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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풍경 / 김석인


억새의 목울대로 울고 싶은 그런 날은

그리움 목에 걸고 도리질을 하고 싶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 세워놓고 


부대낀 시간만큼 길은 자꾸 흐려지고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벼 봐도

흐르는 구름의 시간 뜨거울 줄 모른다


내려놓고 지워야만 읽혀지는 경전인가

지상에 새긴 언약 온몸으로 더듬지만

가을은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온다

 

 

 

 

 

[당선소감] 시조로 세상을 더듬은지 7년… 시린가슴 시원하게 닦습니다

 

내 삶의 등댓불은 꺾이지 않는 바람이다

얼어붙은 땅거죽을 체온으로 녹이며

저 들녘 가로지르는 외눈박이 무소 같은

돌아보면, 제가 걸어온 길은 바람의 길이었습니다. 무수히 흔들리면서도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의식중에 바람의 보법을 권법처럼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어지러운 지각의 얼룩을 핥는 바람의 혓바닥으로, 오늘은 두근거리는 시린 가슴을 시원하게 닦습니다. 

저의 바람을 따뜻하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신 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조로 세상을 더듬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정완영 선생님을 김천에서 직접 만나면서 시작된 인연입니다. 시조의 눈을 뜨게 해서 걸음마를 익히게 해주신 분이 정완영 선생님이라면, 제 시조에 부리와 발톱을 돋게 하고 날개를 달아주신 분은 이교상 선생님입니다. 두 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공부해온 곽길선 선생님, 김성현 선생님, 유선철 선생님, 이병철 선생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신 고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그동안 제 졸작의 첫 번째 독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유곡 선생님과 청곡 선생님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나를 지켜봐주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1960년 경남 합천 출생 △경북대 철학과 졸업 △이조년전국시조백일장·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심사평] 현대인의 고독 억새에 버무려… 쓸쓸함의 상투성 벗어난 절창

장황한 언술과 지나친 기교에서 오는 피로도가 높을수록 현대인은 순간의 서정양식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조 부문은 해마다 응모자가 늘고 있다. 응모작 449편의 경향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시조 율격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이거나 초보적 수련 과정에 있는 작품군으로 이들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둘째, 시적 밀도와 탄력성은 미더우나 기성 시인을 모방하거나 유행처럼 번지는 소재 선택의 편협성을 보이는 작품군. 셋째, 신인다운 미숙함이 있으나 참신성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군. 

둘째, 셋째 작품군에서 시류에 편승해 습관적인 모방, 표절 의혹이 짙거나 미숙성 때문에 전범으로 삼기에 부족한 응모작은 제외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김석인의 ‘바람의 풍경’ 김범렬의 ‘암사동, 눈뜨는 빗살무늬토기’ 정미경의 ‘손안의 새’ 유수지의 ‘물병자리를 찾는 서쪽 풍경’이었다. 습작의 강도를 짐작하게 하는 이들은 발상과 시어 운용의 참신성, 진정성 면에서 각축을 벌였다.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시조의 미학을 살린 ‘바람의 풍경’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억새밭에 이는 바람과 바람이 변주해내는 풍경으로 은유한 당선작은 낯선 발화에 실린 유려한 시어 구사가 돌올(突兀)했다. 시조의 유연성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비”는 억새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나를 표상한다.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오는 “가을” 속에 “내 모습”은 간데없으나 개성적 어법으로 쓸쓸함의 상투성을 벗어난 절창이다. 갈채를 보내며 시조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으로 정진, 대성하길 축원한다. 

이근배·홍성란 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