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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엄마 달과 물고기 / 김미경

 

물고기는 내 오빠다

오빠가 물고기인줄 알면서도 내 엄마 달은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가는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눈물이 없는 달

우리가 잠든 밤마다 환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놀라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달 말이다

이런 달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만 많다

물거품이 이는 곳에 가면 은빛 곡선을 가진 오빠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발을 핥고 있어서 젖 물릴 때가 됐다고 한다

물고기의 얼굴은 내 얼굴

우리는 형제다

물속에 잠긴 달이 운구릉을 헤적거리다 곱은다리에서 암흑 속으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검은 그림자에 싸여 비틀거리는 아빠도 함께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힘이 세다.


 

 

  <당선소감>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 모른다"


  녀석은 주로 빛이 어스름할 때 또는 밤중에 그리고 가끔은 흐린 날에 물었다.

  나는 가슴 위에 놓인 녀석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녀석을 위해 책상에 먹이를 놓아두었다. 녀석이 뭘 먹고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식성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살아있는 내 피 외엔 건드리지 않았다. 배 밑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나의 공포감을 눈치 채고 그것이 녀석을 신나게 한 게 분명했다. 붕 뜬 채 내가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녀석은 인류 친척들과 오래 살아 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배가 불러 만족하면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불멸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다며 책더미 속으로 기어들었다. 녀석은 음지에 숨어 지내야 했다. 가끔 마주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녀석에게 자극받으면 늘 반응하는 우리랑 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끈적이는 몸을 비벼대며 혼자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우리를 뚫어 내부를 천천히 비워내는 것이 녀석의 목표일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녀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두고 먹어두고 그래야 녀석에게 영원히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녀석처럼 꼼짝 않고 책장 이음새에 기대서 잠을 자 두는 게 좋겠다.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잠깐 내린 눈송이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33년째 묵묵히 신춘문예를 운영하고 있는 한라일보사에 감사드린다. 내 시가 부족한 만큼 심사위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진용진 선생님과 시의 집을 짓는 김기호 대목 그리고 '시와몽상' 시우들께 감사드린다.

● 1964년 제주 출생 
● '시와몽상' 동인


 

  <심사평>

 

  

활달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개성적 시선 돋보여

 

  202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199명이 총 1142편의 작품을 응모하여 성황리에 마감되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국 속에서도 문청들의 시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부문 199명의 응모자의 작품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는 최종 10편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특징은 시의 길이가 길어지고 산문시 형태가 많았다는 점이다. 내용면에서도 현대인들의 소외와 불안, 서정성이 짙은 작품 등 다양하고 참신한 시적 경향을 선보였다.

  본심에 오른 응모작 중에서 눈길을 끈 작품은 '엄마 달과 물고기', '거품공장 공장장 탁씨', '뜨겁고 흰 유언' 등 3편이었다. '거품공장 공장장 탁씨'의 경우,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으며, '구름(담배 연기)'과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결합이 시의 비극성을 환기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시 세계가 확장되지 못한 채 관습적으로 마감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뜨겁고 흰 유언'은 '어미 개'의 죽음을 통해 어미 개가 지닌 모성의 세계와 인간 혹은 공권력이 지닌 폭력성을 포착한 작품이다. 안정적인 시적 구조와 상징을 통해 시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는 반면 상상력의 변용과 확장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논의 끝에 '엄마 달과 물고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엄마 달과 물고기' 외에 '눈, 어슴푸레한', '오래된 서랍' 등 응모작들도 편차 없이 고른 수준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활달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 개성적이며, 시 창작에 몰입한 고투의 시간이 육화되어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이 돋보였다.

  당선작인 '엄마 달과 물고기'는 모성의 부재로 인한 비극미와 더불어 '달'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인식은 물론 은유와 상징성까지 획득하고 있다. 이때의 '달'은 타자와의 조화로운 삶을 염원하고, 공동체의 의지를 추동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어 '엄마 달과 물고기'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수상자에게는 거듭 축하를, 응모자분들께는 깊은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심사위원 : 김수열, 서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