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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선생, 짱생의 하루 (서순화 작)


여기가 어딜까. 하얀 사각의 방. 형광등 빛에 눈이 부신다. 정신병동의 구석 병실 같은 괴기스러운 적막 속에 내가 왜 누워 있는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해봐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오늘 아침 분명히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고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지하철 안에서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들꽃 같은 아가씨를 봤다.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자고 다짐하며 학교에 출근했다. 

커튼 틈 사이로 새까만 창문이 보인다. 별빛도 달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다. 집기라곤 없는 이곳에 누가 나를 짐짝처럼 부려놓았을까. 손에 묶인 줄을 풀려고 뒤척인다. 오른쪽 이마 한쪽이 쓰라리며 욱신욱신 피부가 조여든다. 어딘가 부딪혔던 모양이다 .

이제야 그 일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그렇다. 내가 난동을 부려 외과 병동이 아닌 이 황량한 정신병동에 가두었나 보다. 온갖 소리와 영상이 바닷속 물고기 떼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떠드는 아이들, 은비의 욕설, 은비를 발로 차려고 했던 내가 오히려 오른쪽 머리를 교실 뒤쪽 벽에 부딪혔던 기억을 건져 올린다. 연어처럼 내 의식이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기억의 재생파일이 계속 후진한다. 

오늘 아침 나는 지하철역이 쏟아낸 인파를 빠르게 스캔하며 걷고 있었다. 젊은 여자만을 포착하는 내 렌즈는 숙달된 꾼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 봤자 서른여섯 해나 흘려보냈다. 하지만 아직 그 꿈은 유효하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을 때 휴대전화기에서 띠리, 남자의 베이스음이 ‘꽃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울려 퍼진다. 내 목소리이다. 휴대전화기의 수신음이 내 삶의 화두처럼 느껴진다. 꽃을 찾는 것이, 말하자면 이상형은 찾는 것이 얼마나 본성적이며 소박한 꿈인가. 좀 치기 어려 보이고 경박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바꾸라는 동료의 권유를 듣지 않고 지금까지 고수해 왔다. 에스컬레이터 한 칸 위에 서 있던 여고생 둘이 돌아보고는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린다. 너무 노골적이란 말이겠지. 피식 웃으며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댄다. 샘, 저 은비인데요. 응, 늦는다고? 네 담임 두고 내게 왜? 담임 전화번호를 모른다니,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 짱 샘 번호 모르는 사람 있나요? 흠, 인기가 있단 말. 아이들은 내가 얼짱이라서 짱이라는데, 나쁘진 않다. 못나고 더러운 건 사양하는 바다. 내 이름은 김장생. 선배교사들은 ‘짱 생’이라 부르고 학생들은 ‘생’ 대신에 ‘샘’을 붙여 ‘짱 샘’이라 부른다. 고리타분한 내 이름보다 ‘짱 샘’이 재미난다. ‘장’에 힘을 주어 짱, 하면 유쾌해진다. 나는 꽃을 찾는 짱 생이다.

사실을 말하면 ‘유쾌’를 지향하는 내 일상은 피부 모공까지 모조리 접착제로 때워놓은 듯 숨이 막힌다. 아, 머리 아파. 출근 시간을 재촉하라고 맞춰놓은 알람 소리가 무거운 다리를 떠민다.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 역시 빤한 내일이다. 매일 학교와 집만 오락가락하는 나는 건전지 떨어진 시계처럼 곧 멈출 듯 조금씩 늘어진다. 나의 학문은 기지개 켜고 하품하며 조롱의 먼지를 쌓는다. 학교는 새장이다. 허구한 날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이 교실 저 교실로 날아다니는 나는 앵무새. 전철로의 쇳덩이처럼 단단한 하루의 시작이 철커덕거리며 어둠의 터널로 달려 들어간다. 피로하다. 눈을 감고 잠시라도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옆에 선 여학생의 시선이 내게 와 멈추자 은비의 얼굴이 여학생의 얼굴 위에 겹쳐지며 잠시의 '유쾌'가 사라진다. 어제 아침 시외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에 갔었다. 은비 녀석은 매일 아침 시외버스 정류장 화장실서 담배를 피웠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은 채 쩌렁쩌렁 울리도록 은비가 토해내는 내 이름을 듣고 있었다. 

“은비야. 8반 가자미가 짱 샘은 제 거래.”

“짱 샘이? 씨발년, 오늘 아침부터 존나 열 받네!” 

