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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돼지 다르마

강미정

 

나는 오늘 소원을 이뤄주러 갑니다. 나는 원래 1500년 넘게 불국사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었어요. 그런데 용케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냈어요. 처음 저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많이 부끄러웠거든요.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부처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다르마야, 더 이상 숨어서 사람들을 돕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도와주거라.”

아련한 그 말씀이 부끄러워하던 제 마음에 용기를 주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반짝반짝 금빛 옷을 입고 극락전 앞뜰에서 아기 돼지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제가 부귀와 복을 가져다준다며 많은 소원들을 빌고 갑니다. 어느날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어요. 많은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와서 깔깔대는 소리가 극락전 처마 밑에까지 닿았어요. 보리도 그 많은 아이들 중 한명이었어요. 보리는 나를 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했어요.

나는 심보리라고 해. 금돼지야, , 소원이 있어.”

금빛 귀를 쫑긋 세우고 보리를 보았어요.

이천 원이 필요해.”

의외로 너무 간단한 소원이었어요. 음료수를 사 먹고 싶나 보다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 다음 말에 더 놀랐어요.

대웅전에 천일기도를 올리고 싶어. 그런데 이천 원이 부족해.”

보리의 얼굴은 친구 잎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나뭇잎처럼 외롭고 쓸쓸해 보였어요. 내가 미처 소원을 들어주기도 전에 보리 곁에 다가오시던 선생님이 보리가 하는 말을 들으셨어요.

보리야, 천일기도를 올리고 싶었구나. 여기 이천 원! 갔다 올 수 있겠어?”

보리는 한참을 선생님이 주신 이천 원을 바라보더니 작고 하얀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 들었어요. 그리고는 꾸벅 인사를 했어요. 대웅전을 향해 뛰어가는 보리를 선생님은 한참을 지켜보고 계셨어요.

부처님이 그러셨죠. 하루에도 살아 있는 부처를 여럿 만날 수 있노라구요. 아마 선생님도 살아 있는 부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한참 후,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궁금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 지 보리가 다시 나타났어요.

금돼지야, 고마워. 이제 천일기도를 올렸으니까 할머니랑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너도 같이 내 소원을 이뤄 줘, 알겠지?”

보리의 마음이 내 등을 쓰다듬는 작은 손바닥으로 간절하게 느껴졌어요. 한참을 귀를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던 보리 얼굴에서 기어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무슨 말인가 해 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보리는 눈물을 꿀꺽 삼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뛰어갔어요.

매일 아침 보리가 바라는 일은 대웅전 앞 마당에 기도로 울려 퍼졌어요. 기도소리를 들으며 나도 작은 기도를 보태었어요.

-보리가 할머니와 헤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헤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보리가 남긴 향기를 따라 보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았어요.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논에서는 철모르는 참새가 떨어진 나락 부스러기를 찾고 있었어요. 시골집 담장 옆에서는 자주빛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맨드라미가 기분 좋게 졸고 있고 무는 초록빛 어깨를 땅 위로 내 보이며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리와 할머니는 방에서 저녁밥을 먹는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한창이었습니다. 겨울초 겉절이를 골라 한 가닥 뜯어 밥 위에 올려주시는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주름을 따라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입을 쩍 벌리고 받아먹는 보리 얼굴이 접시꽃보다 더 환해 보여 다행입니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할머니는 김치를 찢던 손을 쪽 빨아 드시고는 한쪽으로 허리를 기울여 힘들게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으응.... 그래. 알아, 안다구..... 준비는 무슨.... 짐이라고 해야 뭐 쌀 거라도 있다니?”

할머니 말끝이 들릴 듯 말듯 했습니다. 보리도 아는 사람인지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습니다. 듣기만 하던 할머니가 보리에게 손짓을 합니다. 전화 받으러 오라는 뜻인데 입이 튀어 나온 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더 부르고서야 보리는 마지못해 전화기에 다가왔습니다.

, 엄마, 보리.”

보리도 할머니처럼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할 듯 할 듯 하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엄마...... 나 정말 전학가기 싫어요. 거긴 아무도 없잖아요. 친구도 없고 엄마도 맨날 가게 나갈거구. 그리고 할머니도......”

보리가 차마 다음 말을 하지 못하자 할머니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 나가서 물 가져오마.”

하고 일어나셨어요. 그때도 보리는 아무 말 없이 수화기너머 엄마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어요.

그럼, 할머닌 어떡해요? 나 가버리면 할머니 혼자 어떡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어요!”

