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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다정이 / 배인주

 

따순마을 변두리 외딴집에 주리 아줌마가 혼자 살았어요. 하지만 제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주리 아줌마 이야기는 아니에요. 잘 들어보세요.

“넌 아주 소중한 아이가 될 거야. 아무렴, 넌 정말 특별한 아이가 될 거야. 그럼, 그럼.”

뜨개질을 좋아하는 아줌마는 밤늦도록 뜨개질을 해요. 며칠 동안 털실로 한 코 한 코 뜨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온갖 세상 이야기지요. 아줌마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마치 누가 듣고 있는 듯 이야기했답니다.

“키는 이 정도면 되겠지?” 

아줌마가 팔을 뻗어 뜨개질한 길이를 재어보았어요.

“웃는 얼굴이 좋아. 얼굴은 복숭아색이 예뻐. 머리는 연두색이 좋겠지?”

연두색 털실을 잘라 정성껏 빗질도 해주었어요.

까맣기만 하던 창밖이 푸르스름해질 즈음에야 뜨개질한 것에 솜을 채우고 마무리를 했어요. 

“아, 다 됐다. 어디 좀 볼까?”

방금 완성한 뜨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줌마와 키를 대어보았어요. 아줌마 허리만큼 왔어요. 아줌마가 뜨개 아이를 번쩍 들어 꼭 안아줬어요. 

“아가야. 널 이제부터 다정이라고 부를게. 다정이……, 다정이…….”

아줌마는 중얼거리며 다정이를 안고 침실로 갔어요. 다정이가 방긋 웃었지만 아줌마는 보지 못했어요.

눈치챘나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이 아이 이야기라는 걸?

창밖이 환해졌을 때 아줌마가 눈을 떴어요.

“안녕, 다정아. 잘 잤니?”

“안녕?”

다정이가 방긋 웃으며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어요. 

아줌마가 얼마 전에 만든 토끼도 뛰어다녔고, 비둘기도 숲으로 날아갔거든요. 그러니까 다정이가 걸어 다니는 건 당연해요.

다정이는 아줌마 뒤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아줌마도 다정이가 따라다니며 쫑알거리는 게 참 좋았어요.

아줌마가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어요. 다정이도 따라갔지요.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렸어요. 숲 속 이곳저곳이 반짝반짝 빛났지요. 다정이가 쑥부쟁이 꽃을 한 아름 꺾었을 때였어요.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어요. 다정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어요. 

서너 명의 아이가 숲 둘레 길을 웃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지요.

다정이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안녕?”

아이들이 주리 아줌마를 보더니 인사했어요.

“주리 아줌마, 안녕하세요?”

아마 아이들이 다정이는 보지 못했나 봐요.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거든요.

다정이가 아줌마를 돌아보며 물었어요.

“저 아이들은 어디 가요?”

아줌마가 빙그레 웃었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지. 저런, 내가 학교 이야기를 빼먹었구나.”

“학교요? 학교에는 저런 아이들이 많아요?”

“그럼. 많고말고.”

“나도 학교 갈래요.”

다정이가 다짜고짜 아이들이 오던 길로 가려고 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하나도 없을걸. 저 아이들처럼 모두 집으로 돌아갔거든. 내일 아침 다시 학교에 간단다.”

아줌마가 또 빙그레 웃었어요.

“나도 내일은 학교에 가서 놀래요.”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정이는 일찍 잠을 잤어요. 그래야 내일이 빨리 올 것 같았거든요.

아줌마는 밤새 다정이의 책가방과 교복을 뜨개질했어요. 아줌마는 뜨개질로 못 만드는 게 없었지요.

다음 날 다정이는 날이 밝자마자 뜨개 가방을 메고 문 앞에 섰어요. 아줌마는 다정이에게 밥을 다 먹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다정이는 식탁에 앉아 아줌마가 차려준 뜨개 빵을 입에 갖다 댔어요.

“앙, 맛있다.”

다정이는 뜨개 찻잔도 들어 홀짝거렸지요. 물론 진짜 먹은 건 아니에요. 다정이는 냠냠냠 먹는 시늉만 해도 배가 부르답니다.

밥을 다 먹자 아줌마가 다정이 머리를 빗겨 주었어요. 

