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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

이진하

 

안녕하세요. 저는 광명초등학교 3학년 3반 정희성이에요. 갑자기 편지를 받아서 놀라셨죠? 왜냐면 아저씨는 저를 모르실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저씨를 알아요. 아저씨의 시가 우리 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거든요. 읽기책 43쪽이에요. 담임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모두 외우라고 하세요. 그래서 저는 아저씨가 쓴 시도 다 외우고 있어요. 아저씨가 쓴 봄의 계단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예요. 아저씨도 어렸을 때 국어를 좋아했어요? 저는 국어가 제일 좋아요. 다른 과목은 딱딱한 공식이랑 외워야 할 것들밖엔 없는데 국어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시도 있거든요. 하지만 시험 점수는 별로예요. 며칠 전에 쪽지시험을 봤는데 세 개나 틀렸어요. 이게 제가 틀린 문제인데요, 한번 보세요.

<문제 7> 동시 봄의 계단의 분위기로 옳은 것을 고르세요.

초라하다

슬프다

애틋하다

불쾌하다

희망차다

저는 2번을 선택했는데요, 5번 희망차다가 답이래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2번이 답이 아닌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시가 슬프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이 부분이 무척 슬펐어요.

부지런한 새싹

땅 속에서 뽀얀 얼굴 내밀고 있네요

잠에서 갓 깨어난 아기 씨앗

기지개 켜다가 눈물이 찔끔

왜냐면 봄에 싹이 트는데 아기 씨앗은 혼자 늦게 잠에서 깨어났잖아요. 기지개를 켜는 척하면서 그러니까 몰래 울잖아요. 친구들은 다 싹이 트는데 자기만 느리니까요. 이 시의 분위기가 왜 희망차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문제 8> 다음 중 봄의 계단을 쓴 시인이 생각한 것으로 틀린 것을 고르세요.

봄은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밟고 올라가듯 천천히 오는구나!

봄에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네.

추운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오니까 모두 힘내!

봄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 겨울이 오겠지.

개구리는 봄이 되면 신나서 폴짝 뛰나봐.

아저씨, 아저씨는 시를 쓸 때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그리고 아기씨앗은 정말로 기대에 부풀어 있는 거예요? 슬픈 게 아니고요? 선생님은 아마도 아저씨와 아주 친한 사람이거나 아저씨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는 마법사인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저씨가 생각한 것을 선생님이 알고 이런 문제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아저씨와 친한 사이일 리는 없고 마법사일 리는 더더욱 없죠! 저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가서 문제가 이상하다고 말을 했어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희성이가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시를 해석하는 게 어려운 모양이구나.”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더 머리가 아파졌어요. 시를 읽는 건 나고 그걸 느끼는 것도 나잖아요. 그런데 내가 느껴야 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건 어쩐지 이상하잖아요.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내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저씨도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는 아시죠?) 저는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시가 누군가에게는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그날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고 책상에 앉아 아주 멋진 계획을 세웠지요.

다음 날 저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공책을 펼치며 물었어요.

선생님, 이 문제 알려주세요.”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이건 못 보던 시인데?”

하셨어요. 못 본 게 당연했죠!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 아니었거든요.

문제집에 나와 있었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시를 읽었어요.

제목 : 가을 운동회

낙엽이 떨어지는 건

가을이 시작된다는 신호

준비!

!

단풍잎 손 주먹 쥐고

누가 누가 먼저 달려가나

누가 누가 먼저 고운 물이 드나

그리고 선생님은 턱을 괴고 문제도 가만히 읽었죠.

<문제> 시인이 이 시를 쓴 이유로 옳은 것은?

심심해서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려고

낙엽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가을 운동회가 시작되어서

여름이 지나간 것이 아쉬워서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빨간 펜으로 답을 고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 이 시는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구나. 시인은 가을 낙엽을 운동장의 아이들에 빗대어 표현했어. 정확히는 가을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단풍잎 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고 달리면 마음에는 어느덧 푸른 물이 드는 거란다. 그렇게 가을은 무르익어 가고 아이들은 성장하는 거겠지? 그래서 답은 2번이 되는 거고. 이해가 되니?”

운동장? 학생? 저는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선생님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요.

선생님, 틀렸어요!”

선생님이 무슨 뜻이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어요.

시인은 그런 생각은 안했어요. 그냥 낙엽이 빨리 땅에 닿는 게 달리기 경주하는 것 같다고 느낀 것뿐이에요. 그리고 시인은 가을이 오는 걸 알리려고 이런 시를 쓴 게 아니에요. 낙엽 보다가 생각이 나서 그냥 쓴 거죠!”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웃으며 제게 말했어요.

희성아. 그게 아니야. 여기 단풍잎 손 주먹 쥐고라는 부분을 보렴. 아이들이 작은 손을 움켜쥐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니? 제목도 가을 운동회고 말이야. 시인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시를 썼겠니? 희성이는 아무래도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조금 더 공부해야겠구나.”

