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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박은주

 

바바리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바리가 참 잘 어울렸다. 내가 살던 바닷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련된 외모에 키도 훤칠했다. 핏기없는 얼굴과 바람에 팔락이던 바바리 끝자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늦은 점심으로 허기진 배를 막 달래고 났을 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를 보자마자 한 여자의 이름을 힘들게 뱉으며 아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집을 가르쳐달라 했다.

여자의 집에 도착한 그는 장승처럼 서 있었다. 한걸음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집안을 기웃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다는 내 말이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는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황토색 바바리 때문이었을까, 왠지 그가 바람을 업고 있는 흙벽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작은 동네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눈꺼풀 위에 앉아 있던 잠이 달아났다. 어른들은 잰걸음으로 소리를 따라갔다. 나도 뒤따랐다.

젊은 남자가 농약을 마셨다. 그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다. 다급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발을 동동거리며 차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과 달리 넋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옷을 잡아 흔들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집안 망신이라며 벼락같은 소리로 딸을 야단쳤다.

사람들 틈으로 쓰러진 남자의 옷이 보였다. 눈에 익은 바바리였다. 그 남자였다. 장정 몇몇이 그 남자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온몸이 뻣뻣하다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낮에 본 사람이 농약을 먹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동네 어른 한 분이 어린아이가 볼 것 못 된다며 나를 내쫓았다. 그날 밤 나는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뻣뻣해지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어른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내 귀까지 왔다. 그는 병원으로 갈 새도 없이 숨이 넘어갔다. 빈속에 약을 마셔 더 그랬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그가 우리 동네에 온 것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미리 준비해온 농약을 마셨다. 남자를 본 동네 사람들은 잘생긴 인물이 아깝다며 혀를 찼다. 어떤 사람은 여자네 부모를 흉보기도 했다. 둘은 결혼식만 하지 않았지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 말끝에 젊은 사람이 숨이 빨리 끊어진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남자가 마신 농약은 적은 양이라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지금에야 그를 죽게 만든 것이 허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랑에 허기진 사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했다. 그는 동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해 가슴에는 늘 차가운 허기만이 돌았다.

언니는 그 허기진 가슴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같은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어머니, 그에게 허기를 준 사람이지만 한없이 그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언니와 사는 동안 그리운 어머니를 만난 듯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언니를 잃는다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또다시 허기진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그에게 허기는 삶을 포기할 만큼 잔인한 것이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바바리를 즐겨 입는다. 길을 가다 황토색 바바리를 입은 젊은이를 보면 그 남자가 떠오른다. 그의 허기진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당선소감>

 

감기몸살 때문에 몸이 바위처럼 무거웠습니다. 한해를 골골거리며 아프게 마무리하는 것 같아 마음도 덩달아 깊은 바다에 빠지듯 가라앉고 있을 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손이 되어 심해에 가라앉은 나를 건져준 구원의 손길 같았습니다. 수필을 알아 좋고 꿈같은 소식을 듣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수필을 쓰다 보면 끼니를 잊어가며 손이 저리도록 글과 씨름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억의 우물에서 추억을 떠 문장을 안치면 밥이 되듯 글 한 편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어느 땐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밥처럼 새까맣게 타, 내 마음을 태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수필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관심과 격려해준 분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옆에서 칭찬만 해주는 남편과 딸과 두 아들, 열심히 내 글을 읽어주시는 시어머니, 길동무 같은 포항수필사랑문우들, 수필을 가르쳐주신 이화련 선생님, 김종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어설픈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정말 고맙습니다. 수필가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제주매일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포항수필사랑회원 / 주소 :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심사평>

 

죽음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글 속에서도 대사건이다.

인생의 생과 사에 관한 것은 모두 작가의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 ?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작자>는 어렸을 적 목격한 충격적인 한 남자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기억의 저변에 두지 않고 어머니가 된 지금 그 왜? 라는 질문에 연연하며 고심한다.

<작자>의 관찰의 눈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았다.

기억과 인생의 연륜을 경험으로 대답해 내놓는다.

수필에서 드물게 영화에서 사용되는 컷 백형식을 엿볼수 있었으며, 그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수필은 진실을 주시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고 사회와의 연관을 구할 때 강력한 예술적 주장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리라는 걸 확신해본다.

심사위원 :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