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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스위치 / 이선희

 

아무리 내가 우스워도 장군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장군은 나를 장난감 주무르듯 주물렀지만 난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장군을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죽은 내 개의 복수를 꼭 하고 말겠다.

그 일이 일어난 건 3일 전이었다. 그 때는 학교도 집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도 집도 끔찍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 장군 때문이다.

장군과 나는 ‘절대복종’의 서약을 맺었다. ‘절대복종’은 먼저 이 말을 외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하루 종일 복종하는 놀이다. 단, 학교가 끝날 때까지. 교문을 나서는 순간 ‘절대복종’의 족쇄는 풀린다.

원래 이 놀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물론 시력이 안 좋거나 말을 더듬는 아이가 불리하긴 하다. 하지만 그 애들도 죽 복종만 하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이라도 명령을 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장군에게 ‘절대복종’을 절대 외칠 수 없었다.

하나, 내가 ‘절대복종’을 먼저 외친다 해도 장군에게 내릴 명령 같은 건 나에게 없었다.

둘, ‘절대복종’을 먼저 외친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장군은 장군이고, 나는 졸이었다.

그랬는데 3일 전 그만, 나는 ‘절대복종’을 외치고 말았다.

안경이 내게 물었던 것은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 거미류, 매미 같은 곤충류가 모두 들어가는 동물 분류가 무엇이냐는 거였다. 나는 자신있게 외쳤다.

“절대복종!”

하필 그 순간 장군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장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장군뿐만이 아니었다. 교실 안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와 장군을 번갈아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마치 탁구공처럼 핑퐁핑퐁 재빨리 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절지동물.’ 이게 답이었다. 몸이 작고 겉이 딱딱한 대부분의 곤충들……. 순간, 나는 진심으로 내가 절지동물이었으면 싶었다.

나에게는 얼마든지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이 있었다. 장군만 허락한다면 10초쯤 시간을 뒤로 돌려 장군은 다시 교실 문 앞이고, 나는 안경이 무얼 물어보든 결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장군은 나를 보고-장군에게는 먼저 외쳐야 한다는 조바심 따위란 없으니까-“절대복종”이라고 느긋하게 말하겠지?

숙제 대신하기, 청소 대신하기 같은 명령쯤은 콧노래라도 부르며 할 수 있다. 그래, 그런 평온한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절지동물’이 ‘절대복종’으로 둔갑하지만 않았더라도.

장군과 내가 서약을 맺은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나는 조용히 6학년이 되었을 텐데…….

그 뒤로 나는 입도 뻥긋 안 했다. 오죽했으면 밥도 먹지 않았고 숨도 코로만 쉬었다. 내가 입을 연 건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휴우…….”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살았다!

“꼬르륵.”

그제야 배가 고픈 것을 알았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기운차게 발을 내딛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장군과 서너 명의 아이들이었다.

“어이, 졸. 오늘 하루 무지 행복했지? 생일보다 더 좋았을 거야. 그치?”

“아니, 사실은…….”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려던 건 ‘절지동물’이었다고. 절대 ‘절대복종’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내 입에서 ‘절지동물’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쩐지 장군이 더 화를 낼 것만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입이 방정이었다. 나오랄 땐 안 나오던 절지동물이 그 순간에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튀어나왔으니까.

“절지동물…….”

“뭐?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냐? 나한테 동물이라는 거냐? 너 아주 죽고 싶지!”

내 예감이 딱 맞았다. 장군은 불같이 화를 냈다. 불똥은 내 쪽으로 몰아서 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잔말 말고, 이따 여섯 시까지 철조망으로 나와.”

명령이 떨어졌다. 이건 결코 어길 수 없는 ‘절대명령’이다.

만약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시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영원히 여섯시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방법은 이렇다.

