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너 같은 사람이 될래

최태림

 

조망아 안녕. 넌 이름이 참 예뻐. 별명 따위는 갖지 마. 예쁜 별명을 갖기는 쉽지 않거든.

왜 학교에 안 들어 가냐고?

별 게 다 궁금하네. 다 너 때문이야. 철조망. 네가 여기에 생긴 뒤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앙탈 부리지마. 그래 사실 네 잘못은 아니지. 난 간다. 조금 이따 또 올게.

안녕. 그네야. 나 또 왔어. 아직 집이 비는 시간이 안 됐거든. 내가 예쁜 별명을 하나 지어줄게. 흔들이 어때? 넌 항상 흔들거리잖아.

유치해? 사실 난 4단지 살거든. 4단지 애들 태워 본 적 별로 없지? 어때? 정말 나한테 쓰레기 냄새가 나? 우리 반 애들은 나한테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해. 생각하는 것도 유치하대.

왜 그러냐고?

내가 4단지에 살기 때문에 그래. 4단지는 임대아파트거든. 수급자들이 모여 살아.

수급자? 나도 잘 몰라. 가난한 사람들이래. 나 좀 날게 해 줄래? 멀리 멀리 보내 줘. ,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내가 녹슬지 않게 잘 닦아 줄게.

왜 우냐고?

괜찮아. 조금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학교에 안 들어갔어. 반 애들 앞에서 울긴 싫거든. 그리고 사과할게. 전에 내가 그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거, 취소하려고.

실망했어?

미안해. 처음에는 네가 참 자유롭다고 생각했어. 너처럼 살면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넌 항상 그 자리에 매여만 있더라고. 그리고 사람을 날게 해주지도 않잖아. 날아갈 수도 있겠다고 착각만 하게 해. 난 착각이 지긋지긋해.

왜 화를 내냐고?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내가 잘사는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래서 날 사립초등학교에 보내고 말았어. 사립에 다녀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야. 난 이렇게 슬픈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가난하다며 어떻게 비싼 사립에 다니냐고?

우리 학교에는 수급자 몇 명이 꼭 다녀야 한대. 공짜로 말이야.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어 놨어. 평등이라나 뭐라나. 난 어떤 게 평등인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제 그런 제도는 없어졌으면 좋겠어. 나 같은 애가 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디 가냐고?

미끄럼틀한테 가려고.

안녕? 미끄럼틀. 나 왔어. 여기 놀이터에 네 글자 이름을 가진 건 너뿐이야. 부러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내 이름을 알고 싶어? 사실 내 이름은 지워졌어. 우리 반 아이들은 전부 날 4단지라고 불러. 심지어 선생님까지도……. 너한테 떨어뜨린 눈물은 닦지 않을래. 넌 플라스틱 피부를 갖고 있으니까. 미안한데 난 미끄럼틀 같은 사람도 되지 않을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싫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별로야. 난 더 이상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지 않거든. 잘 있어.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

의자야, 안녕? 넌 의자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 벤치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

? 아무래도 상관없어? . 난 아무렇게나 불리는 것이 너무 싫은데……. 그럼, 벤치의자라고 부를게. 너도 네 글자 이름으로 해. 까짓것. 그런데 누가 네 배에 이렇게 불룩불룩한 손잡이를 박아뒀니? 볼품없게. 누울 수도 없잖아. 잠시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어른들 짓인가 보구나. 역시 그랬구나. 난 벤치의자 같은 사람도 되지 않을래. 남들 밑에 깔리는 게 너무 싫어. 깔리는 기분 별로지? 난 깔아 보는 것도 너무 싫어. 나도 같은 사람인데, 4단지 살아도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야. 잘 쉬었어. 이제 시소한테 가볼게.

시소야, 잘 있었어? 네 이름은 영어니? 우리나라 말이니?

안 가르쳐준다고?