아줌마와 다정이가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교장 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어서 오세요. 새로운 학생이 와서 정말 반갑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다정이를 보고 처음엔 조금 놀랐어요. 뜨개 인형 학생은 처음 봤거든요. 하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하던 참에 새 학생이 들어와서 반가웠어요.

“이 아이는 작으니까 1학년 교실에 가면 좋겠어요. 물론 1학년에서도 가장 작겠지만요. 하하하.”

아줌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어요.

교장 선생님이 다정이를 데리고 교실로 갔어요. 교장 선생님과 다정이를 본 아이들이 조용해졌어요. 한 아이는 입을 헤 벌린 채로, 어떤 아이는 손가락 네 개를 입에 물고요. 또 다른 아이는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담임 선생님 입도 조금 벌어졌어요. 그 모습을 본 다정이가 방긋 웃었어요.

“새로 온 친구예요. 친하게 지내세요.”

교장 선생님이 애써 웃으며 아이들을 둘러봤어요. 그리고 얼른 교실을 나가 버렸답니다.

담임 선생님이 다정이에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자 친구들에게 네 소개를 하렴.”

“안녕. 나는 다정이야. 우리 재미있게 놀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선생님. 쟤는 이상하게 생겼어요. 머리카락이 털실이에요.”

“맞아요. 이상해요. 피부도 털실이잖아요. 우리랑 달라요.”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어요.

“여러분, 다정이는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사이좋게 잘 지내요.”

“네에…….”

아이들이 마지못해 대답했어요. 대답을 하지 않은 아이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다정이를 맨 앞자리에 앉혔어요.

다정이는 공부하는 게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하지만 노는 시간은 좋았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면 다정이도 아이들을 따라다녔어요. 물론 같이 놀지는 못했어요. 아이들은 다정이가 가까이 오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안 끼워 줬거든요. 그래도 다정이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놀이에 낄 기회를 엿봤어요.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키가 크고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현아가 다정이에게 술래를 시켜 줬거든요. 다정이는 현아가 가르쳐 준 대로 창고 옆 플라타너스나무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어요. 이 나무가 학교에서 가장 큰 나무예요. 나무에는 그네도 매여있고, 나무 위에는 새 둥지도 두 개나 있어요.

“얘들아, 이제 찾는다?”

다정이가 눈을 떴어요. 아이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주위는 아주 조용했어요. 

다정이는 아이들을 찾으러 돌아다녔어요.

창고 근처는 물론이고, 교실 뒤에도 가 봤지요. 쓰레기장도 뒤졌어요. 그리고 학교를 두 바퀴나 돌았어요. 

“다정아!”

주리 아줌마가 다정이를 찾으러 왔어요.

아줌마는 다정이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어요. 아침에 빗은 머리에는 먼지와 지푸라기가 붙어 있었고 마구 헝클어졌어요. 옷은 해지고 무릎은 올이 풀려서 너덜거렸거든요. 다정이가 아줌마에게 달려갔어요.

“아이들 못 봤어요? 모두 숨어서 제가 찾아야 하거든요.”

아줌마가 다정이를 꼭 안아 줬어요.

“아이들은 집에 돌아갔단다. 우리도 이제 집에 가야지.”

다정이는 아줌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꾸만 학교를 돌아봤어요.

아줌마는 다정이를 깨끗이 씻기고 무릎도 감쪽같이 고쳐 줬어요. 교복도 새것처럼 다시 떠 주었고요. 다정이는 ‘내일은 친구들을 더 빨리 찾아야지’하며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다정이는 교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소리쳤지요.

“찾았다. 너희들, 내가 다 찾은 거야. 하하하.”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다정이를 멀뚱멀뚱 쳐다봤어요. 다정이는 아이들과 빨리 밖에 나가서 놀고 싶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재미없는 공부만 하라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이야기하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을 쳤어요. 그러다 다정이가 다가가면 얼른 자기 자리에 앉아 연필로 뭔가를 끄적였어요. 다정이가 현아에게 갔어요. 오늘도 놀이에 끼워 줄지도 모르니까요.

“안녕, 현아야. 우리 어제처럼 밖에 나가서 놀까? 오늘은 너를 빨리 찾을 수 있어.”

현아는 다정이를 보지도 않고 수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안 돼. 나는 수진이랑 놀기로 했어.”

“그럼 수진이랑 셋이 놀면 되지.”

현아가 어깨가 들썩이도록 한숨을 쉬었어요.

