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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북소리 / 이재영

 

  "세 시에 시장 입구에서 만나, 시간 꼭 지켜."

  지현이가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알았어, 너나 늦지 마."

  건우가 맞받아치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소리야, 우린 같이 가. 두 시 오십 분에 교문 앞. 알았지?"

  지현이는 내게 다시 약속을 걸었다. 나는 눈길을 피하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국어시간에 수행평가로 '우리 고장 기사쓰기'가 주어졌다. 우리 모둠은 시장의 모습을 조사하기로 했는데 오늘 마침 오일장이 열린다. 터덜거리며 집에 온 나는 가방을 던져두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애들이 시장에 가면….' 

  생각만 해도 한 숨이 나왔다. 나는 애먼 신발코로 바닥만 콕콕 찧었다.

  "짠짜라짜잔, 짜잔짜 짠짠." 

  입구부터 음악소리가 신나게 흥을 돋우었다. 건우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와 지현이는 건우에게로 뛰어갔다. 

  "공터에서 각설이 공연하던데. 우리, 그것부터 보러가자." 

  건우가 기대에 찬 말투로 부추겼다. 

  "아, 아니…." 

  막을 새도 없이 지현이와 건우가 공터로 달렸다. 나는 마지못한 걸음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갔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밥 한 술 남아 있다면 버리지 말고 날 주소. 품바품바, 품바야."

  구성진 노랫가락이 공터를 울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건우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맨 앞자리로 파고들었다. 지현이가 내 손을 잡고 건우 뒤를 따랐다. 엉겁결에 이끌린 나는 앞자리에 앉았다.

  "야, 꼽추 각설이 좀 봐. 진짜 웃긴다. 크큭." 

  건우가 손가락질 했다. 용만이 삼촌이 등에 바가지를 올린 채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북으로 장단을 맞추던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각설이 분장을 한 아빠는 나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어, 소, 소리, 소리다." 

  용만이 삼촌이 히죽거리며 내게 다가오려 했다. 아빠가 얼른 엿장수 가위를 들고 막아섰다.

  "짤랑 짤랑 찰찰찰…." 

  북 대신 가위소리가 박자를 맞추었다. 아빠는 어리둥절해 하는 용만이 삼촌의 손을 끌고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이, 재미없어. 야, 빨리 조사나 하러 가자." 

  더 앉아있기 힘들었던 나는 아이들을 재촉했다. 건우와 지현이는 못내 아쉬운 듯 공연장을 힐끔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어스름이 내릴 때 트럭이 집 앞에 멈췄다. 아빠와 용만이 삼촌이 짐을 내렸다. 나는 엄마와 함께 짐을 정리했다. 내가 힐끗힐끗 곁눈질해도 아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묵묵히 물건을 내렸다.

  "아빠, 이제 각설이 공연, 안하면 안 돼? 꼽추 흉내 내는 거라도 그만 하던지."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나는 아빠에게 볼멘소리를 해댔다. 소품을 손보다 말고 아빠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뜯어진 각설이 옷을 꿰매던 엄마가 나를 보며 타박했다. 

  "철없는 소리하고는, 우리가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게 다 이것 때문인데…."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구시렁거렸다. 

  "애들이 알면 놀린단 말이야. 엄마, 아빠는 내 생각을 조금도 안 해."

  소리를 지른 나는 쿵쿵거리며 방을 나왔다. 

  '툭.' 

  발길에 무언가가 채였다. 내려다보니 용만이 삼촌이 꼽추 흉내를 낼 때 등에 올리는 바가지였다.

  '바가지를 없애면 꼽추 흉내는 못 내겠지.' 

  나는 바가지를 집어 들고 살금살금 뒷마당으로 갔다. 감나무 밑에 바가지를 엎어 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먹크기만한 돌을 주워 힘껏 내리쳤다. 

  '뿌직.' 

  바가지가 쪼개져 세 동강이 났다. 부서진 바가지를 보니 더럭 겁이 났다. 나는 바가지 조각을 발로 꾹꾹 눌러 흙으로 덮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했다. 

  "오늘 장날이지. 우리 꼽추 각설이 구경 가자. 그거 진짜 웃기더라."

  하굣길, 건우가 등을 굽히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아이들이 킥킥 웃었다. 흉내 내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나는 딴 곳을 보고 걸었다. 

  "어이, 은소리, 너도 갈래?"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흔들었다.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장으로 달려갔다.

  '꼽추 춤을 추려나?' 

