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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자전거

박성규

 

색 바랜 무단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

벽돌담 모퉁이서 늙어가는 자전거 하나

끝 모를 노숙의 시간 발 묶인 채 졸고 있다

 

 

뒤틀리고 찢긴 등판 빗물이 들이치고

거리 누빈 이력만큼 체인에 감긴 아픔

이따금 바람이 와서 금간 생을 되돌린다

 

 

아무도 눈 주지 않는 길 아닌 길 위에서

금이 간 보도블록에 제 살을 밀어 넣을 때

산 번지 골목 어귀를 밝혀주는 애기똥풀

 

 

먼지만 쌓여가는 녹슨 어깨 다독이며

은륜의 바퀴살을 날개처럼 활짝 펼 듯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

 

 

<당선소감>


징소리처럼 울려나오는 한마디가 바로 임을 깨달아

 

찬바람 할퀴고 지나가는 골목길도 저에게는 따스한 봄의 계단입니다. 우연히 어느 골목 담벼락에 몸을 기댄 자전거를 보았습니다. 제 수명을 다한 듯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스듬히 누워있어도 누구 하나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누군가가 힘차게 페달을 밟고 거리를 누볐을 것 같았습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다들 어깨를 움츠리는 세상입니다. 애기똥풀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직립의 깃을 털 듯 살맛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황금물결 출렁이는 고향의 가을 들녘은 생각만 해도 늘 가슴이 뜁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마주하고 자라서 그런지 항상 자연에 의탁하여 뭉클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받아내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멋진 시가 탐나서 화려한 문장으로 펜 끝을 세워보지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징소리처럼 울려나오는 한마디가 바로 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를 우리 민족시가의 대표적 정형시인 시조의 길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신뢰하고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애처럼 서서히 시마(詩魔)에 다가서려 합니다. 아직 부족하고 설익은 졸작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들과 경상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박성규 / 1969년 충북 보은 출생 / 자영업 / 2009년 송강 정철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상을 풀어내는 솜씨 자유로워

 

모국어의 높은 벽을 뛰어넘는 눈부신 도약을 신춘문예 시조에서 본다. 글감 찾기에서부터 말 고르기, 그리고 시조의 틀에 얹힌 가락을 뽑아내는 솜씨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이미 일정한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 위해 거듭 읽어야 했다.

올해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펜 대회에서 시조가 주제로 채택되어 세계의 문학인들에게 우리 모국어의 정체성이며 한국시의 정체성인 시조의 참모습을 펼쳐보이게 된 만큼 이 땅의 시재가 있는 신인들이 시조쓰기에 골몰하고 있음을 크게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당선작 <애기똥풀 자전거>는 시적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시상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자재롭다.

수명을 다해 버려진 자전거를 한 생명체로 되살려 놓으면서 애기똥풀을 등장시켜 빛나는 비상을 이끌어내는 생각의 힘이 4수의 시조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색 바랜 무단 폐기물 이름표 목에 걸고로 운을 떼고서 페달을 밟고 선 풀꽃, 직립의 깃을 턴다의 마무리까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마지막 종장을 이 시인의 날개 펼 시조의 내일이 되리라 믿는다.

끝까지 겨뤘던 작품으로 유배의 섬을 간다’ ‘바퀴의 질주’ ‘무당거미의 아침’ ‘먼지의 산란’ ‘늦은 장마등도 각기 기성의 벽을 넘을 역량을 담고 있었으나 한 자리에 밀려났음이 못내 아쉽다.

심사위원 : 이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