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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두더지 떼 / 이예본

 

◆ 등장인물

지하의 인물 = 선현, 세환 / 지상의 인물 = 희신, 해수

무대

상수를 지상의 공간으로, 하수를 지하의 공간으로 설정한다.

세환과 선현을 원형 조명이 둘러싸고, 인물들은 조명 내에서만 움직인다.

삽질을 할수록 원형이 커진다.

땅 파는 소리가 들린다.

세환: (가쁜 숨소리와 함께) 잘 돼가?

선현, 헤드셋을 낀 탓에 세환의 말을 듣지 못한다.

세환: (이전보다 조금 더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잘 되어 가냐고.

선현, 여전히 세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세환: (선현의 어깨를 치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선현: (헤드셋 한쪽을 내린다) 글쎄.

세환: 내려올수록 속도가 안 나는 기분이야.

선현: 사방이 돌이잖아. 온갖 크기의 돌들.

세환: 삼일이나 지났어.

선현: 늦어지고 있는 거지?

세환: 계획대로였다면 여긴 어제 지났어야 해.

선현: 어쩔 수 없어. 보다시피 돌이 너무 많으니까.

세환: 지금보다 더 늦어지면….

선현: 원상복귀. 처참하게 끌어올려질 거야. 우리 둘 다.

세환, 선현의 말을 듣고 삽질을 멈춘다.

선현 역시 세환의 시선을 느끼고 멈춘다.

눈이 마주친다.

세환: 너는 뭐랄까…. 과도하게 최악을 가정하는 버릇이 있어.

선현: 하지만 사실이기도 해.

세환: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야. 아무리 그래도 처참하게가 뭐냐, 처참하게가. 그냥 끌어올려진다고만 해도 충분히 알아들어.

선현: 그래. 끌어올려질 거야.

세환: 고맙네.

선현과 세환, 삽질을 계속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현의 삽이 돌에 부딪힌다.

크고 강렬한 소리.

선현: (손목을 부여잡고) 아!

세환: 괜찮아?

선현: (충격이 가시지 않는 지 손목을 잡고 웅크린다) 으….

선현, 손목을 천천히 돌린다.

세환: 무리하더라. 내가 할 테니까 좀 쉬어.

선현: (아파하면서도) 그럴 새가 어디 있어.

선현, 구석에 놓인 배낭에서 모종삽을 꺼낸다.

세환: (한숨과 함께) 내가 한다니까.

선현: 시간 없어.

세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까지 해야 해?

선현, 삽질을 멈춘다.

잠깐의 심호흡.

선현: 나도 멈추고 싶지. 다 그만두고 쉬고 싶어. 그런데 멈출 수가 없잖아.

세환, 대답하지 않는다.

선현: 너도 다 알잖아. 여기밖에 없다는 거. 그래서 같이 파기로 한 거 아냐?

세환: 맞아. 나도 알아.

선현: 알면서 어떻게 멈추라고 해. 여기서 그만두면 진짜 끝이야.

(사이)

세환: 끝은 어떻게든 와. 우리가 멈추든 멈추지 않든.

하수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상수가 밝아진다.

희신과 해수, 다정하게 등장한다.

희신: 여기야?

해수: 여기야. 우리가 다시 시작할 곳. 지금은 볼품없어도 모든 게 들어서면…. 고생 끝이지.

해수, 자랑스러운 듯 땅을 발로 두드린다.

그 소리를 듣고 선현과 세환이 놀란 듯 고개를 든다.

지상의 소리를 듣는다.

세환: 무슨 소리지?

선현: 위에 누가 있나본데.

세환과 선현, 숨을 죽이고 천장을 바라본다.

해수: 나는 정말이지…. 너무 벅차. (희신을 끌어안으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

희신: (해수를 안는다) 이제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닐 필요 없어. 앞으로는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살 거야.

해수: 상상도 못했어. 내가 건물 주인이 되다니. (황홀해하며) 이거 꿈 아니지?

