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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부부 / 박종민

 

나를 뭘로 보고
이번에는 먼저 말하나 봐라
말하고 싶지만...


 

 

  <당선소감>

 

   "인식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뻔한 일상도 새롭게 다가와"


  당당하게 "신춘문예"라는 이름을 내건 상이라니..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심사위원님들을 원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눈맑은 그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뽑아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소감문을 쓰며 따스한 시간을 보낼 일도 없었을테니까요.

  4 년전, 우연히 디카시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만만하게 보고 언제든 부르면 내게 찾아올거라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호락호락한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제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이제는 하루만 못봐도 궁금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친구 잘둔 덕에 이렇게 큰상까지 받게 될줄이야..보기엔 왜소하지만 속은 꽉찬 벗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뜬금없지만, 제 인생영화중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짐자무시 감독의 "패터슨"...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을 배경으로 도시와 같은 이름의 버스기사 "패터슨"의 일상과 삶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영화를 보고나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도 시가 될수 있구나.. 인식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뻔한 일상도 새롭게 다가올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패터슨이 쓴 시는 대부분 간결하면서 작위성 하나 없이 잔잔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순간, 일상을 즐기기에 디카시만한게 또 있을까.. 패터슨이 디카시를 알았다면 디카시로 마음을 표현했을 거란 상상을 하며 그 울림이 어찌나 컷던지 패터슨이된 심정으로 디카시와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왕 즐기는거 여러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무모하게 디카시집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이후 딱 일년만에 신춘문예 당선이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상작이 저의 대표작이 되지 않도록 계속 정진해서 상의 권위를 높이는데 일조하는 것이 당선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수상작이 세상에 나오는데 씨앗을 제공한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이런 영광스런 순간을 맛보게 해주신 부모님, 특히 지금 힘들게 투병중이신 어머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 고마운 막내동생, 꽃을 피워보기도전에 세상을 등진 착한동생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 1964 년생
● 충남 보령 출생
● 한국외대 행정학과 졸업


 

  <심사평>

 

  

이젠 '디카 시학(詩學)'을 마련할 때

  우리 심사위원 일동은 예상보다 많은 응모작들을 보고, 드디어 '디카시 시대'가 열리는구나 하고 기뻐하면서 심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디카시의 속성과 목적을 토론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디카시가 세계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인증 샷’처럼 시상이 떠오르던 순간을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포토샵으로 ‘변형ㆍ합성’하거나 문인화까지 포함시키는 그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토론한 결과, 먼저 시상에 따라 피사체를 찾아 찍었는가, 그의 자극에 의해 떠오른 시상에 사진을 덧붙였는가를 살핀 다음, 두 매재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결합시켰는가, 그런 결합이 얼마나 새로운 의미와 미를 탄생시켰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심사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담화든 말하는 사람의 동기에 따라 그 담화의 전체 구조와 조직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 가장 강력해 '초두(Primacy)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자기와 관계있는 것들이 '각인(imprinting)'되어 그 '틀(frame)'에 의해 해석해 언어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살펴본 바, 김향숙씨의 「압정 공장」과 「쉼표」는 피사체가 시상을 자극해 쓴 작품이었습니다. 압정이나 쉼표 같은 솔방울과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어떻게 이런 대상을 발견했을까 섬세함에 놀랬지만, 작품 제목은 피사체의 모습에 의해 붙인 거고, 내용도 그를 보던 순간의 주변 풍경을 이야기해 시가 사진의 설명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옮겼습니다.

  홍명표씨의 「정, 그립다」는 반대로 시상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어머니가 외상으로 연탄을 사들이고, 그 개수를 '바를 정(正)'자로 표시한 기억을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 그 시절의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연탄재 사진을 변형ㆍ합성하고, 옛날이야기임을 암시하기 위해 흑백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다룬 작품들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해 습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김유진씨의 「철모」 역시 홍명표씨처럼 시상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입니다. 6.25때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죽은 병사들을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 사진을 변형ㆍ합성하는 대신 솔잎을 뚫고 솟아오르는 철모 모양의 송이버섯들을 찍은 사진과 결합시켰습니다. 커다란 버섯 옆의 작은 버섯 3송이는 어린 학도병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마른 솔잎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켰어도 엄청나게 많은 국민들이 죽었다는 걸 암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본문의 ‘70년 전 총소리/지금은 휴전 중이다//깊은 산골’까지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갈비들의 낮잠을 불침번 서는/군인들’이라는 구절의 ‘갈비’가 감동을 방해하기 시작하더군요. 디카시의 어지간한 흠결은 사진 효과 때문에 그냥 덮어두기 마련인데, 완전한 비문이라서 미주(尾註)를 보니까 ‘마른 소나무 잎’이더군요.

  그리고 또 「성형수술」에서는 ‘비손’이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해 사전을 뒤적거리는 동안 낯선 단어들이 초두 효과를 일으켜 앞 작품의 감동까지 덮어버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한 작품은 박종민씨의 「부부」입니다. 이 작품은 김향숙씨처럼 천연색 사진과 시를 결합시킨 겁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토끼 두 마리가 너무 귀여워 왜 찍었을까 다시 제목을 보니까 ‘부부’더군요. 정말 털빛과 자세가 전혀 달라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썼는가 본문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나를 뭘로 보고/먼저 말하나 봐라’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쿡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그러면서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자웅들의 심리와 행동 방식은 모두가 똑 같다는 걸 일깨워줘 당선작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과 시가 서로 도와 계속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어 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미래는 디카시 시대니, 응모하신 모든 분들이 함께 디카시학을 마련해 우리가 세계 문학을 이끌어 봅시다.

심사위원 : 윤석산, 현달환, 이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