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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왕버들

민승희

살얼음 정수리에 꽃대하나 벌고 있다

서리 내린 가지마다 동안거 푸는 버들

이른 봄 풍경소리가 우포늪을 깨운다

적멸을 꿈꾸는가, 가시연 마른 대궁

깃을 턴 휘파람새 푸른 정적 깨트리면

하르르 이는 바람에 물비늘이 일어난다

감았던 눈을 뜨면 문빗장이 열리듯

희뿌연 이내 걷고 우뚝선 수마노탑

층층의 뼈대하나가 하늘을 받쳐 든다

버들가지 필 때마다 옥개석도 자라나고

금강경 피워 물듯 초록 장삼 두른 나무

그 앞을 도는 사람들 부처마냥 환하다

 

<당선소감>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세밑 아침에 당선이라는 낭보를 받아 들었습니다. 맵짠 추위가 일시에 누그러들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옷깃을 파고들던 바람소리가 구순 어머니를 위협하는 고향집 안방에서 모처럼 노모와 함께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습니다. 청국장 띄우는 냄새가 오늘처럼 구수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이라는 벅찬 타이틀을 마당가 나무 위의 까치도 반기는 듯합니다. 유난히 푸르게 보이던 하늘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거미줄 같은 습작의 시간들은 살아온 날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살아갈 날들을 그려보는 나름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설렘과 기대로 오늘 저는 문단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살 떨리는 긴장감으로 펜을 잡으려 합니다. 한동안 풀려있던 들메끈을 힘차게 새로 조여 봅니다.

스스로의 모자람을 알기에 차근차근 채워 나가겠습니다. 토끼의 속도를 부러워하기보다 거북이 같은 한결같음을 지향하겠습니다. 길손에게 나뭇잎을 띄워주던 우물가 아낙의 마음으로 시를 짓겠습니다. 서푼어치의 손끝 재주를 경계하며 문자와 언어 앞에서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처음처럼이라는 말을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생전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시 한 편을 올릴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으로 가슴까지 두 방망이 치는 오늘,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에도 조용히 지켜봐 준 남편의 소리 없는 박수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간 지도해 주신 교수님과 같이 공부하던 문우들께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전합니다. 부족한 글인 줄 알면서도 선뜻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아시아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시조 앞에서 더 맑은 시인의 목소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