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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琥珀) 속의 모기

권영하

호박 속에 날아든 지질시대 모기 한놈

목숨은 굳어졌고 비명도 갇혀 있다

박제된 시간에 갇혀 강울음도 딱딱하다

멈추는 게 비행보다 힘드는 모양이다

접지 못한 양날개, 부릅뜬 절규의 눈

온몸에 깁스한 관절 마디마디 욱신댄다

은밀히 펌프질로 흡혈할 때 달콤했다

빠알간 식욕과 힘, 그대로 몸에 박고

담황색 심연 속에서 몇 만년을 날았을까

전시관에 불을 끄면 허기가 생각나서

호박 속의 모기는 이륙할지 모르겠다

살문향(殺蚊香) 피어오르는 도심을 공격하러

 

<당선소감>


고시보다도 어려워이번엔 운이 좋았다

 

전국 단위 어느 신문사 신춘문예든 정말 어떤 고시보다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도 군계일학이어야 하지만, 행운도 엄청 필요하니까. 그래서 글 쓰는 사람들이 모두 도전하는 것일까?

그동안 전국 단위의 신춘문예 시·소설부문 최종 본선에 5번 정도 올랐지만, 나에게 행운은 없었다.

문학상도 몇번 받아보고 문예잡지사 시부문에 등단해 시집도 2권 내보았지만, 신춘문예와 인연은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 운이 좋아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좀 아쉬운 것은 21살 때 시부문 최종 본선에서 당선되었으면 좀 더 열정적으로 나만의 색깔로 좋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불현듯 대학 때 쓴 시 <괘종시계>가 생각난다.

스스로 가슴을 쳐서/ 소리내는 몸을 가졌던가/ 아픔을 숫자로/ 말하는 버릇을 가졌던가/ 세상 인심보다/ 더 가파른 수직 벽에/ 목을 걸고/ 무슨 설운 사연 있기에/ 전신이 멍들도록/ 소리나는 상처로 우는가/ 시간을 끌어모으기 위해/ 심벌을 흔들며/ 잊으려 그리움으로/ 다시 우는 괘종시계여/ 태엽에 감긴 추억이 무어길래/ 맨가슴에 굵은 말뚝 박아/ 둥근 세상, 팔로 허우적대며/ 온종일 우는가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농민신문사, 그리고 점촌중학교 모든 선생님들, 가족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권영하 1965년 경북 영주 출생 문경시 점촌중학교 교사 almom7@hanmail.net

<심사평>


상상력·소재의 확장 돋보여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메시지를 놓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고개 숙인 농심을 일으키고 농업인의 입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농민신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농업인의 애환을 대변할 만한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삼효문을 읽다> <하얀 종이 집> <호박 속의 모기> 세편이었다. <삼효문을 읽다>는 감각적인 표현에서 돋보였으나 전개의 상투성이 거슬렸고 <하얀 종이 집>은 시적 은유의 깊이가 두드러지면서도 주제 전달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호박 속의 모기>를 당선작으로 합의하였다. 이 작품은 행간마다 상상력의 힘이 느껴지고 소재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함께 보낸 작품에서의 다양한 시상과 시어의 건강성 또한 신뢰를 보탰다.

시를 쓰는 일은 관찰과 사색, 사유를 통한 세상 읽기에서 얻은 정신적 에너지를 문자의 힘을 빌려 독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의 하나다.

근년에 투고되는 신춘문예 작품들을 보면 표현에 치우쳐 그 정신의 깊이가 자꾸만 얕아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당선자는 이 점을 유념하여 시조의 숲을 건강하게 하는 나무로 자라나기 바란다.

심사위원 : 민병도, 백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