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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식사 / 조한빈

 

장소 :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정집처럼 보이는 집.

때 : 저녁

등장인물 : 아빠 엄마 아들 딸 다른아들

무대

  하수 뒤에는 현관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고 그 옆으로는 옷걸이가 하나 있다. 하수 앞쪽으로는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상수 뒤에는 부엌으로 통하고 있으며 부엌은 보이지 않는다. 상수 앞으로는 화장실이 있다. 전체적으로 가정집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집 전화기는 보이지 않는다.

  조명이 들어오면 엄마가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부엌으로 간다. 잠시 후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엄마 반응이 없다. 전기밥솥을 앉히는 소리가 들리고 거실로 나와 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엄마 : 네, 여보세요? 네, 네. 맞아요. 잠시만요. 그전에 지금부터는 원활한 상담을 위해 내용이 녹음됩니다. 동의하시나요? 네. 감사합니다. 가격은 거기에 올린 그대로고요. 아, 카드는 안되는 거 아시죠? 네, 네. 계좌이체는 가능하죠! 그럼요. 절대로 고객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발설하지 않습니다. 네? 그거는 상관이 없습니다만 … 문제요? 아니요. 고객님의 정보를 고객님이 말씀하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예약이요? 오늘은 꽉 찼고요. 내일은 한 자리 남아있습니다. 고민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근데 내일 자리도 금방 나갈 수 있어요. 아무래도 요즘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다 보니 …. 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엄마는 전화를 끊기를 기다린다. 전화가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앞치마를 하고 나온다. 주부의 모습이다. 방문을 잠근다. 바닥을 닦는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현관문을 바라본다. 사이.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 (천천히) 누구세요? … 혹시 어제 오신 분이세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 저기요! 어제도 분명 말씀드렸죠? 예약하셔야 한다고. 계속 이러시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세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 어휴. 무시하고 청소나 하자.

  엄마는 바닥을 닦는다. 초인종 소리가 점점 격해진다. 엄마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한다. 초인종 소리가 멈춘다.

엄마 : … 갔나?

  엄마 나가려다가 부엌으로 가서 칼을 들고 나갔다가 들어온다.

엄마 : 하여튼 요즘 사람들 정말 몰상식해서 문제야.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엄마 부엌에 칼을 가져다 놓고 화장실로 가서 청소를 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 급하게 나와서 전화를 받는다.

여자 : 여보세요? 네, 네. 그 전에, 지금부터는 원활한 상담을 위해 내용이 녹음됩니다. 동의하시나요? 네. 감사합니다. 아, 아까 상담하신 분이시죠? 내일 오신다고요? 잘 생각하셨어요. 알겠습니다. 문자로 이름이랑 나이, 성별, 못 먹는 음식 이렇게 남겨주시고요. 시간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다른 문의 사항은 없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화장실 청소를 한다. 이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이 들어온다.

아들 : 저 왔어요.

  엄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아들 : 저 왔어요!
 
  엄마는 계속 청소하고 있다. 아들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진동이다. 눈치를 보고 전화를 받는다.

아들 : 여보세요?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당연히 문제가 생겼으니 연락을 했지. 우리 조별과제 말이야. 네가 보내 준 파일 깨져서 왔거든. 다시 보내. 어. 내가 오늘 정리해서 내일 수업 때 가져갈게.

  엄마 화장실에서 나와 아들이 통화하는 걸 보고 있다.

아들 : 그리고 내일 발표 다 같이 해야 하는 거 알지? 늦으면 안 돼. 내일 봐. (전화를 끄고) 시발. 오늘 못 자겠네. 아, 깜짝이야!

엄마 : … 일찍 왔네?

아들 : … 네. 아, 죄송해요. 전화.

엄마 : 괜찮아. 어차피 우리밖에 없잖아. 급한 전화였지?

아들 : … 네.

엄마 : 대신 다른 사람들 오면 알지?

아들 : 네.

엄마 : 씻고 편하게 쉬고 있어. 화장실 청소 이제 막 끝났으니까 바닥에 물 조심하고.

아들 : 네.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요리 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과제를 하기 시작한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딸이 들어온다. 딸은 교복을 입고 곰인형을 들고 있다. 현관문 앞에 책가방과 곰인형을 둔다.