희신: 게다가 삼 년 안에 전철역이 뚫릴 거래. 교통의 중심지 그 한 가운데에 우리가 있는 거야. 우리 건물이 있는 거야!

희신과 해수, 서로를 얼싸안고 발을 구른다.

그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는 듯 지하의 인물들이 반응한다.

상수와 하수의 시간은 동시에 흐른다.

선현: (귀를 기울이며) 들려?

세환: (고개를 젓는다) 아니.

세환과 선현, 천장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세환: 들키면 어쩌지?

선현: 어쩌긴 뭘 어째. 그 전에 빠져 나가야지.

세환: 빠져나가?

선현: (말을 정정한다) 빠져 나간다기 보다는…. 다른 곳에 굴을 파야지.

세환: (허탈하게 웃으며) 어디로 갈 건데?

선현: 어디든.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세환: 그런 곳이 있기는 해?

선현: (약간의 신경질) 왜 그래.

세환: 아직 모르겠어. 넌 정말 이게 최후이자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해?

선현: (큰 목소리로)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다시 올라가서 이곳저곳 헤매고 다닐래? 판자때기라도 덮고 싶은 거야? 그것까지 뺏길까봐 밤새 불안해하면서?

해수, 문득 어떤 소리를 듣는다.

해수: (동작을 멈추며)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희신: 무슨 소리?

해수: 아주 작은…. 말소리.

희신: (주위를 둘러본다) 말소리?

해수: 이상하다. 분명히 들렸는데.

희신과 해수, 말을 멈추고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

선현: 너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

세환: 당연히 아니지. 내 말은, 대책이라도 새워야 한다는 거야. 쫓기고 쫓기다가 여기까지 온 건데 여기서도 쫓겨나면 어떡하려고?

선현: (세환을 답답해한다) 쫓겨나기 전에 도망쳐야지. 그래서 여기 온 거잖아. 그럼 여기서라도 자리 잡아야할 거 아냐. 당장 우리 둘이 발 뻗고 누울 곳은 있어야지!

해수: (희신을 향해) 들렸어? 방금도.

희신: 말소리 맞아? 땅 짐승 소리 아냐?

해수: (긴가민가하며) 그런가….

희신: 주변에 아무것도 없잖아.

세환: 이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발 뻗고 누우면 그게 장사 치르는 거랑 뭐가 달라?

선현: 다르지. 우리는 살아 있잖아.

세환: 숨만 붙어있으면 되는 거야? 너한텐 그게 전부야?

세환과 선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선현: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

해수: (바닥으로 고개를 숙인다) 땅 밑에서…?

해수, 무릎을 꿇고 땅에 귀를 대 본다.

희신: (조금은 심각하게) 소리가 나?

해수: (고개를 저으며) 지금은 조용하네.

희신: (안도한다) 에이. 땅 짐승 소리겠지. 작은 소리도 예민하게 들리나봐. 신경 쓸 일이 많았으니…. 얼른 들어가서 쉬자. 내일 아침부터 움직이려면.

해수: (일어나 해수를 바라보며) 그래. 곧 공사가 시작 될 테니까. 희신: 내일은 부지 흙 좀 살펴봐야겠어. 돌이 많다더라. 그럼 바닥이 고르지 않을 수 있대.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조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안전이 생명이잖아.

해수: (다시금 벅차한다) 이제 진짜 고생 끝이야.

희신: (해수를 가볍게 안는다) 수고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희신과 해수, 퇴장한다.

지상의 인물들이 퇴장하는 발걸음에 의해 하수 천장에서 흙 한 줌이 떨어진다.

흙에 섞여있던 돌에 선현이 머리를 맞는다.

선현: 아!

세환: 괜찮아?

세환, 놀라 선현에게 다가간다.

세환 역시 천장에서 떨어진 돌에 머리를 맞는다.

세환: 아야….

선현: 이것 봐. 여긴 돌이 너무 많아….

선현과 세환, 손으로 정수리를 문지른다.

선현: 우리가 일직선으로 파고 있어서 그런가봐.

세환: (천장을 바라보며) 입구는 잘 막아 놨는데….

