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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우리 동업해요

김상통

 

뭐라고? 금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무릎걸음으로 한달음에 기어간 병구가 나뭇가지처럼 빼빼마른 할머니의 손을 거칠게 잡아 당겼습니다. 할머니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손가락에는 희미하게 자국이 남아 있을 뿐 금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구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병구아빠가 사 준 금반지를 한 번도 손가락에서 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척 아끼셨습니다.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금값이 사상 최대로 올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뉴스를 보던 할머니가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리셨습니다.

애고, 금값이 많이 올랐다는디, 이놈 팔아서 우리 병구 콤푸타나 장만해 줘야겄다.”

그 말을 들은 병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머리가 천정에 닿을 정도로 겅중겅중 뛰었습니다. 새 컴퓨터를 갖는 것이 병구의 소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소망원으로 김장을 하러 가신다고 할 때 병구는 할머니의 반지가 무척 신경 쓰였습니다. ‘소망원은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 시설입니다. 반지를 빼놓고 가라는 병구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야야, 내 팔자에 금반지 껴볼 날이 또 있겄냐? 오늘 마지막으로 끼고 니 콤푸타 사 줄 테니께 집 잘 보고 있그라.”

그 금반지를 김장을 하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새 컴퓨터 산다고 자랑까지 해놨는데…….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금반지를 잃어버렸으니 새 컴퓨터는 일찌감치 날아간 셈입니다.

할머니 때문에 컴퓨터 못 사게 되었잖아! 이제 어쩔 거야?”

병구는 방바닥이 꺼질 정도로 발을 구르고 팔을 흔들어대면서 성질을 부렸습니다. 할머니는 속이 상하신지 버릇없이 구는 병구를 혼내지도 않고 방에 드러누웠습니다.하루 종일 병구의 머릿속에는 금반지가 맴을 돌았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병구는 친구와 함께 피시방에 들렀습니다. 집에 있는 컴퓨터는 오래되고 용량이 작아서 학교 숙제도 못하고, 최신 게임도 할 수 없습니다. 병구는 이번에 할머니가 반지를 팔아 컴퓨터를 사 주면 피시방에 안 가고 열심히 공부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때문에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습니다.

병구야, 저기 소주병 있다. 얼른 주워야지?”

피시방에서 나오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한 친구가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매를 벌었습니다.

! 또 한 번 그런 소리 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병구는 컴퓨터를 못 사게 된 화풀이로 제일 친한 친구까지 울렸습니다. 그래도 화가 덜 풀려 씩씩거리며 집에 와 보니, 할머니는 아직도 방에 누워계셨습니다. 반지를 잃어버린 데다 김장을 많이 하고 와서 몸살이 나신 모양이었습니다.

병구야, 거기 골목에 박스나 병 나온 것 있으면 얼른 주워 오너라.”

병구를 보자마자 할머니가 채근했습니다.

싫어! 내가 왜 그걸 해야 돼?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이 병, 구하는 아이라고 이름 가지고 놀리는데…….”

병구는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현관문을 꽝 닫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속상한 마음이 조금 풀어질 줄 알았는데 눈에 보이는 물건들이 더 화를 돋웠습니다. 병구네 집 곳곳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할머니가 모아놓은 박스와 고물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 종이, 쇠붙이, 전선……. 그깟 것들이 얼마나 돈이 된다고 모으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병구는 그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워낙 억척스럽게 박스를 주우러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까지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짓궂은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병구를 놀려대곤 했습니다.

언젠가 영어 수업 시간에 아빠의 직업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병구는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은 병구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줄 알고 꼬부랑말로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엉뚱한 아이들이 했습니다.

선생님! 병구 아빠는 돌아가셨는데요.”

그래서 할머니가 박스 주워서 사는데요. 병구 취미도 고물수집이에요. 히히히!”

아이들이 왁자하게 웃었습니다. 병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도,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살다가 일찍 돌아가신 아빠도, 손자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 해주는 할머니도, 모두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병구는 오늘도 집에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할머니가 또 박스를 주워오라고 잔소리를 할 게 뻔합니다. 몸이 아픈 할머니는 이틀 동안 박스를 주우러 다니지 못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박스 수거 전용 유모차는 대문 옆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할머니는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유모차를 끌고 신발이 닳도록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십니다. 잠깐 한눈만 팔아도 다른 사람이 박스를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잔뜩 풀이 죽어 땅만 보고 걷다 보니 병구는 어느새 무지개 슈퍼 앞까지 왔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무지개 슈퍼에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무지개 슈퍼 앞에 빈 박스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병구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병구는 박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꾸 박스에 눈이 갑니다. 할머니가 누워 계시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박스를 몇 장 들고 가면 할머니가 잔소리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구는 슈퍼를 지나치면서 박스 한 장을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방망이질 하듯이 마구 뛰었습니다. 박스가 제법 묵직합니다. 병구는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병구의 뒷덜미를 확 낚아챘습니다.