“아이, 귀찮아! 난 수진이랑 둘만 놀 거라고.”

다정이는 수진이를 쳐다봤어요. 수진이가 웃으며 혓바닥을 쏙 내밀고 고개를 저었어요.

간식시간이 되었어요. 선생님이 우유를 나눠 주자 아이들이 간식을 책상에 꺼내 놓았어요. 다정이도 아줌마가 싸 준 간식 봉지를 열었어요. 알록달록한 털실 마카롱 과자가 잔뜩 나왔어요. 여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정이 곁으로 모였어요.

“와! 예쁘다.” 

“어머나, 진짜 같아.”

수진이가 분홍색 마카롱을 집었어요.

“이거, 내 딸기랑 바꿀래?”

다정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수진이가 현아랑 놀 때 다정이에게 같이 놀자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아이도 다가와서 자기 간식과 마카롱을 바꾸고 싶어 했어요. 물론 다정이는 바꿔 줬지요. 그 아이와도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다정이가 마카롱과 바꾼 간식을 보고 있는데 현아가 다가왔어요.

“이건 이렇게 입에 넣고 먹는 거야.”

현아가 딸기를 다정이 입에 갖다대고 문질렀어요.

딸기 물이 줄줄 흘러서 다정이 턱과 목을 붉게 물들였어요.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마구 웃었어요. 하지만 다정이는 웃고 싶지 않았어요. 

현아가 웃는 얼굴로 다정이 손에 잼을 발랐어요.

“이것도 못 먹겠지? 넌 우리랑 다르니까.”

다정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줌마는 깜짝 놀랐어요. 웃음기가 사라진 다정이 얼굴이 몹시 슬퍼 보였어요.

“나는 왜 아이들이랑 달라요?”

주리 아줌마가 다정이를 씻기면서 말했어요.

“누구나 조금씩 다르게 생겼잖니.”

“아니에요. 아이들이 나보고 많이 다르대요. 이상하댔어요.”

방금 씻은 다정이의 얼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아줌마가 수건으로 다정이 얼굴을 닦아 주며 말했어요.

“다정아, 넌 이상하지 않아. 넌 특별한 아이야. 언젠가는 친구들이 알아줄 거야. 네가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다정이 얼굴이 금방 환해졌어요. 

다음 날도 다정이는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꼭 친구들과 놀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공부 시간에는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들었어요. 여전히 공부는 재미없었지요.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을 따라다녔어요. 놀이에 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친구들이 노는 것만 봐도 재미있는걸요.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어요.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물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들었어요. 

다정이도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다정이를 붙잡았어요.

“다정이는 처음이니까 물가에 앉아서 발만 담가요.”

현아가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다정이를 쳐다봤어요. 

“넌 이렇게 못하지?” 

현아는 물속으로 머리까지 꼬르륵 잠겼다가 나왔어요.

“나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선생님이 발만 담그랬어.”

“흥, 못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하면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수진이도 옆에서 현아를 거들었어요.

다정이가 물속으로 쑥 들어갔어요. 그리고 오래오래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 언제 나왔냐고요? 교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물속에서 다정이를 건져 냈지요. 엄청나게 물을 많이 먹은 다정이를요.

다정이는 집에 갈 때까지 철봉에 매달려 있었어요. 거꾸로 매달린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동동 떠와서 다정이를 철봉에서 내려 줬어요.

다정이는 몸이 무거워서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갔어요.

다음 날 선생님은 다정이를 교실에만 있게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정이가 앞서 걷는 현아와 수진이에게 달려갔어요.

“우리 놀자.”

“안 돼.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 해. 오늘 저녁에 우리 가족 모두 캠핑 가기로 했어.”

현아가 말하자 수진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말했어요.

“어머, 좋겠다. 나도 가고 싶어.”

“지난 달부터 약속했던 거야. 아참! 나, 숲 속에 있는 나무집에 가서 손전등 가져와야 해. 같이 갈래?”

수진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정이도 뒤따라가면서 고개를 끄덕였지요.

숲 속 길을 걷던 현아랑 수진이가 커다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았어요. 

다정이도 올려다봤지요. 가까이 붙어 자란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 사이에 널빤지가 여러 장 깔려있고 한쪽에는 벽과 지붕을 겸한 판자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어요. 나무 한쪽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어요.

“수진아 나 혼자 올라가서 손전등 찾아올게.”

