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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 김윤정

 

단풍이 한창이었다. 더운 날에는 무수히 우거져 녹음을 뿜어냈을 나무들이 저마다 색색의 옷을 차려입고서 멋 내기에 열을 올린다. 한 가지가 아니라 적어도 서너 가지 이상씩은 합쳐진 단풍들의 빛깔은 어느 것 하나 영롱하다 못해 아주 오묘한 맛이 있었다. 흩어져 지나가는 바람마저 잎사귀 끝에 닿으면 그 색으로 물들어버릴 것 같은 아릿한 착각이 든다. 이런 매혹적인 광경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드물다는 것은 험한 산세가 그 이유였다. 뚜렷한 준비 없이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길이라서 본격적인 등산로 개방 전에는 작정하고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시내와의 거리도 거리거니와 산의 중턱 즈음에 있다는 암자 역시 남은 정도를 가늠하기 곤란할 만큼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르는 이가 보면 필시 속세에 섞여들기 싫어 꽁꽁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타박을 던질 만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무턱대고 덤벼들다간 제값 깎아먹기 일쑤라. 산은 굳이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견딜만하던 숨이 가빠지는 걸 보니 점점 경사가 더 급해지는 모양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근처 마실 나갈 적의 차림처럼 티셔츠에 얇은 가디건만 달랑 걸친 여자는 다리모양이 잘 보이지 않는 긴 치마도 모자라서 바닥이 평평한 단화를 신고 있었다. 불편할 법도 한데 웬걸 그 어떤 불만의 기색이라고는 없이 휘적휘적 잘도 산을 오른다. 공기 중에 오래두어 바싹 굳어버린 소금처럼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는 숨을 쉴 때 빼고는 입술을 연신 굳게 다문다. 앞은 절대 보지 않고 오로지 바닥으로 눈을 둔 채 정신없이 산을 올라간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끝에 닿아 부서지는 흙의 냄새가 텁텁한 오후의 공기에 실려 올라온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맡아지는 그것이 비릿하다고 느낄 즈음 여자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바튼 숨을 고르며 허공을 응시하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한없이 느릿한 여자의 시선이 뒤쪽의 어느 지점에 무사히 도착한다. 가늘게 떨리는 눈가. 차마 안도감이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씁쓸한 감정이 여자의 온 마음을 지배한다. 여자의 속내가 어떤지 알길 없는 아이는 바지런히 제 두 다리를 놀려 여자의 뒤를 쫓는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눈을 둔 채 잠시도 쉬지 않고 빠르게 산을 오른다. 돌멩이도 밟았다가 떨어진 단풍에도 발끝을 댔다가 하며 점차 간격을 좁혀오는 아이를 얼마간 바라보던 여자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저도 모르게 손끝을 그러쥐어가며 조금씩 걸음 폭을 더 넓혀 서두르고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의 다리로 무리를 하던 여자가 순간 휘청거린다. 근처의 나무를 짚으며 멈춰선 여자의 머릿속에, 아마도 오늘 아침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 자신이 이런 마음까지는 먹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고, 밥을 먹으면서도 목으로 넘기는 것이 쌀인지 피고름인지 헷갈릴 만큼 서럽기도 하고,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려있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스며드는 살의(殺意)를 느끼기도 했었지만 여자는 무던히도 그것들을 참고 견뎌왔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이루어낸 합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을 여자는 제 나이 듦을 인정하기 싫은 고집불통 늙은이처럼 단순한 충동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쨌거나 시작해버렸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도 몇 가지 마음들이 심장을 찢을 듯이 우렁차게 제 목소리를 내어 여자를 괴롭힌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 여자가 세게 도리질을 하던 끝에 나무 밑에 주저앉는다.

눈에만 안보였으면 좋겠다던 결심이 이제는 아예 아이의 생을 손수 끊고 싶다는 욕심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내용의 잔인함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여자의 표정은 덤덤하다. 마치 저녁에 뭘 먹을까 정도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본다..

