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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안녕, 미쓰 자갈치 / 최혜림

 

나는 오늘도 실비집에서 혼자 놀고 있어요. 할머니는 손님을 맞느라 정신이 없네요. 닌텐도도 오래 하니까 심심해요. 나는 할머니 바지 자락을 붙잡고 같이 놀자고 졸라요.

"할머니~~ 내 심심하다."

"우야꼬. 쪼매만 기다리라. 퍼뜩 국밥만 말아주고 가께."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면서 대답해요.

"할매, 손녀요?"

식탁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나를 흘긋거리며 할머니에게 물어요.

"하모, 우리 손녀 아이가."

"니 몇 살이고?"

아저씨가 국밥을 우물거리며 물어요.

"여섯 살요."

할머니는 또 신이 나서 내 자랑을 하고 나서요.

"니 야 모르나? 이 동네에서 야 모르면 간첩이라카이. 야가 어려서부터 인물이 있어가 이 동네에서는 미쓰 자갈치 아이가."

할머니 말을 가만 듣고 있던 아저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어요.

"그 가시나 커서 머시마들 많이 울리게 생겼네."

나는 뭔가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눈치 채고 아저씨를 노려봤어요.

"야가 아한테 머라 카노. 다 묵었으면 퍼뜩 일나서 가라."

할머니가 아저씨한테 성질을 냈어요.

여기 자갈치 시장에서 보는 아저씨들은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아요. 말도 험하게 하고 잘 씻지도 않는 것 같아요. 우리 동네에서 보는 어른들은 이렇지 않은데.

엄마는 언제나 올까요? 아직 두 시니까 엄마가 오려면 한~참이나 멀었어요. 3일 전에 내가 다니는 샛별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거든요. 그래서 난 매일 아침 할머니 식당에 와서 엄마가 데려갈 때까지 하루 종일 있어요.

하아암~ 난 길게 하품을 했어요. 할머니는

"호숙이 잠 오나? 할매 방에 올라가서 잘래?"

하고 물었어요.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어요. 사실 잠은 오는데 할머니 방에 올라가기 싫어요. 할머니 방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거든요. 생선 냄새 같기도 하고….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냄새가 나요. 이건 비밀인데요, 엄마도 할머니 방에 들어갈 때면 코를 벌름거린답니다.

나는 가게 앞에 놓인 동그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해요. 이 시장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정신없이 오가요. 그러다 사람 구경도 재미없으면 난 꾸벅꾸벅 졸아요.

드디어 저녁이 되었어요. 하지만 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아요.

"할머니~~ 엄마 언제 오는데요? 네? 네?"

나는 할머니 바지 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어요. 할머니는

"아, 아까 엄마 전화 왔는데 오늘 몬 온다카드라. 회사 일이 바쁘다꼬."

나는 울상이 되었어요.

"할머니~~ 엄마랑 전화 한 통만 하께요."

"야는, 엄마 회사 일이 바쁘다 카이까네? 할매 바쁘니까 퍼뜩 방에 올라가 있거라."

나는 뿌우-, 하고 입을 내밀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방에 올라갔어요. 할머니 방에는 컴퓨터도 없고 달랑 TV 한 대뿐인데 그것도 화면이 잘 나오지 않아요. 나는 채널을 돌리다가 TV를 꺼버렸어요. 엄마한테 전화나 해볼까요? 엄마는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았어요.

"엄마? 언제 오는데?"

"호숙아, 오늘 엄마 못 갈 거 같은데, 그냥 할머니 집에서 자라."

"아, 엄마~ 안 자고 기다릴게 늦게라도 온나. 어?"

"엄마 지금 바쁘니까 이따가 전화하께."

엄마는 전화를 딸칵 끊어버렸어요. 나는 성질이 나서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그러다 조금 잠이 들었었나 봐요. 하지만 아직도 할머니는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어나서 창밖을 내려다보았어요. 거리는 벌써 어둠에 잠겨 일렁였어요. 부둣가에 늘어선 노점상들 뒤로 보이는 바다는 땅으로 올라오고 싶은 것처럼 끊임없이 철썩철썩 손을 뻗었어요. 불 꺼진 할머니 방은 꼭 바다 위에 혼자 떠다니는 배처럼 느껴져요.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느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얼른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었어요. 삐걱대며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들어오네요. 하루 종일 허리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를 구석에 툭, 던지고는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았어요. 나는 괜히 벽으로 몸을 돌리고 자는 척했어요.

다음 날 아침이었어요. 눈을 떴는데 나 혼자뿐이었어요. 할머니는 벌써 가게에 내려갔나 봐요. 나는 일어나서 또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잠잘 때 비가 왔나?'

