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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우리 아빠 / 정경숙

 

우리 아빠는 농사꾼이다. 그런데 가진 땅이 없다. 남의 논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 우리 논을 갖는 것, 바로 아빠의 꿈이다.

아빠는 꿈을 이루려고 빚을 얻었다. 빚을 갚기 위해 소와 개를 키워 판다. 고라니, 멧돼지, 오소리 같은 짐승도 잡아다 판다.

어떤 사람들은 아빠를 밀렵꾼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아빠는 눈썹 하나 까닥 않는다.

“당신들도 농사 한 번 지어 봐. 그런 말이 나오나. 봄에는 콩 싹, 고구마 싹, 싹이란 싹은 죄 싹싹 뜯어먹지, 가을에는 다 익은 벼를 깔아뭉개서 지 담요로 만들어놓는데, 어떤 놈이 가만있겠어. 나도, 우리 아들을, 대학까지는 보내고 싶다구.”

나도 우리 농사를 망치는 녀석들은 싫다. 아빠가 속상하면 나도 속상하다. 밥상 위에 멧돼지나 고라니 고기가 올라오면 맛있게 먹는다. 멧돼지 살이나 삼겹살이나, 고라니 불고기나 소불고기나 내겐 똑같다. 우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계속 그랬을 것이다.

오월 어느 일요일, 아빠를 따라 뒷산에 갔다. 아빠는 멧돼지가 새끼를 키우느라 한창 사나울 때라며 얼룩이를 앞세웠다. 얼룩이는 똥개지만 사냥개보다 사납고 짐승을 잘 잡는다.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섰을 때, 얼룩이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산비탈로 내리 닫았다. 덤불속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나와 허둥지둥 달아났다. 아빠는 표범처럼 눈을 빛냈다.

“얼룩! 뛰어! 물어!”

얼룩이도 표범처럼 고라니를 쫓아갔다.

그런데 달아난 고라니한테 새끼가 있었나보다. 주먹만 한 고라니가 덤불에서 나왔다. 너무 어려서 걷는 것이 어설펐다. 비틀비틀 흔들흔들, 꼭 쓰러질 것 같았다.

아빠는 날듯이 달려가 고라니를 잡아왔다. 입 꼬리를 귀 밑까지 올리며 웃었다.

“이런 새끼만 찾는 놈들이 따로 있지. 이걸 보면 아마 환장을 할 거다.”

여기서 놈들이란 산짐승과 들짐승이 보약 중의 보약이라고 믿는 어른들을 말한다.

“박경두, 선물이다. 잘 키워 봐. 팔리면 그 돈은 모두 네 거야.”

아빠 손에 등줄기를 잡힌 고라니는 말똥말똥 나를 보았다. 눈은 까만 구슬 같고, 코는 반질반질, 귀는 쫑긋, 갈색 털은 보송보송, 옆구리에 난 흰색 꽃무늬 털은 무척 신기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빠는 종이 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고라니를 넣었다. 고라니는 겁에 질려 손을 내밀기만 해도 구석으로 달아났다. 밤에도 쉬지 않고 낑낑거렸다.

우리 아빠는 농사꾼이다. 그런데 가진 땅이 없다.

남의 논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 우리 논을 갖는 것, 바로 아빠의 꿈이다.

아빠는 꿈을 이루려고 빚을 얻었다. 빚을 갚기 위해 소와 개를 키워 판다.

고라니, 멧돼지, 오소리 같은 짐승도 잡아다 판다.

이튿날부터 나는 아빠가 가르쳐준 대로 했다. 끓여서 알맞게 식힌 물을 젖병에 붓고, 분유를 넣어 잘 섞은 다음, 고라니를 품에 안고 먹였다. 고라니는 도리질을 치며 젖병 꼭지를 뱉고,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나는 고라니 발굽에 가슴과 얼굴을 얻어맞기 일쑤였다. 점점 짜증이 나고 귀찮았다. 날 따르지 않는 짐승은 나도 싫다.

집에 데려온 지 닷새 째 되는 날, 고라니 눈에 눈곱이 끼고 콧잔등이 말랐다. 고라니는 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자려 들었다. 아빠가 설탕물을 타서 먹이며 한 마디 했다.

“아들, 강아지 키워봤잖아. 실력 좀 발휘해 봐. 아까운 놈 죽이지 말고.”