딸 : 저 왔어요.

엄마 : (부엌에서 소리만) 왔어? 다들 일찍 왔네. 거기 앉아 있어.

딸 : 네!

아들 : 왔어?

딸 : 오빠! 오랜만이네?

아들 : 그러게.

  아들은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다.

딸 : 일주일만인가? 잘 지냈어?

아들 : 아니…

딸 : 그래?

아들 : …

딸 :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들 : 시험 기간.

딸 : 그렇구나.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아들 : 아니. 그러니까 여기 왔지. 집밥 먹고 싶어서.

딸 : 난 또. 나 보고 싶어서 온 줄.

아들 : …

딸 : … 나 안 보고 싶었어?

아들 : 너도 보고 싶었지.

딸 : 진짜?

아들 : …

딸 : 진짜로?

아들 : …

딸 : 진짜로 나 보고 싶었던 거 맞아?

아들 : …

딸 : 오빠!

아들 : 어?

딸 : … 내가 뭐라고 했게?

아들 : 미안. 뭐라고 했지?

딸 : 나 진짜 보고 싶었냐고!

아들 : … 당연하지. 아까 말했잖아.

딸 : 계속 노트북 할 거야?

아들 : 내일 발표한단 말이야. 좀 봐줘.

  아들 계속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다.

딸 : 손이랑 발 씻었어?

아들 : …

딸 : 손이랑 발 안 씻었지?

아들 : …

딸 : 언제 왔는데 아직도 안 씻고 있어?

아들 : …

딸 : 나 먼저 씻는다?

아들 : … 어.

  딸은 화장실로 간다.

아들 : 방금 청소해서 바닥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딸 : 치. (큰소리로) 오빠가 씻지도 않고 노트북 한대요!

  아들은 노트북을 닫는다. 딸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들 : 저게.

  엄마는 국자를 들고나와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보고 있다.

아들 : … 오늘 메뉴 뭐에요?

엄마 : …

아들 : 냄새가 좋네요.

엄마 : …

아들 :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 약속.

아들 : 네.

엄마 : 한 번만 더 걸리면 아웃이야. 알지?

아들 : 네.

엄마 : 집에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눠야지. 자기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빨리 치워.

  아들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현관문 앞에 둔다.

엄마 : 나오면 손, 발 씻어.

  엄마는 부엌으로 간다. 아들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현관문 앞에 둔다. 딸 화장실에서 나온다.

딸 : 혼났대요.

아들 : 너무한 거 아니야?

딸 : 너무 하긴. 오랜만에 얼굴 봤는데 계속 노트북만 하는 오빠가 너무 한 거지.

아들 : 나는 저번에 너 전화하는 거 봐줬잖아.

딸 : 그때 이르지 그랬냐?

아들 : 뭐?

딸 : 그리고 난 바로 끊었거든! 누구처럼 오래 하지는 않았다.

아들 :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아들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아들 화장실에서 나온다. 옷이 물에 젖어있다. 딸이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아들 : 웃어?

딸 : 아. 개 웃겨.

아들 : 내가 물 쓰고 돌려놓으라고 했지?

딸 : 아. 미안, 미안. 실수.

아들 : 그게 미안한 사람 태도야?

딸 : (장난스럽게) 소녀. 실수를 범했사옵니다. 정말로 죄송하옵니다.

  아들은 딸에게 달려들어 간지럽힌다.

딸 : (도망치며) 미안하다니까.

아들 : 그게 미안한 사람 태도냐고.

  아들은 계속 딸을 간지럽힌다.

딸 : 미안. 정말 미안하다니까!

아들 : 미안하면 벌을 받아야지.

  서로 엉킨다. 딸은 밑에 있고 아들은 위에 올라탄다. 서로 숨소리가 거칠다.

딸 : …

아들 : …

딸 : … 무거워.

아들 : … 어.

딸 : … 나 안 보고 싶었어?

아들 : … 보고 싶었어.

딸 : 치. 거짓말.

아들 : 진짜야.

딸 : 연락 한 통 없었으면서 ….

아들 : 바빠서 그랬지. 내 말 못 믿어?

딸 : …

  아들은 딸에게 볼 뽀뽀를 한다.

