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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탈 / 홍인재

 

그것은 문구점 한쪽 구석진 곳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처박혀 있었어. 아이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거야. 무심코 집어 들었어. 그리고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가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젖 먹던 힘을 내어 불어내고 손으로 대충 닦았어. 불그레한 얼굴에 이마는 툭 튀어 나오고 눈은 뻥 뚫려 있었어. 주먹코는 납작한데 입은 헤벌리고 있는 거야. 참, 볼만하더군.

-그래, 바로 이거야.

등교시간 문구점 안은 학교에 준비물을 사 가려는 아이들로 북새통이었어. 모두들 서로 먼저 계산을 하려고 아우성이었지.

-짜식들, 학교에 좀 늦으면 어때서.

난 맨 뒤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 계산대로 갔어.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어. 수민이 왔니? 근데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건데. 이거 어디에 있었니?"

아저씨가 그것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어.

"저 안쪽 선반에요. 얼마에요? 나 많이 늦었는데."

"글쎄. 가격을 잘 모르겠는데. 이거 얼마를 받아야 하나. 그냥 오백 원만 내라."

학교 가는 길에 바람이 찼어. 휘파람이 절로 나더군.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어서 정말 기뻤어.

'땡'하고 2교시 끝 종이 울리자마자 난 그것을 꺼냈어. 순식간에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더니 모두들 한마디씩 했지.

"우와, 이거 재밌게 생겼다."

"한번 써보면 안될까?"

난 애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어. 그리고 거들먹거리며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 애들을 따돌리고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니 안쪽에 깨알 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어. 마법의 주문처럼.

'억울할 때 탈을 써봐.'

미술시간은 정말 시끄러웠지.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어.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금방 눈치 챘지. 내 짝꿍 찬이가 몰래 방귀 뀐 것을 말이야. 이런 기회를 그냥 넘길 내가 아니지. 나는 벌떡 일어나 손나팔을 만들었어.

"아-. 아-. 주민여러분.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김찬. 아-.아-. 바로 우리 반 김찬이라는 아이가 똥방구를 뀌었으니 모두 방독면을 쓰고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어. 그 시끄럽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내가 홈런을 친 거야. 잠시 후 상황 파악을 했는지 남자 아이들은 교실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여자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웃었어. 찬이만 얼굴이 빨개진 채 주먹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았어.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지.

바로 그때였어.

"아야! 아……. 아파요."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별 수천 개가 떴어.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어. 찬이가 아닌 벌름코에게 귓불을 잡혔어. 벌름코가 누구냐고? 벌름코는 바로 우리 선생님이야. 화가 났을 때마다 코를 벌름거린다고 우리가 지어준 별명이지. 벌름코가 눈을 치켜뜨고 양쪽 귀를 잡아 당겼어.

"너 이놈의 자식. 또 사고 쳤지?"

벌름코는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귀를 잡고 한껏 위로 끌어올렸어. 난 양쪽 귀를 잡혀 허공에 뜬 채 발을 동동 굴렀어. 귓불에 불이 난 것 같았지 뭐야. 한참 후에야 벌름코가 귀를 놓아 주었어.

근데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질금질금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거야.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창피해서 그 탈을 얼굴에 썼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했어. 내가 놀리긴 했지만 찬이가 방귀를 뀐 건 사실이잖아.

-억울해. 정말 억울해.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탈을 쓴 채 벌름코를 노려보며 중얼거렸어. 그러자 그 일이 터진 거야. 그 이상한 탈이 내 얼굴에 딱 달라붙으면서 녹는 거 같았어. 약간 따끔거렸어. 머리가 잠시 어지러웠고 몸도 조금 붕 뜬 것 같았지.

"어, 선생님이 왜 여기 앉아 있어요?"

바로 그때, 옆에서 애들이 웅성거리며 나한테 말하는 거야.

"선생님,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돼요?"

이어서 성재가 날 보며 물었어.

-얘가 미쳤나. 왜 날 보고 선생님이래.

근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야. 앞을 보니 저 멀리 벌름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린 눈이 딱 마주쳤어. 놀라 등잔만 해진 눈이 정말 볼만했어. 난 순간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거야. 그러나 아직 벌름코는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성재한테 큰 소리로 말하는 거야.

"안 돼. 수업 끝나고 가."

그러자 성재가 큰소리로 말했어.

"야, 수민이 너 이 자식. 왜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 그리고 선생님한테 물었는데 네가 왜 대답해?"

벌름코가 벌떡 일어섰어. 그리고는 바람처럼 달려와서는 평소 버릇대로 성재 머리에 꿀밤을 먹였어. 그러자 성재가 벌름코한테 달려들었어. 난 이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정리가 되었어. 그래, 그랬어. 내가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거야. 선생님은 내가 되어 있었고. 웃음이 쿡쿡 나왔어. 난 벌름코처럼 큰 소리로 힘차게 말했어.

"이놈의 자식들 그만하지 못해."

간신히 둘을 떼어놓고 난 후 양쪽 다 귓불을 한껏 잡아 당겼지. 그리고 벌름코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어. 벌름코 눈에서 불꽃이 '파박'하고 튀었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름코를 향해 씩하고 웃어주었어. 벌름코가 뭐라고 하려다 입을 꾹 다무는 게 보였어. 아마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

이제 교실에서는 내가 왕이었어.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지. 사회시간에는 자율학습을 시켰어.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며 숨소리도 못 내게 했지. 떠드는 애들은 귀를 잡아 당겼어. 특히 뒷자리에 앉아서 힘세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을 주로 말이야. 국어시간에는 인심을 썼어. 오락시간을 주니까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지. 모두들 신나게 떠들었어. 하도 떠드니까 옆 반 선생님이 우리 교실을 들여다보러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냥 가버렸어.