선현: 얼른 방향을 틀어야겠어. 이러다가는 다 무너질 거야. 어떻게든 버텨야해.

세환: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다시 올라갈 마음은 없는 거지?

선현, 답이 없다.

세환: 정말 다시 생각 안 해볼 거야?

선현: (참지 못하고) 나라고 땅 속에 숨어 살고 싶겠어? 찾다보면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지,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겠지. 눈앞에서 다 부서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

세환: (조심스럽게) 미리 허가를 받았다면 괜찮았을지도 몰라.

선현: 터미널, 정거장, 건물 같은 건 계속해서 생겨. 우리가 허가를 받고 거기에 집을 지었다 해도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르는 거야.

세환: (착잡한 목소리로)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지.

선현: 걔네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 안나? (약간 비꼬듯) 미관상의 이유로 거주가 불가능하다고 했어. 미관상, 그게 뭔지 알잖아.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는 거야.

세환: 기억나.

선현: (각오를 다지며) 여기밖에 없어.

세환: (기도 하듯) 부디 이곳이 마지막이길.

세환과 선현, 등을 돌리고 삽질을 이어나간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 조명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세환: (숨을 돌리며) 이정도면 된 것 같아. 좀 쉬자.

선현: 그래. (천장을 바라본다) 많이 내려왔지?

세환: (마찬가지로 천장을 본다) 응.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되겠다.

세환, 가방에서 작은 매트와 담요를 꺼낸다.

세환: 먹을 것도 고민이야. 땅굴에 살면서 어떻게 구할지.

선현: (가방을 살펴본다) 최대한 아껴 먹으면…. 삼 주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세환: 땅굴을 판 사람들이 우리 둘 뿐일까?

선현: 아냐. 내가 알기론 꽤 많아.

세환: 그 사람들은 뭘 먹고 살지?

선현: 나무뿌리도 먹고, 곤충이나 동물들도 먹고.

세환과 선현, 매트 위에 누워 작은 담요를 나눠 덮는다.

아주 비좁고 불편해보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벅차다.

선현: 아늑하다.

세환: 우리만의 공간이야.

선현과 세환, 꿈을 꾸는 표정으로 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현이 벌떡 일어난다.

세환: 왜 그래?

선현: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쉿. 무슨 소리 안 들려?

세환, 고개를 들고 천장을 살핀다.

선현: 위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선현, 소리의 근원을 찾다가 이내 땅바닥에 귀를 댄다.

선현: 우리보다 더 깊이 있는 사람들의 소리인가?

세환, 하수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벽에 귀를 댄 것처럼 보인다. 조명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세환: 여기서도 무슨 소리가 들려. 말소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든다.

명확하지 않은 말소리가 울린다.

세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땅속에 있었다니.

선현: (장난스럽게) 두더지, 두더지 가족이야.

세환: 언젠가 만나게 될 것 같아. 서로가 서로의 벽을 뚫어버릴지도 모르고.

선현: 응. 그럴지도 모르지. (하품하며) 하지만 오늘은 이만 쉬고….

하수가 어두워진다.

세환과 선현, 다시 몸을 눕히고 엉겨 붙어 잠을 청한다.

2장

어스름한 새벽빛이 무대를 밝힌다.

선현과 세환, 잠에서 깨 몸을 뒤척인다.

선현: 어젯밤에 소리가 꽤 컸던 걸 보면,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

세환: 그들에게도 우리 소리가 들리겠지?

선현: 프라이버시가 없네.

세환: 방향을 잘 잡아야겠어. 남의 굴을 망가뜨리지 않게.

세환과 선현, 각자의 방향을 향해 삽질을 이어간다.

그때, 세환의 삽이 깊게 꽂힌다.

세환: (삽을 뽑으려 한다) 어. 잠시만. 삽이 안 빠져.

선현: (세환의 삽을 발견하고) 뭔가에 걸린 것 같은데.

선현, 모종삽으로 삽의 근처를 파낸다.

조금씩 움직이는 세환의 삽.

