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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와 나비

강경숙

 

큰길 버스 정류소 앞에 편의점이 하나 있어요.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어 이름도 부엉이 편의점이죠. 지나가는 사람도 뜸한 늦은 밤입니다.

수고하세요, 부엉이 아저씨!” 벽 한쪽에서 컵라면 먹던 두 남학생이 독서실로 돌아가자 주위는 물 속 같이 고요해졌어요.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자정이 다 돼갑니다.

아하함!” 뒤적거리던 신문을 접으며 아저씨가 하품을 합니다. 눈꼬리에 째앨 고인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는데 살그머니 문 여는 소리가 났어요.

어서 오십.” 문 쪽으로 눈길을 주던 아저씨는 그만 말을 마셔버립니다. 문틈으로 뭉툭하고 하얀 발이 설핏 보였거든요. 스르르 문이 열리더니 어라, 고양이 한 마리가 쑥 들어왔어요.

아마 문이 꽉 닫혀 있지 않았나 봐요.

니야우옹

, 웬 괭이고? 누가 델꼬 왔남.” 아저씨는 고개를 내밀고 문 밖을 살폈어요. 가로수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솨악솨악 들릴 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 집 없는 괭이가?”

에웅고양이는 뎅그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어요.

하이가! 말귀를 알아듣네.” 아저씨는 뜻밖의 작은 손님이 왠지 반가웠어요. 심심해서 벽하고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참이었거든요

배 고프재?”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냅니다.

, 이거라도 쫌 무봐라.”

자그마한 그릇에 듬뿍 부어 내밀었어요. 수염 난 손님은 코를 내밀어 큼큼거리더니 다가앉았어요. 앞발을 얌전히 모으고 할짝할짝 우유를 먹습니다. 배가 몹시 고팠나 봐요. 아저씨는 다시 소시지 하나를 뜯었어요.

근처에 대형마트 생겨서 장사도 안 되는데 마, 니라도 마이 묵어라.” 한 발 떨어

져서 지켜보는 아저씨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연한 갈색에 살짝살짝 하얀 가로무늬, 네 발은 꼭 하얀 양말을 신은 것 같았어요. 앞 뒤 양말 길이는 달랐지만요.

어릴 적 우리 집에도 꼭 니같은 노란둥이가 있었재.” 입가를 핥던 고양이는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눕히며 아저씨를 쳤다봤어요.

한 날은 학교 갔다 온깨 우리 나비가 없어졌어. 물 아래 동네 사는 아재가 델꼬 갔다캐. 쥐 잡는다고.”

에엥.”

그러구러 몇 달이 지났는데.” 부엉이 아저씨는 옛 생각이 떠오르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았어요.

어떤 날 새벽, 누가 방문을 톡톡 두드리는 기라. 문을 열어 봉깨 아 글쎄, 우리 나비야. 온 몸이 이슬에 홈빡 젖어서리.”

!” 오도카니 앉아 귀 기울이던 고양이는 기다란 꼬리를 펄럭거렸어요.

그 먼 길을 우째 찾아 왔으꼬? 참 영리한기라.” 문득 부엉이 아저씨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어요. 꼭 마음 잘 맞는 친구와 밤을 새는 것 같았거든요.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편의점 안을 기웃거렸어요. 털뭉치같은 앞발로 늘어진 끈을 건드려보다가 잠시 몸을 전주르더니 커피 자판기 위로 훌쩍 뛰어 올랐어요.

용케 따신 데를 찾았네.” 알찐알찐 재롱 피우는 아기 보듯 아저씨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아아웅!” 입을 좌악 벌리며 고양이가 하품을 하자,

아하함!” 아저씨도 따라서 하품을 합니다. 자판기 위에 엎드린 고양이는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동그랗게 몸을 만 고양이를 보자 아저씨도 졸음이 몰려왔어요. 꾸벅꾸벅 조는데 드르륵 문이 열립니다.

손님 없으면 더 피곤하다니까. 여긴 어때요?” 가끔 오는 택시 기사 아저씨였어요.

허허 말하나마나. 손님이라곤 쥐 한 마리도 없소.” 기사 아저씨는 뚜껑을 우두둑 비틀어 피로회복 드링크를 쭈욱 마십니다.

그러다가 자판기 위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봤지요.

웬 고양이요?” 부엉이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대답합니다.

하긴, 고양이 손님 하나는 왔구먼.”

고양이가 손님을 불러 온다는데, 나도 택시에 하나 태우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 기사 아저씨는 엎드린 고양이 등을 쓰다듬으며 편의점을 나갔어요.

어느새 날이 새는지 유리문 너머로 야광 띠를 두른 청소부가 보입니다. 힘찬 비질에 길에 널린 쓰레기가 쓱쓱 쓸립니다. 쓰레기와 함께 어둠도 쓸려나간 듯 동쪽 하늘이 점점 훤해졌어요.

부엉이 아저씨도 물건을 정리하고 먼지 쌓인 진열대와 탁자를 닦습니다.아침 8시쯤 아저씨와 교대하기 위해 아주머니가 들어왔어요.

밤새 별 일 없었수?”

으응. 뭔 일이 있을라꼬.”

길 건너 식육점과 과일 가게도 문을 닫았대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대형마트와 경쟁이 되겠어요 어디.” 한숨을 내쉬던 아주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니, 이게 뭐요?”

그기 그랑깨, 지난 밤 느지막이 찾아온 손님인데.”

손님은 무슨. 가뜩이나 장사 안 돼 죽을 맛인데 어서 내쳐요!”

어허 이 사람이. 업둥이는 내치는 법이 아닌기라.”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 할 땐가요? 장사가 안 돼 길에 나앉겠건만.”

