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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조금도 외롭지 않아 / 최선영

 

주빈이는 창피를 줘도 화를 내지 않는다

'기분도 안 나쁜가? 이래서 오프라인 애들은 신경 쓰인다니까'

나는 배터리도 없는 여우폰을 손에 꼭 쥐었다'

이것만 켜지면 난 혼자가 아니야, 친구만 300명이 넘는다고!'


드디어 나와 친구로 등록한 아이들이 300명을 넘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는 게 취미다.

싸이, 블로그, 버디버디, 트위터….

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사이트에 신기한 사진이나, 요즘 유행하는 게임에 대해 몇 줄 적어 놓으면 된다. 그러면 관심 있는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오늘도 내 블로그 방문자만 200명이 넘는다. 난 내 블로그나 싸이 방문자가 많아질수록 기분이 좋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잽싸게 여우폰을 꺼낸다. 여우폰 안에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쭈니라고 지어 주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혀를 쭉 내밀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다가가서 머리를 쓱쓱 문질러 주니, 등을 바닥에 대고 벌렁 눕는다. 진짜 강아지라면 꼭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쉬는 시간은 정말 짧다. 쭈니와 잠깐 놀다 보면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 어쩔 땐 오줌이 마려운 것도 참는다.

여우폰은 안 되는 게 없다. 인터넷, 게임, 영화도 볼 수 있는 최신식 핸드폰이자,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와, 이준모! 그게 여우폰이라는 거야? 좀 보여 주라."

"안 돼, 나 지금 트위터 하고 있단 말이야."

"트위터? 그게 뭐야?"

"넌, 그것도 모르냐!"

나도 모르게 주빈이에게 짜증을 낸다. 이 녀석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녀석은 남들 다 있는 닌텐도도 하나 없다. 닌텐도는커녕 휴대폰도 없다.

주빈이는 창피를 줘도 화를 내지 않는다. 머리만 긁적이며 웃고 있을 뿐이다.

'쟤는 기분도 안 나쁜가? 괜히 미안하게시리. 이래서 오프라인 애들은 신경 쓰인다니까.'

난 오프라인으로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건 귀찮은 일이다. 오프라인 친구들은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내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 기분만 박박 우겨댄다. 먹고 싶지 않은 떡꼬치도 먹어 줘야 되고, 하기 싫은 축구도 해야 된다. 또 삐친 것 같으면 기분도 맞춰야 된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나의 베프 여우폰만 있으면 된다. 이젠 친구를 사귀어도 놀 시간도 없다. 놀기는커녕 말할 시간도 없다.

"준모야, 이따 여우폰 꼭 보여줘. 우린 이웃사촌이잖아, 알았지?"

주빈이는 약속이라도 하라는 듯 새끼손가락을 흔든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웃기는 녀석.'

지난달 아파트 앞 공터를 지날 때였다. 그날도 여우폰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내 발 앞으로 축구공이 날아왔다. 하마터면 공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에잇, 뭐야!"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녀석은 주빈이었다.

"어, 준모야! 공에 맞은 건 아니지? 근데 너 여기 살아?"

주빈이는 내 기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짜증이 나서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야, 나도 여기 살아!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냐. 벌써 4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나 가는데 이제 알다니. 우리 집은 701혼데, 넌?"

"903호."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주빈이를 불렀다.

"너도 같이 할래?"

"됐어. 공 차고 놀 시간 있으면 블로그에 새 게임 소식이나 더 올리겠다."

혼자 놀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남의 기분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거다.

나도 3학년 때까지는 친구들과 꽤 잘 어울렸다. 하지만 아이들과 다니다 보면 마음이 안 맞을 때가 많다. 친구들의 기분을 맞추는 건 정말이지 지겹다.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걸 하자고 할 때마다 "난 그거 별로야"라고 얘기했다, 그럼 아이들은 날 은근히 따돌리는 것 같았다. 먼저 따돌림을 당하느니 차라리 혼자 노는 게 낫다.