세환: 당겨보자. 하나, 둘, 셋…!

삽이 뽑히면서 엉덩방아를 찧듯이 뒤로 넘어지는 둘.

너머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 노인의 목소리.

소리: (무대 밖에서) 깜짝이야. 누구세요?

선현: 아. 죄송합니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봐요.

소리: 어휴. 이걸 어쩐담.

세환: 죄송해요. 저희가 최대한 복구 해놓을게요.

세환과 선현, 부리나케 벽을 보수하기 시작한다.

소리: (머뭇거리며) 둘이에요? 언제부터 파기 시작했어요?

세환: 저희는…. (선현을 바라본다) 얼마 안 됐어요.

소리: 요즘도 많이들 내려오나요? 나 때만 해도 내가 드문 케이스였는데.

선현: 살 수가 없으니까요. 나아지질 않아요.

세환과 선현, 벽 보수를 끝낸 듯 마무리 짓는다.

소리: 아휴 말끔해라. 수고했어요.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라 괜히 아쉽네. 조심히 가요.

선현: 감사합니다. 다음에…. (사이) 잘 지내세요.

선현, 다음을 기약하려다 이내 말을 바꾼다.

세환이 벽의 마지막 틈을 막는다.

세환: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 몰랐어.

선현: 아주 오랫동안 굴에서 지내신 분 같아.

세환: 원래부터 혼자셨을까?

선현: 혼자가 된 걸 수도 있지.

세환: (잠시 생각하다가)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에 남아있는 건 어때?

선현: 봤잖아. 벽이 너무 얇아. 사람도 너무 많고.

세환: 하지만 만약에, 우리 둘 중 누군가가 혼자 남으면….

선현,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세환, 말을 이어가려다 만다.

희신과 해수, 상수에서 등장한다. 가벼운 발걸음과 콧노래.

흙을 담기 위한 가방과 기다란 봉, 모종삽 같은 것을 들고 있다.

희신: (다정하게) 어제보다 날씨가 더 좋은 것 같아.

해수: 내일도 좋아야할 텐데! 공사가 날씨 영향을 많이 받잖아.

희신과 해수, 부지의 토양을 살펴보듯 크게 원을 그리며 걷는다.

이따금씩 모종삽으로 흙을 퍼 가방에 담는다.

희신: (낭만적인 목소리로)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해수: (희신을 바라보며) 나도 그래.

그때, 상수의 희신이 멈춰선다. 바닥을 뚫어져라 본다.

희신: 이게 뭐지?

해수: (희신을 따라 바닥을 보며) 왜?…. 이게 뭐야?

희신: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살핀다) 유독 움푹 파였어, 그치

해수: 그러게. 뭔가 함정 같기도 하고…. 굴인가? 동물이 사는?

희신: (해수의 추측에 동의하며)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고 했잖아. 설마…. 멸종위기 동물 같은 게 살고 있으면 어쩌지?

해수: 괜찮을 거야. 그냥 얕은 구덩이일 수도 있지.

해수, 가지고 있던 봉의 길이를 최대로 늘인다.

무대를 가로지를 정도로 길어 해수가 간수하기도 벅차다.

봉을 상수 중앙에 꽂자 길이가 줄어들며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일부가 하수 천장에서 내려온다. 무대가 관통하는 느낌이 든다.

해수: (약간은 기이하다는 듯 놀라며) 아니네. 엄청 깊네.

세환과 선현의 가슴팍 높이까지 내려왔을 때, 세환이 봉을 발견한다.

세환: (놀라서 큰 소리로) 이…. 이게 뭐야!

선현: (세환의 말에 뒤를 돌았다가 깜짝 놀란다) 깜짝이야. 뭐야, 이거?

희신과 해수,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희신: 방금 들었어? 진짜 동물이 사는 굴 인가봐…!

해수: 어제 들었던 소리도 여기서 난 건가?

세환, 봉을 무심코 만지려 한다.

선현: 잠깐만! 만지지 마. 위험할지도 몰라.