“싫어. 아빠가 키워. 무슨 애가 되게 까칠해. 재미가 하나도 없어.”

아빠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달랬다.

“아들, 잊었어? 돈! 돈이 생기는데! 그러지 말고 좀 더 애써 봐. 파이팅!”

돈은커녕 죽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나는 툴툴대며 고라니를 돌보았다.

노는 토요일, 골목으로 검은 차가 들어섰다. 읍내에서도 볼까 말까한 고급차였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와 얼굴이 밀가루처럼 허연 남자 아이가 차에서 내렸다. 아빠는 ‘어이쿠, 우리 빚쟁이님이 왕림하셨네.’ 라며 달려갔다. 굽실대며 집안으로 이끌었다.

빚쟁이님은 아빠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도 거리낌 없이 반말을 썼다.

“어디, 농사는 잘 될 것 같고?”

아빠는 비실비실 웃었다.

“뭐, 농사라는 게 하늘이 반, 사람이 반 짓는 거라서 장담할 수가 있어야지요.”

“안 되도 잘 되게 해야지. 그래야 남한테 신세 진 걸 갚지. 안 그런가?”

아빠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내게 나가라는 턱짓을 했다. 나도 나갈 참이었다. 빚쟁이님과 아빠를 보고 있으니 슬슬 기분이 나빠졌던 것이다.

오월인데도 햇볕이 뜨거웠다. 고라니한테 물을 떠다 주는데, 뒤에서 소리가 났다.

“와아! 사슴이네! 이거 어디서 났어?”

빚쟁이님의 아들, 밀가루였다.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짜식, 무식하기는, 임마, 이건 고라니라고 하는 거야.

밀가루는 다짜고짜 고라니를 만지려 들었다. 나는 점잖게 밀가루의 손을 밀어냈다.

“안 돼. 지금 아프거든.”

밀가루는 아니꼽다는 얼굴로 나를 흘겼다. 때맞추어 빚쟁이님이 나타나자 냉큼 달려갔다.

“아빠, 나도 사슴 갖고 싶어.”

“사슴? 웬 사슴?”

밀가루는 대답 대신 상자를 가리켰다. 빚쟁이님은 서슴없이 다가왔다. 제멋대로 함부로 고라니를 만지고 뒤집더니 마당에 침을 ‘카악’ 뱉었다.

“이건 안 돼. 병들었어.”

그리고 아빠를 불렀다.

“튼튼한 놈으로 한 마리 잡아주게. 값은 시세대로 쳐 주지.”

아빠는 실실 웃으며 그러마고 했다. 빚쟁이님과 밀가루는 검은색 차에 올라탔다. 나는 멀어지는 차의 꽁무니에 대고 침을 ‘카악’ 뱉었다. 빚쟁이님이 한 대로 똑같이.

갑자기 고라니가 새롭게 보였다. 재수 없는 밀가루한테 빼앗길 뻔 했다고 생각하니 아까워졌다. 우유를 먹이겠다고 고라니와 승강이를 벌이자, 엄마가 한 마디 던졌다.

“걔가 좋아하는 것 좀 줘 봐라. 입에 맞지도 않는 소젖만 만날 들이밀면 먹겠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민들레와 고들빼기 잎을 뜯었다. 개망초와 들콩 잎도 땄다. 고라니는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오물거리는 주둥이를 따라 까만 코도 움직였다.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내가 있었다. 고라니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고라니가 나를 보는 건지 내가 나를 보는 건지, 마음이 이상해졌다. 고라니한테 미안해졌다.

“다시는 아프지 마.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우리 잘 지내자.”

고라니는 눈길을 돌렸다. 내 말을 거절하는 것 같아 언짢았다.

“미안해. 미안하다구. 누구한테도 널 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잘 지내.”

그래도 고라니는 나를 보지 않았다. 잎을 씹느라 주둥이만 오물거렸다. 콧잔등에 뽀뽀를 하고 싶었다. 뽀뽀 대신 목덜미를 간질여주었다. 고라니는 피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꼬박 하루 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고라니한테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 네 이름이야. 너와나, 한 식구란 뜻이지. 네 마음에도 들지!”

드디어 우리가 젖병 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내 품에 안겨 우유를 ‘꼴깍꼴깍’ 잘도 삼켰다. 마치 내가 우리의 아빠가 된 것 같았다. 아빠가 나를 잘난 아들로 키우려 하듯이, 나도 우리를 멋진 고라니로 키우고 싶었다.