두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 고무 함지를 내던졌다. 아유, 여학생들이, 제 얼굴은 고렇게 예쁘게 다듬으면서 세면대 해 놓은 꼴 좀 봐. 게워놓은 죽이야. 바로 밑에 휴지통 두고 휴지를 왜 세면대에 쑤셔 넣어, 마, 제 입에 쑤셔 넣고 싶네. 또 다른 부인이 까르르 기가 넘어갈 듯 외쳐댄다. 아이고, 이게 뭐야. 싸지도 않고 바닥에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탄식으로 맞장구를 친다. 요즘 계집애들 보면 정말 아들 장가보낼 일이 걱정이에요. 이런 계집애들이 시집가면 제대로 살아내겠어요, 어디. 자식 팽개치고 도망가기에 십상이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내 가슴이 먹먹해 왔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깊이 팬 블라우스 사이로 봉긋한 유방이 나를 희롱하듯 고개를 빼꼼 내민다. 나는 예쁘고 관능적인 여자에게 속이 꽉 찬 지성을 하나 더 넣어 삼위일체의 미인이라 부른다. 지성미는 제쳐놓고라도 내 주변에서 보았던바, 노출을 좋아하는 여자 대부분이 불운하게도 미인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교장실에 불려 가 복장 주의를 받는 점숙 선생이 그렇다. 아이들은 점이 있다고 그녀에게 점숙이란 별명을 붙였다. 코 옆에 제법 큰 점이 있는 그녀는 사주 관상을 보고 나서 복점이라며 그 흔한 레이저 시술도 거부했다. 그런 그녀가 엉덩이까지 찢어진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난다. 가슴골이 팬 원피스 사이로 유방을 살짝 보여주며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에게 남자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충동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여자에 관한 한 내 눈은 내시경이다. 남이 안 보이는 여자의 지저분한 곳까지 다 보이는 나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남자임이 틀림없다. 그것만으로 허구한 날 푸념을 주절거릴 이유가 충분했다. 

유방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시선은 매우 당돌하고 뻔뻔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그 방면의 끼가 요나만 할까. 잘못을 은폐하려고 제 가슴을 내 어깨에 밀어대며 아이, 선생님, 하던 요나. 물컹한 젖가슴의 감촉에 사타구니 사이가 얼어붙듯 굳어버렸어. 그게 다른 남자와 내가 다른 점이야. 녀석들의 미소 뒤에 감춘 숨은 발톱을 난 알아. 그 내숭쟁이 현혜가 “저 새끼, 맛이 갔어. 얼짱이면 뭐해.” 했다. 앙큼하게 은폐하고 미소 짓는 그 교활한 입술, 쌤, 사랑해요, 해놓고 뒤통수치는, 속이 다 보이는 그놈의 사랑 타령. 사랑, 사랑, 한 줌도 없으면서 흘러넘치는 녀석들의 입에 발린 사랑 타령.

얼른 여자의 눈길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리를 꼬아 앉은 다른 여자의 드러난 허벅지가 허옇게 눈에 차고 들어온다. 의자에 눌려 부피가 늘어나 버린 허벅진 살이 털을 벗겨놓은 벌건 고깃덩어리 같다. 미니스커트 안의 시커먼 음모가 연상된다. 허벅녀의 몸에서 욕정을 이기지 못한 난자 하나가 흘러나와 냉혹한 내 시선을 유혹하는 것 같다. 회식 날, 내 옆에 앉은 점숙 선생이 술을 마시고 몸을 흔들흔들, 내 어깨에 기대고 내 사타구니에 가까운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술 힘으로 객기를 부리는 게 이제 남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정액에 섞인 분 냄새가 비릿하게 뇌리를 자극한다. 고인 침을 삼키며 경로석으로 눈길을 돌린다. 

저 아가씨 좀 봐. 눈꺼풀을 까뒤집듯이 치뜨고 마스카라를 바른다. 조렇게 푯대를 내 가며 요란을 떠는 모습이라니. 이번에는 한쪽 뺨을 돌려서 내밀어 가며 톡톡 분을 쳐대는 꼴 좀 봐. 화장녀는 입술 모양을 ‘에’ 발음의 모양으로 입을 있는 대로 한껏 벌린다. 입술 라인을 왼쪽 입술 끝에서 턱을 싹 돌려가며 오른쪽으로 쪽 긋고는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요모조모 뜯어가며 표정을 바꾼다. 왜들 저럴까? 화장하는 여자의 모습을 누가 아름답다고 했는가. 나는 그저 씁쓸해서 눈을 감는다. 

어머니는 화장을 안 하셔도 미인이셨다. 어머니는 왜 나에게만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장의사는 살아서 곧 일어날 듯 어머니에게 화장을 시키고 종이 날개를 무수히 꽂았다. 미련한 장의사. 인형에 옷 입히듯 몸을 그리 엎치락뒤치락 주물러댔으니 어머니 입에서 검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나오기까지 했지. 어이쿠, 하며 휴지로 급하게 닦는 꼴이라니. 근데 왜 나더러 어머니 얼굴을 못 만지게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느냐 말이다. 만지면 온 지구의 인간들이 전염병으로 금방 멸종이라도 될 듯이 그리 호들갑을 떨다니. 두들겨 패주고 싶은 장의사. 그러나 정작 맞아 죽을 놈은 나였다. 어머니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한 기도, 다 나를 위한 기도였어. 나는 유복자였고 어머니는 두 번이나 재혼하셨다. 임종하는 날, 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안간힘을 다해 몇 번이고 눈을 부릅떴다. 어머니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나에 대한 염려일까. 당신의 두 번 바꾼 생에 대한 회한일까. 요양원으로 보낸, 나를 향한 원망의 꾸짖음일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얼굴에 흐르던 시커멓게 죽은 피 한줄기가 밤마다 내 얼굴로 타고 내려와 잠을 깨곤 했지. 한 오라기 아픈 추억마저 삼켜버린 어머니의 얼굴, 그 마지막 얼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들어 있는 서랍 안에서는 늘 무서운 신음이 들렸어. 