세환과 선현, 시작점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든다.

굴의 입구에서 새어나오는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세환: 입구가 뚫린 것 같아. 빛이 너무 강해.

희신: 분명 뭔가 있지?

해수: 분명 뭔가 있어.

희신: 뭘까? 뱀? 두더지? (착잡하다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며) 아니면 정말 멸종위기종?

해수: 직접 봐보자.

희신과 해수, 봉을 다시 끌어올린다.

하수의 봉도 다시 올라간다.

선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세환: 서둘러야겠어.

세환과 선현, 다시 삽을 잡고 땅굴 파기에 매진한다.

해신과 희수, 가방에서 작은 카메라를 꺼내 봉의 끝에 매단다.

카메라를 매단 봉을 다시 상수 무대 정중앙에 꽂는다.

하수 천장에서 카메라가 달린 채 다시 내려온다.

세환의 가방에 다시 부딪히는 카메라.

해수: 어. 걸렸다.

희신: 걸렸어?

희신, 현미경을 보듯 봉에 눈에 댄다. 이리저리 휘저어가며 살핀다.

해수: (잔뜩 집중한 채로) 잠시만.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세환: (봉을 발견한다) 또 나타났어!

선현: 이번엔 좀 다르게 생겼네?

세환과 선현, 긴장한 상태로 카메라와 봉에 닿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해수: 아무것도 안 보이는…. (톤이 높아진다) 어. 잠시만. 뭐가 있는 것 같아.

희신: 뭐가 있어?

해수: 뱀은 아닌 것 같고. 두더지라기에는 좀 큰데….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아하게) 사람처럼 생겼어…?

해수, 희신에게 넘겨준다.

희신, 현미경을 보듯 굴 안을 살핀다.

희신: (사이) 정말 사람이야…

선현: 이젠 빙글빙글 돌아가기까지 하네.

희신: 어떡하지? 말을 걸어볼까?

해수: (진지하게) 우리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

선현: 위에서 또 무슨 소리가 들려.

희신: 그럼…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상수 중앙 바닥을 향해 큰 목소리로) 헬로우?

선현: 뭐라는 거야?

희신: (더 큰 소리로) 헬로우!

세환: 헬로우?

선현: 우리한테 하는 소리야?

세환과 선현, 동시에 천장을 바라본다.

희신: (큰 목소리로) 캔 유 스피크 코리안?

세환: 뭐라는 거야 지금.

희신: (긴장한 채) 두 유 히얼 미?

세환: (의아해하며) 외국인인가?

선현: (조심스럽게) 대답해볼까?

세환, 선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선현: (목을 가다듬고, 천장을 향해) 누구시죠?

해수: (선현의 목소리를 듣고 기겁한다) 들었어? 방금?

희신: (넋이 나가있다) 들었어. 말을 해.

해수: (큰 목소리로) 우리말을 하세요?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희신: 지금 거기서 뭘 하고 계신 거죠?

세환과 선현, 둘이 속닥이다가 이내 큰소리로 답한다.

세환: 굴을 파고 있는데요!

희신: (지하를 향해) 굴은 왜요?

선현: (담담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해수: 집?

희신: 집이요?

세환: 네. 여기가 저희 집인데요.

해수: (조심스럽게) 사람이 아니신가요?

선현: (어이없다는 듯) 사람이죠.

해수: 그런데 집이 왜 거기….

희신: (마음을 먹은 듯 엄격하게) 죄송하지만 여기는 저희 땅이에요. 건물이 올라갈 곳이라고요.

세환: 저희는 예전부터 이곳에 살았어요.

희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군가 굴을 파고 사는 게 알려지면 저희 땅값이랑 집값 다 떨어져요.

선현: (단호하게) 그래도 못 나가요. 지하는 당신들 게 아니에요.

해수: 엄청 막무가내네.

희신: (화를 내며) 뭐하는 사람들이야?

희신,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움켜쥔다.

해수: (답답한 목소리로)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여요? 내일부터 공사가 시작 될 테니까 얼른 나오세요. 위험하다고요,

세환: (화를 내며) 또 어디로 도망치라는 거죠?