얇은 치맛단을 뚫고 흙바닥의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옴에 여자가 몸을 떤다. 머지않아 뒤를 쫓아온 아이는 어느덧 근처의 개울에 내려가 있었다. 새로 사준 운동화가 젖는 것도 모르고 물에 발을 담가버린 아이가 신기한 듯 우두커니 서서 얕은 개울물 위로 비치는 저를 본다. 그러더니 가만히 허리를 숙여 물속의 자신을 잡으려 애를 쓴다. 손에 장갑을 꼈다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물을 튀겨가며 몇 번이나 손을 휘젓는 아이를 보는데 괜스레 짜증이 인다. 운동화 속으로 물이 들어가 양말까지 흠뻑 젖을게 뻔해서 여자가 인상을 쓴다. 오기 전에 시장에서 사 입힌 털 잠바며 목도리며 모자며 중무장을 시킨 것이 영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됐다. 네가 춥지, 내가 춥냐. 몸을 으슬으슬 떨면서도 여자는 애써 입을 다문다.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여자의 결정이었다. 아이아빠는 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였고, 한순간의 불장난임을 알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여자로서는 아이가 그와 자신을 이어줄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수술하라고 전해 받은 돈으로 아이를 낳았다. 연락을 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잠적해버린 그를 찾는다는 것은 혈혈단신인 여자에게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사랑한 남자마저 자신을 내쳤다는 사실이 처음 한동안은 아예 믿기지를 않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현실을 부정했었다. 이를 악물고 버텨온 것이 햇수로 오년. 이제 갓 스물 다섯이 됐다는 게 생경할 정도로 여자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아이아빠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접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자신의 아이가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여자는 최근에서야 알았고, 게다가 이런 아이를 데리고서는 그를 되찾는다는 게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품었던 희망으로도 완벽히 밝지 않았던 여자의 세계는 한줄기 빛을 잃고서야 소름끼치는 잿빛이 되고 말았다.

초점이 불분명해진 흐리멍덩한 눈으로 여자가 아이를 본다. 여전히 물에 발을 담근 채 나올 생각을 않고 손을 휘젓는 자신의 아이를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서 바라본다. 요 며칠 아이는 틈만 나면 부엌 싱크대 아래에 들어가 있었다. 집기가 별로 없는 탓에 작은 제 몸을 숨기기에 영락없이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종일을 그렇게 싱크대 아래에 있었다. 처음에는 좋게 얘기하다가 몇 번 따끔하게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한사코 들어먹지 않았다. 제가 말을 안 한다는 게 남의 말을 듣는 것 또한 거부하겠다는 거였나.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싱크대 아래에 들어가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여자는 결국 참을성을 잃었다. 꾹꾹 눌러 담아온 분노가 한순간에 터지듯 그대로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사랑했지만 가질 수 없던 그 남자와 꼭 닮은 얼굴을 한 아이하고는 이제 더 이상 단 한시도 함께이고 싶지 않았다. 애초의 목적을 상기하자 여자의 눈동자에 다시금 초점이 잡힌다.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여자가 이윽고 또 산을 오른다.

