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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밥풀 묻었다 / 이무완

 

호박꽃 속 뽈뽈뽈 기어들어가

냠냠 맛있게 혼자 밥 먹고도

시침 뚝 떼고 나온


호박벌아!


입가에 밥풀 노랗게 묻었다.

엉덩이에 밥풀 덕지덕지 붙었다.




  <당선소감>


   동심을 일깨워 준 벗


  아이들 방학하는 날, 땅거미 내리도록 이어진 지루한 회의 도중에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많이도 바랐던 순간이지만 막상 당선 소감을 써야 할 처지가 되고 보니 마냥 어리둥절하고 `고맙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교실에서 교과서 들고 시를 가르치면서 `나도 써 봐야지' 하는 마음을 처음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곁에 살면서 어른이라서 미처 들을 수 없던 말, 볼 수 없던 일들이 조금씩 귀에 들고 눈에 보였지요. `지금부터 시를 써야겠다'고 작정하고 낑낑거릴 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일들이 조금씩 내 마음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어찌 보면 시 줍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내게 아이들은 동심을 일깨워준 벗이고 시를 가르쳐준 스승입니다. 그들이 있어서 지금 내가 있는 셈이지요. 끝으로 아직 서툴고 모자란 글이지만 지금보다는 이다음을 믿고 뽑아준 심사위원 선생님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아내와 은솔, 은새, 당선 소식에 오히려 고맙다고 내게 말해주던 식구들, 시를 꾸준히 쓰도록 격려해 준 삼척 글쓰기회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좋은 작품으로 은혜를 갚아 가겠습니다.




  ● 춘천교대 졸업
  ● `어린이와 문학' 동시 1회 추천
 



  <심사평>


  메시지 묻어둔 점 돋보여


  예선을 거쳐 올라온 12명의 작품 가운데 `씨앗', `여름비가', `따뜻하다', `밥풀 묻었다' 등 4편을 최종 심사 대상작으로 골라, 동시는 단순, 명쾌, 소박함에다 동심의 무게가 얹혀 있어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모으고 당선작 선정에 들어갔다

  `씨앗'은 동심의 옷은 입었으나 시적 묘사와 의미(메시지) 매김이 약해서, `여름비가'는 시적 표현과 동심 읽기에는 도드라져 보였으나 신인의 최대 덕목인 신선감이 모자라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끝까지 남은 `따뜻하다(금해랑)'와 `밥풀 묻었다(이무완)'를 거듭 읽으며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결과, `따뜻하다'에는 `동생도 추운 걸까/.../반달처럼 자고 있다/ 나는 초승달이 되어/ 동생을 꼭 안았다'와 같은 빛나는 은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부분 거의가 산문적 진술로 이루어져 시 전체의 긴장감이 지탱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져 `밥풀 묻었다'가 당선작의 자리에 올랐다.

  `밥풀 묻었다'도 좀 짧다는 점에서 선뜻 집어 들기를 망설이게 했으나, 신춘문예 당선작이 꼭 길고 무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보아 단순 명쾌하고 동심이 잘 얹힌 이 작품을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선작은 깜찍하고 귀여우면서도 개구쟁이인 어린이 모습을 산뜻하게 떠올린다. 호박꽃 속에서 저 혼자서만 꿀을 따 먹고 꽃가루를 몸에 잔뜩 묻혀서 나오는 호박벌을 통해 그런 어린이를 잘 형상화하였다. 이때 꿀을 `밥'으로, 꽃가루를 `밥풀'로 은유, 시적 긴장감을 높인 솜씨도 좋았다.

  그러면서 어린이는 욕심을 부리고 잘못을 저질러도 숨김이 어딘가 엉성해서(밥풀을 묻혀) 금방 눈에 띄어 버리게 된다는 동심 읽기도 돋보였다. 이는 곧 `욕심 부리지 마라.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는 메시지 전달과 다름없다. 메시지를 시의 안쪽 깊이 묻어 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심사위원 : 이화주, 박두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