하루는 우리를 마당으로 내놓았다. 우리는 코를 쳐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강중강중 뛰어다니며 마당에 난 풀들의 냄새를 맡거나 뜯어먹었다. 내가 뜯어준 풀도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혀가 손가락을 스칠 때마다 몹시 간지러웠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뭐 하는 짓이야?”

언제 왔는지, 아빠가 험악한 얼굴로 우리를 쏘아보았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아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정 주지 마라. 어차피 팔 거야. 나중에 아빠 원망 말고 그냥 둬.”

며칠 뒤, 아빠는 우리를 씻기더니 깨끗한 상자로 옮겼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왠지 불안했다.

해질 무렵, 난데없이 빚쟁이님이 나타났다. 아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갖다 드려야 하는데, 논일이 바빠서 짬을 낼 수가 있어야지요.”

“인사치레는 할 것 없고, 말한 거나 어서 줘. 물건은 틀림없겠지?”

“그럼요.”

아빠는 우리가 든 상자를 빚쟁이님에게 건넸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안 돼요! 우리는 내 거예요!”

아빠는 어른들 일에 끼어든다며 내 등짝을 후려쳤다. 빚쟁이님은 옷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더니 아빠한테 내밀었다. 아빠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제대로 인사 한 번 못 드렸는데…. 선물이거니 여기고 그냥 가져가세요.”

“아니지, 아니야. 계산은 정확해야지.”

빚쟁이님은 나를 힐끔 보더니 내 바지춤에 봉투를 찔러 넣었다.

“과자나 사 먹어라.”

나는 봉투를 팽개치고 차로 달렸다. 아빠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빚쟁이님은 느긋하게 차를 타고 떠났다. 그제야 아빠는 내 목덜미를 놔주었다. 나는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우리는 내 거야! 아빠도 맘대로 못 한다구! 빨리 데려 와! 찾아오라구!”

아빠는 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게 아빠가 뭐라 했어? 이렇게 될 거니까 정 주지 말라고 했지.”

“아빠 싫어! 바보같이 웃기나 하고, 거지같이 돈이나 빌리고. 싫어!”

아빠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주먹을 번쩍 들었다. 나는 겁이 났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아빠는 씁쓸하게 웃으며 주먹을 내렸다. 마당에 떨어진 봉투를 주우며 중얼거렸다.

“짜식, 그냥 가져가래는데도 굳이 돈을 주네. 근데 이게 뭐야? 쓸 거면 더 쓰지….”

듣기 싫었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울음이 나왔다.

밤늦게야 돌아온 엄마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를 달랬다. 아빠한테는 새끼고라니를 한 마리 더 잡아오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소리쳤다. 고라니 같은 거, 다시는 안 키울 거라고 악을 썼다. 아빠가 주는 건 아무 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부터 아빠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빠라면 그림자만 나타나도 피했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들은 척 했다. 그러자 아빠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어느덧 유월이 되었다. 해가 졌는데도 몹시 더웠다. 마당에 나와 앉았는데, 아빠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얼굴이 몹시 핼쑥했다.

아빠는 내 앞에 상자를 놓고 뚜껑을 젖혔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야!”

정말 우리였다. 바들바들 떨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는 누런 눈곱이 꼈고, 콧잔등을 만져보니 바짝 말랐다. 비쩍 마른데다 배도 홀쭉했다.

나는 얼른 우리를 안았다. 우리는 나를 잊었는지 낑낑대며 몸부림을 쳤다.

아빠는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내려 놔. 안정될 때까지는 혼자 둬라. 그 집 가서 많이 놀랐나 보더라.”

아빠 말대로 했다. 상자를 그늘로 옮기고 우리에게 물과 먹이를 주었다.

아빠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병 든 놈 주었다고 화를 내더라. 병들기는…. 지네들이 못 키우고는….”

그리고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돈… 돌려주었어.”

아빠와 나는 우리를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온 지 사흘 만에 죽었다.

아빠와 나는 우리를 묻어주려고 산에 갔다. 여전히 멧돼지가 위험할 때지만, 아빠는 얼룩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삽과 소주 한 병만 들고 갔다.

산중턱에 이르자, 아빠는 햇빛 바른 곳을 골라 땅을 팠다. 구덩이에 우리를 넣을 때,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주저앉아 ‘엉엉’ 울자, 아빠는 한숨을 푹 쉬며 담배를 꺼냈다. 연달아 두 대나 피고 나서는 다시 삽질을 했다. 곧 작은 솥을 엎어놓은 듯한 무덤이 생겼다.