여섯시까지 1분 전

여섯시까지 1초 전

여섯시까지 0.1초 전

여섯시까지 0.00001초 전

여섯시까지 0.000000000001초 전

점 밑으로 0이 수억, 수조, 수경, 수해 늘어나면 결코 여섯시는 오지 못할 것이다. 안타까운 건 시계는 너무 단순하다는 거다.

5시15분. 집에서 철조망까지 가려면 빠른 걸음으로 30분은 가야 하니까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거실로 나가니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신다. 요즘 계속 이러신다. 매일 하시던 산책도, 마을 할아버지들과의 장기도 안 하시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계신다. 그것도 한 채널만 보신다. 24시간 뉴스만 나오는 채널이다.

요전 날 할아버지가 “이상해” 하시며 들어오신 날이 있었다.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철조망 부근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뒷산에 있는 철조망은 마을과 군대의 경계선이다.

우리 마을에서 군인을 보는 일은 여름밤 가로등 불빛에 모여드는 날벌레를 보는 일만큼 흔하다. 군인들은 마을에 큰 일-큰 비, 큰 눈, 큰 불-이 났을 때도 오지만 아무런 일이 없을 때도 자주 온다. 그냥 놀러 오는 것이다.

슈퍼 앞 테이블에, 게임장 오토바이 위에, 식당 입구에 늘 군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군인들이 꼭 형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나에게는 친한 군인 형이 있다. 그 형과는 게임장에서 자주 만나 대결을 한다. 우리는 총 쏘는 게임을 주로 하는데 형이 내 손에 죽는 일이 더 많았다.

처음에 형은 “이 녀석 꽤 하네”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번번이 내가 이기자 “너 속임수 쓰지?”라며 억지를 부렸다.

어떤 날에는-그 날은 형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형이 이긴 날이었다- 이런 말을 했다.

“넌 커서 훌륭한 군인이 될 거야!”

내 꿈은 군인이 아니라 수의사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멋진 사격 실력을 썩힐 것을 알면 형이 무척 아쉬워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형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할아버지 말씀처럼 요즘 마을에서 군인들을 통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에도 훈련을 떠나면 며칠, 몇 주씩 마을에 안 오기도 했으니까. 형 말에 의하면 군인들은 뒷산을 넘어 더 높고, 더 깊은 산으로 비밀 훈련을 간다고 했다. 거기서 새로운 총 쏘는 법을 배워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훈련을 갔다 온 뒤에도 형의 실력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형이 또 총 쏘는 법을 배우러 갔다고 생각했다. 내 예감은 썩 잘 맞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여전히 “이상해”라고 하셨다. “분명히 사단이 날 거야”라고도 말씀하셨다.

사단? 사단은 뭔데 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게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애도 아니면서…….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를 신는데 파트가 옆에 와서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다 벌떡 일어서 앞발로 내 어깨를 짚고 “멍!” 우렁차게 짖었다. 산책을 나가는 줄 아는 거다.

“아니야. 지금은 산책이나 할 상황이 아니야. 긴급 상황이라고.”

“드디어 사단이 난 거냐!”

갑자기 할아버지가 소리를 치셨다.

“사단인지 뭔지 로봇 같은 건 애니에나 나오는 거라고요, 할아버지.”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니야, 아니야. 분명 날 거야. 그러니 너도 얌전히 집에 있어라. 밖에 나가면 큰일 당해.”

할아버지 말대로 사단이 꼭 날았으면 좋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하지만 밖은 조용하기만 하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벌써 철조망이 있는 산 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여섯시는 점점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내 발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나는 괜히 게임장 안을 들여다보고, 문구점을 기웃거려도 봤다. 그러다 달리기로 했다. 늦으면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라는 느낌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산 입구로 들어설 때였다. 무언가 내 다리를 툭 치는 것이다. 파트였다.

“파트! 너 어떻게 된 거야?”

열린 문을 밀고 나온 것이겠지.

“지금은 산책할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

파트는 꼬리를 무진장 흔들었다. 내 다리를 코로 툭 치더니 앞으로 막 달려나갔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다시 달려와 또 툭 치고는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 놀자는 것이다.

