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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얄

박상미 

웃자란 잡풀들만 마당 안에 가득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때마다 간신히 매달린 문짝들이 덜컹거렸다. 추억 찾기 여행만 아니었다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폐가의 전경은 지켜보던 나를 두려움으로 머뭇거리게 했다. 먼저 들어간 남편이 손짓을 했고 둔덕아래서 기웃거리던 나와 딸아이가 두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소품들만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때 묻은 것들에게서 행여 이야기라도 쏟아져 나올까 귀를 기울여본다. 딸아이 눈이 쥐눈이콩 마냥 새카맣게 빛이 난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며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사람손길이 떠난 두께를 말해주었고 시간의 무게만큼 내려앉은 아랫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진 남편 덕분에 덩달아 누려보는 호사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대한 배경이 그립기만 하던 요즘이었는데 귀한 구경거리와 만났다. 쓰러져 가는 빈집이었으나 토담에 기대고 서있는 사립문과 구멍 숭숭 난 창호지 틈새로 그 옛날 고향집이 떠오른다.

부엌 안은 그을음으로 가득하다. 흙벽 앞에 위치한 살강은 쥐들의 수난을 엄청나게 받았을 테지. 색 바랜 주발 한 개와 수저 몇 벌이 보인다.

사십년쯤 시간을 거스르면 내 유년의 부엌도 그러했으리라. 쪽마루에 나뒹굴고 있는 양은주전자, 석유풍로, 선반 위 녹슨 가위까지 해후한 벗이 되어 반가움을 더해주었다. 마치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거룩한 의식에 초대 된 기분이다. 남겨진 물건들을 살피는 내내 반가운 함성이 그칠 새 없이 나온다.

두리번거리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귀얄이다. 낡은 나무기둥 대못에 얼마 전까지도 제구실 톡톡히 했을 자세로 걸려있다. 가위 뼘 넓이 틀에 숱이 빽빽한 모습이다. 손잡이가 반질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이 집 단장에 쓰여 왔나 보다.

귀얄의 손길은 섬세하지 않고 둔하다. 정교하게 선을 내려 그어 사군자 속 난 잎을 뽑아 낼 수 있는 귀족신분의 붓이 아니다. 노비나 서민격의 솔이다.

예술적인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일보다 덮어주고 접착시키는 역할에 더 어울린다. 오동나무로 짜 맞춘 옷장과 경대에 옻칠을 하거나 벽지를 훑고 지나가는 풀비가 되어 도배를 돕는 것이 귀얄이다. 한마디로 다목적 큰손이다.

시간을 거스르며 생각 속에 묻혀있을 때 폐가 기둥에 걸려있는 귀얄과 아버지의 손이 겹친다.

어찌 생각하면 아버지의 투박한 손도 귀얄이다. 어머니의 잔정과는 또 다른 강도였다. 아무렇게나 쓸어내리듯 하지만 뭉근히 타오르는 사랑을 손길에 묻혀 바른다. 집안곳곳과 가족들 마음속에 귀얄 문양을 칠했던 평생이었다. 특히 그 터치는 피붙이 자식들에게 내리사랑으로 더 쏠리어 온갖 기법을 발휘하였다.

졸음 쏟아지는 밤이면 거친 손바닥으로 삼남매 등을 쓸어 평안히 잠재워주곤 하였다.

가을까지 쉴 새 없는 농사일로 굳은살이 생기지만 실은 겨울에 더욱 거칠어진다. 무릎 넘게 눈이 쌓인 날도 빼놓지 않고 땔감을 구해왔다. 박씨 문중 산에 우거진 가시나무 베어오느라 두꺼운 가죽장갑을 껴도 손바닥에 가시가 수도 없이 박힌다. 백열등 아래서 바늘을 세워들고 아버지의 손바닥을 헤집는 어머니. 거북이등 모양으로 갈라진 손바닥을 보며 어머니 가슴에도 골이 깊어 졌으리라.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고 힘든 농군의 길을 걸었다. 부족한 땅뙈기와 논배미나마 올바로 건사하여 맥을 잇기까지 애면글면 고생하였을 것이다.

이 집을 가꾸는 일에 기꺼이 한 몸 바쳤을 귀얄이 끝내 이사 길에 동행하지 못했다. 집안 어느 구석 미치지 않은 손길이 없도록 애쓴 공로가 높을 것인데 버려진 것 내색도 않고 묵묵하게 걸려만 있다. 그것이 겸손인지 미련함인지 답을 얻을 수 없어 나는 뻣뻣해진 솔 끝만 만지작거렸다. 숱이 얼마 남지 않아 윤기 잃은 아버지의 머리칼을 쓰다듬듯 손안에 한참을 머무르게 했다.

