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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견우와 직녀 / 유하문

 

올해 아홉 살인 주형은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 열병을 심하게 앓은 후 그렇게 되었습니다. 삼 년 동안 입원했지만,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제발 특수학교에 가라."

 

"싫어, 싫단 말이야!"

 

아빠와 엄마는 주형이가 특수학교에 가서 공부하길 바랐지만, 주형이가 반대했습니다. 특수학교가 집과 멀고, 무엇보다 부모님과 헤어져 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빠 일 다녀오마."

 

아빠가 연장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목수인 아빠는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하고, 엄마는 시장에 나가 생선을 팔았습니다. 주형이가 입원하는 동안 돈이 많이 들어가 아파트를 팔고 지금의 단독 주택 2층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엄마도 다녀오마."

 

엄마도 곧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집에는 주형밖에 없습니다. 주형은 방으로 들어가 점자로 된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심심하면 발코니로 나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2층 양옥 건물인데, 1층 마당에 감나무와 석류나무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거기에 빨간 감이 열려 있지만 주형은 볼 수 없었습니다. 석류가 입을 벌리고 있어도 볼 수 없고, 초겨울이 되어 감나무 잎이 모두 떨어져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주형은 소리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발코니로 나가 조용히 귀를 열어두면 새가 와서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이 톡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비가 올 때면 앞집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음악 같았습니다. 주형은 비록 볼 수 없지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골목 끝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옵니다. 아마 자원 봉사하러 온 여진 누나일 것입니다. 아빠 발소리가 투박하고 무거운 반면에 대학생인 여진 누나 발소리는 가볍고 경쾌합니다. 주형이 벨을 눌러 대문을 미리 열어 두었습니다.

 

"주형이 나와 있네?"

 

잠시 후, 여진 누나가 계단을 올라 집으로 왔습니다. 주형이 점자 동화책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습니다.

 

"동화책 다 읽었어?"

 

"응, 거의 다 읽어 가."

 

"그동안 자원봉사를 많이 했지만, 너처럼 빨리 점자를 배운 아이는 처음이야. 넌 천재다, 천재!"

 

"정말?"

 

"그럼. 이제 동화책까지 읽잖아?"

 

"그게 다 여진 누나 덕분이야. 난 볼 수 없지만, 누난 참 예쁘게 생겼을 것 같아."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여진 누나가 두 시간 동안 점자 읽는 법에 이어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컴퓨터도 장애인용이 따로 있었지만, 주형은 당당하게 일반인이 쓰는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두 달 정도 배우자 자판을 찾아 제법 한글을 쳤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준 파일에 주형이 쓴 일기가 차곡차곡 저장되었습니다.

 

"응? 누가 이사오나봐?"

 

수업이 끝날 무렵, 여진 누나가 밖으로 나가더니 길에 웬 트럭이 와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 옆집 2층으로 누가 이사 온 모양입니다.

 

"휠체어를 탄 소녀도 있는데? 주형이 나이쯤 됐나?"

 

"소녀? 그런데 왜 휠체어를 탔을까?"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든지 아니면 무슨 사고가 났겠지."

 

"어휴, 그럼 옆집끼리 좀 그러네?"

 

"뭐가 그래?"

 

"난 앞이 안 보이는데, 옆집에 소아마비 소녀가 오면 남들이 보기에 좀 그렇잖아?"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누구든 사고가 날 수 있어."

 

평소 다정했던 여진 누나가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남들 보기에 좀 그렇다는 주형의 말에 화간 난 것 같습니다.

 

"미안...사실은 좀 설레. 소녀가 왔다니까, 히힛."

 

"그렇지? 둘이 친구해라. 그럼 난 이만 간다."

 

여진 누나가 주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집을 나섰습니다. 주형은 밖으로 나가 골목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장롱 내리는 소리, 큰 항아리 내리는 소리...사다리차가 왔는지 크르릉 짐 올리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넌 이름이 뭐니?"

 

이삿짐이 모두 옮겨지고 골목이 조용해질 때, 주형이 컴퓨터로 일기를 쓰고 밖으로 나가자 옆집 2층에서 소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마 여진 누나가 말해준 그 소녀인 모양입니다.

 

"나? 박주형, 넌?"

 

"난 송성혜. 넌 몇 살이야?"

 

"난 아홉 살. 넌?"

 

"난 여덟 살."

 

"그럼 내가 오빠네?"

 

"뭐야? 한 살 차인데, 그냥 친구하자."

 

"그럴까? 히힛."

 

"그런데 너 좀 이상하다, 혹시 앞이 안 보이니?"

 

"맞아. 눈만 멀쩡하지 사실은 앞이 안 보여. 하지만 여진 누나에게 점자를 배워 지금은 동화책도 읽어."

 

"그래? 난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고 다녀. 사실은 몸도 별로 안 좋아. 머리가 간혹 깨져라 아파."

 

소녀의 목소리가 좀 떨리며 들려 왔습니다. 주형은 왜 소녀가 그런 말을 해주는지 궁금했습니다.

 

주형과 성혜는 그날 이후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서로 대화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일을 나가고 나면 둘은 각각 2층 난간으로 나가 서로 마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혜의 아빠는 탈북자였습니다. 남한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첫 아이인 성혜가 소아마비에 걸린 것입니다.

 

"우리 아빤 목수야. 엄마는 시장에 나가 생선을 팔고."

 

"그래? 우리 아빤 탈북자 출신인데, 공장에 나가 일을 해. 엄마는 대형 마트에 나가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

 

"우리 둘 다 아빠와 엄마들이 힘들게 사시네?"

 

"그러네...거기에다 우리가 이 모양이니..."

 

성혜가 휴- 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대학생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여진 누나가 그런 식으로 한숨 쉬지 말라고 했어."

