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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침착하게 사랑하기 / 차도하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당선소감>

   "시는 마스킹 테이프…무엇이든 쓰겠다"



  기운이 나지 않아 바닥에 붙어있을 땐 나를 저주하는 사물들과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싸우는 상상을 한다. 이 생각을 할 땐 늘 나를 저주하는 진영이 우세한 형상인데, 사실 승패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기운을 내면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이기니까. 그럼 기운을 내어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이렇게 겨우 힘을 내어 살면 무엇이 되는 걸까. 무엇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아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비웃음 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죽기엔 아깝다. 글을 잘 쓰니까. 글을 잘 써서 발표도 하고 책도 내고 어린 내가 그걸 읽고 오래 간직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누가 이걸 하나하나 뜯어보며 아니라고, 그게 죽지 못할 이유는 못 된다고 따져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 거니까.

  시 당선 소감을 써야 하는데 죽느냐 사느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겐 이게 비슷한 이야기인가보다. 사실, 시는 그냥 뜯어 쓰는 마스킹 테이프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든 쓸 거라는 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도 싶지만 나는 이름을 안 믿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수업 듣고, 책과 술, 밥을 사주고, 바다에, 놀이공원에 놀러가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내 옷, 내 양말, 노래 취향에 영향을 끼친 분들 감사합니다. 내가 힘들 때 쪽지를 전해준 친구 고맙습니다. 요즘은 어떻냐고 넌지시 물어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내 시를 꼼꼼히 읽고 어떤 부분이 좋은지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말해준 사람들 고맙습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중년 여성에게도 감사합니다.

  잘 살고 잘 쓰겠습니다. 다 쓰고 나니 둘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둘 다 잘해내고 싶습니다.

  ● 1999년 출생
  ●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는 천진한 어투 

  다락방에 몇 년은 묵힌 것 같은 누르스름한 종이에 볼펜으로 눌러쓴 시가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가정사의 고달픔과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쓴 것이었는데, 시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다. 당연히 박스에 다시 들어갈 원고였지만 어쩐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시가 되든 안 되든 쓴다는 행위의 거룩한 순간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시를 보낸 모든 이들이 이미 시인이라 믿는다. 그분 중에서 한 명의 시인을 공식적으로 호명할 수 있어 두렵고 영광이다. 안타깝고 기쁘다.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혹은 각종 지원 사업 심사위원은 수많은 응모작 중에 당선작 일부를 골라야 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지 최근의 문학 흐름을 짚는 선지자나 응모작의 전반적 수준을 평가하는 심판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하긴 해야 하나 마땅한 이가 달리 없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라 생각함이 옳다. 그러니까 심사위원은 각자의 양심과 문학관에 따라, 심사를 최대한 ‘잘하면’ 된다. 내가 무언가 놓칠 수 있다는, 겸손함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그 심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차도하 씨의 ‘침착하게 사랑하기’ 외 4편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골똘하게 보냈던 긴 예심 시간과 달리 본심에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탁월했다.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 천진해 보이는 어투가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고, 너른 시선이 가벼운 문체를 단속했다. 이 같은 특성을 묶어 범박하게도 ‘새로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리라. 무엇보다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이 눈부셨다.

  ‘온몸의 외국어’외 5편을 보내준 고명재씨와 ‘모든 끝은 둥글다’ 외 4편을 보내준 윤혜지씨의 원고도 함께 논의했다. 충분한 시적 성취가 엿보였으나, 구태여 발견한 작은 이유들로 당선작으로 선하지는 못하였다. 어디에선가 다시 이름이 불릴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차도하 시인께 축하의 마음을 건넨다. 찬란한 순간의 공간에서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넘어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시작이니, 크게 숨을 들여 마셔도 좋겠다. 

심사위원 : 박상순, 김민정,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