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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빵과 두부

정수연

 

은우는 오늘도 대문 앞에 앉아 형을 기다립니다.주머니를 만지작거려 보지만 은우 주머니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습니다. 형이 와서 크림빵 하나를 넣어주기 전까지는요. 또각또각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갑니다.

"은우, 오늘도 형 기다리니? 바람이 찬데 들어가서 기다리지."

은우 집보다 조금 더 높은 언덕길 파란 대문에 사는 아주머닙니다. 아주머니는 은우 머리를 쓰다듬고는 또각또각 소리 내며 골목길을 올라갑니다. 쉬익∼∼. 아주머니 말대로 제법 찬바람이 은우 동그란 볼을 스칩니다. 재채기를 한 번 하고 콧물이 조금 나왔지만 은우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11월이 되자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은우 두 발이 슬리퍼 속에서 꼼지락거립니다.

"형아!"

은우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 멀리 까만 가방을 멘 형이 오고 있습니다. 차가워진 은우 손은 벌써 주머니를 만지작거립니다.

"왜 나와 있어, 방에서 기다리래도."

은혁이는 크림빵 하나를 은우 주머니 속에 넣어주며 손을 잡았습니다. 은우 얼굴은 금세 해맑은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렇게 일곱 살 은우는 중학교에 다니는 형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이른 아침 형이 찬물에 머리를 감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물이 얼지 않아 다행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그나마 찬물도 꽁꽁 얼어 버릴 테니까요. 방 한 칸에 아빠와 형 그리고 은우가 살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이곳은 와글와글 다섯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삽니다. 각자 방 한 칸에 두세 명의 가족이 살지요. 좁고 복잡하긴 하지만 모두 서로 도와주고 아낍니다.

"은혁아,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학원도 못 보내 주고 미안하다. 그래도 너는 우리 집 희망이다. 알지?"

아빠가 형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 까만 가방을 둘러멥니다. 아빠가 일 나가시고 형이 학교 가고 나면 은우는 또 혼자입니다. 그래도 형이 돌아올 때면 급식에서 나오는 크림빵을 가져올 것입니다. 은우가 최고로 좋아하는 크림빵을요. 은우는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옆방 아주머니가 주신 헌 그림책을 봅니다. 그림책 속에는 은우가 살았던 집이 나옵니다. 넓은 거실과 멋진 소파가 있는 집. 그리고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욕실. 은우는 가만히 그림을 쓰다듬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이 참 부럽습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과 은우는 꼭 같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그림 속의 엄마와 따뜻한 집이 은우에겐 없습니다. 은우는 콧물을 한번 훌쩍입니다.

 

오늘은 형이 늦는 날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형은 깜깜한 밤에 들어옵니다.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어서 큰 고모 댁 누나에게 수학을 배우고 오기 때문입니다. 은우는 옆방 할머니가 장사하시는 골목 아래 시장으로 갑니다. 삐뚤삐뚤 골목길을 걸어가니 귀에 익은 아주머니 아저씨 목소리가 들립니다.

"고등어요, 싱싱한 고등어요"

"귤이에요, 맛있는 귤이요"

저 멀리 시장 한구석에 두부를 파는 옆방 할머니가 보입니다. 할머니는 은우를 보고 손짓하며 웃습니다. 은우는 할머니 옆으로 쪼르르 달려갑니다.

"은우 왔나. 점심은 챙겨 먹은 기가?"

은우는 얼른 고개를 끄덕입니다. 안 먹었다고 하면 할머니가 또 맛없는 두부를 은우 입에 한 움큼 넣어주실 것입니다.

"두부 먹어 보거래이 은우야. 밥 먹었으니 한입만 먹어 보거라. 두부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 긴데."

할머니 말에 은우가 손으로 입을 막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은우가 귀여운지 두부를 떼어 은우 얼굴에 갖다 댑니다. 은우 눈이 동그래지면서 울상이 됩니다. 은우는 두부가 너무 싫습니다. 아무 맛도 없고 물컹물컹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옆방 할머니는 날마다 두부 자랑을 합니다.

"은우야, 두부가 얼마나 고소한지 아나? 두부를 먹으면 머리도 좋아지고 또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진대이. TV 같은 거 보면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들 두부 먹인다 아이가. 그게 다 희고 깨끗한 두부를 먹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그러는 거다. 알겠나. 두부는 사람한테 최고인기라."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껄껄 웃으며 두부를 사갑니다. 한참을 두부 자랑을 하던 할머니가 그제야 은우가 기다리던 왕사탕을 꺼냅니다.