현아는 수진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사다리를 기어올랐지요.

“현아야, 나도 올라갈까?”

현아가 사다리 중간쯤 올라갔을 때 다정이가 뒤에서 말했어요.

현아가 대답 없이 계속 올라갔어요.

다정이가 뒤따라 올라갔어요. 사다리는 생각보다 거칠었어요. 손바닥에 금세 보풀이 생겼지요. 사다리에 박힌 못에 팔꿈치가 걸려 툭 터졌어요. 땅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나무는 더 굵고 높았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포로록 포로록 소리를 냈어요. 

사다리가 나무집까지 닿아 있지 않았어요. 사다리가 끝나는 굵은 줄기에서 서너 걸음 옆으로 가야 마루로 오를 수 있는 다른 가지가 있어요. 현아는 그 가지를 밟고 서 있었어요. 현아가 발을 구를 때마다 가지가 출렁댔어요.

“너는 여기까지 못 올라올걸.”

“아니야, 올라갈 수 있어.”

다정이는 양쪽 무릎이 터진 줄도 몰랐어요. 삐죽 나온 가지에 옆구리가 걸렸어요. 그래도 다정이는 계속 올라갔지요. 나뭇가지에 걸린 옆구리 실이 당겨지면서 다정이 몸이 찌그러졌어요. 실이 점점 옆구리를 조였어요. 몸 안에 든 솜도 바짝 조여졌어요. 그래도 한 발 한 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갔지요. 나뭇가지도 실을 따라 휘어졌어요.

‘툭.’ 

다정이 옆구리 실이 터졌어요. 실 한쪽은 그대로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다정이가 발을 옮길 때마다 풀렸어요. 솜이 밖으로 조금씩 흘러나왔어요.

“다 왔어. 나도 나무집에 올라가도 되니?”

“야. 느림보. 이제 올라왔니? 네가 빨리 올라와야 내가 내려가지.”

현아는 다정이가 나뭇가지를 잡지 못하게 발을 더 세게 굴렀어요.

“앗!”

현아의 발이 미끄러졌어요. 현아는 가까스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어요. 현아가 붙잡고 있는 가지가 점점 아래로 쳐졌어요. 다정이가 현아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그 바람에 옆구리 실이 주르륵 풀렸어요. 현아의 겁먹은 눈이 다정이와 마주쳤어요. 

“현아야, 걱정 마. 내가 실을 풀어 줄게. 나를 타고 내려와, 놀이처럼.”

다정이는 무릎에서 풀린 실과 옆구리에서 풀린 실, 그리고 양손바닥의 실까지 풀어 나뭇가지에 한데 묶었어요. 그리고 현아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고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지요.

“다정아!”

현아가 처음으로 다정이 이름을 불렀어요.

주리 아줌마는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깜짝 놀랐어요. 두 아이가 울면서 걸어오고 있었거든요. 현아랑 수진이었어요. 현아 두 팔에 무언가 들려 있었어요.

아줌마는 한 번 더 놀랐어요. 현아가 안고 있는 것은 온몸이 다 풀어진 다정이였거든요. 속을 채웠던 솜은 수진이가 치마를 펼쳐 담아 왔어요.

아줌마는 얼른 다정이를 받아 안았어요. 

“아줌마. 다정이가, 다정이가 저를 구해주다가 이렇게 됐어요.”

현아가 훌쩍거리며 말했어요.

“아줌마, 다정이 다시 움직일 수 있지요? 꼭 살려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수진이가 아줌마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아줌마는 다정이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두 아이도 아줌마를 따라갔어요. 

아줌마는 풀린 실을 정리해 다시 뜨개질을 했어요. 현아와 수진이는 아줌마가 뜨개질을 마친 팔과 다리에 솜을 채워 넣었어요. 

어느덧 해가 숲 너머로 사라졌어요. 

“소중한 다정이. 넌 특별한 아이야. 그럼, 그럼.”

아줌마는 다정이를 매만지면서 중얼거렸어요. 

“다정이가 다시 살아나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치?”

현아가 수진이를 보면서 말했어요. 수진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가 나빴어. 다정이한테 너무 미안해.”

수진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이가 제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다정이는 전처럼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했어요.

“아줌마, 다정이가 왜 살아나지 않아요?”

현아가 다정이를 안고 훌쩍였어요. 