명색이 길이 아닌 곳은 티가 나는 법이다. 사람의 발길이 오래도록 닿지 않은 양 가지가 무성한 길을 여자는 스스럼없이 나아간다. 아이에게는 제 키보다도 높은 가지들일 것이다. 이것들을 다 헤치고 오려면 꽤나 고생일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자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까 개울이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아이의 등을 떠밀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라서 근처에 누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살려달라는 아이의 비명을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 뒤쫓아 오던 아이가 가지들에 휩싸여 그대로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산중턱에 갇혀서 밤을 맞이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중무장해준 옷들 덕에 한 이틀쯤은 버틸 수도 있겠다. 그러다 운 좋게 구조가 된다 해도 아이는 제 이름조차 말할 줄 모르는 바보라서 제가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렸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눈에만 안보였으면 좋겠다던 결심이 이제는 아예 아이의 생(生)을 손수 끊고 싶다는 욕심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내용의 잔인함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여자의 표정은 덤덤하다. 마치 저녁에 뭘 먹을까 정도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본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을 얼마만큼이나 올라 왔으려나. 조용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뒤쪽의 광경을 보며 여자가 입을 다문다. 흔적을 찾으려 귀를 기울이는데 숨을 고르는 자신의 소리마저 거슬려 맘처럼 쉽지가 않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자신이 지나온 좁다란 길이 있고, 그 길을 아무렇게나 가린 채 제멋대로 자라나있는 가지들이 보인다.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가지 끝에 눈을 찔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여자가 살며시 눈을 가늘게 뜬다. 서서히 아득해지는 귓가. 기름종이를 덧댄 것처럼 뿌옇게 바래지는 빛들. 텁텁하던 오후의 공기가 산속의 적막함에 담겨 한층 더 무겁게 내려앉는다. 여자의 얼굴에 불안과 함께 들뜬 기색이 엿보인다.

아이가 길을 잃었다. 어쩌면 아까 그 개울에서 아직 놀고 있을 수도 있다. 어미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여전히 물속에 손을 휘저으며 발이 젖어가는 채로 아이는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이제 됐다. 더 이상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을 알아채고 찾으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아이를 분실(紛失)했음에 여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허전하게 비워짐을 가벼워짐으로 착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며 입가를 쓱 말아 올리려고 하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설마.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모호한 표정이 된 여자의 눈에 이내 조금씩 소리의 형체가 보인다. 제 키보다도 높은 가지들 사이로 겨우겨우 걸어오는 아이를 발견한 여자의 입술이 탄식하듯 벌어진다.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가려 눈만 겨우 내놓은 상태로 아이가 부지런히 걸어온다. 부딪히는 가지들을 헤치면서 몸을 웅크리고 다시 펴는 아이의 동작이 어쩐지 필사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에 여자는 혼란스러워진다. 무엇에도 의욕을 내비친 적이 없는 아이이다. 어지간해선 우는 법도 없고 사내치고 말수가 적은데다 유달리 얌전해서 또래보다 그저 패기가 없는 탓일 거라고만 여겼던 것이 설마 자폐증의 증상인줄은 몰랐었다. 밥 먹는 것조차 1분 이상 몰입해 지속하지 못하는 아이가 저토록 열심히 길을 만들고 뚫으며 헤쳐 나오는 모습이 여자는 왠지 달갑지 않아진다. 목적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힘없이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서 아이를 본다. 짧은 다리로 부리나케 걸어온 아이가 여자의 앞에 멈춰 선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의 앞쪽에 세 발자국쯤 떨어져 선 채로 아이가 고개를 떨군다. 급하게 쫓아온 사람치고는 얌전한 얼굴을 하고서 가만히 발을 끼적이는 아이를 여자는 말없이 내려다본다. 일부러 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왔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길을 잃기 십상인 곳을 아이는 용케도 잘 따라왔다. 대견하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 채로 아이를 보던 여자의 시선이 문득 아이의 발끝에 닿는다. 높다란 나무 끝으로부터 간간이 새어 들어오는 말간 햇빛이 바닥에 깔린 나뭇잎들 위로 여자의 몸을 까맣게 늘여놓았다. 아이는 습관처럼 발끝을 움직여 여자의 그림자를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의 그 발끝을 따라 그림자가 더욱 또렷하게 제 모양을 갖춰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던 여자가 다시금 시선을 올려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동화 속에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처럼 오는 동안 여기저기에 빵부스러기라도 떨어뜨린 건 아닐까. 불현듯 겁이 나서 여자는 한 손을 들어올린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을 한다. 고생했다며 품에 당겨 안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는 아이의 어깨를 힘주어 밀친다. 아이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앉는다. 더는 따라오지 말라는 자신의 뜻을 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줄까.

