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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살구꽃 향기 / 유금옥

 

민지는 신체장애 3급입니다

순희는 지적장애 2급입니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민지가 바지에 똥을 싸면

순희가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

똥 덩어리를 치우고 닦아 줍니다


다른 친구들이 코를 막고

교실에서 킥킥 웃을 때


순희가 민지를 업고

가늘고 긴- 복도를 걸어올 때


유리창 밖 살구나무가

얼른, 꽃향기를 뿌려줍니다


살구나무도 신체장애 1급입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달려와

꽃 피우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당선소감>


   꿈으로 건너갈 종이배를 탄 느낌


  대관령 중턱, 전교생 20명 남짓한 아담한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면 100살 된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나무 위에는 종달새 둥지가 있고 나무 밑에는 조그맣고 예쁜 도서관이 한 채 있습니다. 저는 그 도서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 분홍 벚꽃잎이 깔린 운동장에 큰대자(大字)로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시인입니다.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문득, 어린 시절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꼭 한 문제씩 틀리던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주변의 벚나무나 살구나무의 일기며 작은 풀꽃들의 일기까지 혹은 아침 햇살과 놀고 있는 이슬 한 방울의 일기도 쪼그리고 앉아 받아쓰기해 보지만, 늘 100점을 받지는 못합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툰 작품이지만 맑은 눈으로 뽑아주신 은혜, 이 땅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동시로 보답하겠습니다.

  저에게는 참 아름다운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할머니가 되어, 자연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살고 싶었는데 이제 그 꿈으로 건너갈 수 있는 종이배를 타게 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다시 한 번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 올립니다. 저에게 시를 가르쳐 주신 정진규 스승님, 이승훈 스승님, 그리고 송준영 선생님, 그 은혜 잊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어린 살구나무와 종달새와 박재근 교장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1953년 강릉 출생
  ● 왕산초등학교 도서관 사서
  ● 2004년 현대시학 신인상
 



  <심사평>


  동심의 향기가 가슴에 남는 작품


  전반적으로 동심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동심과 시적 표현을 조화시키려고 한 작품이 늘어나서 반가웠다. 반면에 너무 산문적이고 설명적이거나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나열해 놓은 작품이 많아서 아쉬웠다. 간결하고 선명하면서도 동심을 잘 살린 작품이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정지훈 변은경 김혜원 이수경 이종임 유금옥의 작품을 집중 검토했다

  정지훈의 ‘불장난’은 현란한 표현이 돋보였지만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산문적이었다.

  변은경의 ‘방학 중’은 의인화 기법을 잘 살렸으나 밋밋하고 평범했다. 김혜원의 ‘해시계’는 발상이 신선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너무 설명적이었다. 이수경의 ‘피었네’는 간결하고 리듬을 잘 살렸지만 다른 작품들이 너무 처져서 역량이 미덥지 않았다. 이종임의 ‘산들래초등학교 3학년 5반’은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것처럼 상큼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상과 표현이라서 마음에 걸렸다.

  유금옥은 시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동시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어 역량에 신뢰가 갔다.

  ‘살구꽃 향기’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살구나무가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어주는 따스한 동심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그려냈다. 선명하고 간결한 묘사로 사랑의 동심을 감동적으로 담아낸 솜씨가 돋보였다. 특히 후반부의 절묘한 동심적 발상과 표현이 단연 빛났다. 동심과 시심이 잘 조화를 이룬, 동심의 향기가 오래 가슴에 남는 좋은 작품이었다. 탈락한 응모자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