새벽에 비가 내린 것 같지는 않은데 땅이 축축하게 젖어있었어요.

나는 배가 고파져서 가게로 내려갔어요.

"호숙이 일어났나? 배고프제?"

할머니가 물었어요.

"어."

나는 갑자기 엄마가 어제 날 정말로 데려가지 않았다는 게 생각나 뚱하니 대답했어요.

"쪼매만 기다리 봐, 할매가 맛있는 거 해주께."

할머니는 후라이를 후딱 굽더니, 간장 한 숟갈을 넣어 밥을 비벼주었어요. 나는 울상이 되었어요.

"아~ 할머니 이런 거 말고."

"이런 거 말고 뭐?"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런 거 있잖아. 햄이랑…. 소시지 같은 거."

"호숙이 소시지 먹고 싶나? 그라면 저짝 슈퍼 가서 하나 사올래? 가게 열 준비할라믄 할매가 갔다 올 시간이 없는데."

"에이, 됐어요."

나는 포기하고 수저를 들었어요. 아침이라 그런지 유난히 계란이 뻑뻑하게 느껴졌어요.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며 물었어요.

"할머니~ 근데 엄마는 언제 온다는데?"

"회사 끝나면 이따 저녁에 오겠지. 와, 벌써 엄마 보고 싶나?"

"아니, 뭐 그런 거는 아이고."

"그라면? 할매랑 있기 싫나?"

할머니가 물었어요.

"아아니…. 아이라니까요!"

나는 성질을 내고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막상 나와도 갈 데가 별로 없어요. 나는 꼼장어 집을 얼른 지나쳤어요. 전에 몇 번 꼼장어 아줌마가 팔다가 남은 꼼장어를 줘서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요. 그리고 나서 그 집을 지나치다가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꼼장어를 봤어요. 웬지 속이 이상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꼼장어를 먹지 않았답니다.

"호숙이 아침부터 어데 가노?"

횟집 아줌마가 물었어요.

"네? 그냥…. 심심해서요."

"아, 일로 와봐라. 아줌마가 줄 거 있다."

아줌마는 주머니에서 파란 지폐 두 장을 꺼내서 나한테 줬어요. 나는 오랜만에 용돈을 받는 거라 신이 났어요. 예전엔 실비집 앞에서 인사를 크게 하면 지나가던 손님들이랑 할머니 친구들이 종종 용돈을 주곤 했거든요. 최근엔 거의 그런 일이 없었지만….

"이거 느그 할머니한테 빌린 긴데 이따가 할머니 갖다 드리라이. 내가 가야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나는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어요. 돈을 받아 쥐고 또 길을 나섰어요. 생선 파는 곳을 지나자 금세 운동화가 시커매졌네요. 아~ 갈 데도 없고…. 돌아다니자니 운동화만 더러워져요. 그냥 집에 가야겠어요.

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받은 돈으로 쭈쭈바를 사먹었어요. 겨우 칠백 원짜리니까 할머니가 뭐라고 하진 않겠죠?

실비집은 점심때라 한창 붐비고 있었어요. 엄마는 대체 언제 올까요? 휴~ 한숨이 나와요. 나는 가게 앞 조그만 내 전용의자에 쭈그리고 앉았어요.

그때였어요. 파란 눈에 금발머리, 키가 큰 미남아저씨가 가게 앞을 지나가네요. 아저씨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 원빈보다 훨씬 더 멋있어 보였어요. 나는 그 외국인을 향해 외쳤어요.

"하~이? 헬로우? 하 와 유?!"

나는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어요. 외국인 아저씨는 뒤를 돌아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어요.

"안녕. 꼬마야."

"우와. 아저씨 한국말도 할 줄 알아요?"

"응, 초큼. 넌 이름이 모야?"

"호숙이요, 김호숙."

"호숙, 아저씨 이름은 이바노비치야. 넌 이 집에 사니?"

나한테 인사를 한 그는 실비집 안을 슬쩍 보았어요. 그때 할머니가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무신 일인교?"

"아, 지나가는데 이 아이가 큰 소리로 인사해서요. 참 키여운 아이네요."

"아, 우리 쑥이? 하여간 야는 한국 사람이고, 외국 사람이고 간에 인기 절정이라카이. 야가 원래 이 동네에서는 미쓰 자갈치라카거든? 인자 미쓰 자갈치가 아니라 그 머라 카노, 미쓰 유니버씨틴가 유니버쓴가 그거 해도 되겠네."

할머니가 웃었어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할머니는 맨날 자랑만 해. 나랑은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어데 사람인교?"

