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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는 장고다

홍기운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발치에 흙탕물이 튀었다.

"으악, 더러워. 이게 뭐야!"

내 입에서 짜증 섞인 비명이 튀어나왔다.

", 그만해. 저 혼자 깨끗한 척은?"

옆에 있는 몸거울이 핀잔을 주었다. 몸거울이라고 해 봐야 위쪽은 반이나 깨지고 없는,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다.

"깨끗한 척이라고? 난 너희랑은 달라. 할머니가 날 얼마나 예뻐했는지 알아?"

"너만 그런 거 아니거든. 우리도 옛날에는 다 잘나갔다고!"

그나마 몸거울은 내 투정에 대꾸라도 해 준다. 하지만 팔걸이가 다 찢어진 소파는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내가 처음 마당에 나왔을 때도, 바로 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장고. 한 달 전에 마당 처마 밑으로 쫓겨난 냉장고다. 이십 년 전, 이 집에 도착해 상자 옷을 벗고, 하얗고 매끈한 몸을 당당히 드러냈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 다른 녀석들은 눈이 부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자주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수리 기사 아저씨가 왔다 가도 그때뿐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새 냉장고를 샀고, 나는 깨진 몸거울, 찢어진 소파처럼 마당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알뜰한 할머니 덕분에 곧바로 쓰레기가 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난 갑갑한 집 안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여기가 마음에 들어. 햇볕도 쬐고, 바람도 쐬고."

내가 몸거울 옆에 자리를 잡던 날, 녀석은 이런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때 나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나는 너랑 달라!"

아무렴, 다르고말고. 나에게는 '장고'라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

나에게 이름을 지어 준 것은 할머니의 손자 지호다. 총각 귀신이 되는 줄 알았던 할머니의 아들이 늦장가를 가서 얻은 아들, 지호. 어느 날, 고 녀석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 '당고, 당고' 했다. 그때 옆에서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는 이랬다.

"아이고, 우리 지호 잘하네. 장고, 장고. 그렇지. 냉장고니까 장고지. 어유, 기특해라."

'도대체 뭐가 기특하다는 거야? 남의 이름이나 똑 잘라먹는 바보 같은 녀석!'

어쨌든 그때부터 할머니는 나를 '장고'라고 불렀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 때문에 이름이 생기다니,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다.

소나기가 그치자 뜨거운 여름 볕이 마당에 쏟아진다. 발치에 튀었던 흙탕물이 그대로 말라붙었다.

"아이고, 덥다, 더워. 시원한 물 한 대접 줘 봐."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서며 젖은 우비를 몸거울 위에 아무렇게나 걸쳤다.

", 차가워. 아이, . 이러면 앞이 안 보이잖아."

옷걸이가 돼 버린 몸거울이 소리쳤다.

'저러고도 여기가 좋다고? , 잘난 척하는 수다쟁이.'

할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대접에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부엌 쪽을 노려보자, 새 냉장고의 옆구리가 보였다.

'나쁜 녀석! 멀쩡하게 내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꼴 좀 보라지.'

새로 온 녀석은 냉동실이 왼쪽, 냉장실이 오른쪽에 있다. 키도 나보다 한 뼘은 큰 것이 영 기분 나쁘다. 새 냉장고를 들이던 날, 할머니는 내 몸에 있던 물건을 하나씩 꺼내 녀석의 몸으로 옮겼다. 그때마다 몸속의 기운도 조금씩 빠져나갔다.

"나도 아직 찬바람 잘 나와요. 얼음도 꽁꽁 얼릴 수 있다고요!"

마지막으로 버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몸속은 텅 비고, 나는 마당에 서 있었다.

짐꾼 중에 한 사람이 나를 차에 실으려고 하자, 할머니가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말했다.

"아이고, 그거 버리는 거 아녜요. 거기 처마 밑에 놔 주세요. 내 다 쓸 데가 있으니까. 고생들 하셨어요."

'쓸 데가 있다고? 그럼 그렇지. 할머니가 날 이렇게 버릴 리가 없어.'

그날 오후, 몸속으로 반찬 그릇 대신 신발이 하나씩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마루 밑에 멋대로 굴러다니던 흙 묻은 고무신, 끈 떨어진 슬리퍼, 찢어진 고무장화 따위를 되는 대로 몸속에 욱여넣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거 문짝도 떼어 버리지 뭐."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냉장실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 이게 뭐야! 난 신발장이 아니라고요! , 싫어, 싫어! 누가 좀 도와줘요."