근데 4교시 수학시간이 문제였어. 또 자습을 시키려고 하는데 민지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는 거야.

"선생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수학책을 들고 앞으로 나오는 거야. 민지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였어.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멀리서만 봐도 심장이 콩닥거렸거든. 그런 민지가 내 옆에 얼굴을 바짝 대고 문제를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어.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때 내 얼굴에 아마 종이를 갖다 대면 불이 붙고도 남았을 거야. 그런데 아뿔싸. 민지는 도형을 그리는 방법을 물어보았어. 곱하기 정도라면 모를까 도형을 어떻게 그리지? 어떻게든 민지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내 머릿속이 캄캄한 터널 같았어. 아이들이 숨을 죽인 채 날 바라보았어. 서른 개의 까만 눈동자가 일시에 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지.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어.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앞이 캄캄했어. 그런데 다시 또 누군가 손을 들었어. 벌름코였어. 나와 눈이 마주친 벌름코가 한쪽 눈을 찡긋했어.

"선생님, 그거 제가 설명하면 안 될까요?"

벌름코가 또박또박 말했어.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 난 못이기는 척하고 벌름코에게 기회를 주었지. 벌름코가 매끄럽게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어.

"와! 수민아. 너 정말 잘한다."

아이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지. 민지가 살짝 웃는 모습이 보였어. 다행히 벌름코 덕분에 위기를 넘겼어.

-벌름코. 아까 내 귀 잡아당긴 것 용서해줄게. 이젠 억울한 거 다 가셨어.

바로 그 때였어. 내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졌어.

"수민아, 탈 벗고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야지."

벌름코가 웃으며 선생님 의자에 앉아있던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어.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내 얼굴에 아까 그 탈이 씌워져 있었던 거야.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 벌름코와 나만 남았어. 선생님이 코를 벌름거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어. 벌름거리는 코를 보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어. 한참 후에 벌름코가 씩 웃으며 말했어.

"수민아, 그 탈 좀 빌릴 수 없을까?"





  <당선소감>


   "동화 다시 만나면서 행복한 꿈"


2년 전이군요. 아이들과 독서캠프에서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나는 그 때 꿈은 어릴 적에만 갖는 것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내 꿈은 내가 쓴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들려주는 거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교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부터 잊어버렸던 동화를 만나면서부터 꿈을 꾸었었나 봅니다.

동화를 쓰면서 동화속의 수민이를 만나고 수민이가 되어 생각하고 수민이가 되어 웃으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수민이도 되고 방귀 뀐 찬이도 되고 민지가 되기도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왕벚나무 할아버지도 되고 연주도 되고 로빈이도 되어 아이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길게 꿈을 꾸고 싶습니다.

이 긴 꿈을 꿀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숙제를 미루고 게으름을 피워도 언제나 너그럽게 봐 주시고 술 사주시면서 같이 이야기 나눠주시던 그분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내내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밤늦게까지 책을 뒤적이고 연극을 보고 시를 읽으면서 같이 공부했던 문창과 대학원 학우들도 고맙습니다. 그대들과 앞으로도 시와 동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때때로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면서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랑하는 딸과 아들, 그리고 같이 이야기 나눠주면서 격려해주던 남편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지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67년 임실 출생.

  ● 전주교대를 졸업.


 

  <심사평>


  "반전의 묘미, 재미 살린 판타지"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은 언제나 응모자들과 더불어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도 설레게 한다. 예심을 거쳐서 넘겨받은 작품은 '탈' 등 6편이었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각자 읽고 또 읽어보면서 거르기를 했다. 그런 다음 작품마다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다섯 병의 붉은 와인'은 주인공이 어린이고 어린이 입장에서 써졌는가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아빠는 슈퍼맨'은 실업문제를 다룬 소재로 어린이들의 생활과 약간의 거리가 있고, 교훈성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도 난 행운이야'는 낚시 이야기로 생명존중과 환경문제를 다루었으나 조금은 작위적이어서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지 않나 싶다.

'인형그리기'는 생활동화로 우리주변에서 겪을 법한 일을 재미있게 써 주었다. 그러나 좀 더 참신한 소재와 시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보태졌으면 했다. '얼음나무'는 도입부에서 독특한 과학적 분위기가 돋보였다. 후반부로 오면서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한 점과 코가 찡한 감동이 따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당선작으로 올린 '탈'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문장도 어린이 입장에서의 단문이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내용도 학교 교실 안에서 있을 법한 실감나는 이야기였다. 또 어린이가 주인공인 점과 구성에서도 "억울할 때 탈을 써 봐."라는 반전의 묘미를 살려서 재미를 주었다. 다만 탈을 쓰는 장면, 즉 환상의 세계로 전환 되는 개연성이 더 그럴법하게 드러났었더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 한편 환타지 동화로 대성을 기대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동화는 미래를 창출하는 예지를 담고,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고 본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정진을 바라며 당선을 축하하고, 도전한 다른 분들께도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서재균, 윤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