어머니를 산에 묻고 내려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가 다른 우리 형제는 무서운 암투를 벌였지. 몇 푼 안 남은 재산 때문에 영화에서나 봄 직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어. 다들 눈에 불을 켰지. 시한폭탄의 안전핀을 빼들고 던질 기세였지. 정말 위태위태했어. 우리는 모두 악취를 품어냈지. 큼. 큼. 

그때, 전동차 문이 열렸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여자가 꽃 냄새를 몰고 와서 기둥 옆에 선다. 곁눈으로 훔쳐보았다. 꽃인지 여자인지 흐드러진 꽃다발과 뽀얀 얼굴이 한데 섞여 마구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다소곳하게 숙인 이마 위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걷어주고 싶다. 꽃꽂이 강사인가. 그런데 코에 스며드는 이 묘한 냄새. 좌석의 융단 천에 묻은 지린 악취가 꽃향기에 섞인 것일까. 지린내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 야릇하게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묘한 냄새다. 사로잡는다는 표현은 옆에 선 꽃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 생각한 나는 또 하나의 의문에 골똘해지기 시작했다. 꽃에서 그리 야릇하게 기분 나쁜 냄새가 날 수 있을까? 꽃은 여자의 상징이라고들 한다. 여자와 꽃, 꽃은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여자는 모두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여자의 동의어를 생각하다가 스마트 폰을 열어 ‘아름답다’를 검색한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하고 아름답다.’를 클릭하자 운동장 조회 때 나를 향해 바라보던 아이들 까만 눈동자처럼 180개의 단어가 바글바글 줄지어 나온다. 여자 중 참된 여자를 고르는 심정으로 단어를 음미한다. 여자는, 아니 단어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차츰 머리가 아파졌다. ‘?하고 아름답다.’의 조건들이 높은 산이 되어 눈앞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을까. 98개의 단어. 뻐근해진 손목을 돌렸다. 두 문장을 엮어 휴대전화기에 메모한다. 낯선 단어의 맛을 새김질하며 안타까움을 달랜다.

?요즘의 아가씨들은 대개가 비비하다. 요요작작한 아가씨가 살이 비치는 욜미욜미한 블라우스를 입고, 요뇨정정한 미소를 보이면, 부염한 외모로만 비쳐, 극가한 아가씨가 더욱 오롯이 그리워진다.?

어떤 여자라야 될까. 휴대전화기의 폴더를 닫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참한 여자, 깔끔한 여자, 착한 여자, 청순한 여자…….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 속에 득실대던 수많은 부정어가 날개를 털며 일어난다. 더러운 여자, 사악한 여자, 지저분한, 음흉 음탕 음란한, 교만한, 천박한, 야한, 걸레 같은, 탐욕스런, 욕정 끓는, 미련한, 끼 흐르는, 노출을 좋아하는, 겉과 속이 다른, 교활한, 내숭 안에 발톱을 숨긴, 거짓말 잘하는, 욕 잘하는, 여자. 여자. 여자.

고개를 들었다. 꽃 아가씨가 살포시 웃는 것 같다. 입은 다물었지만, 눈이 웃고 있다. 나는 그녀의 반듯한 이마 위에 아까 찾은 단어를 꼭꼭 눌러썼다. 소려. 연염. 청미……. 

전동차 문이 열리고 꽃 아가씨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스마트 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메고 뛰어나갔다. 꽃다발을 힘겹게 안은 여자는 또각또각 하이힐 굽 소리를 내며 계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쫓아 뛰었다. 마음속으로 소려, 연염, 청미를 되뇌며 뛸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하도의 바닥을 내리치는 내 발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지며 환희의 심벌즈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삼십육 년 만에 한눈에 꽂힌 여자는 내 길과 반대편 출구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학교 출근을 포기하고 따라갈 수 없었다. 언젠가는 또 전동차에서 만나겠지. 학교 생각을 하자 갑자기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요즘 들어 편두통이 더 기승을 부린다. 



