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우수상] 새벽배송 공작소 / 김선욱

<당선작>
새벽배송 공작소 / 김선욱
잠든 사람이 더 많을 열두 시 반
작고 노란 봉고차에 이형화물처럼 올라타서
접이식 의자를 펼치고 졸음과 함께 앉아서
로켓도 쏘아 올릴듯한 기지에 도착해서
거대와 명령과 굉음에 쪼그라들어서
너도 나도 그냥 입고 온 대로 입고서
무심한 컨테이너벨트 앞에 서서
잘못 건드린 도미노처럼
쏟아지는 토트박스 토트박스 토트박스
왼손은 청기 오른손은 백기
청기 백기 함께 올려
청기 백기 함께 내려
반복하다가 가끔
청기가 어딘가에 끼어서
박스와 박스사이라거나 선반의 틈,
깜빡하고 가져와버린 마음에도 끼어서
십오 분의 쉬는 시간에
끼었던 손을 빤히 바라보는 것
내가 나한테 이래도 될까?
하고 물어보는 것, 그때
여러분은 이곳에 돈 벌러 온 것 이라며
줄줄 새는 욕으로 우리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하게
청기백기 청기백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능숙한 백기를 든다
집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너무 큰 옷을 입은 물품들이
롤테이너에 실려 도크 밖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새벽이 닳아간다
병렬로 놓인 무수한 트럭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든다
혹시 꼭 안가셔도 되는 분 있습니까
조금 더 일하실 수 있는 분 있습니까
힘 빠진 청백기 대여섯 개가 죄처럼 들려지고
나는 옆 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그 사람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우리가 우리한테 이래도 될까?
<당선소감>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겠어요.”라고 솔직히 말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아는 체하며 멀리멀리 돌아 걸었습니다. 홀로 걸어온 길은 많이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자꾸 멀어져, 아는 사람들에게 몰라도 될 감정들을 얹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빼곡한 감사로 소감을 채우던데, 저는 지면을 빌려 다정했던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는 잘 모르면 모르겠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래서 알고 싶다고 말하고, 괜찮다면 함께 걸어도 되는지 묻겠습니다.
미안하단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다짐해 놓고도 “모르겠어요.”하고 말할 자신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해서, 알고 싶어 안달 나는 것들. 그 앞에서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한참을 모른다 해도 “믿습니다.”라고 돌려 말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가진 모든 믿음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 부모님, 현명한 두 누나와 든든한 매형들, 사랑하는 조카 효린, 희원, 효주, 희재, 강민 그리고 늘 기도해주시는 할머니와 친척들의 무한한 사랑을 믿습니다.
시가, 포기와 좌절로 얼룩져있던 저를 일으켜 줬다고 믿습니다.
사계절의 나무와 제 앞에 멈춰주던 길고양이들과 파타고니아의 양과 무릎을 믿습니다.
시간을 믿지 않습니다. 시간은 정말 모르겠어서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히고 눈을 감게 됩니다. 그런 저를 안아준 건 늘 공간이었습니다.
하여, 이곳에 소중했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을 열거해봅니다.
주현동과 남중동, 서소문의 평안교회와 알라딘빌딩, 327호와 습작실, 산귀래와 의송빌라, 서정다방, 언양알프스시장, 서울쌈냉면, 쿼츠, 창천동과 행복동, 써니룸과 브이맨션, 여의도와 예스24, 선릉 애플트리타워, 켄터키와 테네시, 종각의 바니, 용산역의 옥상, 차병원, 그래서 책방, 씀방, 12월의 파주와 이천과 김포, 그리고 벼리와 방배동 꽃집과 용눈이오름.
새해엔 위의 공간에 다시 가서 그때의 사람들에게 늦은 편지를 쓰고, 오래갔으면 하는 시를 짓고,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찾아보려 합니다.
시의 세계로 초대해준 정균이형과 제 작은 글그릇에 아낌없는 가르침을 부어 주신 이영광, 김명인, 신용목, 이혜원, 박형서, 박유희, 홍창수, 권혁웅, 김이듬, 행고님, 그리고 1월만 되면 생각나는 최정례 선생님께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믿고 싶은 시를 쓰겠습니다.