희신: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요?

선현: (억울해한다) 있지 말래서 떠났고 보이지 말래서 숨었잖아요. 여기서도 쫓겨나면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떠나라고 할 자격 없어요.

해수: 당신들이 땅굴을 파는 걸 알면서도 건물을 지으라는 말인가요?

세환: 우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그렇게 됐을 거예요.

희신: 불안해서 살겠어요? 땅 속에 사람들이 기어 다닌다는데?

선현: 우리가 여기서 나가면, 그럼 우리를 받아들일 건가요?

잠깐의 정적

선현: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별별 이유로 쫓겨났어요.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다 빼앗겼다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세환 : (선현을 다독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다시 내쫓는군요.

선현: 우리처럼 굴을 파고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날 거예요. 아무리 새로운 집이 지어져도, 아무리 많은 방이 생겨도 똑같아요.

희신: (억울해하며)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죠? 이제 막 숨통이 트이려던 참이었는데….

해수: (회유하듯) 우리가 사정을 이해하고 넘어간다 해도 몇 년 안에 지하철역이 새로 생길 거예요. 이미 확정 됐고 여기 사람들은 모두가 지하철역 개통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땐 어떻게 하려고요?

세환: 그땐….

세환, 말을 잇지 못한다.

해수: 내일이면 공사 차가 들어와요.

선현: 내일이라뇨?

희신: 우리 건물 말이에요. 그 공사는 미룰 수 없어요. 지하철역도 미뤄지지 않을 거고요.

해수: 땅 위에 시멘트를 부울 거예요.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공사할 예정이에요. 다세대 건물은 기반이 단단해야 하거든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세환: 안전….

희신과 해수, 자리를 뜰 채비를 한다.

희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당신들도 알 거라 생각해요. 차라리 땅 위에서 살 곳을 찾아봐요. 공원이든, 전철역이든.

선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미 다 가봤는데요….

해수: 내일은 정말 공사를 시작해야 해요.

희신과 해수, 상수로 퇴장

세환과 선현, 천장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상수에서 희신과 해수가 등장한다.

집, 지상의 인물들이 의자를 가지고 와 앉는다.

해수: (멍하게) 상상도 못했어.

희신: 다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사이) 누군가의 집을 뺐을 거라고는….

희신, 말을 잇지 못한다.

해수: 너무 걱정하지말자. 우리는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냥 살던 대로.

희신: 괜찮겠지?

해수: 괜찮을 거야. 밤사이에는 나오겠지.

하수, 어둠 속에서 원형 조명과 인물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선현과 세환,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세환: 어떡하지, 우리.

선현: 그냥 확…. 밖으로 나가버릴까?

세환: 나가면?

선현: (머뭇거리며) 나가면….

세환: (허탈하게) 갈 곳이 없네. 땅 속에 있는데도.

선현: 머리 위에 그렇게 큰 건물이 생겨도.

세환과 선현, 말이 없다.

세환: (고민하다가 이내) 내려가자.

선현: 내려가?

세환: 정말 깊이. 위에서 아무리 찔러도 닿지 않을 만큼 내려가 보자.

선현: (천장을 보며) 건물이 지어진다잖아. 시멘트를 붓고.

세환: 다시 나갈 필요 없을 거야. 땅 속에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땅을 파고 내려가면 돼. 햇볕이 없어도 따뜻할 정도로 깊이.

선현: 진심이야?

세환,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 삽을 쥔다. 눈가의 눈물을 닦는다.

선현, 세환을 따라 일어나 삽을 쥔다. 헤드셋을 쓴다.

세환과 선현, 서로 등을 대고 삽질을 시작한다.

암전

3장

상수와 하수의 구분이 없어진다.

안전모를 쓴 희신과 해수, 상수에서 허겁지겁 달려 나온다.

카메라가 달린 봉을 들고 있다.

희신: 여기였지?

희신과 해수, 무대 정중앙에 봉을 꽂는다.