난 집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혼자 노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빠, 엄마는 늘 바쁘다. 엄마는 내가 사 달라고 하는 게 있으면 사 주는 편이다. 난 다른 아이들은 갖기 힘든 여우폰뿐 아니라, 최신식 닌텐도도 두 개나 있다. 마음 안 맞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이걸 가지고 노는 게 훨씬 재미있다.

사실 처음에는 혼자 노는 게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터넷만 켜면 날 기다리는 쭈니도 있고, 친구도 300명이나 있는데 외로울 이유가 없다. 오프라인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

학원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린다. 쭈니와 놀면서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그런데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여우폰이 먼저 멈췄다.

'뭐야, 쭈니 밥 줘야 되는데. 에잇, 이건 다 좋은데 배터리가 너무 금방 나간다니까!'

비가 그치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다. 편의점 문 앞에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

"준모잖아."

"어, 너희…."

3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우진이도 있다.

"얘들아, 우리 우산 사지 말고 그 돈으로 PC방 갈래? 요즘 'DD퐁'이라는 게임 새로 나왔는데, 진짜 재밌어. 딱 한 판만 하고 가자."

"그럼 비 맞고 가자고?"

"야, 비도 맞아 줘야 쑥쑥 크는 거야."

"우리가 무슨 콩나물이냐? 크하하."

아이들과 맞장구치며 얘기하던 우진이가 나를 슬쩍 쳐다본다.

"준모야, 너도 갈래?"

"어…나?"

"야, 쟤는 최신식 게임기가 넘친다며 PC방 같은 데 가겠냐? 빨리 가자."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낄낄거리며 뛰어간다.

'내 대답은 듣고 가야지! 쳇, 누가 그까짓 PC방 간대! 나한테 최신식 게임 CD가 얼마나 많은데….'

아이들은 항상 그랬다. 언제부턴지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준모는 안 한다니까, 준모는 안 먹는다니까.' 자기들이 먼저 대답했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멈췄다. 우산을 접어 돌돌 말았다.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닌텐도를 집에 두고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려니 심심하다.

아파트 공터에서 통통 공을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땅도 젖었는데 웬 농구. 어, 주빈이네.'

주빈이와 몇 명의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아이들과 공을 주고받던 주빈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이준모, 이제 오냐? 너 농구 안 할래? 그렇지 않아도 우리 팀에 한 명 부족하거든."

"싫어, 옷에 빗물 튀어."

"물 좀 튀면 어때,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 가방 놓고 나와, 알았지?"

주빈이는 진짜 이상한 녀석이다.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주빈이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많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화살표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왜 이래, 고장 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걸어가는 게 빠르겠네.'

9층까지 걸어 올라왔더니 숨이 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거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

'뭐야, 등이 나갔나?'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서랍에서 여우폰 충전기를 꺼냈다.

'쭈니야, 조금만 기다려. 형이 금방 밥 줄게.'

충전기를 여우폰에 연결하고 플러그를 꽂았다. 충전기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 이상하네.'

TV도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인터폰으로 경비실을 눌렀다.

"네."

"아저씨, 903혼데요, 우리 집에 불이 안 들어와요."

"너희 집만 그러는 게 아니고 지금 다 정전이구나."

"정전요? 인터폰은 되는데요?"

"인터폰하고 유선 전화기만 될 게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곧 들어올 테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TV도 보지 않고 컴퓨터도 하지 않고 있으려니, 가슴 속에 구멍이 난 듯 허전하다. 어쩐지 모든 게 멈춰 버린 것 같다. 꼭 세상에 나 혼자 덩그마니 남겨진 것처럼.

나는 배터리도 없는 여우폰을 손에 꼭 쥐었다.

'이것만 켜지면 난 혼자가 아니야. 이 안에 날 기다리는 쭈니도 있고, 친구만 300명이 넘는다고!'

밖에서 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창문을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농구하는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비가 와서인지 밖이 어둡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곳은 캄캄한데, 공터에만 불이 켜진 듯 환하게 보인다.

주빈이 머리로 공이 날아왔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쳇, 농구도 되게 못하네. 주빈이 머리가 골대도 아니고 거기에 공을 맞히냐. 내가 한 손으로 해도 쟤보다 잘하겠다.'

나는 눈앞에 공이라도 있는 듯 허공에 몸을 날린다. 슛!