"저는 러쉬아 싸람임니다. 이 아이 넘무 퀴여워요. 할 쑤만 있따묜 이 아이를 캐리어에 넣어가고 심네요."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가 쫑긋했어요. 캐리어에 넣어서? 그러면 이 아저씨의 나라로 갈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왠지 나랑 잘 놀아줄 것 같아요. 맨날 바쁜 엄마나 할머니보다는요.

나는 할머니와 아저씨가 말을 나누는 동안 저쪽에 세워진 아저씨 캐리어를 바라보았어요. 아저씨 캐리어는 이민 가방처럼 커다랬어요. 잘만 하면 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는 살그머니 아저씨 캐리어로 다가가 지퍼를 열었어요. 그 안에 있던 옷가지를 헤치고 무릎을 안고 들어가 앉았어요. 그리고 드르륵 지퍼를 채웠어요. 이제 나는 러시아로 가는 거예요!

"근데 야가 어데 갔노? 잘생긴 아저씨가 이쁘다카니까 부끄러바가 숨었는가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났어요.

조금 있으려니까 가방이 기우뚱했어요. 나는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꾹 참았답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 가방에 달린 바퀴가 무겁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요. 아저씨가 뭐라고 중얼거렸어요. 아마 가방이 아까보다 무거워진 것 같다, 뭐 그런 말이겠죠? 어쨌든 나는 캐리어를 타고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어요! 근데 러시아는 어디 붙어있는 나라죠?

땅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캐리어가 자꾸만 좌우로 기우뚱거렸어요. 나는 중심을 잡느라 식은땀을 흘렸답니다. 다행히 가방에 공기 통하는 구멍이 뽕 뽕 몇 개 나 있었어요. 나는 실눈을 뜨고 작은 구멍으로 자갈치를 보았어요. 그런데 아저씨 팬티가 자꾸만 눈앞을 가려요. 아~ 귀찮아. 나는 아저씨 속옷을 머리 위로 넘겨 뒤통수로 눌러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구멍으로 밖을 바라보았어요. 머리에 수건을 쓴 아줌마가 다라이에 생선을 싣고 질질 끌고 가요. 다라이에서는 계속 물이 새어나와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땅이 다 젖어있던 건 바로 저 생선들 때문이었을까요?

이 아저씨 눈에는 자갈치에 신기한 게 많나 봐요, 맨날 보는 나는 그냥 그런데. 아저씨는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멈춰 섰어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어요. 나는 귀를 기울여 보았어요.

"이만한 고래가 몇 년 만이고! 세상에."

고래가 잡혔다나 봐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어요. 하지만 사람들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으으, 궁금해라. 난 고래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지퍼를 조금 열고 보면 안 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지퍼를 조금 열고 손가락 두 개로 가방 끝을 조금 내렸어요. 우와, 정말 큰 고래가 하늘 높이 떠 있어요! 고래는 갈고리 같은 것에 걸려 있어요. 그때 누군가 내 앞을 휙 지나갔어요. 나는 들킬까 봐 얼른 다시 지퍼를 올렸어요.

잠시 후 아저씨는 도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딘가에 멈춰 섰어요. 이번엔 또 무슨 신기한 것을 발견한 걸까요?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후루룩 후루룩 하는 소리가 났어요. 뭐죠? 이 냄새는? 설마 이 아저씨 지금 할매집 국수 먹는 거예요? 으으, 그 집 국수 진짜 맛있는데….

나는 지퍼를 열고 아저씨가 국수 먹는 것을 보았어요. 주위를 기웃거려보니 역시 할매집 국수에 와있는 거였어요. 순식간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어요. 갑자기 배도 막 고파오는 것 같아요. 나는 킁킁거리며 냄새라도 더 맡으려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고개를 내밀었어요. 그때 가방이 기우뚱했어요.

"어? 어~~? 아야!"

가방이 철퍼덕 엎어지면서 나는 이마를 쿵, 찧었어요.

"이기 무신 소리고?!"

국수집 할머니 목소리였어요. 나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가방에서 나왔어요.

"호숙이 니 그서 머 했노?"

할머니가 놀라서 물었어요.

"이놈 이거 야를 납치해 갈라꼬 했던 거 아이가?! 으이?!"

할머니는 삿대질을 하며 아저씨에게 달려들었어요.

"아니에요, 저는 아까…."

"어디 멀쩡하게 생기가 아를 가방에 넣어 갈라카노? 미친 놈 아이가."

얼굴이 시뻘게진 국수집 할머니가 휴대폰으로 신고를 하려고 했어요. 아저씨는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양손을 저으며 어버버 하고 있었어요.

"전화하지 마세요! 내가 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의아한 듯이 눈만 껌뻑이고 있었어요.