"우리 은우는 오늘도 왕사탕이 더 좋은 기제? 언제나 두부를 좋아할꼬. ! 묵으라."

왕사탕을 받은 은우는 활짝 웃습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은우는 할머니 옆에 앉아 시장 구경을 합니다. 반찬 가게 할머니가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갓 담은 무김치를 보여 주며 맛보라고 합니다. 생선 파는 아저씨는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큰 생선들을 도마 위에서 땅땅 칩니다. 핫도그 파는 아주머니는 뜨끈뜨끈 맛있는 핫도그와 꼬지를 쟁반에 척척 올려놓습니다. 은우는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형이 늦는 날에는 이렇게 두부 파는 옆방 할머니께 왔다가 가면 시끌벅적 시장 모습도 구경하고 또 시간도 금방 지나갑니다.

 

오늘도 은우는 대문 앞에서 형을 기다립니다.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은우는 문득 형 마중을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골목길이 너무 많아 어느 쪽에서 형이 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은 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까만 가방을 멘 형을 보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릅니다. 은우는 콩콩 한 발을 들고 뛰다 걷다 합니다. 그러다 이상한 소리에 발을 멈춥니다. 저기 으슥한 골목길에서 사람 소리가 났습니다. 겁이 났지만 은우는 살금살금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봅니다. 골목 구석에서 누군가가 조그맣게 생긴 형을 가방으로 툭툭 칩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긴 점퍼로 몸을 가린 사람이 작은 형을 괴롭힙니다. 뒷모습이 꼭 악마 같습니다.

"오늘은 준, 준비물 사는 바람에 돈이 없어."

작은 형 말에 악마 같은 사람이 주먹을 들어 보입니다. 작은 형은 못 견디겠는지 몸속 어딘가에서 돈을 꺼냅니다. 은우는 나쁜 짓을 저지르는 저 사람을 경찰이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지나가면 얼른 이르고 싶습니다. 그때 돈을 뺏은 사람이 가방을 둘러멥니다. 그런데 은우 눈이 깜빡거립니다. 까만 가방입니다. 악마 같은 사람은 흙 묻은 옷을 툴툴 털고 시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은우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따라갑니다. 악마 같은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시장 어귀에 다다르자 푹 눌러쓴 모자와 몸을 가린 긴 점퍼를 벗습니다. 그리고 제과점으로 서둘러 들어갑니다. 은우는 눈을 크게 뜹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크림빵 하나를 손에 들고 나옵니다. 은우 눈이 자꾸 따끔거립니다. 형입니다. 형이 크림빵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항상 은우 주머니에 넣어주던 그 크림빵입니다. 아빠는 형이 우리 집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은우에게도 형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이…….커다란 아빠 손이 형을 혼낼지도 모릅니다. 은우는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슬리퍼가 벗겨질 것 같았지만 무조건 뛰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시장 구석 두부 파는 할머니에게 달려온 은우 얼굴엔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은우야, ? 와 우노? 넘어졌나?"

은우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하얀 두부가 눈에 보일 뿐입니다.

"할머니."

은우는 손가락으로 두부를 가리킵니다.

"? 두부? 두부 달라고?"

은우는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할머니, 두부 하나만 주세요."

할머니는 멍하니 은우를 쳐다봅니다.

"두부? 두부가 먹고 싶은 거가? 그래. 집에 가져갈라꼬?"

은우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할머니는 까만 비닐봉지에 두부 한모를 넣어 은우 손에 쥐여줍니다.

"그래, 두부 먹고 쑥쑥 커야제. 두부는 사람 몸에……."

할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우는 골목 쪽으로 뛰어갑니다. 눈물 콧물이 뒤섞여 찬바람에 얼굴이 따가웠지만 쉬지 않고 달립니다.

"이은우, 너 어디 갔다 와. 걱정했잖아!"

형이 대문 앞에 서서 은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 손에는 크림빵 하나가 있습니다. 은우는 눈물을 닦습니다.

"은우야, 울었어? 왜 그래. 누가 때렸어?"

형은 은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크림빵 여기 있어. 얼른 가서 먹어. 오늘도 형이 안 먹고 가져왔어."

은우는 가만히 까만 봉지를 만지작거립니다.

"이게 뭐야?"

