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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우리집엔 할머니 한 마리가 산다 / 송정양

 

우리집엔 할머니 한 마리가 산다. 할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다. 할머니의 시간은 나보다 일곱 배나 빨리 간다. 할머니는 개다. 그것도 아주 늙은 개다.

할머니의 나이를 들으면 모두 깜짝 놀란다. 개 나이로 스무 살이면 정말 오래 산 거라고 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이 넘는다고. 할머니는 정말 백 살 먹은 할머니처럼 잘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털도 다 빠져 듬성듬성했고 드러난 살가죽 위로는 울긋불긋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할머니였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에게도 ‘이뽀’라는 이름이 있었다. 아빠는 할머니를 처음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이뽀’라고 이름 지었다. 하지만 이제 아빠를 빼고는 아무도 할머니를 이뽀라고 부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이뽀라고 불리던 시절 할머니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아주 똑똑했다고 한다. 내 목숨을 구했을 정도로. 내가 강아지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던 때 전화 통화를 하던 엄마가 할머니의 요란한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내가 베란다를 향해서 기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할 때면 엄마는 나를 꼭꼭 끌어안았다.

매일 잠만 자는 할머니가 내 목숨을 구했다니. 그건 아마 우연이었을 거다. 개들은 원래 잘 짖으니까.

사실 예뻤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그건 증거가 있으니 별 수 없다. 할머니의 예전 사진이 TV 위에 놓여있다. 하얀 털에 인형 같은 검은 눈동자와 반짝이는 코. 사진 속에 할머니는 정말 예쁘다. 꾀순이가 낳은 강아지처럼 말이다.

꾀순이는 내 친구 규민이가 키우는 누런 강아지다. 삼일 전 꾀순이가 새끼를 낳았다. 세 마리였다. 두 마리는 꾀순이를 꼭 닮은 누렁이였고 한 마리는 눈부시게 하얀 흰둥이였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들이 꼬물거리자 우리들의 입에서는 우와하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쉿!”

규민이가 입에 손을 갖다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보여주면 안 되는 건데 특별히 보여주는 거라며 생색을 내고는 말했다.

“엄마가 강아지들 눈 뜨면 다른 사람 준다고 했어. 키우고 싶은 사람!”

아이들은 너도 나도 손을 들었다. 나 역시 질세라 손을 번쩍 들었다. 규민이와 나는 제법 친한 편이니 집에서 허락만 받는다면 한 마리는 내 차지가 될 것이다. 나는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진 흰둥이가 꼭 갖고 싶었다.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안 돼. 우리 집엔 할머니가 있잖아.”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내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할머니 때문에 다 틀리고 말았다. 나는 대낮부터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할머니를 흘겨보았다. 오늘 따라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다. 

꾀순이의 강아지들이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눈을 뜨던 아침, 우리 집 할머니는 또 똥을 쌌다. 그것도 깨끗하게 빨아놓은 아빠의 와이셔츠 위에. 엄마가 똥을 치우며 잔소리를 했다.

"내가 못 살아! 이 할머니야! 여기다 싸면 어떻게! 왜 꼭 싸도 이런 데다 싸?"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코를 싸쥐고 있었지만 아빠는 코가 막혔는지 꾸역꾸역 밥만 잘 먹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을 때처럼 날카로워지자 아빠가 중얼거렸다.

“다시 빨면 되지.”

엄마가 아빠를 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빨아, 그럼! 이제 걷지도 못하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저번 달에 들어간 병원비만 해도 얼마야! 차라리 안락사를 시키던가…”     엄마가 말꼬리가 갑자기 흐려졌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모두 붉어졌다. 나는 안락사가 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조용한 거실에 할머니의 똥 냄새만 점점 지독해져갔다.

그날 밤 아빠는 기저귀를 한 박스나 사서 돌아왔고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할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웠다.

안락사는 편안한 죽음이라고 규민이가 말해줬다. 거짓말이다. 나는 차에 치여서 죽어가는 개를 본 적이 있다. 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낑낑대며 아파했다. 만약 조용하게 죽는 개가 있다면 그건 너무 놀랐거나 너무 아파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걸 거다. 천국에 간다는 말도 가짜 같았다. 진짜 천국이 있다고 해도 개를 받아줄까? 초등학생인 나도 믿지 않는 말을 아빠가 믿을 리 없다.

기저귀 덕에 더 이상 할머니가 옷이나 이불에 똥을 싸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더 자주 싸웠고 안락사라는 말도 더 자주 나왔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중에도 할머니는 조금씩 죽어갔다.

할머니는 이제 단 한발도 나오지 않고 자기 방석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 털도 살도 너무 빠진 할머니는 저 혼자 추워 벌벌 떨었기 때문에 엄마는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혀주었다. 

“할머니! 밥 먹어!”

엄마가 할머니의 코 앞에 밥그릇을 놔주었다. 불평을 하면서도 똥을 치우는 것도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밥을 주는 것도 결국 엄마였다. 엄마는 먹기 편하게 사료를 우유에 말아서 주었다. 할머니는 조금 먹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가 더 먹으라며 손에다 사료를 얹어 입에 가져다 대주었지만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래도록 할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는 이상하다. 많이 먹어봐야 똥만 많이 쌀 텐데. 가장 오래 산 개는 스물아홉 살까지 살았다. 하지만 우리 집 할머니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을 뜬 강아지들은 더 빨리 컸다. 한 마리 두 마리 주인을 찾아가더니 이제 흰둥이만 남았다. 모두 흰둥이를 탐냈지만 내가 몇 번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줘가며 부탁한 덕에 아직 남아있을 수 있었다. 내 용돈이 바닥이 나고 내일까지는 꼭 허락을 받아오겠다고 규민이에게 약속을 한 날까지도 할머니는 살아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며칠째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뚫어져라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아빠는 묵묵히 사과를 먹고 있었다. 이럴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잘 알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죽으면 강아지 키워도 돼?”