이 녀석! 너 잘 걸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뒤를 돌아본 병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습니다. 슈퍼아저씨가 도끼눈을 뜨고 잡아먹을 듯이 병구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상대할 때의 친절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녀석이 자꾸 가져가나 했더니, 너였구나! 너 한번 혼나야겠다.”

병구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어질어질했습니다.

뒷덜미에서 멱살로 손을 옮겨 잡은 아저씨가 병구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아 병구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헤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병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자신이 박스를 줍다가 들켜서 혼이 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큰 놀림거리가 될 게 뻔합니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우리 할머니가 가져오라고 해서…….”

병구가 볼멘소리로 아저씨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이 녀석이 거짓말까지 하네. 할머니가 돈도 안 주고, 그냥 훔쳐 오라던?”

아이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직 이쪽에 관심을 두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리 없습니다. 병구는 아이들 중 한 명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구는 별명이 사방팔방입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잘 내기 때문입니다. 병구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저씨, 돈 돈 드릴게요.”

돈이 있으면서 과자를 훔쳐 먹어? 더 나쁜 녀석이네.”

뭔가 이상했습니다. 병구는 분명히 빈 박스를 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저씨, 저 과자 안 훔쳤는데요.”

이 녀석아, 여기 증거가 뻔히 있는데도 오리발을 내밀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박스 안을 들여다본 병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빈 박스인줄 알았는데 과자 한 봉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스가 무거웠나 봅니다. 어찌되었든 병구는 졸지에 과자 도둑이 된 셈입니다. 이건 박스를 줍다가 들켜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아저씨, 저는 진짜 몰랐어요. 할머니가 박스 주워오라고 해서…….”

아저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병구의 말을 통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병구는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따사롭게 비추던 해님마저 병구를 외면하고 구름 뒤로 얼굴을 감췄습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병구를 끌어안으며 소리쳤습니다.

김 사장! 우리 손자한테 어째 그런대유?”

성난 목소리의 주인공은 병구 할머니였습니다.

! 할머니 손자예요? 그럼 진짜로 빈 박스인줄 알고 가져가려고 했나보구나. 얘가 과자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져가기에, 과자를 훔쳐 가는 줄 알았어요.”

아저씨가 병구를 땅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병구를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이 떨렸습니다. 병구는 할머니가 분노를 참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할머니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김 사장이 매일같이 박스를 모아줘서 참 고맙기는 한디유, 그렇게 사람 의심하면 안디유. 우리 병구가 을매나 속이 깊고 착한 아인디 과자를 훔쳐유?”

어느 사이에 가까이 다가온 아이들이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암요, 암요. 할머니 손자인데요.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슈퍼아저씨는 지나치리만큼 공손하게 할머니를 대했습니다.

제 아내가 할머니를 따라서 소망원에 김장을 하러 갔다 오더니 할머니 애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박스를 모아 파신 돈으로 소망원을 후원하신다고…….”

옆에 서 있던 동네방네가 병구를 툭 쳤습니다.

! 유병구, 너희 할머니 대단하시다.”

병구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동네방네가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면, 틀림없이 학교에 소문을 낼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할머니가 박스를 줍는다고 놀렸던 아이들도 앞으로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여튼 대단하십니다. 보일러 놓으라고 금반지까지…….”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슈퍼아저씨의 말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슈퍼아저씨는 할머니가 겸손의 손짓을 하는 줄 알았는지 목소리를 더 높였습니다.

요즘 금값도 비싸다던데, 그 귀한 금반지를 선뜻 내놓으셨다는 말을 듣고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번 반상회 때 얘기해서 우리 동네에서 정기적으로 소망원을 후원하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병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슈퍼아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할머니는 금반지를 소망원에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병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가득 서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구의 마음속에서는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야아, 너희들도 들었지? 금반지까지 기부하셨대!”

옆에 서 있던 동네방네의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죽 둘러섰던 다른 아이들이 너도나도 맞다, 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병구, 너하고 할머니 진짜 멋있다!”

! 그 그래, 고마워.”

할머니 덕분에 칭찬을 듣게 되니 기분 좋은 느낌이 병구의 온몸을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사실 병구 자신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할머니와 병구는 무지개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아저씨가 사과의 의미로 건네준 딸기 우유를 마셨습니다.

할미가 소망원에서 김장을 하는데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지 뭐냐. 그때 좀 추웠냐? 사지가 멀쩡한 우리야 옷이라도 든든히 입으면 되지만, 아 글씨 너 만한 아이들이 몸이 불편해서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맨살을 드러낸 채 벌벌 떨고 있더구나. 을매나 딱해 보이든지, 니 아빠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옷소매로 눈물을 찍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병구의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할머니의 솔직한 고백이 아까부터 조금씩 녹기 시작해서 살얼음만 남아있던 병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할머니, 나 괜찮아. 새 컴퓨터 없어도 돼. 학교 컴퓨터실에 가서 하면 된다고.”