아들 : 이러면 믿을래?

딸 : 아, 몰라.

아들 : 보고 싶었어.

딸 : … 나도.

아들 :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딸 : 나도 오빠 보고 싶었다고.

  서로 바라보다가 아들은 천천히 얼굴을 들이민다. 딸 눈을 감는다.

엄마 : (소리) 나 도와줄 사람?

  아들과 딸은 벌떡 일어난다. 아들은 화장실로 간다.

딸 : 저 … 저요!

딸은 부엌으로 간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엄마 : (소리) 이거 거실에 펴줄래?

딸 : (소리) 네.

엄마 : (소리) 안 무겁겠어? 이런 건 남자가 들어 줘야 하는데.

딸 : (소리) 에이. 요즘 그런 게 어딨어요?

  화장실에서 아들 나온다. 딸 4인용 밥상을 들고나온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아들과 딸이 현관문을 말없이 바라본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거실로 나온다. 사이.

아빠 : (소리) 저에요. 비밀번호를 까먹었지 뭐에요.

  딸 현관문을 열어주러 나간다. 엄마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딸 : (소리) 오셨어요?

아빠 : (소리) 미안해. 매번 적어둔다는 걸 까먹네.

  아빠와 딸이 들어온다. 아빠 겉옷은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두고 서류가방을 현관문 앞에 둔다.

아들 : 오셨어요?

아빠 : 그래. (아들에게) 오랜만에 보는구나.

아들 : 그러게요.

아빠 : 요즘 많이 바쁘니?

아들 : 저번 주에 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아빠 : 그랬구나.

아들 : 네.

아빠 : … 시험은 잘 쳤고?

아들 : 기말 때 만회해야죠.

아빠 : 취업은?

아들 :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냥 지금이라도 공무원 준비를 할까 싶기도 하고 …. 잘 모르겠어요.

아빠 : 그래.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고민해봐. 넌 뭘 하든 분명 잘 할 거고 잘 될 거니까!

아들 : 감사합니다.

딸 : 얼른 씻고 와요. 그러다 오빠처럼 혼나요.

아빠 : 혼났어? 왜?

딸 : 씻지도 않고 계속 노트북 한다고 혼났어요.

아빠 : (웃으며) 그건 혼날만했네. 약속은 중요한 거니까.

딸 : 그러니까요. 약속은 중요한 건데.

아들 : 이걸 그냥 콱!

  아빠와 딸은 웃는다. 엄마가 주방에서 나온다.

엄마 : 왔어요?

아빠 : 네. 저 왔어요.

엄마 : 오늘은 좋아하시는 된장찌개에요.

아빠 : 이야. 맛있겠다. 얼른 씻고 와야겠네.

아빠 화장실로 간다.

엄마 : 밥 다 되었어요.

아들 : 네!

딸 : 네!

  아빠는 화장실로 가고 엄마와 아들, 딸은 주방으로 간다. 밥상에 음식을 나른다. 식사 준비를 한다.

엄마 : 내 정신 좀 봐! 제일 중요한 걸 안 했네.

  엄마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와 아들, 딸은 핸드폰을 끈다. 아빠 나온다.

아빠 : 먼저들 먹지.

엄마 : 핸드폰 끄고 앉기나 해요. 기다려줄게요, 기도.

아빠 : (핸드폰을 끄며) 고마워요. 매번 기다려줘서.

아빠 앉는다.

아빠 : (딸에게) 자, 우린 기도하자!

딸 : 네!

  아빠와 딸 기도를 한다.

엄마 : (아들에게) 넌 연애 안 하니?

아들 : 제 주제에 무슨 연애에요.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 다니기도 빠듯한데.

엄마 : 그거 다 변명이야. 누구는 돈 있고 시간 있어서 연애하니? 마음에 드는 여자애는 있고?

아들 : 네. 근데 저 같은 애를 받아줄지 ….

엄마 : 어머, 네가 어디가 어때서? 이 정도면 잘 생겼지? 어이구, 뉘 집 자식인지 너무 잘생겼다.

아들 : 고마워요.

아빠 : 아멘.

딸 : 아멘.

아빠 : 자, 자. 음식 다 식겠네. 얼른들 먹자고.

