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바디와 북

류현서

 

집안 정리를 하기 위해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 안은 이것저것 밀려난 살림살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쪽에는 크고 작은 솥들과 대나무 소쿠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또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상자가 입을 봉하고 있다. 상자를 열자 언제 넣어 두었는지 바디가 보인다.

길쌈을 할 때 날실을 끼울 수 있도록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것이 바디다. 바디는 날줄 사이로 씨줄이 담긴 북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참빗처럼 촘촘하게 생긴 바디 사이에 날줄을 끼우면 베 짜기는 시작된다. 이때부터 씨실을 문 북과 날줄을 문 바디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북이 가로 길로 지나가면 바디가 세로 길로 내려오고 다시 북이 돌아오면 바디 역시 시차를 두고 내려와 앉는다. 한 필의 베를 짜기 위해서는 한 올의 씨줄과 날줄이라도 어긋나면 베가 안 되듯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으리라.

남편이 북이라면 나는 바디가 아니었나 싶다. 천지사방 옷자락을 휘날리며 다니는 남편이야말로 매끈한 몸으로 바람처럼 베틀을 누비는 북과 다를 봐 없다. 밤낮없이 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속을 태우는 나는 베틀에 매여 있는 바디와 닮은꼴이다. 하나 부드럽지 못하고 꼿꼿한 성격끼리 만난 우리는 여태 수더분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해 부부모임에서 단풍놀이를 갔을 때였다. 붉은 단풍만큼이나 우리 부부의 젊음도 곱던 시절이었다. 단풍에 취해서 가을의 짧은 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산속의 새들도 제집을 찾아들 시간, 집에 올 때가 되었는데 그제야 남편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들이 산 계곡을 훑고 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불러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였다. 일행들 보기가 민망하여 산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금 전에 흥에 겨워 부른 노래가 마음속에서는 울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쩌랴. 일행들과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남편이 밉다가도 제발 무사하게 와주기만을 바랐다.

집에 도착하니 캄캄해야 할 방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한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말도 하기 싫었지만 "왜 먼저 왔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 신 나게 놀고 있는 것에 화가 나더라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늴리리 맘보춤을 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야외에서 노래는 물론이고 춤을 추면서 즐기던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혼자 돌아온단 말인가. 그날의 내 마음은, 아이라면 있는 힘을 다해 두들겨 때려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었지만 그래도 없어져서 애를 태우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뀌고 중년이 되어서도 남편의 너그러움은 늘어날 줄 몰랐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자기주장만 밀고 나갔다.

사람의 성격은 조금은 변할 수 있으나 많이 바뀌기는 어렵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북이 달아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느낌이다. 남편은 나와는 언제나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반대론을 펼친다. 희망적인 것보다 염려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산이라면 한쪽은 강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 생신이라 형제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했다. 그날 아침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의견차이가 났다. 대화가 다 일맥상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 않은가. 음식을 준비하다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찾아보아도 없었다. 전화해 보니 아예 받지도 않는다. 대문에는 언니 동생들이 짝을 지어 몰려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알기라도 하면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언니와 동생들이 눈치를 읽었는지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해서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베를 맸다. 바디에 실을 끼우는 일로, 베를 짜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바디의 섬세한 틈 사이에 한 올이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바디와 날줄이 맞물려 제자리를 찾아 바로 앉게 된다. 날줄은 너무 말라도 젖어도 안 된다. 혹 마르기라도 하면 물을 축여 꼽꼽하게 만들어야 실이 잘 끊어지지도 않고 바디 사이로 북이 순조롭게 들락날락한다. 그리고 베를 짤 때마다 북 질을 몇 번 하고는 늘 바디집을 탁탁 쳤다. 그렇게 해야 베올이 느슨하지 않고 올이 성긴 데가 없이 곱게 짜지기 때문이었다.

바디집을 치는 것은 우리 인생의 긴장감 같은 것이리라. 바디집을 친 뒤에야 엉성하지 않고 야무진 베가 되듯이, 평탄한 가정을 위해 서로가 고삐를 당기기도 늦추기도 해가며 이제껏 살았다. 그렇게 이래저래 살다 보니 마음을 조금씩 넓게 가지면서 인내를 쌓아가게 되었다. 그것이 집안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바디를 닦아본다.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색깔만 좀 짙어졌을 뿐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세월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간결한 그대로이다. 어쩌면 이토록 좁고 넓은 데가 없이 한결같은지. 그것 역시 삶에서 이탈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북이 제멋대로 날줄 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바디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기며 기꺼이 거부하지 않고 살아 왔다. 하지만 바디가 아무리 틀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북이 없으면 저 혼자 베를 짤 수 없고, 북 또한 씨실을 물고 다닌다 하여도 바디가 받쳐주지 않으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다.

가지런한 바디의 모습은 아직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도 주어진 몫에 마다치 않고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그립다. 그 세월 뒤에는 밀고 당기는 북과의 긴 시간이 있었다. 북과 바디는 붙어서 함께 가야 하는 끈끈했던 삶들이었다. 바디 살처럼 내리는 빗속으로 지난날이 얼비친다.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내 마음도 감회에 젖어드는 오후다.

 

<당선소감>


수필 사랑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거대한 구름이 용솟음치듯 떠 있는 새날입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가슴은 첫사랑 때처럼 두근거려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먼저 부족한 글을 지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에 대한 귀한 채찍으로 알고 발전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뒤돌아보면 즐거운 날도 있었지만, 그보다 모질게 마음이 아플 때가 더 많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마음에 든 멍이 가셔지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작한 수필입니다. 지난날, 마음이 시린 글을 쓸 때는 많이 울기도 했으며, 기뻤던 글을 쓸 때는 웃기도 했습니다.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도 향기를 피우며 봉오리를 터뜨리는 매화처럼 글로써 승화시키려 합니다. 이렇듯 수필은 나의 카타르시스요 안식처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수필을 향한 사랑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동리문학관에서, 동목수필에서 열강으로 가르침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홍억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 동인지를 발간한 '에세이울산' 회원들을 비롯해 저를 아는 모든 분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특히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과 딸에게 이 영광을 돌리려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에게 핑크빛 꽃물을 들일 수 있게 해주신 부산일보사 고맙습니다.

 

류현서 / 1952년 경북 경주 출생. 동목수필 회원. 에세이울산 회원.

<심사평>


부부 인생론, 사람 마음 사로잡아

 

오백 여 편의 응모 작품을 앞에 두고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응모자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주옥들이기에 그걸 읽어내는 일에 극도로 정성을 바쳐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처음 몇 편을 읽다가 감이 잡히는 게 있었다. 문장이 이지러져 있고 문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요컨대, 말이 안 되듯이 글이 안 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그런 작품들을 추려내기로 했다.

꼼꼼히, 샅샅이 따지고 살피고 한끝에 모두 36편이 일차 예비 심사를 통과했다. 소재의 창의성과 그것을 다루는 시각을 따지는 한편으로 글 전체의 짜임새를 짚어 나간 결과, 간신히 다섯 편이 재심을 통과했다.

마지막 결심은 너무 힘겨웠다. 문장 하나하나를 마치 현미경 들여다보듯 했고 소재며 주제를 다루는 개성의 심도를 후벼 파듯 했다. 세 번씩이나 다섯 편을 서로 견주어 본 결과, 류현서의 '바디와 북'이 간신히 최종 결심에서 승리했다.

바디와 북에 견준 부부 사이의 인생론이 그 소재로나 주제로나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당선작이 못 되고 가작으로 그치고 만 것은 마음 아프다. 뽑은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탓만은 아니라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 김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