아녀, 할미가 약속을 했으니까 콤푸타 사 줘야지. 내일 고물상 사람들이 와서 박스하고 고물 다 가져가기로 했으니께, 그 돈으로 니 콤푸타 사 주마.”

갈퀴 같은 손으로 병구의 어깨를 토닥이는 할머니의 눈에는 손자를 향한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에이, 할머니. 집에 있는 고물 다 팔아도 컴퓨터 못 사. 컴퓨터는 백만 원도 넘어.”

그려? 그럼 한 번만 더 모으면 되겠구나. 고물상 사장이 오십 만원은 될 거라든디.”

병구는 할머니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진짜? 그럼 한 번만 더 모으면 컴퓨터 살 수 있는 거야? 와 신난다!”

병구는 땅이 꺼질 정도로 방방 뛰어 올랐습니다.

그렇긴 한디……, 다음 번 박스 팔아서 소망원에 세탁기 하나 사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디…….”

할머니가 병구를 쳐다보며 눈가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띠셨습니다. 병구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병구를 놔두고 팔을 휘휘 저으며 골목길로 향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직업 정신에 다시 발동이 걸린 모양입니다.

비가 오려나 보다. 얼른 박스 주워야것다.”

할머니, 혼자 가면 어떡해! 이제 나하고 동업하자? ? 그럼 더 많이 더 빨리 모을 수 있잖아. 할머니, 같이 하자아.”

병구네 골목 위쪽 하늘에 금반지처럼 생긴 햇무리가 푸근하게 어렸습니다.

 

 

<당선소감>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세상 꿈꿔

 

어렸을 적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먼 별나라로 탐험을 떠난 소년은 외계 괴물과 싸우고 인간을 닮은 예쁜 여자 외계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장방형의 교실에서 지식을 쫓던 소년은, 6월 민주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찾아 헤매며 청년 시절을 보냈고, 뒤늦게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진정한 삶의 의미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빛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에 쫓기고 인공의 불빛에 가려, 별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나의 별, 나의 꿈을 되찾게 해 주신 동양일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심사평>

능숙한 상황묘사 반전으로 감동 배가

 

신인문학상 심사를 할 때는 언제나 설렌다. 작품을 넘겨받으면 마치 열리지 않은 미지의 세상을 탐구하듯 한 작품, 한 작품씩 정독을 한다. 그리고 작품속의 낯선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글쓴이가 이야기하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속으로 빠져본다. 일부 미숙한 작품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심사를 하는 내내 즐거움은 경건함으로 바뀌게 된다.

신인이 무엇인가. 새로운 창작을 하는 작가를 말한다. 그러니까 기성작가와는 다른, 즉 작품형식이나 틀을 벗어난, 모든 작품을 부정하는 새로운 작가여야 한다. 신인문학상 응모가 쉽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예선 통과 작품 21편을 숙독한 뒤 마늘과 핸드폰’(서울·최빛나), ‘할머니, 우리 동업해요’(청주·김상통), ‘행복 헌 책방’(전주·이순미), ‘세잎 클로버의 연주’(서울·강정화) 4개 작품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눈여겨 다시 읽었다. 이들 중 행복 헌 책방만 동화의 본질인 환상적 서술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나머지 작품들이 모두 생활동화류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4작품 모두 동화로서의 틀을 갖추었고, 각각의 감동도 지니고 있었다.

최빛나의 마늘과 핸드폰은 심리묘사가 탁월했다. 문장도 능숙하며 간결했고, 동화에서 요구되는 단순명쾌함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김상통의 할머니, 우리 동업해요는 플롯이 단단하다. 할머니의 말투나 주인공의 표현이 능청스럽고, 능숙한 상황묘사로 위기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며 감동을 배가시켰다. 이순민의 행복 헌 책방은 자연스럽게 독자를 환상의 세계로 끌고가는 능력이 있으며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는 동화였다. 강정화의 세잎 클로버의 연주는 동심의 표현이 뛰어났다. 어려움 속에서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산뜻하게 다뤘다.

4작품 모두 감동과 재미, 교육적인 조건까지 고루 갖추었지만,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선 흠결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행복 헌 책방은 자연스럽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었지만, 마무리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잎 클로버의 연주는 이야기 전개가 긴장감이 부족하고 밋밋하다는 점에서 먼저 선에서 내려놓고, ‘마늘과 핸드폰’, ‘할머니, 우리 동업해요두 편을 놓고 고민했다.

마늘과 핸드폰은 설정이 재미있고, 문장 다루는 솜씨가 우수해 좋은 동화를 쓸 자질이 엿보였으나, 공중전화에서 주운 핸드폰이 엄마가 사주려던 핸드폰이라는 마지막 부분이 작위적으로 느껴져 흠결이 됐다.

할머니, 우리 동업해요는 표현이 평이하고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으나, 시종일관 바탕에 깔린 조손간의 애정이 주는 감동이 이러한 단점들을 커버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당선자에게는 갈채를 보내고 최종심에 오른 작품, 그리고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유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