아버지도 늘 고단한 표정 내보이지 않고 허름한 고향흙집에 붙박이 된 귀얄이었다. 친정복판에 아버지를 걸어두고 냉큼 강원도로 시집 와버렸다.

처음엔 내 가정을 형형색색으로 덧칠하고 단장할 힘이 넘친다며 의기양양 자신했었다. 허나 얼룩에 불과할 일들도 덮어주지 못한 채 기진맥진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새 숱 가득한 손잡이 들고 곁으로 다가온 이가 남편이다. 저무는 황혼의 날까지 거칠고 험한 시간을 덧칠하며 동행할 사람이다.

폐가의 허름한 헛간 앞에서 발에 풀칠이라도 한 듯 미동조차 않는 나를 부른다.

다 찍었어,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

추억 더듬기를 계속하자는 남편의 말이다. 손안에 움켜쥐었던 귀얄을 다시 걸어두며 가슴 한구석 사진기의 셔터를 꾹 눌러 담아놓는다.

바다 소금기를 털어 낸 바람이 우리가 있는 산 쪽으로 분다. 부는 해풍 결에 뒤란으로 길게 이어진 대숲의 흔들림이 보인다. 댓잎이 내 등을 긁는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가 귀얄로 찍어 그린 한 폭 수채화다.

역동적인 자연의 몸동작!

 

<당선소감>


밤마다 긴장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미 활시위를 떠나 응모된 글이 다시 되돌아와 몸에 박히는 가위눌림이었습니다. 날카로운 화살촉마다 후회의 눈물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사람인데, 행여 섣부른 욕심은 아니었을까 갈등했습니다.

당선소식을 접하는 순간부터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결국 세상을 향하여 또 한 번 부끄러운 무게로 발걸음 떼어놓게 되었습니다.

수필을 쓰는 일은 삶에 고통이 더해지는 작업이었습니다. 위선과 거짓이 아닌 진실만으로 다가서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을 견고히 살아내야 했습니다.

하찮은 미물을 대하는 시선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 먼저 손 내밀며 마음 열어야 했습니다.

누구의 관심과 도움 없이 홀로 외로운 글쓰기로 버텨왔노라 자위(自慰)했건만, 사랑가득한 분들만 떠오릅니다.

어렵게 고뇌하여 쓰되,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는 감동의 글을 써라!’라며 열일곱 갈래머리 여학생에게 꿈을 심어주셨던 여고시절 문예반 이봉형선생님은, 그리움입니다.

자신감 잃고 주저앉을 때마다 곁에서 일침을 놓아주던 평생 동반자 남편은, 고마움입니다. 매끈하지 못한 수필 한 편 골라내어 기운 북돋아 주신 심사위원님은, 애달픔이었을 겁니다.

이제 외롭지 않기로 합니다. 밑거름삼고 달려가라 힘 실어주신 전북도민일보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심사평>

 

한 편의 글로써 세상의 귀얄이기를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77명의 수필 264편을 심사했다. 올해는 특히 자연과 풍경을 일상과 접목하여 작품화한 글이 많았다. 우리의 삶이 문학을 통해 어떻게 새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작품의 질적 수준의 편차가 다소 있었지만 수필을 향한 예비 작가들의 습작을 통한 노고와 함께 문학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기억들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작품이 되도록 노력한 순수함에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박상미의귀얄을 뽑았다. 풀칠을 하거나 옻칠을 할 때 쓰는 귀얄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과 완성된 문장이 돋보였다. 쓰러져가는 빈집에서 발견하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귀얄을 가려내어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기억하고 고향 흙집에 붙박이가 된 귀얄과 아버지를 동일시한 구성이 탁월했다. 버리고 간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경을 조금 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한 편의 글로써 세상의 귀얄이 되길 바란다.

아깝게 탈락했지만 이정인의미영솜꽃도 우수한 작품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목화솜 이불이야기를 따뜻하게 전개하였으며 목화에 비유한 표현 등이 돋보였다. 일반적인 부분을 과감히 버렸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박홍배의굴뚝새의 기호이종희의 개똥아버지, 아들이상수의 까둥거리이성은의 오래된 의자김정숙의 전라도 예찬이연숙의 구제, 이름을 얻다등 다수의 작품이 탄탄한 구성으로 문장력이 돋보인 글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 조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