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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뼈

유선철

단순한 무대는 화려하고 장엄했다

 

오롯한 발자취, 죽음마저 연주였다

 

고요는 달빛을 풀어

그의 뜰 쓸고 갔다

 

모서리 동그마니 묵언에 든 나무 의자

 

그 아래 하얀 뼈가, 말씀이 묻혀 있다

 

망초꽃 흔들어놓은

바람이 거기 있다.

 

<당선소감>


따뜻한 시쓰기 이제 시작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바람 앞에 섰습니다. 울컥, 파도 하나가 밀려왔습니다. 바람을 안았습니다. 가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말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시조의 강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그만 발목이 빠져버렸습니다. 처음엔 자꾸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광맥을 찾아 헤매는 일이고 금쪽같은 말을 캐내는 일이었습니다. 읽고 고치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멀미가 났습니다. 소질도 없으면서 길을 잘못 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돌아오기를 몇 번, 어느새 시조의 강물은 허리께에 차올라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신 백수 정완영 선생님께 시조를 배우고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넓고 푸른 그늘 속에서 습작을 한 삼 년 후, 이교상 시인을 중심으로 김성현 시인 등이 함께하는 공부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는 매주 모여 합평회를 하였습니다. 서로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소주 한잔으로 위로하며 더 좋은 작품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의 기쁨은 백수 선생님의 가르침과 시벗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달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제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 비우고, 더 내려놓아,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바람은 아직 멎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 아득히 넘어야 할 산들이 보입니다. 불일암에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1959년 경북김천출생 경북대 일반사회과 졸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 김천중앙중 교사 중앙시조백일장 20091월 장원

 

<심사평>



자신의 시를 창작하는 힘 가져

 

임진년 새해를 맞아 또 한 사람의 촉망되는 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 우린 신중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습작과정을 통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서정과 영탄, 설익은 관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아 군계일학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결심에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인재의 그 동전, 은유의 무게’, 구애영의 유빙(流氷)을 바라보며’, 최승관의 바다, 그 두려운 갈망’, 유선철의 바람의 뼈4편이었다.

그 동전, 은유의 무게는 첫째 둘째 수에선 형식 속에서 담담히 서정을 풀어가는 솜씨에 눈길이 갔는데, 셋째 넷째 수에 오면서 절제를 잃고 감정과잉을 낳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함께한 응모작들 역시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유빙(流氷)을 바라보며는 적절한 비유를 차용해 와 결빙의 퍼즐처럼 뻗어나가는 심상들에 근접시키려 했으나 시조 특유의 축약과 가락을 잃고 있어 이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으로는 바다, 그 두려운 갈망바람의 뼈였다. 앞의 작품은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장점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적확한 이미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바람의 뼈는 시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함축과 가락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정형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용 작품이 아닌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어 신뢰를 갖게 한다. 이런 안정감은 반대로 날선 시대를 향한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당부를 빌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한국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대성하기를 바라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하순희·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