“파트…….”

철없이 구는 파트가 한없이 야속했다. 파트는 덩치는 커다란 게 어리광을 잘 부렸다. 강아지였을 때 무릎에 올려놓고 키웠더니 지금도 툭하면 내 무릎 위로 그 큰 엉덩이를 들이미는 것이다. 이제는 키도 몸무게도 내 절반만큼 되면서 말이다.

“파트, 어서 집에 돌아가!”

파트는 꿈쩍도 안 했다.

“어서!”

“이 개는 또 뭐야?”

등 뒤에서 장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이제 죽었다.

“도…돌려보낼 거야. 파트! 어서 가!”

파트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서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낯선 아이들을 보자 호기심이 난 것이다. 위험한데…….

“파트, 어서!”

파트는 내 말에 아랑곳 않고 힘차게 달려와 장군의 다리를 무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저만치 쌩 달려갔다. 장군이 어이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자 다시 달려와 이번에는 으르렁 소리까지 내며 무는 척하고는 또 달려나갔다. 장난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 개가 나 무는 거냐?”

장군이 나를 보며 물었다.

“무는 게 아니고 놀자는 거야.”

나는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오호, 놀자는 거라고?”

장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아. 오늘은 너 대신 네 개랑 놀아야겠다. 넌 가만히 보고만 있어.”

장군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내 개 건드리지 마. 차라리 나한테 해.”

내가 말했다. 장군은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향해 “잡아.” 하고 말했다. 아이들 둘이 달려와 양쪽에서 내 팔을 하나씩 잡았다.

“쭈쭈쭈, 이리 온.”

장군이 파트를 불렀다. 손까지 흔들었다. 파트는 꼬리를 흔들며 장군에게 다가왔다. 장군은 파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놀아줘야 네가 재밌을까? 파리한테 했던 것처럼? 아니면, 개구리한테처럼? 아니지, 개 체면이 있는데 저번에 고양이처럼 놀아줄까?”

“안 돼!”

나는 소리쳤다. 장군이 길고양이한테 한 짓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는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혓바닥을 뚫고 눈을 파고 꼬리를 잘랐대. 그러고는 다리에 돌을 매달아 저수지에 던졌다대?”

안경이 해준 얘기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말도 못하고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동물들이 아픈 것이 나는 제일 싫었다. 그런데 파트!

“안 돼, 안 돼!”

아이들이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발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장군이 낄낄낄 웃었다. 파트는 여전히 장군 곁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았다.

“도망 가. 도망 가, 파트!”

나는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파트는 꿈쩍도 안 했다.

“그래, 경주하자. 파트, 경주하는 거야!”

그 말에 파트가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파트는 나랑 달리기시합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말은 출발 신호와 같은 것이었다.

“저 개 잡아!”

장군이 외쳤다. 장군과 또 다른 아이 둘이 파트의 뒤를 쫓아 달렸다. 파트는 뒤에서 따라오자 더 빨리 뛰어갔다. 철조망이 있는 곳을 향해.

내 팔을 잡고 있는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팔꿈치로 오른쪽 녀석의 배를 힘껏 쳤다.

“윽!”

녀석이 배를 움켜잡으며 주저앉았다. 자유로워진 오른팔로 왼쪽 녀석의 얼굴을 있는 힘껏 밀어젖혔다. 그러자 녀석도 뒤로 벌렁 넘어졌다. 나는 재빨리 장군의 뒤를 쫓았다.

한숨도 쉬지 않고 철조망을 향해 달렸다. 점퍼 안에서 훅훅 열기가 느껴졌다. 길을 따라 거의 경계까지 왔을 때였다.

“멍!”

파트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탕!”

그건 마치 총소리 같았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갔다. 길에서 벗어난 소나무 숲이었다. 떨어진 나뭇가지며 돌멩이가 발에 걸렸다. 장군과 아이들은 커다란 소나무 옆에 서 있었는데 그 나무와 철조망 사이 평평한 땅 위에 파트가 누워 있었다.