아이는 금방 일어나지 않는다. 떠밀려 넘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힘든 것이다. 갈 곳을 잃은 작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허공을 헤맨다. 고개를 떨군데다가 목도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려 표정이 잘 살펴지지 않지만 그런 것은 사실 여자의 안중에 있지 않았다. 여자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쓴다. 들어먹지 않는 상대에게 고함을 치는 것도 별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기에 무언으로 얘기한다. 조금 더 헤매던 아이의 시선이 제가 깔고 앉아버린 여자의 그림자를 쫓는다. 장갑 낀 손으로 주춤주춤 그 그림자를 매만지는 아이를 보다가 여자가 돌아선다. 그제야 아이는 그림자라도 붙잡으려 작은 몸을 일으켜 선다. 총기(聰氣)를 잃은 까만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노련하게 필사적이다.

여자의 오른발이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의 오른발도 앞으로 나아간다. 여자의 왼손이 앞뒤로 흔들린다. 아이의 왼발이 흔들리는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밟는다. 아이가 자신의 그림자를 밟을 때마다 여자는 아파선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 아이는 안 밟은 척을 하며 잠시 자리에 멈춰 선다. 여자의 매서운 눈이 아이를 훑는다. 냉랭한 기운에 아이는 고개를 떨군다. 여기는 숨을 곳이 없다. 부엌 싱크대 아래처럼 제 작은 몸을 숨길 곳이 없음에 아이는 겁에 질려 눈을 깜빡거린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면 여자가 멀리 달아나있다. 아이는 다시금 짧은 다리를 아장아장 열심히도 움직인다. 넘어졌다가도 일어나서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저 앞에 여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여자가 서두른다. 곪고 곪아 터져버린 피고름이 또 한 번 목으로 꿀꺽 삭혀진다. 아픈 가슴에 난 생채기에는 좀처럼 새살이 돋질 않는다. 절망뿐인 삶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잔혹한 심정이 수십, 수백 번씩이나 되풀이되고 있었다. 피고름의 잔재인 서러움들이 넘기려 해도 잘 넘어가지 않음에 여자가 인상을 쓴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서러움은 다시 자책감이 되어 여자의 목을 슬금슬금 죄여온다. 버려짐을 당한 자신이 피붙이를 손수 버리겠다며 이 짓을 하고 있다. 허공에 떠오르는 아이를 사정없이 노려본다. 책임전가를 한다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여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자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아이가 저리된 게 아이의 탓은 아니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가득 고여 글썽거리던 눈물이 툭 여자의 볼 위로 떨어져 내린다. 끝내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만 하자. 그것이 최선이다.

-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면, 적어도 미안해할 줄은 알아야하지 않니?

- 내가 미안해해야 하나요?

- 사과하라는 말이 아냐. 단지, 끝낼 때가 언젠지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 사랑하니까 이만 하자는 거야. 사랑할 때. 이쯤 해두자. 부탁이다.

어금니를 악물었음에도 미세하게 한숨이 뱉어진다. 가지고 놀아진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여자에게는 오롯이 사랑이었다. 그는 아니었나보다. 그는 그저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었던가. 오갈 데 없는 가련한 여자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호의를 펼쳤을 뿐, 그 이상의 진전까지는 애초에 바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미처 생각이 다 자라지 못한 철부지였기에, 그때의 여자에게는 잠시라도 기댈 수 있게 내어주는 어깨가 필요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뭐라도 잡고 싶었던지 모른다.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자 여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붙잡는 것도, 캐물어 따지는 것도, 적당히 둘러댄 그의 말들로 인해 모두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믿음이란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모르면 가르치면 된다지만 수백, 수천 번도 더 가르친 수저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 아이를 더는 믿어줄 수 없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면 말문이 터져 엄마 소리를 제대로 할 수도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 따위 하고 싶지 않다. 또래와는 다른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이 결코 의도한 게 아님을 알면서도, 아이의 천성이 나쁜 탓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여자는 걸음이 느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여태껏 그래왔다. 남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는 자신의 현실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거였다. 바삐 다리를 놀리던 여자가 점차 가빠지는 숨을 인식해 조금씩 속도를 줄인다. 그런데 아이가 정상이었어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묻고 나니 갑자기, 자신이 한없이 졸렬하고 치사한 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여자는 초라해진다. 병원에서 들었던 아이의 심장소리. 단 한순간도 기쁘지 않았던가.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나는 단 한번이라도, 했었던가. 제 몸에서 나온 피붙이라며 어차피 끌어안아야할 존재라면서 힘들어도 살아보자. 했었나.