아빠는 무덤 둘레에 소주를 뿌렸다. 담배에 불을 붙여 무덤 앞에 꽂고는 중얼거렸다.

“잘 가라…. 다음 생에서는 다른 몸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태어나든지…….”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울기만 했다. 담배 연기가 너울너울 하늘로 올랐다.

어느덧 담배는 다 타고, 아빠와 나는 산을 내려왔다. 눈이 퉁퉁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듬더듬 걷는데, 갑자기 아빠가 섰다.

“저기 좀 봐라.”

아빠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우리만한 고라니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아빠는 ‘후우’ 숨을 내쉬며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잠깐 쉬어 가자.”

나는 아빠 옆에 앉았다. 아빠가 고라니를 보며 말했다.

“기다리면 어미가 나타날 거야. 어딘가에서 지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거든.”

떡갈나무 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아파서 감아버렸다. 이따금 멧비둘기와 꿩 우는 소리만 들릴 뿐 산속은 조용했다. 풀냄새만 진했다. 졸음이 쏟아졌다.

갑자기 아빠가 팔을 흔들었다.

“경두야, 어미가 나타났어. 애들이 가고 있어.”

눈을 떴다. 정말이었다. 고라니들이 가고 있었다. 어미 고라니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덤불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당선소감>


   "동물과 사람, 모두 평화롭기를"


열아홉 나이에 고향을 떠났다가 서른여섯에 되돌아왔습니다. 고향살이도 도시살이도 똑같이 열여덟 해를 한 겁니다. 삶의 원점에 선 것 같아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108배를 하고 나서 여쭈었습니다.

고향 들판과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동물과 사람들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살면 좋겠다는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길에서도 많은 벗들을 만났습니다. ‘어린이책 작가교실’이라는 배움터를 일구어 저 같은 사람들을 품어 안으신 정해왕 선생님, 그 터를 울창한 숲으로 가꾸어 후배들을 이끈 선배들, 느린 저를 맵고 짜게 당겨 준 ‘최강 7기’와 ‘말고삐’, 함께 공부를 시작해 이제는 정말 식구 같은 ‘아침나무’. 벗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해가 저물 때와 시작될 때, 부처님께 기도드립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평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제 글이 고향땅과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이 평화로워지는 데에 눈곱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인연이 부처님의 뜻임을 아니 가슴이 벅찰 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식구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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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강렬한 문장과 세련미 돋보인다"


올해 <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응모작의 편수와 수준은 예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몇 년 간 불교신문 동화 심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중앙일간지 신춘 동화 당선작을 눈여겨 보았는데, <불교신문> 당선작이 결코 밀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응모작이 다루는 소재도 매우 다양해져 다문화 가정, 버려진 애완동물,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 이야기 등 현실적인 문제가 두드러지는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많은데, 불교 제재를 다루는 것은 좋으나 그것을 열 살 전후의 어린애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의 문제를 좀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 동화라는 특성 때문인지 서사의 대부분이 대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이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을 발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동굴을 믿어 줘’는 시골에서 전한 온 아이와 친해지게 되는 과정을 깔끔하게 다루고 있으나 현실과 환상의 경계 처리가 모호한 점이 아쉬웠다.

‘햄스터 구하기’는 버려진 햄스터를 주워 기르며 변호사 엄마와 좀더 가까워지는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작고 연약한 햄스터가 옛주인에게 맞아 온몬에 심한 골절상을 입고도 살아 있다는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독백’은 십 대 여성이 잉태한 태아를 화자로 설정하여, 낙태를 할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마침내 아이를 낳는 과정을 특이한 화자(태아)의 독백을 통해 그려낸 작품으로 참신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문장이 다소 거칠고 태아의 독백이 지리한 느낌을 주는 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우리 아빠’는 산골에서 야생동물을 몰래 잡아 파는 밀렵꾼의 이야기다. 화자의 아버지는 밀렵꾼답게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려 하고 냉정한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훈훈한 여운을 남긴다. 단문 위주로 쓰여진 문장은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어 문학 수련 기간이 녹록치 않음을 알게 한다. 즐겁게 당선작으로 추천하며, 더욱 정진해 좋은 동화작가가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장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