형 말에 은우는 또 눈물이 나옵니다. 은우는 비닐에 손을 넣어 물컹한 두부를 꺼냅니다. 지는 햇살을 받아 할머니 말처럼 두부가 참 희고 예쁩니다.

"이게 뭐냐고, 은우야."

형이 은우를 쳐다봅니다. 은우는 두부를 형 입에 한입 넣어줍니다. 형은 얼떨떨해 가만히 있습니다.

"형아. 나 이제 크림빵 싫어. 안 먹을래."

"? 은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아니, 이제 안 먹어도 돼. 두부가 몸에 좋대. 옆방 할머니가 두부가 사람 머리도 좋아지게 하고."

형이 뚫어지게 은우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형아, 두부를 먹으면……."

은우가 훌쩍훌쩍합니다.

"두부를 먹으면, 다시는 나쁜 짓을 안 한대."

"?"

"두부를 먹으면 이제 나쁜 짓을 안 하는 거래. 나쁜 짓을……."

우물우물하던 은우가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은혁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은우가 쥐여준 두부를 바라봅니다. 은혁이 손에는 크림빵 하나와 두부 하나가 있습니다. 은우는 돌아가신 엄마가 간식으로 챙겨주던 크림빵을 정말 좋아합니다. 크림빵은 은우에게 엄마입니다. 그런데 은우가 크림빵을 안 먹겠다고 합니다. 은혁이 눈에 찢어진 은우 슬리퍼가 들어왔습니다. 많이 뛰었나 봅니다. 두부를 먹으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은우 말이 귀에 맴돕니다. 어쩌면 은우가 자기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림빵을 든 은혁이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집니다. 은혁이는 가만히 두부를 한입 베어 뭅니다. 구멍 난 방문 틈으로 은혁이를 지켜본 은우는 그제야 큰 숨을 몰아쉽니다. 은우는 얼른 아빠와 형이 앉을 방을 정리합니다. 오늘 밤 은우 집을 비추는 달빛이 참 따뜻할 것 같습니다.

 

 

<당선소감>


동화는 지친 나를 웃게 해주는 친구

 

감기가 심해 약을 먹고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천근만근이던 제 몸은 전화 한 통으로 아픔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믿어지지 않아 전화기를 들어 몇 번을 확인했습니다.

너무도 바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 그 속에 동화는 지친 저를 웃게 해주는 친구였습니다. 어떤 소재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시간도 모두 행복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바쁜 일상에 파묻혀 다시 글을 써 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펜을 잡게 되었고 이렇게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동화를 쓰라는 의미로 알고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가족들에게 고맙고 좋은 동화를 읽게 해주고 동화 쓰는데 눈을 뜨게 해 준 김재원 선생님과 '글나라'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대학 이후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던 저에게 동화를 써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해준 형부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참 따뜻한 겨울을 보낼 것 같습니다. 

1970년 부산출생. 독서논술지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글나라 회원.

<심사평>


동화적 심성·보석 같은 참신함에 무게

 

지적장애 2급의 딸을 둔 종이 줍는 할머니와 수제비를 밥 먹듯 해도 받아쓰기 백 점을 받아오는 2학년짜리 손녀 이야기인 '수제비 한 그릇'과 아내와 아들을 영국에 유학 보내고 아들의 음성이 녹음된 원숭이 인형을 끼고 사는 아저씨와 앵무새를 팔아 휴대전화를 사고 싶은 아이 이야기인 '말하는 앵무새', 그리고 어머니 없이 막일을 하는 아버지와 중학생 형과 함께 사는 일곱 살 아이 이야기인 '크림빵과 두부'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모두 한쪽이 허물어진 가정을 배경으로 한 생활동화다. 100여 편이 넘는 응모작품의 과반을 차지하는 배경이다. 동화작가라고 해서 사회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읽을거리를 싸잡아 '동화'라 말할지라도 정말로 동화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적어도 '동화''소년소설'을 구별하는 심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화와 소설이 참,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 편 모두 어느 작품을 뽑아도 당선으로 무난한 수준은 아니지만 '크림빵과 두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일곱 살 주인공에게는 버거운 주제인데다 형이 남의 돈을 빼앗는 장면묘사가 미흡하기는 해도 은근히 내비치는 동화적 심성과 세공의 과정을 거치면 보석을 만들 수 있는 '신인'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 반짝이는 별이 되기를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 배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