저는 허리에 손을 얹었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물었죠.

선생님, 이 시인이 누군지 아세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정희성이에요!”

선생님은 한참 저를 쳐다보시더니 곧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요.

이걸 네가 썼단 말이니?”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죠. 선생님은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무서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았어요.

, 지금 선생님을 놀린 거니?”

저는 너무 놀라서 울 뻔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정말 처음 봤거든요. 저는 주먹을 꽉 쥐고 이렇게 외쳤어요.

선생님이 낸 문제는 엉터리예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지요. 왜 울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저는 한참이나 서서 울었고 선생님은 그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어요. 얼마나 울었을까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어쩐지 민망해서 억지로 울음소리를 내면서 콧물만 훌쩍거렸지요. 저는 선생님이 차라리 나를 때리거나 벌을 세워주었으면 했어요. 가만히 앞에 세워만 두지 말고요. 울음소리 흉내 내기도 지칠 즈음, 선생님은 제게 사탕을 하나 건네며 이제 그만 집에 가라고 했어요. 복도에 나가서 창문으로 살짝 들여다봤더니 선생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계속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저는 자꾸만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내가 너무 심한 장난을 쳐서 선생님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지요. 선생님이 이제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요. 나는 침대에 누워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빌었어요. 선생님을 다시 보는 게 두려웠거든요.

주말이 지나 학교에 갔을 때, 그러니까, 오늘 말이에요. 선생님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검사하고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했어요. 선생님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요. 마치 그날 일은 아주 없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아저씨, 바뀐 것이 하나 있었어요. 오늘 본 쪽지시험 말인데요, 거기엔 글쎄 이런 문제가 있지 뭐예요!

<문제 4> 이 시의 분위기로 옳은 것을 고르세요.

초라하다

슬프다

애틋하다

불쾌하다

희망차다

빈 칸에 자신의 생각을 쓰세요 ( )

1번부터 5번까지만 있던 보기가 6번까지로 늘어났던 거예요. 제가 어떤 답을 선택했냐고요? 당연히 나만의 답을 선택했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 문제에 파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었어요. 선생님은 이제 저를 용서한 걸까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를 그려주었겠지요? 저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또 시를 쓰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아저씨, 제가 쓴 시는 어때요? 이만하면 저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참, 시인은 돈을 많이 버나요? 엄마가 시인은 가난하다고 했는데. 그리고 시인이 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답장 기다릴게요!

 

 

<당선소감>


동경하던 구두 선물받은 기분

 

어렸을 때 엄마가 구두를 신은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엄마 구두를 훔쳐 신으며 두근거리던 때도 있었지요. 내 발에 한참이나 큰 구두를 신고 뒤뚱뒤뚱 걸으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고 저는 동경하던 구두를 선물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작은 발을 넣어봅니다.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어색하고 걸음걸이는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하루 빨리 성장하여 이 멋진 구두에 걸맞은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불러내 꽃등심을 사주신 아빠, 언제나 내 편인 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동생 미나, 죄 없는 샌드백 - 이재훈 씨, 모드파 멤버들, 자랑스러운 동기들, 언제나 내게 질투와 동경의 대상인 수작문우들, ‘넌 될 거야!’라고 말해준 고마운 사람들. 이들 덕분에 한 문장씩 써내려 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제게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는 발전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걷겠습니다.

문학의 기틀을 닦아주신 중앙대 교수님들과 동화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김서정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1988년 경기 광명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4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당선

<심사평>


설명적 내용을 시각적으로 풀어

 

270여 편의 응모작을 두 심사위원이 나누어 검토하였으며 썩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나 본심 작품들은 나름의 가능성이 크다. ‘D-day’는 이혼에 이른 부모의 상황에서 아이 입장을 단순히 비극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 주체가 뚜렷한 아이를 그려낸 점이 신선하였으나 앞뒤가 뚝 잘린 부분적인 작품이라 아쉬웠다.

구멍이 있는 사과는 응모작 가운데서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미지가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마저 주는데 이를 받쳐 줄 기본적인 문장력이 서툴러 공부가 더 필요해 보였다.

두근두근 15은 낯선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때로는 우리 교육이 되레 불신감과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반성케 하는 지점이 있으나 이야기가 그저 해프닝이었을 뿐이라는 결론은 허탈감을 준다.

시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는 다소 설명적일 수 있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점도 신선하고, 전형적인 시 교육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의 목소리도 흥미로웠다. 다만 작가의 단조로운 인식은 아쉽다. 작품 내용 중 작가 의도라는 표현은 작품 의도라야 적절하고, 논거만 충분하다면 작품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타당하다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문학교육, 나아가 경직된 사유 방식에 대해 당돌하면서도 창의적인 아이의 눈을 통해 다양한 관점의 포용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재치가 돋보여 당선작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 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 황선미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