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평통보(常平通寶) 당백(當百)전

category 수집광(狅) 2014. 5. 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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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常平通寶) 당백(當百)전




국적 : 대한민국


제작년도 : 1866년 발행


구입시기 : 2014년 05월



  최근 상평통보 당백전을 구입했다.


  한국인이라면 ‘상평통보(常平通寶)’란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을 거다.


  한국사를 배움에 있어 조선의 경제에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1633년(인조 11) 김신국·김육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나빠 유통을 중지하였다. 그후 1678년(숙종 4) 정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 좌의정 권대운 등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게 하였다. 그 뒤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하게 했는데,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다.’ (출처 : 두산백과)



  상평통보는 주전소(만든 곳), 천자문, 부호, 숫자 등으로 분류하면 3,000종이 넘는다.


  나에게도 수백 개의 상평통보가 있지만, 주전소 별로만 분류 작업을 하였다.



  상평통보 중, 가장 큰 것이 ‘당백전’이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를 배우면서 당백전 또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 흥선대원군 정권이 1866년(고종 3)에 발행한 화폐이다. 1866년 10월 우의정 김병학의 제의에 따라 금위영(禁衛營)에서 11월 6일 주조, 발행하여 1867년 6월 17일 중지될 때까지 주조 총액은 약 1천 6백만 냥이었다. 당백전은 모양과 중량이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의 5, 6배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당백전 1매의 명목가치는 실질가치의 약 20배에 달할 정도로 대표적인 악화(惡貨)였다.

  조선정부가 이러한 악화를 발행한 것은 당시 국가재정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조선 후기 이래 국가의 재정지출이 날로 확대되는 반면에 재정수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어서 정부로서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해야 했다. 더구나 대원군집권기(1863∼1873)에는 안으로는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경복궁중건사업을 벌이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대를 증강하고 군비를 확장하는 사업을 벌여야 했다.

  그런데 집권초기에 함경도지방의 민폐를 덜기 위해 함경감영의 동전주조사업을 철폐하고 갑산동광(甲山銅鑛)을 폐쇄했기 때문에 동전원료난이 더욱 심각해지자 한정된 동전원료를 가지고 보다 많은 유통가치를 조성하여 국가의 격증하는 재정수요에 충당하기 위해 당백전을 주조·유통시키고자 했다. 또한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으로 발생한 국가재정궁핍을 보완하기 위해 당천(當千)·당백(當百)·당오십(當五十) 등의 고액전을 주조·발행하여 당시까지 통용되고 있었으므로 조선에서도 고액전이 유통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타개하는 방안으로 악화를 발행하여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차액을 남기려고 했던 것이다.

  정부는 당백전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이 악화를 모든 공사거래에서 종래의 상평통보와 함께 통용하게 하고 각 관청에서는 경비를 지출할 때 당백전 2/3, 상평통보 1/3의 비율로 통용하게 하였다. 그 결과 당백전 발행 초기인 1866년 12월경에 7∼8냥에 지나지 않았던 미곡 1섬의 가격이 1∼2년 사이에 약 6배로 폭등하였다.

  당백전 발행으로 말미암아 폐단이 매우 심하게 되자 정부는 1867년 5월 당백전 주조를 중단한 상태에서 서울과 서울 밖 각 관청의 공납과 사사로운 채무보상 등에 모두 당백전을 쓰되, 1냥(100푼) 이하 거래에는 상평통보, 1냥 이상 거래에는 당백전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 그 유통영역을 넓혀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1868년 5월 최익현의 상소로 당백전 통용을 금지시키고 말았다. 결국 당백전의 발행은 재정난을 타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가앙등과 체제위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당백전 유통금지를 대비하기 위하여 역시 악화인 중국동전 300만~400만 냥을 수입·유통시킴으로서 화폐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으며, 1876년 개항한 이후 일본을 비롯한 서양제국의 근대화폐가 유입되고, 1883년에는 악화 당오전(當五錢)을 남발하게 됨으로써 화폐경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출처 : 두산백과)


상(常)


평(平)



통(通)



보(寶)




엽전을 꿰었을 구멍.

사람의 손 때가 묻은 그 흔적이 참 좋다.



1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힘들었을 엽전.

움푹 파인 흔적을 어루만져본다.


호(戶)



대(大)



당(當)



백(百)



  현존하는 당백전의 수가 적은 건 아니나, 다른 엽전에 비해 약간 가격이 높은 편이다.

  단 하나 있던 당백전은 대학 박물관에 기증했고, 당백전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다시 구입한 것이다.

  상태는 좋진 않지만, 당백전의 풋풋함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엽전이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짙게 베인 당백전이 마음에 든다.

  

  당백전은 가짜가 매우 많은 엽전이다.

  흔히 인사동이나 풍물시장에서 팔고 있는 당백전의 경우, 가짜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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