철없는 녀석. 지금은 잠잘 시간이 아니잖아. 나는 파트에게 다가갔다. 장군이 녀석들이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꼭 겁먹은 아이들 같았다. 평소에는 무서운 것도 없는 녀석들이.

“파트.”

나는 파트를 불렀다. 파트는 조용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파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파트는 눈을 뜨고 있었다. 무엇을 쳐다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상했다. 파트의 검은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눌러 방 안의 불을 끈 것처럼. 파트는 꿈쩍도 안 했다.

“파트.”

나는 파트의 몸을 흔들었다. 파트의 다리가 땅 위로 축 늘어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장군을 보았다.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저기… 군인이… 총….”

장군은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군인이 총? 그럴 리가 없다. 장군이 제가 그래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진짜야! 너 그 고양이 얘기 듣고 그러나 본데, 그건 내가 애들한테 그냥 해본 말이야! 난 고양이 죽인 적 없어!”

새빨간 거짓말. 군인들은 훈련을 갔으니까 여기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장군을 노려보았다.

“아이씨, 내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

장군은 뒤를 돌아 달려갔다. 옆에 있던 아이 둘이 주춤거리더니 장군 뒤를 따랐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다시 보니 파트의 눈에 붉은 노을빛이 가득했다.

“파트… 파트!”

나는 파트를 끌어안았다. 파트는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파트가 죽은 것을 알았다. 파트의 코에 내 코를 갖다 댔다. 축축했다. 내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채던 코. 파트가 혀를 살짝 빼물고 있었다. 내 콧구멍 속까지 핥아주던 혀였다.

“파트…….”

나는 파트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파트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파트의 털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파트 없는 내 삶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파트를 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훌륭한 수의사가 돼서 지켜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이제 파트가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쾅!”

천둥이 치는 것처럼 엄청난 소리가 마을 쪽에서 들려왔다. 무언가 폭발한 것일까? 그런데 또다시,

“쾅!”

역시 마을 쪽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철조망 너머에서 “애앵” 하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 힘겹게 파트를 안아 올리자 두세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파트를 안고 갈 수 없었다.

“파트…….”

나는 점퍼를 벗어 파트를 덮어주었다.

“꼭 돌아올게.”

파트의 북슬북슬한 털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파트가 따라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산길에는 나밖에 없었다.

마을은 아수라장이었다. 우체국에서 불이 났는지 시커먼 연기가 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멀리 들판에서도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나도 집을 향해 뛰었다.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 있지 않았다.

“사단이 났다. 사단이 났어.”

할아버지 방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 사단이 난 거예요?”

“이 녀석아, 어디 갔다 온 게야? 어서 가자!”

할아버지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 이불이며 통장이며 사진을 마구 넣으며 말했다.

“사단 로봇 나는 거 구경 가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어서 대피소로 가야 해. 전쟁이 났다고!”

사단은 로봇이 아니었다. 나는 내 방으로 갔다. 책가방을 열고 중요한 것들을 집어넣었다. 필통이랑 공책이랑 게임기랑 피규어랑 그리고 파트의 목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우리는 대피소로 갔다. 마을에는 북쪽과 남쪽에 대피소가 하나씩 있었다. 우리는 남쪽으로 갔다. 대피소 안 침침한 불빛 아래 골목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 엄마, 아빠는요?”

“늬 어멈이랑 아범은 괜찮을 게다.”

나는 엄마, 아빠가 언제 오느냐고 물은 거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처럼 괜찮다는 건 곧 온다는 거겠지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무도 이 대피소를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첫날 군인들이 들어와서 전쟁이 난 것은 아니며 군이 마을을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비상식량과 함께 던져놓고 갔다. 나는 군인들이 나가기 전에 얼른 “우리 엄마, 아빠는요?” 하고 물었다. 군인은 무뚝뚝한 얼굴로 “지금까지 사상자는 없습니다” 라고 했다.