지하철 화장실로 뛰어갔다. 조울증에 시달리던 니체가 내 곁에서 나란히 뛰고 있었다. 자신은 조증의 시기에 수많은 사유와 저작활동을 초인적으로 해냈다고 말하며 킥킥 웃었다. 그럼 니체 씨, 울증기에는 어떡했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 역시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찧으며 고통을 참았을 뿐이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니체의 말에 동의했다. 이마 위의 혈관이 꿈틀거리며 불뚝 솟아올랐다. 나사못이 두개골 깊이 뚫고 들어가 사정없이 틀어 죈다. 뇌수가 쪽 빨려나가는 듯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간신히 변기를 붙잡았다. 더러운 것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오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다. 얼짱인 내 얼굴이 시궁창의 쥐 꼴이다. 세면기의 물을 손으로 받아 입을 헹구고 안주머니에 든 약을 꺼내 삼켰다. 금방 좋아질 거야. 휘이이…… 지옥을 비켜가는 열차의 기적 소리가 심연 속으로 잦아들었다. 환승 구간에 이르렀을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전동차가 전역을 출발하였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안전선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안전선을 이탈해 서 있는 내 발을 내려보았다. 생의 안전선 이탈. 그럴 수도 있겠다. 고개를 끄떡이는데 전동차가 꽥 기적을 울린다. 깜짝 놀라 비켜서는데 불길한 불쾌감이 뒷덜미를 잡아채는 듯하다. 얼른 전동차 문안으로 들어갔다. 쇼핑백을 좌석에 얹어 두고 눈을 감고 있는 젊디젊은 여자. 조금 남은 틈의 의자 끝에 궁둥이를 겨우 붙이고 앉은 노인. 노인의 옆에 머리를 한껏 제치고 입을 헤 벌리고 잠든 여자가 눈에 띄었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와 학교밀집지역으로 걸어간다. 용명 중학교 옆은 문화 고등학교, 그 옆은 대신 정보고, 도로 건너 서너 블록 지나면 신설한 상록 고, 아파트 하나 건너 동명 고가 있다. 그 어디쯤 사이에 초등학교도 있다. 운동장을 끼고 둘러쳐진 긴 학교 담벼락을 따라 인도블록이 깔린 보도가 삼백 미터 넘게 계속된다. 수많은 동그라미 무늬들이 보도블록 위를 수놓고 있다. 자세히 보니 껌 자국이다. 학교 담 밑에는 간밤에 토해 놓은 술꾼들의 토악질이 군데군데 무더기를 이루고 노상 방뇨로 지방도로의 간선을 그려놓았다. 입에 침이 고여 뱉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속이 메슥거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등굣길이나 교실 풍경이나 학교의 후미진 곳은 대개가 같은 풍경이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배운다는 것은 아니, 가르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흠,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서너 발짝 내딛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다짐한다. 오늘 아침에는 아름다운 생각만 하자. 기분 좋은 생각만 하자. 계단에 가래가 좀 있어도 내가 사는 데 지장이 없고 학교에 쓰레기가 널리면 주우면 되지. 당번을 불러서 청소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끝날 일인데 왜 스트레스받느냐고 동료는 충고한다. 그렇다. 나는 왜 이럴까. 허구한 날 보이는 교실바닥의 시커먼 때 자국, 끈적끈적한 바닥에 거뭇거뭇 붙어 있는 껌 자국은 유독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보지 말자. 상관 말자. 마음에 깊이 새긴다. 

점숙 선생에게 은비가 늦는다고 알려주고 교무실 책상 위에 엎드렸다. 회의실 안 가요? 점숙 선생이 내 등을 두드린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리퍼를 질질 끌며 긴 복도를 걸어갔다. 매일 아침 듣는 똑같은 전달사항이 지겨웠다. 아이들 역시 담임 잔소리가 지긋지긋할 거다. 교장은 입가에 흰 거품을 묻힌 채 속사포 쏘듯 말했다. 유리창에는 아예 먼지로 커튼을 쳤고, 게시물은 삐뚤삐뚤, 종이가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교실바닥은 콜타르로 발라놓은 것 마냥 시커멓고, 계단마다 껌 자국이랑 누른 가래침에, 화장실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종 낙서에, 제발 생활지도 좀 하시오! 점심시간 급식 줄도 좀 잘 세우고! 교장 당신 말씀이 내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닌 걸요. 나도 남학생반 수업 들어갈 때 복도에 뱉어놓은 가래를 치우느라 5분이나 늦게 입실하기 일쑤였어요. 가까운 교실 주번 불러내 치우고 헐레벌떡 꼭대기 4층으로 올라가면 벌써 5분 지나버려요. 그것도 모르고 늦게 수업에 입실하는 교사가 어떻고, 하는 상습 굼벵이 교사 축에 내가 들어가 버리는 줄 알기는 하십니까. 아, 아!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교탁 앞에 서자 와글와글. 한여름 논에 괄괄거리는 개구리 떼 같다. 실장의 구령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자유와 민주가 낳은 교실 풍경이다.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는 누구 것인지 모르는 먼지투성이의 체육복 바지가 한쪽 가랑이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책상 밑 아이들의 발 언저리에는 군데군데 코 푼 휴짓조각이 널려 있다. 통로에는 흥청망청 쓰다만 두루마리 휴지가 팔자 늘어지게 풀어져 일그러진 내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본다. 도대체 이 학급은 어제 오후 청소를 한 거야, 안 한 거야. 담임이 누군지 좀……. 출석부 표지를 앞으로 넘겨 담임을 확인한다. 흠, 역시 상습범. 담임 수당만 받아먹는 농땡이. 도저히 이대로는 수업을 할 수 없다. 그만 불끈해져 아이들을 노려보는데 저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있던 어느 녀석이 씨팔년아! 소리친다.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야! 인마 새끼들아! 돼지우리에 앉아 아침부터 존나 떠드네! 거기 휴지 두루마리 빨리 치워! 체육복 누구 거야? 주인 없으면 쓰레기통에 넣어! 이거 현혜 건데요? 아이 하나가 체육복을 들고 내게 말한다. 현혜가 샐쭉하니 입을 비틀며 체육복을 낚아채 제자리로 들어간다. 눈초리가 싸, 하다. 대충 교실 정리를 하고 훈화를 시작한다. 재킷을 옆구리 뒤로 넘기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충격요법을 쓸 셈이었다. 영락없는 건달 모양으로 건들거리며 말했다.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평소 내 모습이 아니니까 당연하다. 