  사실, 공연을 어찌할까 궁금했다. 나는 아이들과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시장 앞 큰 길까지 북소리가 울렸다. 다가갈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작은 북처럼 울렸다. 나는 먼저 간 아이들을 살피며 어른들 틈에 끼어들었다. 북소리와 함께 아빠의 재담이 이어지는 동안 간간히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 분명 내가 깨버렸는데….' 

  용만이 삼촌이 슬로비디오처럼 꼽추 춤을 추고 있었다. 바가지가 깨지면 못할 줄 알았는데,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소리 친구, 우, 우리 소리는?" 

  춤을 추던 용만이 삼촌이 건우를 보고 소리쳤다. 건우와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만이 삼촌을 바라보았다. 쿵쿵쿵, 가슴속에서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눈을 피해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다 들통 났어. 내일부터 애들이 또 놀려대겠지?' 

  집으로 오는 내내 쿵쿵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부르릉, 피익." 

  트럭이 돌아왔다. 바깥에서 수선스러운 소리가 났지만 내다보지 않았다. 나는 컴컴한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 했다. 

  "소리야, 자니? 어디 아픈 거야?" 

  엄마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손이 차가웠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있었다.

  "아유, 얘가 많이 피곤했나." 

  엄마는 이불을 당겨 덮어주고는 방을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가슴이 울컥했다. 눈물이 흘러넘쳐 베개를 축축이 적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까무룩 잠들었던 나는 반짝 눈을 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마루로 나왔다. 열려진 방 문틈 사이로 빛이 흘러나왔다. 도둑고양이처럼 뒤꿈치를 들고 지나려는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내 발을 붙잡았다. 

  "지난번에 소리가 제 친구들이랑 공연장 왔다가 날보고는 못 본 척 하더라구. 제 딴에는 부끄러웠던 모양이야. 용만이 바가지도 그렇고, 부모가 못나서 애한테 짐만 지우는 건지. 이참에 공연 때려치울까?"

  "새로 계약한지 얼마나 됐다고, 공연 때려치우면 또 빚인데…. 각설이 안하면 뭐해서 먹고 살아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거 말고 당신 할 줄 아는 거 있어요?" 

  아빠의 술잔 비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요번 시장공연만 바짝 하면 빚도 줄고 우리도 형편이 좀 나아질 텐데…. 에고, 소리 클 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 보자구." 

  나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방문 옆에 서 있었다. 

  "은소리, 장터 꼽추 각설이, 너랑 아는 사람이야?" 

  건우가 촉빠른 눈초리로 다가오며 물었다. 

  "누구? 몰라, 왜 그래?"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딴청을 부렸다. 

  "아니, 꼽추 각설이가 우리 소리라고 말해서…. 뭐, 네가 잘 못 들었나봐."

  건우는 더 묻지 않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금세 소문날 게 뻔하다. 아이들만 만나면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공연이 없는 날이었다. 다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품일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가방을 팽개치고 리모컨을 찾았다. 리모컨 옆에 북채가 있었다. 나는 벽에 걸려있던 북을 내렸다. 북채로 북을 퉁퉁퉁 내려쳤다. 북소리에 가슴도 둥둥 울렸다. 나는 더 세게 북채를 내리쳤다.

  "둥 둥 둥 둥. 두둥 두둥 두둥 둥." 

  아빠가 공연하는 장단을 떠올렸다. 아무렇게나 나던 북소리가 장단을 맞춰갔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북을 두드렸다. 실컷 두드리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저녁때가 훌쩍 지나서 어른들이 돌아왔다. 아빠가 오른 팔에 깁스를 두르고 있었다.

  "아빠, 팔이 왜 그래?" 

  "별일 아니야. 물건 나르다 미끄러져 짐 더미에 깔렸어." 

  "소, 소리야, 형, 형님 팔이 뿌지직되어서 수, 수술해야 된다." 

  용만이 삼촌이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아빠의 팔만 쳐다보았다.

  "이참에 좀 쉬어요. 대신 삼촌이랑 내가 어쨌든 공연 꾸려나가 볼 테니."

  저녁을 먹으며 엄마가 아빠를 다독였다. 아빠는 어눌한 숟가락질로 국 몇 술 뜨고는 밥상에서 물러났다. 용만이 삼촌은 눈치를 보며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하필 수술 잡힌 날이 장날이라니…. 용만이랑 둘이서 해 내겠소? 혼자서 장사준비에 공연까지 하는 건 무리일 텐데." 

  아빠와 엄마는 한숨만 연거푸 내뱉었다. 무거운 돌 하나가 걸린 듯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아침부터 집안이 부산스러웠다. 아빠가 없으니 오늘은 준비가 엉망이었다. 엄마와 용만이 삼촌은 짐을 올렸다 내렸다했다. 겨우 정리되자 엄마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소리야, 거 걱정 마. 이 용만이 사 삼촌이 아빠 몫까지 자 잘할게."