 

"아, 그 언니? 참 예쁘더라."

 

"정말 예뻐?"

 

"넌 그 언니 자주 보면서도 모르니? 아참, 미안."

 

성혜는 잠시 주형이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잊고 말했다는 걸 알고 호호호 웃었습니다.

 

"그런데 여진 누나 어떻게 생겼어?"

 

"음...눈은 호수처럼 맑고 코가 오뚝하고 입술은 두툼하고 얼굴은 갸름해. 누가 봐도 미인이야."

 

"와- 성혜 넌 말도 잘한다."

 

"그림도 그리는데?"

 

"정말? 어떤 그림?"

 

"동화책을 읽고 상상의 세계를 그려. 토끼와 거북이 얘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간단하게 글도 써."

 

"그래? 부럽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골목에 해 그림자가 졌습니다. 주형 집 2층과 성혜 집 2층 사이에 작은 골목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트럭 한 대가 겨우 들어올 만큼 좁은 길이었습니다.

 

"아빠 왔다."

 

둘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공사장으로 일 나갔던 주형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이 참 다정하네?"

 

아빠가 과자 봉지를 옆집 2층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땅콩 과자를 받은 성혜가 좋아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과자 먹는 소리가 들려올 때, 마당에 감나무 잎이 소리 없이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혜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형이 궁금해 1층 집주인에게 묻자 성혜의 몸이 안 좋아져 입원했다고 했습니다. 주형은 2층 난간에 기대어 하루 종일 성혜가 나타나길 기다렸습니다. 점자 공부도 동화책을 읽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가도 성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감나무 잎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회색으로 변한 나뭇잎이 바람에 골목까지 굴러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 오늘은 첫눈이 내렸습니다. 주형은 밖으로 나가 골목에 귀를 열어두었습니다. 옆집 2층에 성혜가 타고 다니던 휠체어가 놓여 있었지만, 주형은 그걸 볼 수 없었습니다. 눈송이가 바람에 날려 휠체어를 덮었습니다.

 

"너 왜 그래?"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펄펄 끓는 주형의 이마를 손으로 만지더니 화들짝 놀랐습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엄마도 놀라 당장 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난 괜찮아. 성혜만 오면 다 나을 거야."

 

주형이 힘없이 말하고 돌아누웠습니다. 주형의 베개에 차고 흰 것이 흘러내렸습니다.

 

겨울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일월 중순, 드디어 성혜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작은 종양이 생겼는데 수술이 잘 되어 퇴원했다고 했습니다.

 

"주형아, 나 왔어."

 

성혜가 다시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주형은 소리만 들어도 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휠체어 바퀴 구르는 소리가 2층 난간 쪽에서 들려 왔습니다. 주형은 반가운 마음에 밖으로 나가 성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너도 많이 앓았다며?"

 

"응, 감기가 심했어."

 

"내가 보고 싶은 것 아니고?"

 

"응? 그, 그랬나?"

 

성혜가 서운해 하자 주형이 하하하 웃었습니다. 그때 주형 아빠와 성혜 아빠가 만나 뭐라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형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무슨 다리를 만든다는 얘기였습니다.

 

겨울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주형 집 2층과 성혜집 2층 사이에 작은 다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목수인 주형 아빠가 다른 목수들을 데리고 와서 나무로 예쁜 다리를 만들어 집과 집을 연결했습니다. 여진 누나가 이끄는 봉사단체도 와서 일을 도왔습니다.

 

"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다리다."

 

다리가 완성되자 여진 누나가 외쳤습니다. 이웃들이 모두 나와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자, 다리 개통식이 있겠습니다."

 

주형 아빠가 외치자 성혜 아빠가 휠체어를 밀며 다리를 통과해 주형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하늘도 축하한다는 듯 눈을 소복소복 내려 보냈습니다.

 

"저 다리 이름을 견우와 직녀라고 하면 어떨까요?"

 

여진이 외치자 모두 좋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주형과 성혜는 그 날 이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형이 다리를 건너 성혜 집으로 가기도 하고, 성혜가 휠체어를 타고 주형 집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하오의 햇살이 다리에 머물러 반짝반짝 헤살을 부렸습니다.





<당선소감>


 "통일 의식을 일깨워 줬으면"

 

다들 살기에 바빠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인 통일을 잊고 살고 있다. 혹자는 통일이 밥 먹여 주느냐고 하지만 통일만큼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을까. 깊이 따져 보면 우리가 매일 목도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분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은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그러한데도 이념 대립과 당리당략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러할 때 작가들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통일을 꿈꿀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견우와 직녀'란 동화를 집필하게 됐다.


각자 신체에 이상이 있는 소년과 소녀가 다리를 통해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꿈꿔 봤다. 마침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어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가벼워지는 문학 속에서 이 동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통일 의식을 일깨워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958년생 △전남 완도군 청산도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 △대입학원 국어 강사 △소설집 '산속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청산도 가는 길' 발간



<심사평>


 "유독 감동을 주는 작품"

 

이번 충청일보에 응모한 신춘문예 동화작품은 전국에서 200편이 넘는 많은 작품이 응모했다. 심사기준은 주제는 어린이가 이해하기 쉽고 선명하고 단순하며 재미가 있는가?


소재는 어린이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삶의 즐거움을 줄 수 있나?


구성이 진행이 제대로 이뤄졌는가?

언어는 정서적인 안정감과 심성의 순화를 위한 고운 말을 사용했는가?


사건과 스토리는 신나고 활동적인 사건 중심으로 전개했는가?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해 예심을 거쳐 최종 다섯 편을 선발하고 그 중에서도 유독 감동을 주는 작품은 견우와 직녀라는 작품이었다.


이 번에 훌륭한 동화 작품을 응모한 모든 분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면서. 


심사위원 : 오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