“뭐?”

엄마의 입이 바보같이 벌어졌고 아빠의 손에서 사과가 툭하고 떨어졌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일어난 아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하는 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들려왔다.

엄마가 내 머리를 쿵 하고 쥐어박았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아파서는 아니었다. 왜 엄마가 더 세게 쥐어박아 주지 않는지 속상했다. 나는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새벽이 되도록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땐 너무 무서운 얼굴이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흰둥이가 결국 다른 집으로 가게 됐다며 규민이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할머니가 죽는 날이다. 엄마의 말에도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꼼짝도 하지 않던 아빠였지만 할머니가 밤마다 내는 신음 소리에는 견디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다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피아노 학원까지 다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엄마랑 아빠는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힌다고 했다. 온 집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할머니가 있는 작은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방석 위에 누워있을 줄 알았던 할머니가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 다리 사이를 지나 현관으로 가더니 어서 문을 열어달라는 듯이 그 앞에 앉았다. 할머니의 눈은 강아지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늘 밤 할머니는 죽을 것이다. 며칠 더 산다고 해도 그건 아픈 날들이 늘어나는 것뿐이니까. 할머니는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쓸모도 없다. 더 산다고 해도 가장 잘 뛰는 개나 도둑을 잘 잡는 개가 될 리도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가 될 리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개는 될지 모른다. 

할머니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수록 내 마음도 흔들렸다. 내 손이 나도 모르게 현관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의 모습에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후다닥 할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왔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길 건너에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무섭게 짖어댔다. 어찌나 무섭게 짖어댔는지 나는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러자 내 앞으로 아슬아슬하게 자동차가 휙 하고 지나갔다. 한 발만 더 갔더라면 이라고 생각하자 등 뒤로 아주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한숨을 돌리고 보니 길 건너에 할머니가 쓰러져있는 게 보였다. 나는 할머니를 품에 안았다. 할머니의 몸은 따뜻했지만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날 결국 할머니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에 가기엔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 탓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아빠가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너머에서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뒷모습이 크게 흔들리더니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눈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할머니가 죽은 거야?”

“아니야. 할머니는 자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엄마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구는 게 나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아빠의 등 너머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정말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이 들었을 때조차 낑낑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던 할머니. 하지만 지금 마지막 잠에 빠져있는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실컷 놀다 젖을 빨고는 엄마 품에 잠들어 있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나는 혹시 할머니가 숨을 쉬고 있지 않을까 살짝 몸에 손을 대어보았다. 할머니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직 따뜻했다. 아주 천천히 할머니의 영혼이 떠나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하지만 아빠는 아프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이뽀야, 이뽀야.”

아빠의 손은 부드럽게 할머니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보채듯이 들렸다. 아빠가 몇 번이고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아빠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아빠. 울지 마세요. 할머니는 천국에 갔을 거예요.”

아빠의 어깨가 더욱 크게 흔들렸다. 아빠는 내 말을 안 믿었을지도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개들도 천국에 갈지 모른다고.   

우리 집엔 할머니 한 마리가 살았다. 개들이 천국에 간다면 할머니는 분명 천국에 갔을 것이다. 가장 빨리 뛰는 개도, 도둑을 잘 잡는 개도 아니었지만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개였으니까.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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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필명인 ‘송정양’은 저를 키워주신 친할머니의 존함입니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알뜰하게 돌봐주셨지만 전 좋은 손녀딸이 아니었습니다. ‘까칠 벌레’. 할머니는 툴툴거리기 선수였던 절 그렇게 부르곤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가를 깨달았을 때는 그 빚이 평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나 있었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제 마음 한쪽도 함께 오그라들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이름을 걸고 쓰면 정말 좋은 동화를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는 부적과 같은 분이니까요.

대학 시절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쓰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감사한 사람들의 이름만 써도 부족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그러네요. 가진 것 없이 부족하기만 한 사람이다 보니 빚진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나를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 잊을 수 없는 동국대 희곡분과원들, 가르침을 주신 동국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꿈같기만 하고 멍합니다. 그저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봅니다.



  ● 본명 조현진.

  ● 1981년 서울 출생. 

  ●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전문사과정 졸업.

  ● 2004년 신작희곡페스티벌 공모 ‘질마재신화’ 당선.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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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응모작들의 특징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재 면에서는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가정문제(이혼, 실직가장)를 탈피해 다문화, 장애아동, 동물, 우주 등으로 다양해졌고 서술 면에서도 옛이야기 형태나 다큐멘터리 기법 등 색다른 모색이 눈길을 끌었다. 함량미달의 작품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응모작 중 추린 것은 ‘엄마랑 아빠랑 캥거루랑’, ‘뭐, 어때’, ‘거짓말 일기장’ ‘통일 박물관’ ‘보았다’ ‘우리 집엔 할머니 한 마리가 산다’였다. ‘엄마랑…’은 저학년 동화로는 손색이 없으나 당선작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뭐 어때?’와 ‘거짓말 일기장’은 탄탄한 구조와 공감어린 내용이지만 에피소드에서 그친 느낌이다. ‘통일 박물관’은 발상과 접근방식이 새로웠지만 20매로 담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아 급히 치닫는 느낌이 들게 했다. ‘보았다’는 폐쇄회로(CC)TV를 의인화한 점이 참신했지만 어린아이가 배꽃꿈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늙은 개의 죽음을 다룬 ‘우리 집엔 할머니가 한 마리가 산다’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주제와 흥미를 모두 잡은 수작이다. 동정이나 감상, 죄책감 같은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다.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심사위원 : 김경연, 채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