이런 남자 친구 어때? 목에 힘을 주어 캭, 가래를 모았다. 아우, 샘, 더러워! 아이들은 팔딱팔딱 날뛴다. 너희도 그러면서 뭘 새삼스럽게. 얘, 솔이야, 휴지, 휴지. 입을 모아 가래가 튀어나올 듯 흉내를 냈다. 맨 앞줄에 앉은 솔이가 가방에서 얼른 휴지를 꺼내 준다. 가래 대신 침을 휴지에 묻히고 반 접어서 패엥, 코를 풀었다. 늘 주변이 지저분한 경희 앞으로 코 푼 휴지를 던졌다. 아그! 경희의 가자미눈이 흘겨본다. 

그 눈을 피해 아이들의 책상을 바라보는데 눈앞에 포르노 잡지가 출몰해 어른거린다. 팬티, 브래지어, 흩어진 옷가지 위에 발가벗고 누워 요염하게 웃고 있는 모델이 아이들 얼굴을 지운다. 고렇게 얌전한 김 선생이 자신이 벗어 던진 팬티며 양말, 브래지어를 칠순이 지난 친정 노모가 하나씩 주워 세탁기에 넣으며 탄식을 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지. 여직원휴게실에서 새어 나오는 그 말을 듣고 나는 김 선생을 다시 생각했지. 여학생 화장실 바닥에 발랑 드러누운 피묻은 생리대가 내 얼굴로 달려들면 나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려. 순간 내뱉고 말았다. 

“너희가 이러니까 내가 여태 장가를 못 가는 거 아니겠니?”

애들의 눈이 커다래진다. 샘, 샘이 생각을 좀 바꿔요! 너희가 바꿔, 나 장가 좀 보내 줘. 아이들이 까르르 넘어간다. 그리 말했지만, 절망은 곱으로 달라붙었다. 나도 몰래 탄식이 흘러나왔다. 불현듯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만난 예쁜 꽃 아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들 얼굴이 나타나 꽃 아가씨의 얼굴 위에 차례로 겹쳐진다. 은지, 요나, 현혜, 김 선생의 야들야들한 미소와 점숙 선생의 취기에 젖은 흔들림, 노출증 여자들의 헤 벌린 입과 유혹하는 가슴과 팬티가 보이는 허연 허벅지가 교차하면서 꽃 아가씨의 이미지를 지워나갔다. 그리고 시야에는 온통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디선가 퀴퀴한 꽃 냄새가 난다.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떠들어대고 그때 교실을 순시하던 교장이 앞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재빨리 문으로 다가갔다. 수업 안 하고 왜 이리 시끄러워. 수업 끝나고 담당 화장실 앞으로 좀 오라고.

교장은 꼿꼿한 자세로 서서 내가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양을 빤히 보고 섰다. 교장 앞으로 다가서자 그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나는 눈을 치뜨고 화장실 창고 위쪽의 공간을 쳐다봤다. 이 위로 쓰레기봉투를 던져 넣은 게 몇 달이 지났는지 악취가 이리 나는데 도대체 청소 현장지도는 얼마나 안 했어? 한번 열어 보라고. 창고 안에는 쓰레기를 넣은 검은 비닐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멀리 있는 소각장과 쓰레기장까지 가기 싫은 학생들이 던져 넣은 거였다. 꼭 내 반 청소당번만 던진 건 아니었다. 그런 변명 통하지도 않는다. 아! 몇 달이라니! 얼굴이 화끈 뜨거워진다.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 나도 모르게 두 손가락으로 코를 꼭 쥐었다. 몇 달이라니, 매일 검사했는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목구멍에서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새나왔다. 

“학부모가 회의 끝나고 들어갔다가 보고 나와서 기겁을 하고 따져 드는데 원 참!” 

교장이 창고를 겨냥한 손가락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이, 이, 쓰레기 더미 좀 봐, 창고 가득히 물건 많이 사 재어 놓았네! 아이고, 참, 값 좋을 때 기다려 팔려나? 그걸 보고 어느 학부모가 가만있겠어.”

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애들이 전부 가정교육을 못 받아 그런 거 아닙니까. 학교에서라도 교육해야지. 매일 얘기해도 안 되는 거, 잘 알지 않습니까. 교장은 나의 대꾸에 수그러지던 화가 다시 돋쳤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매일 얘기해도 안 된다고 되레 내게 따지는 거야? 그런 자질로 선생은 왜 됐어? 교육이 금방 결과가 나와? 남자 교사가 여학생 화장실 현장지도하는 것, 사실 힘든 거 아닙니까? 아니, 짱 생! 여학생을 이성으로 생각하는 거요? 그럼 여선생이 남학생 화장실 흡연지도는 어떻게 하는 데. 그것도 그랬다. 더는 대꾸할 거리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내 슬리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장은 자신이 한 말이 논리적이었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감동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여태 장가를 못 가지.”