수진이도 다정이를 안으며 현아를 보았어요.

“현아야. 너는 이제 집에 가야지? 오늘 너희 가족 캠핑 간다고 했잖아.”

“아냐. 내가 다정이 안아 줄래. 캠핑은 나중에도 갈 수 있으니까.”

“너, 캠핑을 엄청 기다렸잖아. 다정이는 내가 안고 있을게. 너는 집에 가.”

“아니야. 다정이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내가 따뜻하게 해 줘야지.”

현아가 다정이를 꼭 껴안았어요.

“나도 같이 안아 줄래.”

다정이를 가운데 두고 현아와 수진이가 꼭 안았어요.

그때 두 아이 사이에서 꿈틀했어요.

“아이 숨 막혀.”

다정이가 두 아이에게서 빠져나와 아줌마에게 갔어요. 현아와 수진이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오! 넌 정말 특별한 아이야.”

아줌마도 다정이를 와락 껴안았어요. 

현아와 수진이가 다정이에게 천천히 다가왔어요. 

“다정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현아가 울먹거리며 말했어요. 

“나도 미안했어.”

수진이도 울먹였어요.

“얘들아, 우리 놀자. 응?”

다정이가 방긋 웃으며 현아와 수진이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현아가 얼른 다정이 손을 잡았어요. 폭신한 다정이 손을 잡은 현아 얼굴에 미소가 번졌어요. 수진이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았지요.

세 아이는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면서 빙글빙글 돌았어요.  





<당선소감>

 

선소식 알리고나니 두려움… 상상등단 아닐까?

 

만약 당선통보를 받는다면? 대답할 말을 수도 없이 준비했다.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상냥하게.

마침 쉬는 날이라 남편과 서울로 나들이 가던 중이었다. 휴대전화를 든 두 손을 달달 떨면서 훌쩍거리는 날 보고 남편이 짐작하고 무릎을 토닥여줬다. 한 시간 동안 떠오르는 대로 여기저기 막 알리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거 혹시 상상등단이 아닐까?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동화공부를 했고 공모전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몇 번은 본심에서 심사평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내 원고가 심사받았다는 뿌듯함을 즐겼다. 이번에도 그 정도의 기대를 하면서 투고를 했었다. 

‘이 작가는 흔치 않은 동화적 감성을 지닌 듯하니 꾸준히 써나가기를 권하고 싶다.’이렇게 말씀해 주셨던 심사평이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으로 제 글을 두 번이나 읽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써야 동화가 되는지를 가르쳐 주신 정해왕 선생님과 나의 정신적 어머니 이가을 선생님 감사합니다. 반 발짝 뒤에서 말없이 지켜봐 준 남편 원진재 씨 사랑합니다.




◎ 약력

▶ 1966년 강원 정선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과 휴학




<심사평>

 

‘다름’으로 인한 따돌림 그리고 배려 따뜻하게 담아내

 


작년보다 응모작이 늘었으나 흡족한 수준의 작품을 찾기 어려워 이번에도 우리는 심사하는 내내 안타까움이 컸다.

본심에서 네 작품을 검토하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는 이주여성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된 어떤 집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주민 이야기가 어느덧 동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는데 이는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정작 이주민 당사자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길고양이를 중심에 둔 ‘신통한 상담사’는 유명한 작품의 인물이 차용된 점, 삶에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이 주변 지인보다 길고양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발상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모모’는 단순 차용에 불과하고 어려움에 빠진 인물들 이야기는 더 드러나지 않아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불완전한 가정의 아이 둘을 그려낸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매우 아까운 작품이었다. 부모 이혼이나 아버지 부재라는 흔하고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기분 좋은 감상을 남기는 매력이 있다. 인물 하나하나가 감각적으로 형상화되었고 묘사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개성이 참 좋다. 그러나 자주 보이는 오탈자, 문장 미숙, 뒷부분이 성급하게 마무리된 점이 아쉽다. 

우리는 이견 없이 ‘다정이’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다름’으로 인한 따돌림과 배려를 이렇게도 따뜻하고 색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이 작가의 역량이 믿음직스럽다. 무생물에 생명이 이입되는 과정도 공감이 되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검토하는 동안 이미지가 환하게 연상되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으니 이번에야말로 동화의 본령을 감각적으로 아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나는 이 작가가 궁금하다. 



심사 김서정·황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