'타다닥, 타다닥.'

거실에 불이 켜졌다. 전기가 들어온 거다.

게임이 끝났는지 주빈이가 아파트로 들어간다.

나는 여우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컴퓨터를 켠다. 의자에 앉아 부팅이 되기를 기다린다. 컴퓨터 대기화면에 아이들이 농구하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까짓 농구 같은 건 안 해도 돼. 곧 300명의 온라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될 텐데 뭐. 300명의 온라인 아이들을….'

"삐익, 삐익."

밖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준모야, 농구하자!"

주빈이었다. 집으로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잠, 잠깐만…."

심장이 쿵쿵 뛴다. 얼른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래서 오프라인 친구들은 귀찮다니까."

'농구하려면 운동화를 신는 게 낫나? 아니다, 비 왔으니까 샌들이 날까?'

신발장을 열었다. 안에 있어야 할 샌들이 보이지 않는다.

'또 어디로 간 거야? 아이 참.'

밖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운동화를 구겨 신는다.

"최주빈, 간 건 아니지? 나 지금 나가……." 〈끝〉





  <당선소감>


   "내 안의 작은 이야기 연못, 이젠 강을 향해 나섭니다"


내 안에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서걱거리며 뒹구는 낱말들을 주워 모아, 그것들로 도랑을 파고 물을 길어 붓고, 낮은 담을 쌓은 연못.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연못 옆에 쪼그리고 앉아, 뜰채로 떠다니는 이야기를 건졌습니다. 진부한 이야기, 익숙한 이야기, 어설픈 이야기를.

이야기를 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뜰채로 연못을 휘저으며 초조하게 이야기를 기다렸고, 또 어느 때는 이야기의 머리만, 또 어느 때는 이야기의 꼬리만 모습을 드러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 때문에 약이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그러다 기어코 콩닥거리며 파닥이는 이야기를 건졌습니다!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파닥거리는 뜰채를 들고, 가보지 못한 강을 향해 길을 나서려 합니다. 난 내 안에 얼어붙은 동심(童心)에 대고 기합을 넣듯, 세게 입김을 불어 봅니다. 후후~.

나를 낮은 의자에도 높은 의자에도 앉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립니다. 사랑하는 엄마와 정인, 해인, 승기, 민기 우리 5남매, 동화세상 선생님들과 22기 글벗들, 글담어린이 출판사 사장님, 그리고 한빛기획 식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의 글에 통로가 되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76년 서울 출생.

  ●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자연스런 스토리 전개… 인물심리 묘사 뛰어나"


예년에 비해 응모 편 수는 늘어났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수준은 좀 낮아진 편이라 심사하는 내내 아쉬웠다. 응모작들의 경향은 대부분 제재나 주제가 엇비슷한 생활 동화, 완결성을 지니지 못한 환상 동화, 동화의 첫 번째 독자가 어린이임을 간과한 어른을 위한 동화들로 분류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최선영의 '조금도 외롭지 않아'는 온라인 친구를 300명 넘게 가진 아이의 이야기다. 안 되는 게 없는 최신형 스마트폰이 베스트 프렌드인 그 아이에게 오프라인 친구들은 챙기거나 배려할 일이 많은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외롭지 않다는 주인공의 강변이 오히려 반어적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요즘 아이들의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며,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첨단 기기가 아니라 온기 섞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야기 전개나 인물의 심리를 잘 다룬 작가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당선작과 함께 최종심에 오른 송은혜의 '짬뽕이 맛있는 집'은 문장을 다루는 솜씨나 행간에 흐르는 유머가 상당하나 이야기가 따뜻하고 감동적인 미담에 그친 점이 아깝다. '6시에 멈춘 엘리베이터'는 동생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형의 심리가 섬세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본인이나 부모의 역할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이하영의 '부글부글 욱씨 이야기'는 '욱'하는 성미를 가진 욱씨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가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설정과 전개가 재미와 공감을 주나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우화로 읽히는 것이 더 적당할 듯싶다. 동화를 쓰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작품을 생산해낼 토대를 닦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당선하신 분은 물론 낙선하신 분들도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이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