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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손 안의 사막 / 우아리

 

사막이 있다

손바닥 안에 사막이 있다

 

손바닥을 떨어지는 모래가루,

낙타의 눈동자가 발목까지 잠기는 사막,

손바닥에 사막이라니?

 

사막은 제 바닥을 넓혀

사막을 걷게 한다

 

손바닥 안에서 걸어가는 낙타,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무한정 넓어지는 사막, 그러나 나의 손바닥은 커지지 않고, 낙타는 나의 손바닥에서 사막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나는 안경을 쓰고 손바닥을 끌어당긴다

눈 안에 사막이 넓어질수록 낙타의 몸은 점점 작아진다 나는 손바닥을 멀리 뻗어 흔들리게 한다 멀어지는 만큼 낙타와 낙타의 주변은 흔들리면서 커져간다 황급히 손을 끌어당기면 낙타는 급속도로 작아져 시선을 떠나고야 말 지경이다

사막은 나의 손금을 모래처럼 긁으면서 흘러간다 

나는 난감하다

 

벽에 기대어

손바닥을 펴고 한없이 응시한다 그러나 손바닥 위의 한 점은 꼬물거리듯 지난한 움직임을 계속한다

눈을 감아도 눈 안에 사막은 눈을 감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건

낙타를 쫓아가는 나를 마주보고 있다는 것뿐이다

손바닥 안의 사막이 눈 안의 사막이 되고 낙타는 걷는 것인지 아니면 제자리 위의 공간에 끝없이 부유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손바닥을 털고 일어날 수도 없다

 

각막은 모래알로 가득 차 서걱거리고 망막은 그 어느 것도 상을 맺지 못하고 끝없는 모래사막만을 채우고

껌벅일 적마다 낙타의 행진도 멈췄다 가고, 멈췄다 가고

환청일까 모래가 날리는 바람소리, 황급히 손을 거둬내다 손 안의 모래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낙타마저 쏟아질 것 같은 조바심에 손바닥을 눈 가까이 들어 올린다 다행히도 꼬물거리는 한 점,

 

아무리 쏟아져도 멈추지 않는 모래가루, 움직이는 낙타,

아! 바람이 분다 사막에 분 것인지 사막으로부터 불어나온 것인지 바람이 분다

그래, 사막을 눈 안으로 끌어들인다

눈 안 가득 손바닥을 물들이는 사막,

 

초인종 소리,

몸을 일으켜 신문을 펴든다 신문 한쪽 귀퉁이에 시선은 어디에도 없고 인상을 전할 수 없는 손바닥이

사막을 지나간다





<당선소감>


 시의 모체가 된 화집에 감사

 

 늙은 개도 개다

늙은 개가 짖는다

힘없이

늙은 개는

늙었어도 짖을 수 있어서

늙은 개는 자기

목구멍한테 고맙다

짖지 않는 개는 개가 아니다

 

오규원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이 쉰다섯에 목소리가 나옵니다. 어쩌다 세월이 막노동처럼 흘러갔는지,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영전에 소주 한 잔 부어 드릴 수 있어서 그동안 불편했던 마음 내려놓겠습니다.

희귀병을 얻어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약벌레가 된 선생님의 꾸지람이 자꾸 생각나네요 .

오늘 밤 오리온 별자리라도 찾아 그 별자리 끝에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고 싶네요.

이 시의 모체, 생각의 전부를 드로잉 했던 주영일의 화집에 감사의 손을 전하고 싶다.



▲우아리(본명 윤성학) △1961년생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


<심사평>


 시는 상상과 사유의 계기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래서 고맙고, 또 고맙다. 본심으로 넘어 온 31명의 작품을 읽으며, 수도 없이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기뻤던 것은 시에 대한 열정, 참신한 발상, 기존의 시적 관습을 극복하고자 한 도발적인 표현 등이었고, 아쉬웠던 것은 설명의 버릇, 자연스럽지 못하게 엉키는 말투 등이었다.

 참신한 발상을 설명으로 망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설명의 버릇이 특히 제목에까지도 드러나고 있어 안타까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손 안의 사막', '차를 마시는 동안', '망모(望母)', '아빠와 붕어빵', '마당을 부르다', '녹슨 페달 ', '슬픔의 잔고' 등이 었다. 이중에서 다시 선자를 고심하게 한 것은 '손 안의 사막', '차를 마시는 동안', '망모' 등이 었다. '망모'는 '지금-여기'라는 한 순간의 상황을 매우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목이 아무래도 거슬렸고, 마지막 처리가 억지스러웠다. '차를 마시는 동안'은 굳이 다섯부분으로 나눠 놓았는데도 그 사념이나 이미지에서 각 부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목부터 이곳저곳 설명적인 흠이 있었다.

 '손안의 사막' 역시 부분적으로 설명적인 흠은 있었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상상과 사유가 엉뚱하고, 활달했다. 이미지의 변용도 아주 다양하면서,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읽는 재미도 있었다. 시는 결국 상상과 사유의 계기여야 한다는 점에서 '손 안의 사막'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 모두의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심사위원 : 임승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