아프고 지쳐 고립된 사람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 1989년 전북 익산시 출생,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깨끗한 시심, 삶에 밀착한 시
정치적 직접성의 시가 새해 시작을 알리는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는 것을 불편하다. 문학은 정치를 함축하면서도 정치를 초월한다. 시의 독자는 삶의 깊이와 넓이에 ‘상응’을 이룰 수 있는 시를 원한다.
현실의 호흡이 가빠지고 각박해지면 시도 따라서 대체로 거칠고 빨라진다. 그런 경향이 있다. 때가 지나면 그 유효성은 쉽게 말라버린다. 반대로 그런 세상살이에, 일상의, ‘심정’의 시만에 만족할 수도 없다. 시는 인심의, 민심의 표현일 수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젖혀 놓고, 시는 무엇보다 언어의 예술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언어적 구성과 표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 속에 사유가 있고 세계가 놓여 있다. 무엇을 베려 하든 칼끝을 날카롭게 벼리지 않으면 안된다.
「안부」·「보리수나무 아래」·「파밭」·「마두금」·「유언」을 출품한 엄경순 씨. 「새벽배송 공작소」·「폭설」·「문래동 장마」·「공덕역 1번 출구」·「평화와 시장」을 내신 김선욱 씨. 시의 경향과 특질이 각기 달라 심히 고민하게 한다.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솟아나는 시, 시어와 시행의 구사에서 보다 숙련된 시, 비록 시대의 가파른 흐름에 뒤진 듯해도 시인으로서의 수행 흔적이 더 돋보이는 시를 어렵게 승인한다. 이번에는 그렇다.
「파밭」외 4편의 시인은 깨끗한, 비운 마음의 상태, 수준에서 시적 발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을 맑은 눈으로 보는 사람이다. 다섯 편 시가 모두 깨끗한 시인적 감성을 바탕으로 시적 대상을 오롯이 직관한 경험을 숙련된 시적 리듬의 언어로 갈무리해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특히,「파밭」은 시인의 시의 언어에 함축된 정화된 시심, 탈속한 심성을 한껏 맛볼 수 있게 한다. 요즘과 같은 혼탁한 시대를 맑게 씻어낼 수 있는 감성의 시다.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다음으로,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는 느려지거나 아예 더 빨라져야 한다. 「새벽배송 공작소」외 4편의 시를 내신 분은 시가 현실에 보다 밀착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벽 배송 작업 현장이나, 문래동, 공덕역 같은 삶의 현장을 ‘떠돌며’ 오늘의 삶의 살아 있는 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한다. 비록 언어적 세공을 위한 수련이 더 있어야 한다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교를 넘어서는 의식일 것이다. 우수작으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심사위원 : 방민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 해석: ‘공작소’가 주는 느낌
- ‘새벽배송’은 익숙한 말인데, 여기에 ‘공작소’를 붙여 기지/공장/작전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요.
- “로켓도 쏘아 올릴듯한 기지”라는 구절과 연결되죠.
→ 배송은 친절한 서비스처럼 포장되지만, 실제 현장은 거대한 시스템의 작전 수행처럼 돌아간다는 암시입니다. - ‘공작’은 “정교한 제작”이기도 하고 “모종의 작전” 느낌도 있어요.
→ 인간이 물건을 분류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인간도 시스템에 의해 분류·소모되는 곳.
2) 시의 전개 한 줄 요약
밤(00:30) → 기지 입장 → 컨베이어/토트박스 폭주 → 청기백기(반복 노동) → 욕설/명령 → 선택(더 남을 사람?) → 서로의 얼굴 → “우리가 우리에게…”
즉, 현장 묘사가 윤리 질문으로 바뀌는 구조예요.
3) 첫 장면이 강한 이유: ‘사람이 아니라 화물처럼’
“작고 노란 봉고차에 이형화물처럼 올라타서”
- 시작부터 화자(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화물’**로 비유합니다.
- “접이식 의자” “졸음” “앉아서”
→ 출근이 아니라 **적재(실리는 느낌)**처럼 그려져요.
이때 독자는 이미 예감합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겠구나.
4) 공간의 압박: “거대와 명령과 굉음”
“거대와 명령과 굉음에 쪼그라들어서”
- 이 구절은 설명이 아니라 몸의 반응이에요. “쪼그라든다”는 생물적 표현.
- 개인은 작아지고 시스템이 커집니다.
