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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 - 거가대교에서

황외순

찰싸닥,

손때 매운 그 소리를 따라가면

갓 태어난 핏덩이 해 배밀이가 한창이다

어둠을 죄 밀어내며

수평선 기어오른다

 

비릿한 젖 냄새에 목젖이 내리는 아침

만나고픈 열망하나 닫힌 문을 열었는가

섬과 섬 힘주어 잇는

탯줄이 꿈틀댄다

 

당겨진 거리보다 한 발 앞선 조바심을

여짓대던 해조음이 다 전하지 못했어도

짠물 밴 시간을 걸러

마주 앉은 저 물길

 

<당선소감>



서툴지만 먼 길 우직하게 가고 싶어

 

얼마 전, 십 년 지기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그곳은 미용실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이었습니다. 제게 미용실은 일터이자 문학의 산실입니다. 엄습해 오는 상실감과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 사이에서 힘들어할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뭔지 모를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아마도 그건 채찍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더 잘하라는 격려의 채찍,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압의 채찍이 제 머릿속을 후려쳤기 때문입니다.

시조와 눈이 맞은 지 오래, 시조의 틀이 주는 적당한 구속이 맘에 들어 감히 외도는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변방에서 시와 수필의 독자로 기웃거리다 뜻하지 않게 만난 터라 홀연 짝사랑인 듯 외롭고, 이방인인 듯 겉돈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시조에 못 박아 둔 제 존재감을 재차 확인하곤 했습니다.

드디어 출발선에 섰습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먼 길 우직하게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달리고 싶은 제게 등 떠밀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기뻐해 주실 부모님과 병상에 계신 시어머님, 의기소침해 있을 때면 위로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해 주시던 경주문예대학 선생님들과 문우들께도 감사드리며, 묵묵히 제 응석 다 받아 준 남편과 사랑하는 두 아들 현준이, 현제와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황외순/1968년 경북 영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졸업. 3회 이조년 추모백일장 장원

 

<심사평>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 빛나

 

340여 편의 작품을 앞에 놓고 가슴 두근거렸다. 어느 가인이 태어나 36구 민족의 가락에 걸어야 할 영혼의 노래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그 울림이 얼마나 깊고 클 것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비상의 몸짓으로, 서투르다 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성으로 노래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고 건강한 시인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침묵의 무늬' ', 우포' '땀나무' '춘향목의 전의' '세한도 앞에서' '그녀는 임신중' '탯줄' 등을 가려내었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읽으면서 지나치게 정적이거나 어두운 작품, 새로운 발견의 눈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 지나치게 산문적인 작품, 기성시인의 어투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 등을 제외했다.

결국, 김종연의 '그녀는 임신 중', 김종두의 '세한도 앞에서', 황외순의 '탯줄'이 남게 되었다. 세 편은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실을 시화해보려는 김종연의 몸부림은 가치 있는 시도이고, 세필로 그려나간 김종두의 세한도는 오랜 공정의 결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어의 품격이나 소재의 진부함이 끝내 마지막 낙점을 가로막았다. 거론한 작품에 비해 당선작은 팽팽한 긴장감과 신선한 비유가 확연히 빛났다. 꿈과 희망을 내장(內藏)한 개안(開眼)의 풍경이야말로 새해 아침에 어울리는 가락이기도 했다. 더 많은 노력으로 대성하기를 빌 뿐이다.

심사위원 : 이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