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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모래시계 / 김경련

 

어느 날 들어가게 된 유리병 안

그때부터 난 시간이 되었어

날 보는 사람들은 여러 모습이었지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가는가 하면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어


어느 날은 한 아기가 다가오더니

아래로 다 흘러내리기도 전에

뒤집어 놓기도 했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있었어

아기는 훌쩍 소년이 되었지


그땐 날 뒤집지는 않았어

대신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더군

그리곤 뭔가 중얼중얼….


자세히 들어보니

10분 동안 자기를 소개하는 거였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어

내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주 어릴 적

저는 모래시계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시간은 되돌려 놔도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붙잡을 수 없는 게 시간이란 걸

알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며칠 후 소년은 환호성을 치며 날뛰었어

말하기 대회 상장을 흔들면서 말이야

나도 그날은 시간이 멈춘 듯

한없이 소년을 바라보았어

시간이 되고 나서

처음 행복을 느낀 날이었지




  <당선소감>


   "보이지 않아도 동그랗게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여러 해 전 불쑥 응모했던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을 때, 그 당시 당선자 소감문에서 보았던 글귀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7년을 노박이로 동시를 썼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기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았다 싶은 끝자락에 당선 연락을 받았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도 눈물이 났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난 자리에 감사함이 차오른다.

  동시의 첫걸음을 손잡아 주신 정형택 선생님, 때론 인자하게 때론 엄격하게 치기 어린 마음을 잠재워 주시며 시인의 본분을 깨닫게 해주신 권오삼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격려하며 함께 고민하던 동시 동인 나나힌 회원들과 세 번이나 최종심에 이름 올려주시며 힘든 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신 조선일보 심사위원 선생님,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떨어졌을 때도 한결같이 "엄마, 사랑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응원을 보내주었던 세 아이, 소연, 소의, 건의에게는 이제 거실 한쪽이 책으로 어질러져 있어도 참 좋은 핑곗거리가 생겨서 기쁘다. 보이지 않아도 안으로 안으로 동그랗게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멀고 힘들지라도 이제는 가끔, 나에게도 동그라미를 그려주며 묵묵히 한길을 갈 것이다.


  ● 1963년 전남 완도 출생.

  ● 조선대 교육대학원 졸업.


 

  <심사평>


  "사물의 의미 포착해 탄탄한 시적 기량으로 구현"


  1505편이나 되는 응모작을 읽으며 맑고 순수한 동심으로 살면서 동시 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전반적으로 동심을 세련된 시적 기교로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금년에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공감할 수 있는 동시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동시 하면 연상하는 틀에 박힌 발상과 과거의 동심에 머문 작품도 적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여섯 작품을 골라내어 검토했다. 서유경의 '터져버린 것은?'은 소외된 아이의 심리를 신선한 비유로 그려냈다. 하지만 발상이 너무 평범했다. 하기백의 '굴다리 슈퍼'는 오래된 흑백사진첩을 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세밀하고 촘촘한 묘사가 돋보였으나 너무 낡고 오래된 풍경화를 보는 듯했다. 임준진의 '벚꽃과 잡초'는 아름다운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길고 산문 같았다. 강정아의 '아마도 빗방울'은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발걸음이 경쾌한 귀여운 동시였다. 그러나 빗방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없었다. 서영미의 '동글동글 걷는 시간'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예쁜 동시였으나 너무 단조로운 것이 흠이었다.

  김경련은 사물의 의미를 포착하는 능력과 탄탄한 시적 기량에 신뢰가 갔다. 당선작 '모래시계'는 시간을 의인화하여 시간의 소중함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소재를 세련된 시적 문장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풀어낸 솜씨에서 만만치 않은 역량을 확인했다. 사소한 소재에서 깊이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눈과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자연스러운 시상 전개와 시를 형상화하는 기량도 돋보였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