“하아, 하아…”

울음처럼 숨이 차오른다. 잠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틈을 타서 걸음을 멈춘 여자가 근처의 나무에 손을 대고 숨을 고른다. 내뱉고 들이쉬는 모든 숨들이 힘겹다. 산다는 것 자체가 여자에게는 이토록 힘이 들었다. 먹먹하게 아려오는 가슴을 억누르며 숨을 고른다. 이내 들려오는 뒤쪽의 작은 인기척에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자그마한 몸뚱어리를 본다. 뒤뚱거리면서도 매우 열심히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본다.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라있는 아이의 얼굴이 곱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못해도 무척이나 노력했을 아이의 심정이 왠지 모르게 이해되어 여자는 입술을 깨문다. 너에게 나는 무어냐.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기만 했다고 해서 내가 과연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걸까. 자격이 없기 때문에 네가 날 엄마라고 안 부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렇지 않니?

“잘 들어. 여기서 움직이면 안돼”

“…”

“나 따라오지 말고 여기 꼼짝 말고 있으란 말이야. 알아들어?”

“…”

“대답해. 알았어, 몰랐어. 알았지? 어?”

“…”

당연히 나오지 않을 대답을 갈구하며 여자는 성을 낸다.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순순히 제 목소리를 들려줄 의지 따위는 아이에게 없어 보인다. 됐다. 더는 힘 빼지 않으마. 아이의 어깨에 얹었던 두 손을 거둔 여자가 마지막으로 아이를 길게 쳐다본다. 또 따라오면 어쩐다. 못 알아들은 것처럼 또 필사적으로 제 뒤를 따르면 어쩌지. 걱정은 일단 나중 일이라는 생각으로 여자가 곧 돌아선다. 단호하게 두어 걸음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살짝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서 뒤를 보아도 아이는 제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다행이다. 알아들었나 보다. 생각이 그쯤 미친 여자가 눈을 번뜩이며 바로 선다. 그리고는 곧, 올라왔던 길을 다시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이가 계속 멈춰있는지 중간마다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혹여나 마음이 약해질까 봐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다 여자는 어느덧 서서히 뛰었다. 발걸음이 아까에 비해 현저히 가벼워져 있었다.

한참동안을 정신없이 달렸다. 올라가는 것에 비해 내려가는 길은 턱없이 수월했다. 경사가 높고 낮음이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마음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뭔가를 해내었다는 기분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초저녁의 노을이 나무 틈새로 붉은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공기는 전에 비해 훨씬 더 텁텁하고 무거웠지만 싸늘함을 느낄 새도 없게 여자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동안 억눌렸던 바위덩어리를 제쳐내기라도 한 듯 다리가 깃털처럼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다리가 아예 실종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어디가 길인지 아닌지도 구분 안 될 애매한 곳까지 앞만 보고 내달렸다. 그래도 아이를 제 손으로 직접 죽이지 않고 그저 버렸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을 삼았는지도 모른다. 막연히 아이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이면 자신이 버티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참 힘든 과정들. 아이는 이제야말로 비로소 완벽히 제 손을 떠났다.

