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목 / 김미정

<당선작>
침목 / 김미정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당선소감>
"버티려면 단단해져야 하는 침목 같은 시간 지나…이제는 맘껏 시 쓰려 해"
침목, 물에 잠긴 나무가 떠올랐다. 꾹꾹 눌러진 누군가의 삶이 느껴지기도 했다. 검게 타들어 간 나무색, 재에 가까워지는 나무, 버티려면 단단해져야 하는, 침목과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그런데도 내게 기다리라고 말하는 순간들은 자주 반복되었다. 읽고 싶고, 쓰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끊어진 시간을 찾아 거슬러 오르는 중이다. 철로는 휘지 않도록 간격을 둔다. 비록 나의 간격은 길었지만, 이제는 맘껏 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려고 한다.
수상 전화를 받았을 때 기쁨과 동시에 겁이 났다. 이제는 그 순간의 떨림을 기억하겠지.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 때마다 '未定之天, 美貞스럽게'라고 스스로 위안했었다. 그 시간들이 앞으로도 반복되고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 조바심이 날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준 버팀목 같은 사람이 많아서, 요즘의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시를 보면서 채워지는 느낌이 행복해서, 오롯이 나를 욕심내는 시간이 채워져서 좋았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책상에 앉아 나를 마중하는 시간을 위해 시를 만나는 삶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내 안에 시가 있다고 말씀해주신 고명재 교수님의 열정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계속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신용목 교수님, 소중한 은인, 두 분께 진심으로 너무 감사드린다. 시의 곁을 내어준 경은 쌤, 수연 쌤. 감사해요, 쓰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계명대 교수님들과 문우들(미미새와 우리 쌤들), 추억을 공유하는 끈질긴 친구들, 야야패밀리, 쌤이라고 불러주는 아이들, 그리고 해바라기 같은 나의 지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아내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준 남편, 소중한 보물들 승준, 승원, 예진. 항상 고맙고 사랑해! 오늘을 있게 해준 나의 할머니와 엄마, 예쁜 동생 숙이에게 찐한 애정을 전한다. 은서, 파이팅! 항상 내 편이라는 마음을 갖게 해준 가족과 시월드, 모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이 지면을 마련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1972년 강원 황지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경북 칠곡 거주
<심사평>
"유니크한 발상·언어 구성력 뛰어나…삶 원리를 침목 속성에 은유한 가편"
202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투고작들이 들어왔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의 긍정적 여파가 예비 문인들의 활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의 내실도 더욱 탄탄해졌는데,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응모해준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꽤 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시선과 언어를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들이 개진한 언어는 시단의 관습이나 주류를 따르지 않고 경험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 이 분들의 정성에 의해 한국 시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유니크한 발상과 언어적 구성력을 가진 김미정씨의 시편들에 주목하였고, 그의 '침목'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시편은 철로에 놓인 침목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삶의 깊은 원리로 은유한 가편이다. 그 안에는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오래도록 버티고 갈라지고 기울어지고 낡아온 시간이 담겨 있고, 나아가 타자를 품은 채 내면으로 신성을 안아들이는 과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머지 시편들도 균질성을 거느리고 있어서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영남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기대하게끔 해주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예술성과 구체성을 견지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큰 애정으로 응시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더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면서 투고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 장옥관(시인·계명대 명예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 ‘침목’이 이미 시의 결론을 말해준다
침목은 철로 밑에 깔려 레일을 받치는 나무/콘크리트 받침이죠.
- 위에서 열차가 꾹꾹 밟고 지나가도
- 아래에서 레일이 흔들리지 않게
- 스스로는 갈라지고 낡고 눌리고 젖고 썩어가며 버팁니다.
즉 침목은 “성공/전진/속도”의 주체가 아니라,
남이 전진하도록 내 몸을 바치는 존재입니다.
이 시의 화자(‘나’)는 끝까지 “나”를 말하지만, 사실은 점점 침목이 되어가는 삶을 보여줘요.
2) 시의 큰 흐름: “버티는 각도 → 갈라짐 → 신의 부재 → 기다림 → 폐기/대체 → 부유(떠있음) → 밟힘을 청함”
이 시를 한 줄씩 쪼개면, 정서는 이렇게 이동합니다.