교장이 음험하게 웃으며 내 등을 툭 치고 돌아서 가버린다. 나는 기분이 묘해져 그가 던진 말뜻을 곰곰 생각했다. 그러니까 장가를 못 간다고?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걸, 못 한다고? 뭔가 남다른 약점 때문에 장가를 못 간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는 어떠니까 이냐. 그래 내가 어떻단 말인가? 나쁜 영감. 능구렁이 영감탱이. 얼굴에 핏기가 가시며 살갗이 파르르 떨린다. 장가를 못 간 게 내 탓이요, 내가 뭔가 비정상이라는 말이다. 허둥지둥 교실을 향해 내달았다. 아이들이 징그러워져 입도 떼기 싫다. 쓰레기 갔다 버렸지? 하면 그럼요, 하고 배실 웃고는 고렇게 사기를 치다니. 그건 배신이야, 아, 속에서 불이 난다. 나쁜 계집애들. 그 미소 뒤에 숨겨둔 추악한 근성을 내가 오늘 아주 싹 벗겨 주겠어. 종례 때 어디 두고 보자. 나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복도를 쌩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샘!” 

“샘, 안녕!……?”

“짱 샘, 왜 저러지?”

인사도 받지 않는 내가 이상하겠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 교실로 들어가 교탁 앞에 섰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실장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제자리에 앉지도 않는다. 한 아이는 끝 분단까지 달려가 뒤로 묶은 아이의 머리를 냅다 잡아당기고는 후딱 제자리로 들어가 시침 떼고 앉는다. 당한 아이는 놀라 누가 그랬지? 하고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알아차리고는 또 냅다 달려가서 친구의 머리를 세게 잡아당기고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유, 저것들이 높을 고자 고등학생이야. 그러는 중에 실장이 들어와 차렷!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요즘은 대학에서도 떠들어서 강의를 못한다고 교수들이 죽을 쑨다고들 하지만 이건 너무해. 초등학교 일 학년 수준이야. 실업계 고교의 꼴이 이 모양이라 모두 죽으라고 인문고로 도망들 가지만 요즘은 인문고도 마찬가지라고. 거긴 대학 입시 때문에 학생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털끝도 못 건드리고 심약한 여교사는 아예 자신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놈들은 뺀질뺀질 도망 다닌다. 생활기록부는 어차피 다 잘 써 줘야 하는 시대란 걸 저들이 먼저 알고 있으니 담임 혼자 잔소리하고 청소도 하라나? 실업고는 그래도 웬만한 결점 없으면 선생을 선생으로 취급해 주는데……. 인문고에서는 수능과목을 제외한 타 과목 교사는 비교과라 해서 선생 취급도 하지 않고 학생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잔다. 자도 가만둬야 훌륭하고 융통성 있는 선생이다. 네 자식이 이 바쁜 시간에 대입과 관련도 없는 과목을 공부한다면 놔두겠느냐? 바꿔 생각해야지. 하며 그래. 자라, 자. 좀 자고 일어나서 영어 수학이나 열심히 해라. 하고는 선생은 신문 나부랭이를 읽는다. 그렇지 않고 비교과 과목을 열심히 가르치면 교원평가제 점수는 하위 점을 받고, 성과금 100만 원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무능한 교사로 전락하기 십상이지. 그것도 못 할 짓이야. 하지만 실업고만큼 떠들어대지는 않지. 떠든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지. 그러고 보면 인문고 가서 비교과라고 무시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전임했던 인문고에서 당해 봤잖아. 아이들이 모두 데모하듯 엎드려 자기에 일어나게 했더니 지금 자둬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수능 공부한다고, 비교과 시간에 휴식 좀 하면 어떠냐고 따지는데 아아, 그래서 실업고로 옮겨왔더니.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해. 유독 이 학급은 더 난장판이야. 

기가 차서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한 아이가 제자리서 걸어 나오더니 교탁 앞에 마주 보고서서 샘, 샘, 있잖아요, 하며 나랑 잡담을 나누자고 한다. 또 다른 아이 두 서넛이 우르르 뛰어나와 내 앞에 몰려든다. 늘 같은 교실 풍경이지만, 오늘만은 견디기가 어렵다. 교장에게 상한 자존심으로 얘들에게 분을 푸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순간 화가 주춤 물러난다. 그러나 무척 권위가 상한다.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로 전락한 기분이다. 아이들이 너무하다. 아무리 내가 마음 좋은 선생이라도 그렇지. 이건 아니야. 나를 무시하는 거야. 이 녀석들 학생부장 앞에서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에게 주목하는 걸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사실 그때마다 우울해져서 견딜 수 없었지만 난 마음을 달랬어. 내 과목은 너무 조용해도 안 되는 과목이니까, 좀 시끄러워도 이해해줘야 해. 하면서 나 자신을 고무시켰어. 그렇지만 이건 아니야. 가까스로 추스르던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배신감을 동반한 증오심이 이성을 무너뜨리고 나는 폭발 직전에 놓였다. 아이들은 오히려 하나, 둘, 할 일 없이 샘! 샘! 하며 내게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나를 꼬드긴다. 짱 생, 정신 좀 차리라고. 민주, 자율 그거 아무 데서나 통하는 줄 알아. 한국인종들은 무력으로 휘둘러야 하는 인종이라고. 아아, 내가 민족의 치욕에 동참하다니. 그런 부박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경멸스러워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들어가. 안 들어가? 이것들이! 아, 샘! 에이 씨, 왜 그래요. 한 애가 당혹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더 기분이 나빠져서 옆에 서 있는 애한테도 소리를 질렀다. 넌 왜 안 들어가! 애는 얼굴을 붉혔다. 나를 좋아하는 은비였다. 은비는 친구들 보기가 부끄러웠던지 하! 참! 하면서 눈을 치켜떴다. 내가 부드러운 말로 제 상한 기분을 풀어 주기를 은근하게 기대하는 눈빛이다. 그러나 나는, 나는, 알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자꾸,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안 들어갈 거야? 아, 알았다고. 에이 씨, 졸라 기분 나쁘네! 은비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홱 돌리고는 제자리로 들어갔다. 터덕터덕 걸어가서 발로 책상을 팍 걷어찼다. 다음 순간 은비의 손에 들렸던 의자가 꽈당,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누가 내 뒤통수를 나무판자로 내려치는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은비가 의자를 세워 엉덩이를 앉힐 때 그 반항적인 태도는 구겨진 자존심을 발로 지근지근 밟는 것 같았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도 은비에게 질세라 목구멍이 찢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야! 은비! 너 이리 나와! 은비는 발딱 일어서더니 왜요! 내가 뭐 잘못 했는데요! 하고 기세 좋게 덤빈다. 나는 은비의 자리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자리에서 끄집어내려니 은비는 안 나가려 앙탈을 부리며 씹어뱉듯 말했다. 