그러다 아까, 아이를 잃었노라 잠시 착각했던 길 앞에 도착해 여자가 멈춰 선다. 무성하게 드리워져 있는 가지들은 살짝 어둑한 빛으로 보자니 흡사 악마가 뻗은 손가락처럼 몹시도 기괴하게 보였다. 수백 개의 손가락을 벌리고서 자신을 향해 돋아난 가지들을 보던 여자가 무릎을 짚고 서서 숨을 고른다. 허리를 숙여 아래를 보던 여자의 눈에 아까에 비해 조금은 더 기다랗게 늘어난 자신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이가 쫓아왔을 그림자.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이 끝을 밟으면 비로소 안도하듯 보이던 아이. 낮의 것보다 더 자라나있는 그림자를 보며 여자는 생각한다. 이번에는 아이가 한 다섯 발자국쯤 떨어져야 그림자 끝을 밟을 수 있을 거라고. 발끝을 대고 장갑 낀 손으로 매만지며 아이는 한없이 평온한 얼굴을 했었다. 직접 손을 대고 만질 수 없다는 걸 그 어린 녀석은 스스로 깨우쳐버린 거였나. 여자의 얼굴이 은연중 멍해진다. 가슴속에서 계속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부재(不在)를 실감하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여자는 당황하고 있었다.

- 어머, 귀여워라. 아이 이름이 뭐예요?

- 없어요.

- 네? 무슨…

- 아직 못 지었어요. 무슨 이름이 좋을지 모르겠어서.

- 그래도 너무 했다. 몇 살인데요, 네 살? 다섯 살? 빨리 지어줘야죠, 서운하겠네.

서운…했을까. 여자가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보잘 것 없는 제 신발 끝을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몇 번 눈을 깜빡거린다. 미숙한 자신이 아이를 미숙하게 만들었다. 응당 있어야 할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서 알아서 스스로 뭔가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기만 했다. 아이가 서운해 할 거라는 말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정말 어떤 이름이 좋을지 진심으로 몰랐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아무 이름이나 지어주고 싶지는 않았고, 더군다나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거였다. 어떻게 너를 열 달이나 품었을까. 어떻게 너를, 낳을 결심을 했었을까. 그 때의 마음이란 것이 지금의 나에게 과연 남아있기는 할까. 나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가. 산다고 다 사람이 아님을. 나는, 사람이 맞는 건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으로 내가 삶이란 걸 영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른 여자가 서둘러 몸을 돌린다. 왔던 길을 다시 빠른 속도로 되돌아 뛰어가며 여자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두 눈에 물기가 가득 들어찬다. 아가, 아가…. 부를 이름이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안타까운 줄은 미처 몰랐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직접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를 제 자식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늘 외로웠다. 삶에 지치고 세상에 치일 때면 너무나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가족이 갖고 싶었고, 가족이 생겼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사랑해주고 싶었고, 그렇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여자는 모조리 저보다 약한 아이에게 돌려버렸다. 자신의 죄가 어느 정도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어 여자는 입술을 떨었다. 아이가 울까. 지금이건 나중에건 그 언제라도 엄마, 엄마 자신을 찾으면서 서럽게 목 놓아 울어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른 여자가 서둘러 몸을 돌린다. 왔던 길을 다시 빠른 속도로 되돌아 뛰어가며 여자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두 눈에 물기가 가득 들어찬다. 아가, 아가…. 부를 이름이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안타까운 줄은 미처 몰랐다. 여자가 서둘러 두 다리에 힘을 싣는다.

“하아…, 하아…,”

도중에 길을 잃어 잠시 헤매었지만 여자는 무사히 아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이는, 너무나 고맙게도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다. 그러나 그 그대로라는 것이, 편하게 앉은 것도 아니고 달리 자세를 바꾼 것도 아닌 정말 아주 아까의 그대로여서 여자를 더 슬프게 했다. 진심으로 말하면 듣는 아이다. 잘 어르고 타이르는 것은 한 두 번일 뿐 거의 대다수를 거칠게 꾸짖고 언성을 높여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것밖에 자신은 한 게 없었다. 낮은 허공을 보고 멍하니 서 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든다. 여자는 아이가 시선을 맞추기 쉽도록 제 몸을 아이의 앞쪽에 서서히 낮춘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여자를 응시한다.