- 버틸 수 있는 각도를 찾는다(넘어지지 않으려는 시작)
- 결빙/반복/갈라짐(삶이 같은 고통을 되풀이)
-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오히려 몸을 흐물거리게 함(체념/무감각)
- 신이 자주 자리를 비움(구원/의미의 공백)
-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관계의 간절함)
- 생활의 장면: 커튼, 성호, 밥상, 철냄새(병실/시설/노동 현장 같은 일상)
- 결국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대체 가능, 소모품화)
- 그때부터 “부유하는 법”을 배움(버팀 → 떠있음으로 생존방식 변화)
-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끝나지 않는 연기)
- 마지막: 누구든 밟고 지나가길(자기 분리/자기 희생의 완성)
3) 첫 행: “빙하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 — 이 시의 ‘핵심 비유’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빙하열차는 흔들림, 경사, 느린 이동, 눈과 얼음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여행의 낭만”이 아니라 기울어진 잔입니다.
- 유리잔은 조금만 더 기울면 넘어져 깨지고 쏟아집니다.
-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각도”가 있어요.
- 화자는 지금 자기 삶을 **“넘어지지 않는 선”**으로 조정하고 있는 겁니다.
즉 이 시의 첫 장면은 “행복한 기차여행”이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내가 겨우 버티는 자세예요.
4)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 — 고통이 ‘주기적으로 재발’한다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결빙은 단순히 추운 날씨가 아니라
움직임이 멈추고, 딱딱해지고, 깨지기 쉬워지는 상태예요.
- “반복”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해요.
한 번의 사고가 아니라 주기적인 재발입니다. - “선로를 따라 갈라진다”는 건,
내가 스스로 갈라진다기보다 시스템(선로)의 방향에 맞춰
그 틀대로 쩍쩍 금이 간다는 뜻이죠.
이 대목부터 화자는 “사람”이라기보다
철도 구조물처럼 말하기 시작합니다.
(= 나의 삶이 ‘기능’으로 환원되는 순간)
5) “아무렇지 않다”가 물이 되어 몸을 늘어지게 한다 — 버팀이 아니라 ‘풀림/무너짐’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이 한 줄이 이 시에서 정말 아파요.
보통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강한 척하는 말이죠.
그런데 시는 그 말을 강함이 아니라 물로 바꿉니다.
- “아무렇지 않다”를 되뇌면
감정이 마비되기보다, 오히려 몸이 물처럼 늘어집니다. - 즉 이 말은 “괜찮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풀어버리는(무너뜨리는) 주문이에요.
그리고 이어서 시선이 바닥 쪽으로 내려갑니다.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 솟은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
이건 단순 풍경이 아니라 **화자가 ‘누워 있는 환경’**을 드러냅니다.
- “낙상주의 사물함” 같은 물건은 병원/요양/시설/기숙/현장 휴게공간 등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 곳’**을 떠올리게 해요. - 화자는 지금 “서 있는 삶”이 아니라
누워서 각도만 조정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버티는 자세 자체가 삶이 된 상태)
6)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 구원의 부재 + ‘침목’의 생태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이 문장이 왜 ‘침목’과 맞물리냐면,
침목은 실제로 물, 습기, 부패와 싸우며 버티는 물성이기 때문이에요.
- 물속 = 잠긴 상태
→ 숨 쉬기 어렵고, 방향 감각이 흐려지고, 시간이 느려지는 상태. - “신이 자리를 비운다”
→ 의미/구원/설명/납득의 부재.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에 답이 없는 상태.
그래서 화자는 이렇게 버팁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이건 태아 자세, 즉
세상과 접촉면을 줄여서 고통을 최소화하는 생존 자세예요.
7) “나랑 같이 있자” — 관계를 부르는 주문, 그리고 “보고 싶다 12번 = 사랑해 1번”
나랑 같이 있자
…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여기서 시는 갑자기 “말”이 됩니다.
앞부분이 물성(유리잔/결빙/갈라짐/물)이라면
이 대목은 언어의 물성이에요.
- “보고 싶다”는 말은 가볍게 쓰이지만,
화자에게는 그 말이 열두 번 쌓여야 겨우 “사랑해” 한 번이 됩니다. - 즉 화자에게 사랑은 선언이 아니라
장기간의 반복과 축적이에요.
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묘지·추모·상징수로도 자주 쓰이죠)
버티는 나무/장례의 나무/기다림의 나무로 읽힙니다.
8) “커튼, 성호, 밥상, 철 냄새” — 아주 구체적인 ‘생활의 감옥’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이 장면은 정말 생활감이 강해요.
여기서 시는 “거대한 철학”이 아니라 하루의 루틴을 보여줍니다.
- “커튼이 열리면” → 병실/시설/공동생활 공간의 느낌이 강합니다.
