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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수놓다 / 김정수


사다리 걸쳐놓듯 계단 쌓은 다랭이논
시금치 초록 한 뼘 유채꽃도 덧대놓고
종다리 박음질 소리 자투리 천 깁고 있다

시침질 선을 따라 꽃바늘로 감친 삶을
한 땀 한 땀 길을 내며 구릉 위에 서고 보면
지난날 눈물겨움도 무지개로 떠있다

개다리 밥상위에 옹기종기 놓인 그릇
아이들 크는 소리 가만가만 듣고 싶어
스르르 색동 한자락 꽃무늬로 앉는다



[당선소감] 늦은 나이에 틔운 글싹, 정성 다해 키워가겠다



새 세상을 열어 놓은 듯 울산에도 첫눈이 왔다. 순백의 도화지 위에 요란스레 쏟아낸 아침 물까치 떼의 울음은 간밤에 꾼 꿈을 미리 해몽이라도 한 것일까? 거짓말처럼 걸려온 당선통보 전화. 머릿속에 저장된 모든 파일이 하얗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생을 아우를 수 있는 글쓰기는, 육십갑자에서 생(生)이 다시 시작하듯 그만큼 삶의 경험과 내면의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는 아직 삐뚤빼뚤하다. 작물에도 손이 많이 가야 윤기가 나듯 주어진 시간을 아껴가며 한 포기 한 포기 글 싹을 정성을 다해 키워 가겠다.

몇 해 전, 한참을 망설이다 시조의 문을 두드리게 된 울산문인협회 시민문예대학에서 박영식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내 생에 큰 행운이었다. 한국의 대표 문화 브랜드인 시조가 전통의 맥을 이어 가려면, 무엇보다 현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과 시조만이 가지는 절제와 가락의 울림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씀에 늘 노심초사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밤늦도록 글 짐 이고 끙끙댈 때 따뜻한 보리차 한잔 슬그머니 놓고 가던 내 시의 첫 독자이며 매운 소리로 거침없이 비평하던 남편께 영광을 바친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은근히 엄마를 자랑하는 늦둥이 아들아, 고맙다. 자식 못잖은 사위와 딸, 글 쓰는 할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손자 손녀, 지칠 때마다 등 떠밀어 주신 시누님 시동생님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새파란 하늘 한 장 가슴에 들앉게 해주신 심사위원님과 국제신문사에 갑오년 새해 아침 무릎 꿇어 큰절을 올립니다. 복 받으소서!


▶약력=1952년 경북 영일 출생, 현 울산 거주. 제28회 부산전국시조백일장 장원,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 추모 제14회 전국시조현상공모 장원 등



[심사평] 신인다운 패기에 언어 함축·절제미까지 갖춘 작품


신춘문예는 문학의 새봄을 여는 뱃고동 소리 같은 것이어야 한다. 소재나 주제나 표현이나 내면에 잠긴 사유 세계가 참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춘문예에 값하는 작품 아니겠는가. 심사위원들은 이런 기본의 틀에서 작품들을 선별하였다.

응모한 많은 작품 중에는 기성인의 그것을 흉내 낸 작품들이 많았지만, 이런 풍을 먼저 선별해내고 앞서 말한 선자들의 기본 틀에 조명하다 보니 1차로 다섯 편이 선정됐다. '달빛 길어올리기' '노랑부리저어새의 칠십 리' '아폴론의 화살' '청동기와, 잠을 깨다' '무지개를 수놓다'가 그것이다.

어느 것이나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작품의 완결성 또는 참신성을 더 따져서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토론한 결과, 최종 두 편 '청동기와, 잠을 깨다'와 '무지개를 수놓다'가 끝까지 선자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이 두 편을 저울질할 때 신인다운 패기는 같으나 역시 언어의 함축미와 절제 면에서 '무지개를 수놓다'를 당선작으로 뽑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당선자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당부하고 싶은 바는, 시어를 보다 참신하게 갈고 닦는 일에 노력을 더 해 달라는 것이다. 

심사위원 임종찬 전일희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