대피소 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군인들이 대피소를 나가자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혔다.

그날 밤, 담요 한 장이 깔린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계속 뒤척이자 얕은 잠을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깨어 나를 다독이셨다.

“아가, 괜찮다. 괜찮을 거야. 암, 괜찮아야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던 할아버지의 손길이 이내 멈추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전쟁이 날까봐 무서워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자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다. 그게 아니었다. 나는 파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파트를 그렇게 두고 오는 게 아니었다. 그 때 어떻게 해서든 안고 오든가, 그렇지 않으면 땅에 묻어주었어야 했다. 자꾸만 파트의 눈동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스위치가 내려간 눈. 그 스위치를 누른 것은 장군이다. 장군이 파트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것이다. 장군이 가도록 그냥 두면 안 되는 거였다. 그때 바로 복수를 했어야 했다.

장군은 지금 다른 대피소에 있을 것이다. 산 아래 있는 북쪽 대피소겠지? 장군은 지금 자고 있을까? 마음이 편할까? 녀석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편히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자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마치 가슴 속에 뜨거운 용암이 끓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피소 문이 열리면 나는 곧장 장군에게 달려갈 것이다. 졸로도 장군을 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

잠결에 땅이 쿵쿵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어른들이 잠에서 깨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이 아닌 게 확실할까요?”

과일 집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괜히 여기 있다 우리만 죽는 건 아닐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쟁이 뭐, 그렇게 쉽게 나는 줄 알아?”

과일 집 아저씨다.

“국가적인 문제는 간단한 게 아니라고. 따질 게 많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터지지 않는단 말이야. 게다가 여기, 버젓이 우리가 살고 있는데 나라에서 전쟁이 나게 그냥 둘 것 같아? 당신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잠이나 자!”

아저씨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컸다. 한 번도 아주머니에게 소리친 적이 없던 아저씨였다. 한밤,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을 때였다. 잠든 아주머니 곁에, 깨어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문이 열렸다. 3일 만에 보는 햇빛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피소를 나왔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풍경이 어슴푸레했다. 점점 빛에 익숙해지자 하나 둘 마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누군가 짧은 탄식을 내질렀다. 내 손을 잡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과일 집 아주머니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눈에도 모든 것이 분명히 보였다.

“아이고, 내 집!”

아주머니가 달려갔다. 1층은 가게, 2층은 가정집이었던 과일 집은 이제 1층도 2층도 없게 되었다. 무너진 벽과 냉장고가, 바구니와 짓뭉개진 과일들 더미가 있을 뿐이었다. 아주머니 옆에 아저씨가 망연자실 서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얼른 우리 집으로 갔다. 유리창이 깨지고 벽이 까맣게 그을리긴 했지만 아주 무너진 집들에 비하면 멀쩡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버님!”

엄마였다. 엄마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아빠는 턱수염이 덥수룩했다.

“어디 다치신 덴 없으세요?”

아빠가 할아버지의 앞뒤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다, 괜찮아.”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엄마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도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의 눈물이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파트는 어디 있니?”

엄마가 물었다.

파트……!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책상서랍을 뒤져 물건을 하나 찾아냈다. 장군을 잡을 총이다. 대피소 안에서 수많은 방법을 생각했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는 전 세계에서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638가지나 됐다고 한다.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기에 그렇게 미움을 받았을까?

나 역시 장군이 밉다. 죽이고 싶게 밉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 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 바로 사격. 게임에서처럼 멋있는 진짜 자동소총을 구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새총이 있다.

새총은 애들 장난감이 아니다. 돌멩이 하나로 날아가는 새를 잡는 것이 새총이다. 나는 그것으로 장군을 잡을 생각이다.