아들 : 잘 먹겠습니다!

딸 : 잘 먹겠습니다!

엄마 : 밥 더 필요하면 말해요.

아빠 : 네!

아들 : 네!

딸 : 네!

  가족들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아빠 : 된장찌개에 꽃게가 들어갔네?

엄마 : 꽃게 들어간 거 좋아하시잖아요.

아빠 :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엄마 : 아니에요. 어제 일도 있고 ….

아빠 : 고마워요. 미자씨.

딸 : 오빠. 오늘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게?

아들 : 뭔데?

딸 : 옆 반에 남자애가 나한테 고백했다.

아빠 : 그래? 어디서?

딸 : 학교 끝나고 뒷문에서요.

엄마 : 잘생겼어?

딸 : 그냥 뭐. 훈훈하게 생겼어요.

엄마 : 자세히 이야기해 봐.

아빠 : 왜 이렇게 신났어요?

엄마 : 나이 먹어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가 좋네요. 그래서?

딸 : 아침에 학교에 갔는데 서랍에 편지 하나 있길래. 읽어 보니까. 오늘 끝나고 뒷문으로 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아들 : 맞짱 뜨자고?

딸 : 아니거든! 확실하게 하트도 있었단 말이야.

엄마 : 어머. 그래서, 그래서?

딸 : 학교 끝나고 뒷문으로 가니까 곰 인형 하나 들고 딱 서 있는 거예요.

엄마 : 로맨틱해라.

아들 : 그게 저거야?

딸 : 응. 나처럼 귀엽지?

엄마 : 요즘 같은 시대에 괜찮은 애네. 편지랑 곰 인형.

딸 : 그죠?

아빠 : 사귀기로 한 거야?

딸 : … 오빠.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아들 :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딸 : 아. 빨리!

아들 : 몰라.

딸 : 치.

엄마 : 사귀기로 한 거야?

딸 : 아뇨.

아빠 : 왜?

딸 :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

아빠 : 좋아하는 사람은 누군데? 같은 반 친구?

딸 : … 있어요.

아들 : 이거 진짜 맛있네요! (딸에게 반찬을 주며) 너도 먹어봐.

딸 : 고마워.

  아빠와 엄마 미소를 짓는다.

아들 : 식사 안 하세요?

아빠 : 어? 어. 먹어야지! 아! 나는 오늘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냐면 ….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 현관문을 바라본다.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 … 미안해요.

아빠 : 아직 해결 안 했어요?

딸 : 어제도 왔잖아요.

아들 : 누구야?

딸 : 몰라. 고객인 것 같은데 어제도 이런 식으로 연락 없이 찾아 왔다니까.

아들 : 어제도 왔어? 예의가 없네.

딸 : 어제 우리 모두 기분 안 좋게 식사했다니까.

아들 :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건 경우가 아니지!

딸 : 내 말이!

아들 : (일어나며) 남의 식사 시간에 뭐 하는 거야?

딸 : 같이 가! 식사 시간 망치는 놈 면상이나 보자!

아빠 : 자, 자. 모두 진정해. 이런 문제일수록 이성적으로 해결해야지. 그리고 저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 (엄마에게) 미자씨. 이런 식이면 곤란해요. 우리한테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이러면 안 되죠.

엄마 : 죄송해요. 무시하고 식사하죠. 밥 다 식겠어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아빠 : … 어디 이래서 마음 편히 밥이나 먹겠어요? 빨리 해결해 주세요. 이게 당신 일이잖아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엄마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빠 : 네. 천천히 하세요. 우린 기다릴 수 있어요. 대신 확실하게 해주세요.

  엄마 나간다. 아빠, 아들, 딸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린다.

엄마 : (소리) 너 이 새끼. 아까도 분명 말했지? 누구 장사 망칠 일 있어? 네 애미, 애비는 네가 이러고 사는 거 아니? 나이를 그렇게 처먹고도 돈이 없냐? 어? 빨리 꺼져! 이거 놔! 이거 안 놔? 이거 놓으라고! 시발! 너 여기서 딱 기다려!

  엄마 들어와서 부엌으로 간다. 칼을 들고 나간다. 아빠, 아들, 딸 기다린다.

