이라기보다, 역할 시스템의 오류처럼 보입니다.
부부극에서 의사극으로 넘어오자, 남자는 더 이상 ‘남편 대사’를 출력할 수 없게 된 것처럼.

메리가 멱살 잡고 “대답해!”를 반복하는 장면은, 사랑의 요구가 아니라 존재 증명의 요구입니다.


9) 7장과 결말: 목소리의 합창 — 메리가 아니라 ‘말들’이 회전한다

마지막 장에서 무대는 다시 침실, 다시 아침, 다시 “일어나야지.”

그런데 이제는:

  • “일어나”
  • “대답해”
  • 그리고 메리가 했던 모든 말들이 속삭임으로 겹쳐 들립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결론이에요.

메리 고 라운드가 도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언어’

메리는 점점 말이 줄고 멍해지는데, 말들은 무대에 남아 유령처럼 반복됩니다.
즉, 메리는 주체가 아니라 “되풀이되는 대사”에 의해 소진된 존재가 됩니다.

마지막 한 줄:

“메리 이제 일어나야지.”

이때의 “일어나”는 다정한 말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가장 무서운 말이에요.
왜냐하면 “일어나면 다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깨어남이 해방이 아니라 재시작 버튼이 되는 구조.


10) 이 작품을 관통하는 상징 3개

1) 사진: 추억이 아니라 ‘현실 강요’의 증거물

메리가 사진을 보며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진이 “과거”가 아니라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규범으로 작동하기 때문.

2) 넥타이: 돌봄 노동의 끈 → 목을 조르는 끈

사랑의 제스처가 폭력으로 뒤집히는 대표 장치.

3) 조명/암전: 현실 전환의 스위치

특히 “갑자기 모든 조명이 켜짐”은 ‘아침’이 아니라 강제 각성, 즉 통제의 느낌을 줍니다.


11) 가능한 해석의 층위 3가지

이 작품은 하나로만 읽히지 않게 설계돼 있어요.

  1. 심리 스릴러/정신의학적 읽기
    메리의 기억 단절, 현실감 상실, 반복되는 각성.
    하지만 6장이 “정답”이 아니라 “더 큰 질문”으로 기능하게 해 둠.
  2. 관계·가부장제 비판(가사/정서 노동의 회전목마)
    메리가 기억을 잃어도 “부모님 식사 예약, 아내 역할, 넥타이, 아침”은 멈추지 않음.
    ‘부부’라는 제도가 개인을 어떻게 소모시키는가.
  3. 연극 메타 읽기(역할극으로서의 결혼/삶)
    남자는 매번 같은 대사를 수행하고, 메리는 다른 버전으로 깨어남.
    삶이란 무대에서 “배역이 바뀌어도 장면은 계속”되는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