소파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으하하하, 저 녀석 꼴 좀 봐. 이제 보니 신발장으로 딱이네. 하하하하."

그날 저녁,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새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으로 맛있게 저녁밥을 먹었다.

맴맴 찌르르르, 맴맴 찌르르르. 매미들이 죽을힘을 다해 합창을 한다. 그 소리에 세상의 다른 소리는 모두 묻혀 버렸다. 그때 합창을 방해하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할머니이~~."

지호가 엄마, 아빠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 저 말썽쟁이가 웬일이지?"

몸거울이 놀라서 소리쳤다. 지호의 발차기에 박살이 난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야. 명절도 아닌데 갑자기 왜 온 거야?"

소파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마당의 분위기를 살폈다.

"어이구, 우리 귀한 손자 왔는가. 어서 오게, 어서 와."

할머니와 지호는 마당 한가운데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요란스러운 인사가 끝나고 지호네 다섯 식구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당 물건들은 지호 때문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저 말썽쟁이는 정말 귀찮아. 여기 오기만 하면 내 얼굴에 끈적끈적한 스티커를 잔뜩 붙여 놓았어. 지금은 그 얼굴도 깨지고 없지만……."

몸거울이 말했다.

"그건 약과야. 내 위에 올라가서 '방방이다' 하고 소리를 지를 땐 정말 악마 같다니까. 그러니 내 몸이 남아나겠냐고. 내가 밖으로 쫓겨난 게 다 저 녀석 때문이야!"

소파는 정말 악마를 본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나도 지호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요구르트를 꺼내겠다고 손잡이에 매달려 버둥거린 일, 할머니가 숨겨 놓은 초콜릿을 꺼내려다가 김칫국을 쏟은 일, 크레파스로 아랫도리에 잔뜩 낙서를 해 놓은 일, 모두 안 좋은 기억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끈적거리고 냄새나는 일들마저도 그립다.

웬일인지 지호네 엄마, 아빠는 저녁도 먹지 않고 시골집을 떠났다. , 추석 같은 명절이면 지호는 꼭 할머니 집에 왔다. 하지만 길어야 이틀, 어떨 때는 낮에 왔다가 밤에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호만 할머니 집에 남겨졌다. 지호는 시무룩한 얼굴로 할머니 치마폭에서 몸을 배배 꼬았다.

"우리 지호, 할미가 뭐 해 줄까? 옥수수 삶아 줄까? 참외 깎아 먹을까?"

할머니가 엉덩이를 토닥이자 금세 신이 나서는, 마치 제 집인 양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혼자 하는 가댁질에 아주 신이 났다.

"정신없어 죽겠네. 저 녀석은 여기가 무슨 놀이터라도 되는 줄 아나?"

늘 불만투성이인 소파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지호가 마치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마당으로 내려와 소파에 몸을 날렸다. ! 소파는 짧은 비명을 내뱉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소파의 아픔을 알 리 없는 지호가 이번에는 아예 신발을 신은 채로 소파에 올라가 방방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뛰던 녀석의 눈이 내 쪽을 향했다.

'뭐야? 날 알아보는 거야? 짜식, 그래도 이 장고님을 기억은 하는구나?'

하지만 지호가 관심을 보인 건 내가 아니었다. 녀석은 어디서 막대기를 하나 주워 오더니 냉장실에 처박혀 있던 신발을 마당으로 하나씩 내던졌다.

"아이고, 이 녀석. 지지야, 지지. 이리 와."

할머니는 지호를 저만치 떼어 놓고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떨어 주었다. 아주 잠깐, 할머니가 고마웠다.

"할머니, 장고가 왜 밖에 있어요?"

"저건 이제 고장이 나서 못 써요. 저기 부엌에 새 냉장고 있지? 내 정신 좀 봐. 지호 주려고 사다 놓은 아이스크림 있다. , 아이스크림 먹자."

할머니는 마당에 널브러진 신발을 내 몸속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는 지호를 데리고 갔다. 지호가 막대기로 쿡쿡 쑤셔서인지, 할머니의 말이 콕콕 찔러서인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이튿날 지호는 늘어지게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다 늦게 저 혼자 아침 밥상을 받아 놓고 벙어리가 됐는지 말이 없었다.