결국 입에 남은 밥도 삼키지 못하고 보리가 울기 시작했어요. 숭늉을 들고 들어오던 할머니도 방문을 열지 못하고 마루에서 한참을 허수아비처럼 서 계셨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다 극락전으로 돌아오는 제 마음도 감나무에 혼자 매달려 있는 까치밥처럼 쓸쓸했어요.

극락전에서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보리 생각이 났어요. 어떻게 보리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혜를 얻을 수가 없었어요.

오늘은 지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 지 보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들도 다 돌아간 오후, 햇살 너머로 나지막한 부처님 말씀이 들려왔어요.

다르마야,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무게만을 지니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린단다. 연잎의 지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보거라.”

그 말씀을 듣자 저도 모르게 힘이 솟아났어요. 어쩌면 보리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겨났어요.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보리 집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손님이 와 있었어요. 눈매와 입가가 그대로 보리랑 쏙 닮은 보리엄마였습니다. 보리와 할머니는 배추밭에서 아직 안 왔나봅니다. 보리엄마는 이제 막 도착했는지 손에 든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고는 휴-하고 큰 숨을 내쉬었습니다.

보리야~, 엄마~ 어디 있어요?”

마당 이곳저곳을 살피며 식구들을 찾아보지만 동네 어귀 배추밭에 있는 보리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두드리다가 마루 한 귀퉁이에 누워있는 보리 책가방을 발견했어요. 얼마나 신나게 가방을 벗어던졌는지 필통이며 공책 몇 개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보리엄마를 반기고 있었어요.

저는 지금이 바로 연잎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어요. 보리가 지고 있던 무게를 이제 내려놓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방 안에 있던 보리 일기장이 하고 보리 엄마 앞에 떨어지게 했어요.

보리 엄마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천천히 보리가 쓴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오늘 절에 가서 금돼지에게 내 소원을 빌고 왔다.‘할머니와 헤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그리고 천일기도도 올렸다. 용돈이 모자랐지만 금돼지와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매일 아침 천일동안 할머니와 헤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빌어주신다고 하셨다. 금돼지도 약속했다. 나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삐뚤삐뚤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보리엄마의 눈이 점점 커졌습니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금돼지가 꿈에 나타났었다. 바로 내가 소원을 빌고 온 그 금돼지가 분명하다. 그러니까 꼭 할머니랑 헤어지지 않고 살게 해 줄 것이다.....]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보리엄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랑 살고 싶다. 하지만 할머니를 두고 떠날 수는 없다. 할머니는 밤마다 너무 아프고 어떤 때는 일어나지도 못하신다. 내가 가버리면 어쩌면 할머니는......]

엄마의 눈물이 연잎에 매달린 빗물처럼 도로록 흘러 일기장 위에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보리가 지녔던 마음의 무게가 엄마의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어요. 삐뚤삐뚤 적었던 보리의 소원이 엄마의 눈물로 방울방울 번지고 있었어요. 엄마는 일기장을 다 읽지도 못하고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엄마 왔어요?”

대문을 들어서던 보리가 엄마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쪼르르 달려와 안겼습니다. 뒤따라 들어오던 할머니도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무와 배추를 수돗가에 서둘러 부려놓았습니다. 어둠이 선물처럼 내려앉아 아무도 보리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이구, 우리 딸! 그사이 많이 컸네. 이제 아가씨가 다 되었는걸?”

엄마가 보리를 꼭 안아보며 엉덩이를 툭툭 쳐 줍니다.

배 고프지? 얼른 밥 먹자.”

할머니도 오랜만에 내려 온 딸의 모습에 반가운지 얼른 부엌으로 가셨어요. 보리와 보리엄마는 마루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보리 엄마는 보리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어요.

중학교 때 까지야. 알겠지?”

엄마?”

보리가 깜짝 놀라 토끼처럼 귀를 세우며 엄마를 쳐다봤어요.

엄마도 생각 많이 했어.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그럼요, 엄마. 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영어 회화도 하구요, 수학반에도 다녀요.”

사실 오늘 내려 올 때는 너를 무조건 데려가려고 왔었어. 네가 하도 고집을 부리니까.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엄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어요.

왜요?”

글쎄? 왜 그랬을까?”

보리가 궁금해죽겠다는 듯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금돼지가 나타나 엄마 마음을 바꾸었다면 믿을 수 있겠니?”

정말? 정말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그래 앞으로 엄마도 아무리 가게가 바빠도 자주 내려올게. 그래서 우리 보리한테 점수 좀 많이 따고, 아프신 할머니한테도 잘 해야겠다, 그치?”