“씨발년! 미쳤어!”

요즘 아이들은 가장 악랄한 욕이 씨팔놈이 아니고 씨팔년이란다. 왜 남자에게 ‘년’을 붙이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남자가 더 치사한 놈이 된다나? 그 생각이 떠오르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뭣이 어쨌든 간에 나는 그래도 엄연히 저희 선생인데. 분노와 배신감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그 욕설을 짓이겨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아이를 짓이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이 욕 때문에, 하며 책상을 걷어찼다. 한없이 추락하는 내 이미지가 그려졌다. 순간 발딱 일어난 아이가 저랑 제일 친한 까비를 향해 외쳤다. 사진 찍어! 그래, 인마,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라! 나는 아이의 봉긋한 가슴을 향해 다리를 번쩍 쳐드는 상상을 했다. 아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현실인지 상상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은비와 가까운 뒷문 벽이 얼핏 보였다. 나는 벽이 은비인 듯 아니, 악취 나는 세상인 듯, 죽은 교육인 듯, 내가 그런 알량한 선생인 듯, 머리를 박고 또 박았다. 주먹으로 문을 부수고 간 유리창이 쏟아져 내리고. 내 몸은 쓰러졌다. 그러나 다리와 의식은 계속 활동하는 듯했다.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시야가 희부연 했다. 



지금은 새벽일까. 간호사도 찾아오지 않는 걸 보면 모두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인 것 같다. 다섯 시? 조금 열린 커튼 사이의 창을 바라본다. 희끄무레한 빛이 들어온다. 빛을 움켜잡고 다시 내 몸이 쓰러진 후를 기억하려 애쓴다. 까무룩 잠이 들려 한다. 잠을 깨서 안간힘을 다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까무룩, 까무룩.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나는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내가 은비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불길한 예감이 허리끈을 붙잡는다. 섬뜩하다. 나는 멈춰 섰다. 그러나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교정의 긴 내리막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한쪽 슬리퍼 끈이 툭, 끊어졌다. 이건 걸핏하면 꾸던 꿈의 한 토막이 아닌가. 나는 끈 떨어진 슬리퍼를 손에 들고, 발을 끌며 걸어갔다. 길은 끝없이 길고 걸음은 무겁다. 머릿속에서 새 한 마리가 벼랑 밑으로 추락한다. 늘 꾼 악몽이 현실처럼 그려진다. 

더 걸음을 뗄 수가 없다. 교문 옆 시멘트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느낌이다. 그 정도로 은비가 다치지도 죽지도 않겠지만, 학교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참에 귀농이나 할까 보다. 괜찮다. 어차피 빨리 떠나고 싶었던 학교였다. 어디 시골 폐가라도 찾아가 밭이라도 일구며 살고 싶다. 이름도 모르는, 아주 참해 보이는 꽃 아가씨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끈 떨어진 슬리퍼를 들고, 그녀의 하얀 발에 걸렸던 하이힐을 생각했다. 어쩌면 아침에 내렸던 전동차 구간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지하철을 향해 바삐 걸어갔다.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신발을 사 신어야지. 그녀가 내렸던 역으로 가는 도중에 명도 시장이 있다. 사양 역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서 건널목을 건너면 화훼시장 골목이 있고 맞은편에 신발 가게가 늘어서 있다. 화훼골목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어깨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두 여자가 머리채를 뜯으며 싸우고 있다. 머리 긴 여자는 어디선가 본 듯하다. 짧은 머리를 한 여자가 상대 여자의 머리채를 놓아주며 말했다.

“새벽 장에 나온 꽃이 시들었다니, 말이 돼? 네 눈이 시들어 그렇지.” 

“씨발년아, 넌 안 시들었니?”