  트럭이 털털거리며 출발했다. 나는 트럭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았다.

  학교에 있어도 마음은 온통 장터에 가있었다. 혼자서 동동거릴 엄마가 걱정 되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나는 시장으로 내달렸다. 

  "짠짜라 짜잔, 짜짜잔 짠짠." 

  분명 같은 음악소리인데 오늘은 흥이 나지 않았다. 기분 탓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연장으로 뛰어갔다. 공연장은 썰렁한 기운이 맴돌았다. 엄마는 스피커를 연결하며 끙끙댔고 용만이 삼촌은 무대 구석에서 쭈뼛거렸다. 

  "공연, 안 하요? 언제까지 기다려. 명 짧은 사람 숨 넘어가겠구만."

  낮술에 취한 아저씨가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소리를 키웠다 줄였다.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북 치는 거 내가 할게." 

  "뭐? 네가 어른들 일을?" 

  "나 할 줄 안단 말이야.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연습해봤거든." 

  "내 자식까지 각설이 하는 거 나는 보기 싫다."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부라리며 나를 밀어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는 내 눈을 피했다. 나는 북채를 잡고 무대에 올라섰다. 한 가운데 북이 보였다. 콩닥거리던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 소리다." 

  무대 앞에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북채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둥 둥 두둥 두둥 두두두두 둥둥." 

  북소리가 장터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이야. 소리가 북 치는 소녀가 되었어."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박수를 쳤다. 건우가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다. 지현이가 손나팔을 입에 대고 소리쳤다. 

  "소리야, 힘내! 우리 고장 기사쓰기에 너 이야기 쓸 거야." 

  북소리가 점점 커졌다. 북소리에 맞춰 내 가슴도 부풀어 올랐다. -끝-





  <당선소감>


   "어른들 세상에서 성장통 앓는 동심 읽을 것"


삶의 위기에서 출구를 찾을 때, 내 안의 '나'가 아우성을 쳤습니다. 뭘 해야 하지? 물었을 때, 내 안의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표를 들고 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 곳간이 텅 비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꿈꾸었던 미래도 행복한 낭만동산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길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에는 갈 길을 몰라 헤맸습니다. 모퉁이를 돌 때는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려 휘청거렸습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기도 꽉 막힌 도로에 옴짝달싹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힘에 부쳐 돌아갈까 수없이 고민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내 손을 붙잡았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이제는 묵묵히 내 길을 가야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쳐야 하겠다는 거창한 야망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골목에서 재잘거리는 동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미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성장통을 앓는 동심을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가슴에 딱 어울리는 별 하나 키울 수 있도록 걱정하고 고민하렵니다. 

격려하고 힘을 보태준 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답잖은 이야기 경청하고 기탄없이 조언해준 대구 큰샘아동문학회 문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동화작가가 되는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과 마당을 펼쳐주신 부산일보에도 감사드립니다. 능력과 노력에 비하면 과분한 관을 썼습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1972년생.

  ● 제21회 공무원문예대전 동화부문 동상. 

  ● 대구왕선초등학교 재직 중.


 

  <심사평>


  "탄탄한 구성에 산뜻한 마무리 돋보여"


7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최종심에 오른 세 편의 작품, '인사' '북소리' '소원을 들어 드립니다'를 다시 한번 꼼꼼히 읽었다. '인사'는 동시 중에 뽑힌 유일한 작품이고, 나머지 두 편은 동화였다.

2년 연속 동화가 당선되어 솔직히 올해는 좋은 동시 한 편 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난히 동시에 신경을 기울였지만, 이런 바람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올해도 역시 동화를 뽑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00편 가까운 동시 작품 중에서 단 한 편도 가려내지 못했다는 것은 동시를 위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인사' 역시 평범한 주제와 패턴화된 의성어들로 인해 당선작으로 내놓기에는 장점보다는 결점이 너무 많았다. 아쉽지만 동시는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두 편의 동화에서 결정을 봐야 했다. '소원을 들어 드립니다'는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지고 결말도 산뜻하지 못하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달고나 할아버지를 빌어 지은이는 '소원이라는 게 없어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 동화의 핵심 주제이지만, 이야기를 통해 이런 주제를 독자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반면 '북소리'는 위에 지적한 문제들을 비교적 잘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탄탄한 구성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처한 부정적 현실을 잘 이겨내고 빠르게 적응해가는 한 소녀의 심리상태를 대화체 문장을 통해 무리 없이 그려냈으며, 마무리도 매우 산뜻해 당선작으로 뽑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심사위원 : 공재동, 배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