“추워?”

“…”

“배고파?”

“…”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만의 대화인데도 웬걸 화가 나지 않는다. 울컥하던 마음조차 생겨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더 대화를 시도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무한한 인내심이 생겨난다. 이상한 일이다. 정말 이상도 하지. 지긋지긋하던 아이의 얼굴이 희한하게 반가워서 가슴이 자꾸 욱신거린다. 한참이나 아이를 쳐다만 보던 여자가 애써 입가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머금는다.

“많이 기다렸어?”

“…”

“그만 집으로 갈래?”

“…”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여자는 보았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작은 일렁임이 이는 것을.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절실하고 절박한 움직임이었음을 여자는 느낄 수 있었다. 긍정의 표시다. 이만 집으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가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 가자. 집으로. 여자가 몸을 일으키며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이는, 잠시 잡아도 되는 것인지 겁을 내며 여자의 손을 쳐다보기만 한다. 쉽게 잡아버리면 안 되는 것인 양 몹시도 두려워하면서 눈을 쉴 새 없이 감았다 뜬다. 아이의 모습에서 여자는 새삼 또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다정하게 이끌어주지도, 친근하게 다가가 먼저 살갑게 잡아주지도 않았었던 자신이 너무나 잘못이었음을 뉘우친다. 미안하다. 혀끝까지 튀어나온 말을 겨우 삼키며 아이의 손을 찾아 잡는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시작한다.

더욱 짙어진 노을빛의 햇살이 무성한 나무 틈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자박자박 발끝에 밟히는 잎사귀들의 잔재를 고스란히 느끼며 여자는 아이와 발을 맞춘다. 가벼운 산책쯤으로 아이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올라올 때에도 진작 이렇게 발을 맞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아이의 장갑은 축축하다. 물에 젖어 채 마르지 못한 것을 엄마인 자신이 끼워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벗지도 않고 이러고 있다. 손이 시릴까 싶어 벗겨내려 했더니 아이가 손사래를 친다. 감기에 걸린다며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한사코 사양을 한다. 고집이 상당한 아이다. 직접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러한 건지도 모른다. 할 수 없단 듯 여자가 손을 놓자 아이는 그대로 걸음을 멈춘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불안에 떠는 아이를 내려다보던 여자가 조심조심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는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업혀.”

“…”

“컴컴해지기 전에 내려가야지. 얼른.”

“…”

아무래도 업히라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번도 이래보지 않았다는 듯 구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여자는 자신의 등을 손으로 툭툭 건드린다. 이리와. 그래도 아이는 잠시 더 멀리 떨어진 채로 머뭇거리며 안절부절 못한다. 기다림 끝에 여자가 손을 뻗어 아이를 데려와 제 등에 업는다. 그리고는 한 순간에 기운을 실어 제 다리를 곧추 펴고 선다. 놀란 듯 보이던 아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등에 업혀 잠자코 있는다. 숨소리마저 한껏 조용해졌다. 눈치를 보는 건지 움츠러든 아이를 느끼며 여자가 걷기 시작한다. 여자의 다리가 차례로 내딛어질 때마다 그 위에 실린 아이의 몸이 작게 같이 흔들린다. 움직임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 여자의 귓가에 아이의 약한 숨소리가 감겨든다.

언젠가 후회할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또 싱크대 아래에 숨어버리는 아이를 보고 열이 뻗칠 수도 있다. 지치도록 가르친 수저질을 다시 처음부터 알려줘야 함이 지겨울 수도 있고,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도 그깟 엄마 소리를 끝내 못 한다며 아이에게 윽박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갑자기 변할 수는 없다. 변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며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도 아마, 이 순간을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두고두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순간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낼 것이다. 언젠간 살아있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기특하다 여길 날이 올 거라 믿고 싶다. 그래도 살았다고, 살아 있다고,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이렇게 함께 있다고. 아이의 이름은, 대체 무엇이 좋을까.