(개인의 방이 아니라 “칸막이 뒤의 삶”) - “각자의 성호” →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자기 신에게 의지하는 방식이 다름. - “철 냄새” → 피, 녹, 기계, 노동, 병원 기구, 레일…
그리고 “밥 냄새”가 섞임 →
살아있는 일상의 냄새와 생존의 냄새가 한곳에 섞여 있음.
이 장면 하나로 화자의 세계가 확 좁아져요.
살아 있으나 ‘기차의 객차/병실의 커튼’ 같은 구조 안에 갇힌 삶.
9)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 내 삶의 시간이 아니라, ‘운행표’의 시간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여기서 열차는 외부의 시스템입니다.
- 시스템은 제시간에 오기도 하고, 늦기도 해요.
-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내 사정과 무관하다는 것.
나는 그냥 그 운행에 맞춰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핵심: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침목은 실제로 목재 침목도 있고 콘크리트 침목도 있죠.
즉 화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느끼는 겁니다.
- “나는 대체 가능한 부품이었구나.”
- “내가 버티던 자리에는 다른 재료가 들어오겠구나.”
- “나는 ‘폐목’이 되어 다른 곳으로 치워지겠구나.”
이게 슬픈 이유는, “공원”이 나쁜 곳이라서가 아니에요.
공원은 보기엔 평화롭지만, 그 의미는 **‘퇴역/처분/재배치’**입니다.
10)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 버티는 방식이 바뀐다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있어요.
- 앞부분의 화자는 “버티는 각도”를 찾습니다. (저항/유지)
- 그런데 “대체/폐기”를 맞닥뜨린 뒤에는
“부유(떠있음)”를 배웁니다. (이탈/분리)
부유는 두 가지로 읽혀요.
- 살기 위한 기술
- 물에 빠진 사람이 떠 있어야 살듯
- 감정적으로 완전히 가라앉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
- 자기 소거의 단계
- 침목이 결국 닳아 부서지고 분리되듯
- 나도 “나”를 가볍게 해서 사라질 준비를 하는 느낌
그리고 “신은 나를 통과”한다는 말이 묘해요.
- 보통 신은 “구해주는 존재”인데
- 여기서는 신이 나를 “통과”합니다.
→ 마치 바람/물/시간처럼.
구원이라기보다 현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신.
즉 이 시의 신은 따뜻한 손이 아니라,
차갑게 지나가는 어떤 힘에 가깝습니다.
11)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 — 끝없는 연기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이 한 줄은 거의 “침목의 운명”이에요.
- 침목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 침목은 그 자리에서, 계속 다음 열차를 기다릴 뿐입니다.
화자의 삶도 그와 같다는 고백이죠.
12) 마지막: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 가장 잔인하고도 ‘침목다운’ 결말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이 결말이 단순히 “자학”만은 아닙니다.
침목의 기능을 생각하면, 이건 자기 역할의 극한 자각이에요.
- 침목은 “밟힘”을 거부하면 침목이 아니게 됩니다.
- “밟힘”을 받아내며 레일을 지켜야 해요.
하지만 화자는 “밟고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합니다.
여기엔 두 겹이 겹칩니다.
- 희생의 윤리:
누가 지나가도 나는 받쳐주겠다. - 해체의 결심:
그렇게 해서라도, 더는 한 덩어리로 버티지 않겠다.
(갈라지고 부서지고 분리되어 가벼워지겠다)
그래서 이 시는 “끝까지 버텼다”가 아니라
**“버티다가 ‘버티는 나’를 해체하는 단계”**로 끝나요.
(침목이 결국 부러지고 갈라지고 재가까워지듯)
13)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인가
가장 쉬운 말로 정리하면, 이 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오래 버텼고
- 그 과정에서 계속 갈라졌고
- 신(의미/구원)은 자주 부재했고
-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고
- 결국 나는 대체 가능한 자리였음을 깨달았고
- 그때부터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떠 있는 법(부유)**을 배웠고
- 마지막에는 **밟힘을 감내하는 존재(침목)**로서
나를 분리/해체하며 가벼워지려 한다.
'좋은 글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예의 / 최경민 (0) | 2026.01.27 |
|---|---|
| [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스토피아 / 백아온 (0) | 2026.01.26 |
| [2025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산사 / 최원준 (0) | 2026.01.26 |
| [202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애도 / 이희수 (0) | 2026.01.24 |
| [2025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인> 광명기업 / 김용희 (0) | 2026.01.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