꽃 아가씨가 씨발년이란다, 헉, 그렇지. 시들었다고 하니 열 받지. 내 머리 뚜껑을 열리게 했던, 그토록 분노를 자아낸 그 말이, 한눈에 반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상한 일이다. 왜 그 욕설이 대수롭잖게 들리는 걸까. 그때 나를 가두고 옥죄고 있던 철망 같은 것이 툭,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 겹씩 옷을 벗고 알몸을 보여주듯 내 안에 있는 깊은 음부가 드러나 보였다. 불현듯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두 번의 재혼에도 내밀한 곡절이 있었고, 인생에 곡절은 유비 무한하다. 머릿속에서 번쩍 번개가 치고 눈앞이 환하게 밝아왔다. 빛나는 세상을 움켜잡고 지금 나는 결혼하고 싶다. 꽃 아가씨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도 그녀처럼 뇌까려본다. 씨발. 

번뜩 눈을 떴다. 부신 햇살 한줄기가 망막을 찌른다. 

“짱샘!” 

“꽃 아가씨는!”

“웬 꽃 타령이에요. 꿈꿨어요?” 

아, 점숙 선생! 꿈이었나? 환상이었나? 옆에 서 있던 은비가 선생님, 잘 못했어요. 하고 울먹인다. 나를 왜 정신병동에? 호호, 여기 외과병동 일 인실이에요. 아유, 이 녀석 한 대 패주지, 왜 자해 따위를. 간호사가 몇 번 들어갔다 와도 죽은 듯 자더래요. 이제 묶인 손을 풀어준다기에 내가 해 드린다고 했어요. 점숙 선생이 침대 모서리에 묶인 내 손을 풀어주었다. 내가 일어나 앉으려 하자 그녀가 오른쪽에서 은비가 왼쪽에서 내 팔을 붙들고 일으켰다. 점숙 선생의 가슴이 훤히 보였다. 말랑말랑한 엄마 젖통, 우윳빛 젖 빨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뜨뜻한 온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아, 내 거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처음 느끼는 일이다. 에이, 씨…….

 

 

<소설>서유진 당선소감 -­ ‘폭포가 멈추는 시간’

폭포가 멈추는 시간 

해발 1,000미터의 빙벽 위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가 순간, 멈춘다고 한다. 폭포가 수직으로 하강하듯 정신없이 떠밀려 추락하는 시간이었다. 멈추고 싶은 시간, 바로 그 순간 당선 전화를 받았다. 절벽에서 떨어지다 나뭇가지에 걸려 구사일생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기쁨을 표현하기에 내 어휘사용이 궁색할 뿐이다. 돌아보니 겸허하지 못했던 습작기를 보낸 것 같다.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자 배기로 덤벼들어 장편 3편을 쓴 후, 비로소 길을 잘못 든 걸 알게 되었다.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 소설은 발전할 수 없었다. 거친 문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새롭게 쓰려는 시도는 엽기로 변했다. 점점 혼란에 빠졌다. 매년 낙선할 때마다 허리뼈는 일 밀리씩 내려앉았고 시간은 늘 촉박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의 한 자락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이제 바람이 불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준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다짐한다. 더욱 정진하고, 시시포스처럼 묵묵히 쓰겠다. 따뜻한 이야기를 써서 쓸쓸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나의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연민의 눈으로 소설을 쓰라하신 저의 첫 스승, 이채형 소설가님, 늘 용기를 주신 권지예 소설가님,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신 이우상 소설가님, 경이로운 소설 세계에 눈뜨게 해주신 엄창석 소설가님, 동리소설 창작교실 문우님들, 좋은 소설 쓰라고 격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신 김경영 목사님과 조성진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벽기도로 늘 응원해주신 어머님과 내 소설의 첫 번째 독자인 아들 전계성, 그의 예쁜 비둘기 박성혜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좌절할 때마다 용기를 준 내 사랑 전종구씨, 당신께 기쁨을 돌립니다.

 

<소설>­심사평 - 희망과 절망 사이, 혹은 인간답게 살기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전북도민일보의 2013년도 신춘문예에 응모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여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취업난과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직장인의 전전긍긍, 혹은 살아남기 위하여 벌이는 교활한 인간들의 행위는 희화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 소설다운 소설을 골라놓고 보니, 유미경의 ‘강이 끝나는 곳’과 오유나의 ‘화가’와 서순화의 ‘총각선생, 짱생의 하루’가 남았다. ‘강이 끝나는 곳’은 작은 키로 살아야했던 주인공의 한스런 삶을 한탄강을 찾아 되돌아 보는 서사는 진지했지만, 주인공이 겪은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쳤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붉은색의 꽃을 주로 그렸던 어머니와 딸, 그걸 바라보는 목사인 남자 주인공의 심리적인 갈등이 치밀하게 묘사된 ‘화가’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삶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으며, 어린 소녀 선애의 죽음과 여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을 얻기가 힘들었다.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이는 공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그린 ‘총각선생, 짱생의 하루’는 주인공 짱생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펼치는 상념 속의 인간적인 모습과 난장판이 된 학교현장에서 부딪치는 갈등을 무리없이 서술하고 있었다. 학생을 체벌하는 대신 자해를 결행한 주인공 총각선생의 고뇌를 통하여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볼 수 있겠다는 의미에서 ‘총각선생, 짱생의 하루’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정진하기 바란다. 

 

최정주<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