그래도 살아 있는 걸 함부로 하는 기 아이라카이.”

아주머니 서슬에 고양이는 사뿐히 뛰어내려 출입문으로 후다닥 달려갑니다. 앞발을 문틈에 넣어 밀치더니 연기처럼 빠져 나가버렸어요.

그 자슥 참, 간다는 말도 없이 내 빼네.” 부엉이 아저씨는 조금 서운했어요. 아쉬운 눈길로 고양이가 사라진 바깥을 한참 쳐다봤지요. 그날 밤, 아저씨는 출입문을 살짝 열어놓았어요. 손님은 별로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설렜어요. 밤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뜸해질 무렵입니다. 출입문 아래쪽에 하얀 발이 먼저 보이더니 지난밤 그 손님이 쏙 들어왔어요.

에우우웅.”

그래, 어서 오너라. 어데 가 있었노?” 나비는 목을 길게 빼서 인사를 하며 반기는 아저씨 발치에 머리를 마구 부벼댔어요. 갸르릉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요.

아무래도 니하고 내하고 눈이 딱 맞았는기라. 아줌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응깨, 이제부터 내랑 같이 살아 보자.” 나비도 좋다는 듯 아저씨를 올려보며 뎅그런 두 눈을 깜빡였어요. 밖이 소란스럽더니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몇이 우르르 들어왔어요. 나비는 얼른 지난밤 자리로 올라갑니다.

아저씨, 컵라면 좀 먹을게요. , 고양이네!”

귀엽다. 이름이 뭐에요?”

고양이털은 보들보들, 만지기만해도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네.”

밤참을 먹으러 온 학생들은 한 마디씩하며 나비를 쓰다듬었어요.

나비는 싫은 기색 없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자판기 아래로 늘어뜨린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나비야, 넌 시험 안쳐서 좋겠다.” 어떤 학생은 들여다보고 신세타령도 합니다. 부엉이 아저씨는 어리둥절했어요. 나비는 그냥 자판기 위에 엎드려 있을 뿐인데 묘하게 활기가 넘쳤거든요.

거참,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부엉이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학생들이 먹은 라면 그릇을 치우고 힘차게 탁자를 닦습니다. 문득 계산대 위 전화벨이 울렸어요.

예예. 부엉이 편의점입니다!” 전화를 받는 아저씨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당선소감>


아프고 외로운 아이 굶주리는 목숨 없는 세상을 염원합니다

 

밖은 찬바람 몰아치는데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밥을 먹습니다. 바랄 것 없이 행복합니다. 문득 이 소박한 행복이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담보로 한 건 아닌지, 아마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동물과 곤충, 나무와 꽃이 똑같은 존재의 이유와 무게로 살아가지요. 글을 쓰면서 발견하는 온갖 유정물과 무정물의 질서와 진실. 그것이 종국에는 나를 끌어올릴 거라는 기대와 확신이 나쁘지 않습니다.

밭 매고 재봉틀 돌리고 글 쓰는 시간, 말로 살지 않고 일로 산 그 시간 이미 평화롭고 충만했는데 세모에 날아든 낭보는 보너스처럼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누구도 저 혼자 잘나서 이루는 것은 없는 법. 무수한 존재들이 관여하여 수상의 영광 만든 것 깊이 인식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전에 좋은 삶을 살아야하며 그러고서야 진정성 있는 글이 확보됨을 말없는 가르침으로 전해 주신 백영현 선생님, 한결같은 신뢰와 기대로 성취해 나가는 보람과 자부심 독려하시는 김재원 선생님. 두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수상의 자리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책무가 사뭇 부담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이익 따져 대형마트 찾지 않고, 가방 속에 길냥이 사료 넣어 다니며, 아프고 외로운 아이와 굶주리는 목숨 없는 세상 염원합니다. 작고 약하고 낮은 이에게로 향하는 시선, 그들을 위해 고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 아카시아 꽃잎 떨어지는 날, 먼 길 떠난 오빠가 깨우쳐주었거든요.

 

 

1958년 경남 합천 출생 / 국어국문학을 전공 / YWCA 신문 칼럼 연재, 현 수행전문지 <반냐> 기고 중

<심사평>


따뜻한 이야기·활달한 상상력으로 감동 불어 넣어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올라온 동화 작품은 모두 23편이었다. 한편 한편 작가의 땀과 정열이 느껴지는 귀한 작품이므로 읽고 또 읽으며 고심했다.

작가 지망생들이 쓴 글이기에 미숙하고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장래에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를 염두에 두었다. 글쓰기에 있어 몇 가지 언급하자면 책을 많이 읽고 습작을 많이 하라는 충고를 주고 싶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다독과 다작을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거기에 사물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글쓴이로서 독특한 색채를 갖게 될 것이다.

<부엉이와 나비>는 그런 점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이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아저씨와 길고양이와의 따뜻한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한 가지 조심스러운 점은 동화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문제다. 앞으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끝까지 견주었던 <달리는 자전거><금동이> 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동시 부문에 있어서는 보내온 여러 편 가운데에서 <호박>을 쓴 이의 동시 여러 편과 <손 머리 위로>를 쓴 이의 여러 편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호박> 을 쓴 이의 작품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형상화하는 힘이 조금 모자란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차분히 손보았더라면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손 머리 위로>를 쓴 이의 동시의 장점은 활달한 상상력과 밋밋하지 않은 표현 등이 오랜 습작기를 거쳐온 듯 든든함과 신선함을 함께 주었다.

동화와 동시, 두 부문 가운데 어느 한쪽을 버릴 수 없이 탄탄한 이유도 있어서겠지만, 아동문학을 아껴 두 부문 모두 수상키로 결정해주신 경상일보 측에 깊고도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 소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