장군의 집으로 가는 길에 돌을 모았다. 밤만 한 것은 너무 크고 땅콩만 한 것은 너무 작다. 딱 도토리만 한 것이 좋다.

길을 가면서 보니 피해를 입은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식당 간판이 떨어져 나간 것은 그나마 가벼운 피해였다. 첫날 폭격을 입은 우체국은 까맣게 타서 우체국인지 쓰레기처리장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군인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회관의 무너진 담을 들어 올리는 무리도 있었지만 어깨에 총을 메고 입을 굳게 다문 채 골목골목을 다니는 군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더 이상 친근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마을 가장자리로 빙 둘러 걸었다. 외진 곳으로 걸어야 사람들을 덜 마주칠 것 같았다.

새총을 꺼내 줄에 돌을 얹었다. 목표물을 무엇으로 할까 두리번거리는데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웃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의 눈을 향해 돌을 날렸다. 돌은 전봇대도 맞추지 못하고 길에 떨어졌다.

“냐아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나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폈다.

“니야아옹.”

분명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은데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비야.”

내 부름에 대답하는 것처럼 “냐옹” 소리가 들렸다. 위다! 전봇대 위에 노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무엇에 쫓겨 올라간 것일까?

“이리 내려와. 아무리 너라도 거긴 너무 위험해.”

내가 말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나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내려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가만히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오히려 고양이가 나더러 그 밑은 너무 위험하니 어서 피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탕!”

고양이가 내 발밑으로 떨어졌다. 운동화에 피가 튀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골목 저편에서 목소리가 다가왔다.

“재수 없는 고양이 새끼. 죽었을까?”

“성질 좀 죽여. 함부로 총 쏘다가 지난번처럼 얼차려 받을래?”

“숨어 있는 적인 줄 알았다고 하면 되지, 뭐.”

“너도 참 웃긴 놈이야.”

“전쟁이 났으면 진짜 사람을 쐈을 거 아냐? 잔뜩 기대했는데. 저런 거라도 자꾸 쏴 봐야 내 사격 실력이 녹슬지 않지.”

“엊그제 경계에서 쏜 건 개였지?”

“큭큭. 커다란 개라서 맞추기가 쉬웠어.”

군인 둘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봤다. 게임장에서 나와 총 쏘기 시합을 하는 형이었다. 형은 어깨에 총을 메고 있었다. 손에 총을 든 다른 군인은 히죽이 웃고 있었다.

“어? 너!”

형이 알은척을 했다. 나는 대답도 않고 형을 지나 뛰어갔다. 장군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쉬지 않고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장군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절대복종!”

장군에게 외쳤다. 내가 다른 나라 말로 한 것도 아닌데 장군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멍한 눈으로 나를 보기만 했다. 장군 뒤로 벽 한쪽이 무너진 집이 보였다.

“가만히 서 있는다!”

내가 명령을 내렸다. 장군은 그대로 서 있었다. 멍한 표정도 그대로였다. 나는 장군의 눈을 향해 새총을 겨누었다.

“야… 졸…….”

장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제야 멍한 표정도 풀렸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네가, 네가 죽였잖아!”

나는 소리쳤다. 장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가 파트를 쫓아가지만 않았어도, 네가 나를 불러내지만 않았어도, 네가 나와 서약을 맺지만 않았어도, 네가 나를 우습게 보지만 않았어도, 파트는 죽지 않았어.

내가 장군에게 총을 쏠 이유는 너무 많았다.

장군은 내 눈앞에 있고 나는 새총으로 장군을 겨누고 있다. 잡고 있던 줄을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누군가 죽는다는 것이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일까?

나는 여기 있다. 파트와 고양이는 죽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장군이 있다. 정말 이래도 좋은 걸까? 장군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파트가 생각났다. 호기심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는 파트의 까만 눈동자.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주던 귀여운 내 친구. 파트는 죽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손을 내렸다. 새총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터덜터덜 그 길을 빠져나왔다.

어느 집에선가 흐느껴 외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어떻게 살라고!”

