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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우체통 / 김미경

 

고민이 있어요.

들어주실래요?

예전엔 하루에만 수백 통의 편지를 먹던 때가 있었어요.

연말이면 정말 배탈이 날 지경이었어요.

나를 찾는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구별이 없었답니다.

거리에서도 제일 돋보였거든요.

요즘도 더러 배부를 때가 있긴 해요.

다닥다닥 숫자 찍힌 세금 종이들

홍보 선전 우편물이 주르륵

아무리 뱃속을 가득 채워도

삐뚤빼뚤 쓰인

정 담뿍 담긴 편지 한 통이 훨씬 맛 나는 것 같아요.

후덥지근한 여름이건

쌀쌀한 겨울이건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들이면 그저 행복했었죠.

갈수록 힘이 빠져요.

찾는 사람은 점점 줄고

쪼르륵 배곯는 날만 늘어나니 말이에요.

거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자꾸만 외롭답니다.

이러다 영영 잊히는 건 아니겠죠?




  <당선소감>


   -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치려다 나도 모르게 번호를 눌렀다. 놀랍게도 발신처는 매일신문사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금방 반응하는 성미가 아니라 당선 소식을 참 담담하게 들었다. 당선 소감을 쓰는 지금에야 조금 실감한다. 앞으로 이 일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다. 내내 한 번씩 웃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감기 걸린 목소리로 소식 전해서 미안하다는 기자님! 그저 전화 주신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권오삼 선생님! 뽑아 주신 거 자체가 큰 영광입니다. 실은 선생님께서 글을 읽어 준 것만으로도 많이 기뻤습니다.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습니다. 최춘해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 동시를 접했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 많이 느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공부하는 분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동시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가끔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때가 있다.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당분간 이 신기한 녀석을 졸졸 따라다녀야 될 것 같다.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시험에 합격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 않다. 부족한 게 많다. 더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지 싶다. 언제나 듣기 싫은 얘기들 잘 들어주는 뚱! 수고했다. 나에게 일어난 특별한 일이 우리 가족한테 조금이라도 행복 촉매제 노릇을 하길 바란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 1978년 출생
 



  <심사평>


  흡인력 있게 시화해 보인 작품


  전국 각지에서 보낸 응모작들을 기대에 찬 눈으로 읽었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뒤늦게 몇 편이 눈에 들어와 안도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 수준이 낮았다.

  눈에 들어온 '우체통'(김미경) '시오리 자연교실'(박민) '전용 비행기'(홍지민) '급식표'(정나라)는 소재나 표현,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다른 응모작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 네 편 가운데 '전용 비행기' '급식표'는 '우체통'이나 '시오리 자연교실'에 비해 시의 내용이나 깊이에서 부족함을 보여 일단 제외했다.

  남은 두 편 가운데 '시오리 자연교실'은 시의 화자인 시골 아이가 오 리나 되는 등굣길을 오가는 도중에 스스로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을 차분하게 진술한 작품이나, '우체통'보다는 내용이 단조롭고 구성이 느슨해서 시적 밀도가 떨어지는 게 흠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우체통'은 통신수단의 변화로 말미암아 편지가 지닌 인간적 체취나 정겨움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우체통이란 상관물을 통해 흡인력 있게 시화한 점이 심사자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흡인력이란 곧 시가 지닌 어떤 '울림'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은, 당선자의 응모작 중 한 편이 의외로 태작이어서 심사자에게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당선자는 이 점을 꼭 유념해 주었으면 하며,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권오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