- 이어지는 “그냥 입고 온 대로 입고서”는
→ 준비도, 보호도, 존엄의 장치도 없이 날것으로 투입되는 느낌을 줍니다.
5) 핵심 이미지 1: 토트박스의 폭주 = 노동의 파도
“잘못 건드린 도미노처럼 / 쏟아지는 토트박스 토트박스 토트박스”
- ‘도미노’는 한 번 시작되면 멈추기 어렵죠.
- “토트박스”를 세 번 반복해 리듬 자체가 폭주합니다.
- 이건 단순한 박스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속도(물량), 통제 불가능한 압력의 상징이에요.
6) 핵심 이미지 2: “왼손은 청기 오른손은 백기”
이 부분이 이 시의 발명입니다.
“청기 백기 함께 올려 / 청기 백기 함께 내려 / 반복하다가…”
- 원래 청기백기는 놀이인데, 여기선 신호-명령-반복으로 바뀌어요.
- 손이 ‘내 의지’가 아니라 ‘지시를 수행하는 장치’가 됩니다.
- 그래서 “능숙한 백기”가 나옵니다.
“능숙한 백기를 든다”
- 백기는 항복이잖아요.
→ 노동의 기술이 늘어간다는 말이, 실은 저항을 접는 기술이 늘어간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 이 한 줄이 시의 사회성을 확 세게 만듭니다. 하지만 직접 구호를 외치지 않고 비유로 끝까지 밀어요.
7) ‘청기가 끼는’ 순간 = 몸의 끼임 + 마음의 끼임
“청기가 어딘가에 끼어서 … 깜빡하고 가져와버린 마음에도 끼어서”
- 여기서 ‘끼다’가 두 겹입니다.
- 박스 사이/선반 틈에 끼는 물리적 사고 위험
- “마음에 끼는” 정신적 사고(감정의 걸림)
그리고 쉬는 시간 15분.
그 짧은 틈에서 드는 질문:
“내가 나한테 이래도 될까?”
이 질문은 ‘회사/관리자’에게 묻는 게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
즉, 시스템만 탓하는 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소모시키는 구조까지 바라봐요.
8) 권력의 목소리: “돈 벌러 온 것”
“여러분은 이곳에 돈 벌러 온 것이라며 / 줄줄 새는 욕으로 우리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 이 말은 모든 걸 정리해버립니다.
- 인간의 컨디션, 안전, 존엄 = 부차적
- “돈 벌러 왔잖아” 한마디로 폭력의 정당화
- “줄줄 새는 욕”은
→ 욕설이 특정 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새어 나오는 환경이라는 뜻이에요.
9) 새벽이 ‘닳아간다’: 시간조차 소모품
“새벽이 닳아간다”
- 보통 새벽은 신선하고 시작의 시간인데,
- 이 시에서 새벽은 깎이고 닳는 자원이에요.
- 노동이 인간만 닳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질감까지 닳게 합니다.
10) 후반의 잔혹한 질문: “꼭 안 가셔도 되는 분?”
“혹시 꼭 안가셔도 되는 분 있습니까 / 조금 더 일하실 수 있는 분 있습니까”
- 이건 자발적 선택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구조적 강요가 되기 쉬워요.
- “힘 빠진 청백기 대여섯 개가 죄처럼 들려지고”
- 손이 죄를 든다(=내가 남는 것이 죄 같고, 가는 것도 죄 같다)
- 누구나 지쳐 있는데 누군가는 더 남아야 한다는 죄책감의 배치.
그리고 마지막,
“나는 옆 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 그 사람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 우리가 우리한테 이래도 될까?”
- 시선의 교환으로 끝나요.
→ 고발문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다시 되찾는 순간. - “회사/사회”가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둡니다.
공동체의 자책이자 연대의 씨앗입니다.
11) 이 시가 “삶에 밀착한 시”인 이유
- 현장 디테일: 봉고차, 컨테이너벨트, 토트박스, 롤테이너, 도크, 15분 휴식…
- 그런데 그 디테일이 단순 재현에서 멈추지 않고
- ‘항복(백기)’
- ‘마음의 끼임’
- ‘새벽이 닳아감’
- ‘우리가 우리에게…’
같은 윤리·존엄의 질문으로 넘어가요.
즉 “현실 묘사 → 시적 전환”이 제대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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