여전히 치사하구나. 나 혼자 탈 수 있게 해주지도 않고 말이야. 시소야 부탁이 있는데 다른 애들처럼 나도 높이 좀 올려 줄래? 학교에 가면 언제나 바닥은 내 차지야.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지네들만 높이 올라간단 말이야. 4단지에 살아도 한 번쯤은 높이 올라가도 되잖아.

눈물 묻히지 말라고?

미안한데 닦아 주지 않을래. 솔직히 너 별로거든.

왜 너만 미워하는지 궁금해? 넌 한 사람이 올라가면 다른 사람을 바닥에 내려놓잖아.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난 모두가 동시에 올라갔으면 좋겠어. 돈 많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뚱뚱한 사람도, 날씬한 사람도 모두 똑같이 말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마. 그것뿐만이 아니야. 넌 사람을 너무 재보는 것 같아. 그러지마. 그럼 나 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 슬퍼진단 말이야. 미안해. 너무 울어서……. 이만 갈게.

분수야 안녕? 너 그거 모르지? 4단지 놀이터에만 분수가 없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랬구나. 당연한 거였구나. 난 처음에는 어른들이 실수한 건지 알았어. 깜빡해서 4단지에만 빼먹은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없는 것이 또 있더라.

궁금해 죽겠지? 그럼 시원하게 물 한 번 쏘아 올려 봐. 가르쳐 줄게. 물이 나오는 시간이 아닌가 보구나. 그래, 한 번 봐줬다.

저기 보이지? 예쁜 울타리 안에 있는 모래사장. 쟤도 4단지에는 없어. 4단지 놀이터에는 시뻘건 스펀지 바닥만 있거든. 그런데 여기 3단지에는 스펀지 바닥도 있고 저렇게 따로 모래사장도 있더라.

그것도 알고 있었어?

사실 모래 말고도 없는 게 또 있어. 뭐냐면 바로 바로 쓰레기통! 엄마가 그러는데 처음에는 4단지 놀이터에도 쓰레기통이 있었대. 그런데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쓰레기를 몰래 가져다 버려서 없앤 거래.

잘 있어. 그만 가볼게. 물이 안 올라오니까 심심해.

나보고 분수 같은 사람이 되라고?

글쎄다, 넌 멋있기는 하지만 낭비가 너무 심한 것 같아. 우리 집에서는 물을 한 방울이라도 낭비하면 큰일 나거든. 그런데 넌 그 아까운 물을 마구 쏟아버리잖아. 난 가난해서 너처럼 펑펑 쓰다가는 거지가 되고 말 거야. 정말 쓰레기 냄새가 나는 거지 말이야. 이제 모래사장에 가볼래.

내 눈에도 분수가 있다고?

그래. 이제 그만울게. 엄마가 돈을 꼭 내준다고 했거든. 진짜야.

안녕. 모래야. 난 태어나서 너처럼 하얀 모래를 본 적이 없단다. 넌 어쩜 그렇게 하얗고 예쁘니? 내가 좀 만져 봐도 될까? 느낌도 아주 부드럽고 좋구나. 왠지 넌 부잣집 아이들 같아. 잘사는 애들은 피부가 뽀얗거든. 비결 좀 알려줘. 나도 뽀얀 피부를 갖고 싶어. 그러면 그 애들과 같은 냄새가 날지도 모르잖아.

, 이제 가야겠다.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이거든. 모래. , 내 신발 밑창에 몰래 숨어서 따라오면 안 돼. 넌 그 자리에 있는 게 제일 예뻐. 알았지?

가방아, 이제 내 등에 업힐 시간이야. 집으로 가자. 내가 책을 너무 많이 넣었지?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우리 반 애들이 쓰레기 냄새가 난다며 내 사물함을 막아 버린 거 봤잖아. 이젠 싸우기도 지쳤어. 그래도 나 말이야, 끝까지 울지 않은 거 알지?

그리고 어제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혼날 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좀 심하지 않았어? 나보고 돈 없으면 중국여행 가지 말라고 그런 거 말이야. 남들의 삼분의 일도 못 내면 어떻게 하냐고 막 소리쳤잖아. 내가 돈을 떼먹기라도 했느냔 말이야.