이번에는 천장에서 봉이 내려오지 않는다.

해수, 눈에 대고 지하를 살핀다.

희신: (걱정스럽게) 있어?

해수: (조금은 나아진 목소리로) 없어.

희신: (밝아진 목소리로) 정말?

해수: (기뻐하며) 정말 없어! 깨끗해.

희신: (무릎을 꿇고 바닥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저기요!

희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해수: 아무도 없어요?

해수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희신: 밤사이에 굴을 비웠나봐.

해수: (표정이 풀린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대형 화물차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희신: (상수를 향해 손짓하며) 여기요! 여기!

해수: (상수를 향해) 말씀 드렸던 데가 여기에요.

희신: (굴 입구를 가리키며) 굴이 있어요. 좀 깊은 것 같아요.

해수: 네? (손사래를 치며) 아유. 멸종위기 동물 그런 거 당연히 아니고요. 그냥….

잠깐의 머뭇거림

해수: 두더지 떼가 있었어요.

희신: 여기부터 메꿔주세요.

트럭에서 시멘트를 붓는 소리가 들린다.

천장에서 모래와 흙, 돌, 시멘트가루 같은 것들이 쏟아진다.

아주 부옇고 탁한 먼지가 일어난다.

암전 (끝)

 

  <당선소감>

 

   “사랑하는 모든것 무대위에…연극하며 살 것”

  무엇이 이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벅차오름, 환희, 초조, 긴장…. 너무 많은 감정이 한 몸에 얽혀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데 용기가 되어주신 분들과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과, 앞으로 읽어주실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의식주(衣食住), 그 중에서도 주(住)의 역할이 유독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이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채 돌아가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모두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연극하며 살겠다는 다짐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무대 위에 있다는 확신이 견고해지는 요즘입니다.

  항상 기둥과 뿌리가 되어주는 승현, 형우, 다후, 나아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김미도 교수님께 이 기쁨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99년 출생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심사평>

 

  “뛰어난 작가, 관객과 흥미진진한 줄다리기

  희곡은 갈등과 모순을 다루는 문학으로 결국 그 갈등이나 모순이 너무 쉽게 드러나 버리면 극이 그 순간 끝나버리는, 흥미를 잃게 되는 순간이 된다. 뛰어난 극작가는 관객(독자)과의 줄다리기를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하느냐가 늘 관건인 셈이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며, 우리 사회 여러 모순과 갈등에 시선을 두고 있음은 긍정적이었지만, 그 문제 제기가 단순한 전개와 해결로 끝나버리는 거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작가 안에서 이미 결정된 일을 들려주는 구조가 아닌 독자 혹은 관객의 상상력과 줄다리기가 이어졌으면 한다. 단막극은 단순히 짧은 길이가 아닌 ‘함축’이 생명이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제시한 짧은 상황 안에 담겨있느냐가 단막극의 ‘강렬함-깊이’가 될 것이다.

  당선작을 고민하던 중 ‘빵집 찬들’은 살기 위해 훔쳐야 했던 오늘의 청년 사정이 아련했으나 쉽게 결말이 나타나 당황스러웠다. 조금 더 훔친 이와 범인을 찾는 이,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 라인이 중첩된다면 더 흥미로울 거 같았다. ‘낙하하는 무게’는 현세의 힘겨움에 이어 사후까지 이어지는 불평등의 문제가 흥미로웠지만 제시한 가정 외에 더 사유를 부르는 여운이 조금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마음을 끈 건 ‘두더지 떼’였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살려는 지하인간과 그 바로 위에 건물주 꿈에 부푼 지상인간이 와서 작은 구멍을 통해 조우하게 된다. 조금은 단순 이분법적 설정이지만 양극화되는 우리 사회 작금의 정서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극 중 지하인간이 ‘지하는 당신들께 아니에요’라는 대사는 확장이 가능한 울림이 있었다. 원고를 덮은 후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생각하게 했던 ‘두더지 떼’를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투고하신 모든 예비 극작가분의 정진과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 선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