"우리 손자, 오늘 뭐 하고 놀까? 할머니하고 장 구경 하러 갈까?"

할머니가 녀석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말이 없자 할아버지가 나섰다.

"지호 얼른 밥 먹고 할아버지랑 경운기 타고 저어기 가자."

할아버지는 보란 듯이 대문 안쪽에 세워 둔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쉬익쉬익, 털털털털털, 크릉. 요란한 소리 끝에 경운기에서 뽀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가 마법을 일으킨 것인지 지호가 후다닥 밥을 먹고 경운기에 올라탔다.

할아버지의 경운기는 그날 저녁이 다 되어 마당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무얼 하다 왔는지 땀과 땟국이 범벅이 된 지호가 경운기에서 내렸다. 녀석은 손에 든 비닐봉지를 뱅뱅 돌리면서 마당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러더니 내 몸에 바짝 다가서서 냉동실 문을 열어젖혔다.

"! 뭐야? 너 지금 뭐하려고 그러는 거야!"

녀석은 까치발을 하고 서서 팔을 쭉 뻗더니 냉동실 안에 있던 얼음 틀을 꺼냈다. 그러고는 비닐봉지에서 꺼낸 것들을 얼음 틀에 하나씩 넣었다. 작은 돌멩이 몇 개, 깨진 유리구슬 몇 개, 그리고 부러진 찻숟가락 같은 것들이었다.

"이게 다 뭐야! 이제 내 몸을 아예 쓰레기통으로 만들 참이야?"

처마 밑으로 쫓겨나 냄새나는 신발이나 잔뜩 끌어안고 사는 것도 서러운데, 쓰레기통이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발치에 잔뜩 힘을 주었다. 몸을 움직여 녀석을 떼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파와 책꽂이가 어느새 한 패가 되어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여기다 숨겨 놓으면 아무도 모르겠지? 큭큭큭."

지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더니 얼음 틀을 제자리에 넣어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지호는 날마다 무언가를 주워 왔다. 깨진 그릇 조각, 가장자리가 톱니바퀴처럼 생긴 납작한 병뚜껑, 흙바닥에 단단히 박혀 있던 장난감 바퀴, 플라스틱 반지 같은 것들이었다. 하루는 딱지 한 묶음을 깊숙이 던져 넣으며 말했다.

"이건 오늘 내가 딴 거야. 그러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녀석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하하하. ! 이런 건 굳이 여기에 숨기지 않아도 돼. 이까짓 걸 누가 가져간다고."

하지만 녀석이 아끼는 무언가가 하나씩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소파와 몸거울은 은근히 부러운 눈길로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녀석은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날마다 무언가를 주워 왔다. 할머니를 따라 고추밭에 간 날에는 시든 네 잎 클로버를 들고 왔다. 어떤 날은 제법 쓸 만한 장난감 굴착기를 주워 와 하루 종일 마당에서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날 주워 온 것은 뭐든 내 몸속에 숨겼다.

지호가 냉동실 문을 자주 여닫을수록 새 냉장고를 곁눈질로 째려보는 일은 줄어들었다. 이젠 부엌에 있는 새 냉장고가 전혀 부럽지 않다. 하기는 낡은 신발에 지저분한 잡동사니만 가득한 이런 꼴로는 새 냉장고를 시샘할 수도 없었다.

어느덧 지호가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하이고, 어린 것이 엄마, 아빠도 없이 어떻게 지내나 싶더니만 일주일이 금세 갔네."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며 부엌과 창고, 장독대를 바쁘게 오갔다. 그때마다 보따리 하나씩이 처마 밑에 놓였다.

보따리가 서너 개쯤 되었을 때, 지호가 바지 속에 손을 넣은 채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내 앞에 서서 냉동실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감춰 뒀던 제 물건들을 챙기려고 그러는가 보았다.

"가져가라, 가져가. 이까짓 쓰레기, 하나도 탐 안 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론 오래도록 그것을 간직하고 싶었다. 무언가가 몸 밖으로 빠져나갈 때의 그 기분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호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 그냥 가는 거야? 이 안에 있는 것 다 가지고 가야지! 여기다 두고 가면 어떡해?"