총을 쏘는 건 스위치를 누르는 것과 다른 일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무슨 생각인 걸까? 정말 전쟁이 나도 좋은 걸까?






  <당선소감>


   "아이들 생각하며 ‘사회’에 무뎌지지 않을 것"


11월, 불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접했다. ‘전쟁’이 나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희생’이라는 말 속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들어있다는 것. 폭력은 폭력을 낳고, 그 폭력으로 인해 짓밟히는 삶이 있다는 것.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퀴의 방향을 돌릴 수는 없다 해도 나라는, 우리라는 작은 바퀴는 좀 더 유연할 수 있지 않을까? 폭력 앞에서 또 다른 폭력을 낳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대답을 요구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고민에서 먼저 이 글을 출발했다. 아이들에게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기를 바란다.

나 자신에 골몰한 채 살았다. 동화를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 주위에 ‘사회’라는 커다란 우주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결코 무심해지지 않을 것 같고, 결코 무뎌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만난 소중한 아이들, 푸른학교 아이들과 푸른학교 선생님들께 감사한다. 동화를 사랑하게 해주신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 선생님들, 동화의 세계가 무궁무진 넓고 깊다는 것을 알려주신 정해왕 선생님, 그리고 오늘도 나를 깨우쳐주시는 한 분의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서로의 글을 나누어보며, 창작의 길 뿐만이 아니라 삶의 길에도 등대 역할을 해주는 나의 글벗들에게 감사한다.

구석방에 처박혀 한량처럼 먹고 노는 나를 못났다 구박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준 나의 가족들-할머니, 세희언니, 은지, 소정이 사랑하고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나서 이 삶을 누리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신 나의 부모님. 사랑하고, 감사하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1982년 경기 성남 출생.

  ● 고려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상대원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에서 2년간 아동복지교사로 활동.


 

  <심사평>


  "끊임없는 ‘폭력의 고리’ 예리하고 묵직하게 그려"


70매로 늘어난 분량에 대한 우려를 깨고 올해 투고작은 작년보다 늘었다. 심사는 그만큼 고단해졌지만, 작가 지망생들에 대한 믿음은 그만큼 두터워진다. 특정 소재에 쏠리지 않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나왔다는 점도 든든하다.

‘아빠와 함께 펭귄 춤을’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우화였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동물로 변하는 어른들,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반응, 아이들의 반응이 긴장과 유머와 연민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진다. 성긴 구성, 감상적이고 설명적인 문장만 아니었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 구두’는 팬터지적 장치가 탄탄한 이야기였다. 죽은 아빠의 구두를 신은 아이가 몸까지 입게 되고, 그 상태로 그의 마지막 날들을 직접 겪음으로써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상당한 호소력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 호소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생전의 아빠를 아이와 일체 소통하지 않는 타인 같은 존재로 설정한 점이 심사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은유와 상징을 적절히 사용한 ‘고장 난 메트로놈’은 문장도 매끄러워 시적인 향취를 풍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서사를 흐리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은유와 상징이 인간 존재, 혹은 삶의 어떤 부분을 도드라지게 드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더 필요할 듯하다.

‘스위치’는 도발적이고 강력한 제목만큼이나 힘 있는 작품이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라는 시사적 소재를 재빠르게 이야기의 살로 끌어온 순발력은 꽤 도전적이었으며, 그 살이 붙어 있는 뼈대가 동물-아이-어른-체제로 이어지면서 당하고 가하는 폭력의 고리라는 점은 이 작가의 주제의식을 예리하면서도 묵직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결말 부분 아이의 고뇌에 찬 속울음은 뭉클한 아픔과 함께 그 폭력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도 던진다. 이 옹골찬 신인의 탄생을 반기며, 쉽지 않았을 긴 이야기 축조에 애쓴 모든 응모자들의 노고에 치하를 드리고 싶다.

 

심사위원 : 김서정, 황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