그만 울고 집에 가자고?

그래. 가자. 가방아, 내일은 꼭 학교에 데려다 줄게. 엄마가 오늘 안으로 돈을 내준다고 새끼손가락 걸었거든. 내일은 떳떳하게 학교에 갈 수 있을 거야.

철조망! 약속대로 다시 왔어. 집에 갈 수 있게 길 좀 내주지 않을래? 그게 힘들다면 개구멍이라도 부탁해. 네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 집까지 5분도 안 걸렸는데 말이야. 이제는 너 때문에 30분도 더 걸리잖아. 가방이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네가 생긴 다음부터 애들이 4단지는 감옥이라고 그래. 쓰레기장이라고도 하고…….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왜 그렇게 편을 가르려 드는지 모르겠어.

? 조망아, 너도 보이니? 저 깃털 말이야. 하얀 깃털이 날아서 나에게 내려오고 있어.

깃털아, 안녕? 넌 어디서 왔니? 넌 정말 근사한 털을 가지고 있구나. 넌 참 좋겠다. 자유롭게 4단지와 3단지를 넘나들 수 있어서……. 그리고 넌 미끄러져 내려갈 걱정도 없겠구나. 항상 바닥에 있을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래! 깃털아, 난 너 같은 사람이 될래. 그게 좋겠어. 너 같은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거야. 아무리 편을 갈라도 가볍게, 가볍게 넘으면서 그렇게 살아 볼래. 고마워. 나에게로 와 줘서.

가방아, 꽉 잡아! 출발한다.

 

 

<당선소감>


십년의 기다림 함께한모든 분들께 감사를

 

동화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동심(童心)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동화라고 써 놓으면, 아내는 재미없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그 말은 어떠한 말보다 잔인하게 제 가슴을 찢어 놓았습니다.

올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내려놓기를 거듭하던 어느 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꼭 어린 시절 습작할 때와 같은 설렘이었습니다. 그렇게 쓴 글을 읽고 나서 아내가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울었습니다. 수년 동안 혹평만 쏟아내던 아내가 엉엉 울었습니다. 돌아가신 장모님께 세상에서 가장 밝고 사랑스러운 딸을 제게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부모님과 장인 어르신, 누나, 이모, 처형, 처제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최윤정 선생님, 십년의 기다림을 가르쳐 주신 김병규 선생님, 항상 기도해주신 김경곤 목사님,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정화여상 김명희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 경희대학교 은사님, 축구회원들께도 꼭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끝으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내 은진이, 큰아들 선웅이와 둘째 지웅이, 늘 저를 믿고 따라 준 정화여상 제자들, 상준이, 계성이, 성호형, 재형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깁니다.

 

1972년서울 출생경희대 국문과 졸업현 정화여상 국어교사

<심사평>


섬세한 변주 돋보이는보기 드문 완성작

 

올해 동화 응모작은 모두 183편이었다. 총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반갑게도 동화를 쓰려는 사람들과 동화를 읽는 아이들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이 꽤 있었지만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이 네 분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박주희의 넷째와 넷째’, 남미영의 가족의 발견내가 작아지던 날’, 이주송의 낙서그리고 최태림의 너 같은 사람이 될래’. 이 다섯 편의 원고들은 모두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이 있고 적절한 재미와 어떤 깨달음을 준다는 공통적인 장점이 있다.

그중에서 당선작 너 같은 사람이 될래는 직설적인 제목과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겪는 차별이라는 매우 흔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아련한 마음에 잠시 숨을 멈추게 만드는, 보기 드문 완성도를 갖춘 단편이었다. 사물에 말을 거는 2인칭 형식은 그 자체로 어렵고 자칫하면 인위적이 되는데, 이 작품에는 적절한 비유, 과감한 생략, 반복을 피하는 섬세한 변주가 돋보이는 밀도가 있다. 게다가 사회적 차별에 대한 분노의 표현과 교육적인 결말까지 두루 여리고도 깜찍한 것이 큰 장점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그리고 아쉽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많은 투고자들에게 정진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