보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엄마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된장을 뜨느라 장독대를 돌아오시던 할머니도 된장 묻은 숟가락을 든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계셨습니다.

보리와 엄마의 접시꽃처럼 환한 얼굴을 보느라 극락전으로 돌아오는 걸 깜빡할 뻔 했어요.

어서 내 자리로 가서 또 다음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큰 소원은 이뤄줄 수 없지만, 화려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지만 착한 사람들의 진실한 소원은 이뤄주고 싶어요.

소원을 이뤄주는 금돼지, 나는 다르마이니까요.

 

 

<당선소감>


늦게라도 피는 꽃이 정말 낫다

 

글을 쓸 때보다 당선소감을 쓰기가 더 어려운 건 왜 일까요? 수없이 상상했던 멋진 글귀는 머릿속에서 맴돌 뿐 손에 잡힐 질 않고 가슴은 큰 북을 치듯 쿵쾅거리기만 합니다. 오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지내온 시간들이 서로 먼저 이야기하겠노라 부산스러운 내 마음을 오늘은 좀 예뻐해도 되겠지요?

아이가 꼬물거릴 때부터 동화를 꿈꿔오다 이제 그 아이는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긴 시간동안 동화는 나의 몫이 아닌가 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피지 않는 꽃보다는 늦게라도 피는 꽃이 낫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늦게 필지는 모르지만 그 만큼 더 탐스러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금돼지가 보리에게 달려가고 그 다음은 나에게 오고 있었나봅니다. 불국사 경내에서 천일기도를 올리고 처음 금돼지를 본 그 날은 영산대제를 올리던 청량한 가을이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가피가 세상 가득한 날 같았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보다 글 많은 세상에 쓸모없는 종이 한 장 더 올리는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는 작은 마음을 기회를 주신 부처님 앞에 새겨봅니다.

이젠 다 자라 동화를 읽기보다는 동화 쓰는 엄마를 격려해주신 시원, 시후, 그리고 항상 될 거라고 믿어 준 남편, 함께 기뻐해 줄 가족이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동안 나에게 온 선한 인연의 사람과 사물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도, 사람도 따뜻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 감동 깊게 그려

동화는 논리적 속박을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는 문학이다. 합리적 논리 대신 상상력이나 공상에 가까운 허구의 세계가 허용되는 글쓰기가 동화다. 동화의 캐릭터는 이성에 의해 순치된 엄격한 인물들이 아니라 그런 합리적 이성과 무관한 아동이거나 동물이거나 인격의 외관을 갖춘 의인화된 상상의 존재들이다. 이성에 의해 규격화되고 일상화된 성인들의 때묻은 의식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정신은 어린이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화의 독자는 어린이로 설정되고 글쓰기 역시 어린이가 읽기에 적합한 심미적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정작 감동을 더 크게 받는 쪽은 어른들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작품을 단시간 내에 읽어야 하는 힘든 과정에서도 매우 즐거웠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당선작으로 선택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 그것이 선자를 가장 힘들게 하였다.

식물을 의인화한 벵갈이의 꿈, 태어나 살아보지도 못하고 유산된 아기들의 이야기인 신비한 비늘, 토끼와 눈사람의 이야기인 한우와 까치설날, 우애 깊은 형제의 이야기(희주와 희재),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인 고욤나무, 동심의 중요성을 아름답게 그린 마음을 줍는 아이등은 각각의 특색을 가지면서 감동과 교훈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결국엔 마음 고약한 도둑이 어린 동자에게 감화되어 승려가 되는 과정을 흥미 있게 다룬 울보동자와 농촌에서 홀로 고생하는 할머니를 떨치지 못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할머니를 지키는 어린 소녀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감동 깊게 그린 금돼지 다르마가 최종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보리라는 한 어린 소녀가 부모가 사는 서울로 가서 학교를 다녀야 함에도 홀로 시골에 사는 할머니를 차마 홀로 남기지 못하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보리의 이야기 금돼지 다르마를 당선작으로 남겼다. 만약 울보동자가 끝부분에서 과도한 전복으로 부자연스런 서사를 만들지 않았다면 당선의 영예는 누구의 것이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수준 높고 격조 있는 글, 순수한 동심을 아름답게 표현한 글, 소박하면서도 인간애가 넘치는 지순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복했다. 독자도 그런 행복을 누리기 바란다.

심사위원 : 홍기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