녀석이 날 정말 쓰레기통쯤으로 여긴 건가 싶어 잔뜩 부아가 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파가 끼어들었다.

"크크크. 꼴좋다. 반은 신발장, 반은 쓰레기통이네. 차라리 쓰레기장으로 가는 게 낫겠다."

몸거울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 녀석 집에 가면 너 같은 건 다 잊어버릴 거야. 애들은 원래 싫증을 잘 내거든."

그때 지호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마루 밑에 뒹굴던 벽돌을 가져다 딛고 올라서서 냉동실에 그것을 붙였다. 그러고는 거기에 적힌 것을 또박또박 읽었다.

". . . . . . ."

'보물 상자라고? 내가?'

녀석이 마치 나에게 속삭이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다음에 올 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 알았지?"

그러고는 부엌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 마당에 있는 장고 안 버릴 거지? 거기 내가 보물 숨겨 놨거든. 그러니까 저얼대 버리면 안 돼요. 알았지?"

순간 내 가슴에 뿌듯한 무언가가 가득 차올랐다. 반쪽짜리 몸거울에 모처럼 미소 띤 내 얼굴이 비쳤다.

 

 

<당선소감>


동화책에 아이들 표정 그리고 싶어

 

지난해 겨울, 강원도 홍천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꽤 이름난 산장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데 담도 없는 어느 집 마당에 냉장고가 속을 훤히 드러내고 서 있었습니다. 안에는 낡은 신발들이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었고요.

'강력 탈취'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채소 칸까지 신발이 꽉 들어찬 모습이 하도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그 여행이, 그때 본 낡은 냉장고가 저에게 이런 순간을 선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새해를 의미 있게 시작할 수 있도록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전남일보 관계자 여러분과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동화를 쓰는 일이 힘들지만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 정해왕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어린 격려와 따뜻한 위로로 늘 힘과 용기를 준 여러 글벗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어떤 일이든 믿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날마다 정성스럽게 길고양이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 따뜻한 남편, 지금도 키보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쿨쿨 자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 깜보, 사랑합니다.

끝으로 우리 동네에 있는 동백 도서관아, 정말 고맙다.

어린이 자료실에 빼곡히 꽂혀 있는 그림책, 동화책들아 고마워. 나에게는 꽉 끼는 작고 예쁜 의자들아, 커다란 엉덩이를 참아 주어 고마워.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책 속에 빠져들던 아이들아, 고맙다. 언젠가는 이 아줌마의 책이 너희들 얼굴에 그런 표정을 그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

 

1975년 안성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대한민국이 좋다' 출간

 

 

<심사평>

단정한 문장으로 깊이있는 울림

 

2012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응모작들은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청소년에서 장년에 이르는 폭넓은 동화지망생들의 분포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응모편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소재의 동화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어린이들의 이성에 대한 관심, 정신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응모자의 연령이 부쩍 젊어져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의 현실에 눈높이를 적극적으로 맞춰 나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겠다. 응모작의 양적팽창에 비해 두드러진 질적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종까지 손에 남은 네 편의 작품 가운데 <지니 놀이>는 좋아하는 '마리'에게 자신을 숨기고 멋진 친구 '시후'를 자신인 척 대신 내보냈다가 실패하는 '곽두기'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호흡을 조금만 더 진정시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를 때>는 동명의 '인기짱''강찬오'에게 주눅 들었다가 점차 자신감을 찾아가는 '박찬오' 이야기다. 박찬오가 느끼는 열패감에 비해 좋아하는 '소희'와 별 문제없이 연결되는 등 갈등의 원인과 그 해결이 쉬워서 긴장감을 잃었다.

<할아버지의 숙제>는 오래 의절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이다움'의 이야기인데 역시 문제 해결이 너무 쉬워 그동안 쌓였을 감정의 벽, 이야기에 독자를 몰입시키는 아슬아슬함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장고는 장고다>는 기존 신춘문예 동화와 흐름이 다른 동화다. 버려진 냉장고인 '장고'의 입을 통해 스러지는 것들에 보내는 따뜻한 눈길이 느껴졌다.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잔잔하게 작가만의 세상 바라보기를 풀어내었고 단정한 문장으로 한 번 뿐인 삶과 지속되는 시간에 대해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하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그 걸음 그대로 오래오래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심사위원 : 김남중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