엄마 : (소리) 안 꺼져? 너 진짜 죽을래? 어머! 어디 다가 손을 대! 다시는 오지마 알겠어? 이 동네에서 나 마주치면 그때는 진짜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엄마 들어온다.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엄마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와 앉는다.

아빠 :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해주세요.

엄마 : 죄송합니다.

아빠 : 이게 뭡니까? 국도 다 식고 … . 나라고 이런 말 하면 마음이 편한 줄 알아요?

엄마 : 죄송합니다.

아빠 : 앞으로 조심해 주세요!

엄마 : 죄송합니다.

아빠 : 하 … . 어서들 먹자.

아들 : 네.

딸 : 네.

  아빠 된장찌개를 먹는다.

아빠 : 이거 왜 이렇게 비려?

엄마 : 죄송해요.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엄마 : … 국이 많이 식었죠? 다시 데워 올게요.

  엄마 국을 들고 나간다.

아빠 :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들 : 저도 다음에 다시 올게요.

딸 : 안녕히 계세요.

엄마 : 아니, 가시게요?

아빠 :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못 먹겠네요. 오늘 식사비는 따로 안 보내도 되죠?

엄마 : … 그럼요.

아빠 : 그럼.

  아빠와 아들, 딸은 짐을 챙겨 나간다. 엄마 핸드폰을 전원을 켠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홀로 밥을 먹는다.엄마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웃으며 받는다. 지금까지의 웃음과는 다르다.

엄마 : 어, 아들! 무슨 일이야. 밥? 먹고 있지. 아들은 오늘 일 잘 했어?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너도 잘 챙겨 ….

  암전. 조명이 들어오면 엄마가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린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아들이 들어온다.

다른 아들 : 저 왔어요.

암전. 끝.

 

  <당선소감>

 

   극작가 없는 신생극단 단원…이렇게 열매 맺을 줄이야

  추운 겨울.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전시회를 보며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공연장을 나와 꺼진 핸드폰을 켜보니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지금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감문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저는 현재 대구에서 '어쩌다 프로젝트'라는 젊은 신생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원입니다. 신생이고 젊은 사람들만 모여있는 극단이다 보니 항상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디 쳤습니다. 그중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 난제가 극작가의 부재였습니다. 어느 날 '내가 극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쓰기가 이렇게 열매를 맺을 줄 몰랐습니다. 이 열매를 발판 삼아 더 큰 나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공연예술인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1994년 구미 출생
●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 어쩌다프로젝트 극단 단원


 

  <심사평>

 

  세대·젠더·이념 문제 작품에 녹여내…SF 소재·역사 배경도 눈길

  올해 신춘문예 희곡·시나리오 부분은 작년과 비교해 응모 편수가 조금 줄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문학청년들이 세대 문제, 젠더 문제, 이념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적잖이 놀랐다. 또한, 오늘날의 경향을 반영하듯 SF 소재나 역사 배경 등 다양한 설정이 눈에 띄었다. 많은 작품이 주제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어 당선작을 뽑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선작을 고르기 위해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으로 희곡 세 편 '노란 하늘', '두 개의 의자', '식사'를 꼽았다. 김지훈의 '노란 하늘'은 월남전에 참전한 노인을 다룬 작품으로, 잘 구성된 이야기에 이어 결말에 이르러 드러나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살핀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서 아쉬웠다.

  오성주의 '두 개의 의자'는 단절된 부자의 모습을 통해 한편으로는 노동 문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 문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소통이 부재한 부자의 모습은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어둠 속에서 한 발씩 다가서면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이러한 결말이 극의 구조와 전개에 있어 안정감을 주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극의 전개는 다소 단조로웠다.

  조한빈의 '식사'는 오늘날의 가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형태로, 명료한 극장 풍경 속에서 가족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드러나는 일상을 잘 주조한 작품이었다. 서로 긴장감을 가지면서도 명확하게 명명할 수 없는 관계가 부조리극의 특징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 작품 모두 장단점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 당선작을 뽑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심사위원들은 조한빈의 '식사'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간의 규정할 수 없는 관계성 속에 드러나는 긴장감이 무대에서 어떻게 펼쳐질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다른 이들에게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모두의 건승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 김윤미, 이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