 

 

 


[당선소감]“여백 채워나가며 느끼는 외로움이라면 얼마든지”
 

돌아보면 참, 조급한 시간들이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함에 드는 자괴감이란 안 그래도 외로운 마음을 더욱 헛헛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글을 썼다. 

고백하건대 나의 지난 시간들이 오롯이 글로만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글이란 것을 쓰고 싶어 했고 쓰려고 했고, 또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여백을 채워나가며 느끼는 외로움이라면 얼마든지 좋았다. 그렇게 춥고 아파하며 지쳐가다가도 내뱉은 글자들로 갖춰지는 모양새에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볼 때마다 반했다. 

기대감마저 사치인 고된 짝사랑을 하면서도 글을 쓸 때만큼은 힘든 현실로부터 버티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은 기특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섭지만 설렌다. 겁이 참 많이 나면서도 또 얼마나 더 내가 내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조급함을 버리니 절실함은 외려 강해졌다. 이 절실함이 앞으로의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잘 좀 잡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내 삶의 이유, 사랑하는 가족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리게 되어 기쁘다. 내가 어떤 길을 걷든지 걱정과 우려를 감추고 그저 믿음으로 지켜봐준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좋은 소식에 같이 좋아해준 친구들, 지인 분들 진심으로 고맙다.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대단하게 봐주는 그대들 덕분에 내가 참 많이 행복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반드시 대단해지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가 찾은 이 절실함을 벗 삼아서. 미숙한 글임에도 어쩌면 이 미숙함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살펴봐주신 심사위원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한다. 진심으로 글을 쓰겠다. 힘겹게 이제 막 뗀 걸음이 멈춰지는 일 없도록 오래오래 노력하겠다.

김윤정 약력
- 1982년 강원도 원주 출생
- 춘천여자고등학교 졸업
-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연극학과 졸업(문예창작학과 복수전공)
- 현재 드라마 공부 중


[심사평]“단순한 맥락 속 감정의 절제, 문학적 성과 이끌어내”

소설의 양상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재래식의 이야기는 새로운 형식 앞에 빛을 잃고 있었다. 따라서 소설을 배운 바 없이 혼자서 들어앉아 썼다는 투의 무용담(武勇談)은 무용(無用)의 영역이 된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의 문법적 치열성은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쓰겠다는 사람은 많아진다는 농담조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찰스 램식의 분류를 차용하면 앞으로의 인류는 작가와 독자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일까. 실제로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괴리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전문화’과정에서 응모 작품들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 십상이어서 소설을 더욱 오리무중으로 끌고 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줄줄이 이야기를 나열하는 작품들은 무엇을 쓰려 했는지 스스로 모르는 채 흐트러지고 있었다. 

<안개>는 시인 기형도의 죽음에 이르는 짧은 삶을 추적한 작품인데 퍽 친근하게 다가오는 만큼 낯익은 문법이었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보다 더 절실하지 않고서야 새롭게 내세운 의도가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는 소설쓰는 주인공을 내세웠으나 비교적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설득력에서 ‘녹이기’에 좀더 공부가 필요하리라고 읽혔다. <콜라주왕국>은 닥터 장과 한느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제시한 소설인데, 어느 하나의 서사 혹은 단면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 문제점을 날카롭게 잡아 천착하는 방법론이 아쉬웠다. <그림자밟기>는 미혼모의 아이 사랑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아이를 버렸다가 다시 찾는 과정을 찬찬하게 밟고 있는 단순한 맥락 속에 흐르는 감정의 절제가 문학적 성과이기도 했다. 행을 지나치게 많이 뗀 유행이 눈에 거슬렸으나 ‘하나 쓰기’의 현재축 구성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윤후명 약력
-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 2007년 제10회 김동리문학상
- (현)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