"이 아저씨 따라갈라꼬 내 발로 가방에 탔다고요!"

할머니 손에 있던 휴대폰이 힘없이 땅으로 툭 떨어졌어요.

"호숙? 진차 나 따라카려고 했던 거야?"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가시나가 겁도 없이…. 니 도랐나?!"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준단 말이야!"

나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저씨가 다가와 나를 토닥거려 주었어요.

"울지 마, 호숙?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 줄게."

나는 아저씨 손을 붙잡고 터덜터덜 실비집으로 되돌아왔어요.

실비집에는 엄마가 와 있었어요.

"어디 갔었던 거야, 이 말썽꾸러기야!"

엄마가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무도 나랑 안 놀아주잖아. 난 이 아저씨 따라가서 살 거야!"

"엄마가 미안해, 호숙아."

엄마가 날 껴안고 흐느꼈어요.

"어디 갔드노! 한참 찾았다 아니가!"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팡 팡 두들겼어요. 잠시 후 엄마랑 껴안고 우는 나를 보더니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고맙심니데이. 야가 이래 철이 없어가…."

"아님니다. 퀴여운 아이인데 더 에뻐해 주쎄요."

아저씨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울지 말고 다음에 또 보자며 가게 문을 나섰어요.

"안녕, 미쓰 자갈치~!"

가게 문밖에서 아저씨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나는 아저씨를 따라 가지 못 한 게 아쉬웠지만 아저씨 덕분에 엄마가 와주어서 기뻤어요. 아저씨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어요. 아저씨는 점점 멀어져갔어요. 저녁노을이 아저씨와 자갈치 골목을 함께 물들이고 있었어요.





  <당선소감>


   "어른 돼도 간직하고 싶은 동화 쓰도록 노력"


자갈치는 어렸을 때 저에게 놀이터였습니다. 할머니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 할머니 집 앞의 '꼼장어' 가게와 홍합을 팔던 포장마차…. 많은 것들이 어린 제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습니다. 시장 골목 끄트머리엔 유일하게 제 또래였던 소꿉놀이 친구가 살았습니다. 그 집에 가는 길은 어찌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요. 크고 나서 우연히 다시 걷다가 이 길이 이렇게 가까웠었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자갈치는 제 마음 한 구석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악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정이 많은 시장 아줌마들, 그곳에서 20년 넘게 실비집을 하시면서 아빠를 키운 우리 할머니, 시장을 바삐 오가던 사람들. 꼭 한 번 그곳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께 당선 소식을 알려드렸을 때 어리둥절해 하시면서도 참 기뻐하셨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못 미더웠을 텐데도 끝까지 나를 믿어준 엄마, 아빠, 동생, 친구들 모두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하고 싶은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간 날 때 자갈치에 가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먹어야겠습니다.



  ● 11985년 부산 출생.

  ● 성일여고, 한양대 의류학과 졸업.


 

  <심사평>


  "생동감 넘치고 구성·문체 흠잡을 데 없어"


올해의 응모작은 총 163편이었다. 동화가 요구하는 재미, 교훈 그리고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문체에 중점을 두고 숙독한 끝에 20편을 골랐다. 그 가운데 정희경의 '바다에서 온 손님', 윤지선의 '씽씽이의 꿈', 최옥의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 최혜림의 '안녕, 미쓰 자갈치'가 최종심에 올랐다. 모두 기성작가 못지않게 구성이 치밀하고 문장력도 탄탄했으나 소재와 주제 면에서 참신함이 다소 부족했다.

'바다에서 온 손님'과 '씽씽이의 꿈'은 환상성이 가미된 순수 동화이고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와 '안녕, 미쓰 자갈치'는 현실 문제를 다룬 생활동화였다. '바다에서 온 손님'은 동화다운 문체와 소재를 이끌어 가는 기법에 안정감은 있었으나 바다거북이가 할머니에게만 꼭 나타나야할 작품의 개연성이 부족했다.

'씽씽이의 꿈'은 가장 동화다운 환상성을 지녔고 소재에도 충실한 편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주제를 너무 드러낸 것이 옥에 티였다.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는 탄탄한 문체와 인물과 인물 간의 설정이 무엇보다도 돋보였지만 결말 부분이 허전하게 처리되어 완성도가 떨어졌다. '안녕, 미쓰 자갈치'는 단숨에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고 구성과 문체도 흠잡을 데 없었다. 인물 설정도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쳤다. 동화의 중요한 특성인 환상성이 배제되었다는 점은 아쉬웠으나 당선작으로 밀기엔 미흡함이 없다.

 

심사위원 : 최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