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 / 김화순
<당선작>
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 / 김화순
너, 그거 알아? 수정이가 물었다.
어떤 거.
난 네모에서 우주를 느껴.
뭐!
나는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그녀는 가끔 그런 뜬금없는 말로 나를 아노미 상태로 몰아가곤 했다. 과일가게를 지나가다 진열해 놓은 과일들을 한참 들여다보곤 “이놈들도 암놈과 수놈이 존재하네.” 신기한 듯 중얼거리거나, 산책하다가 담쟁이덩굴이나 바위틈에 낀 이끼를 보고 “단단한 건 비바람에만 약해지는 건 아닌가 봐”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냥 그렇게 궁금한 부분을 말로 쏟아냈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말을 해도 그냥 흘러들었을 뿐 그녀의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짐작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혼을 두어 달 앞둔 예비 신부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으레 그렇듯 미래의 단꿈과 알 수 없는 불안이 혼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좀 달랐다.
지구가 둥그니까 다들 우주도 당연히 둥글다고 결론을 지어버리잖아. 난 아니라고 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왜, 기섭이가 뭐라고 하던?
아니. 그냥…. 미향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봐.
수정이 꿈꾸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그냥 깜깜했다. 도시의 빛 공해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냥 깜깜한 밤하늘이었다.
온통 깜깜하지? 근데, 오히려 환한 세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가?
깜깜한 세상 속에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기섭이랑 결혼 안 해.
너 정말! 미쳤구나.
그녀가 미친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임신한 처녀가 결혼을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화가 나서 소리치자, 그녀는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수정은 환경이 바뀔 때마다 항상 누군가를 사랑했다. 그녀와는 대학입시학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대학입시학원 수학 강사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여고 시절 우리가 살아온 인생마저 인수분해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있다고 소문난 강사였다. 아이돌처럼 자그마한 얼굴에 문제를 풀다 막히면 가늘게 뜬 실눈 위로 길게 드리우던 속눈썹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녀와 나는 한 학기가 지나갈 동안 그냥 얼굴만 아는 학원생이었다. 그녀와 친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엉뚱함 때문이었다. 그날은 낮에 먹은 굴이 말썽이었다. 생굴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생굴을 먹으면 자주 배탈이 났다. 학원에 가야 하는데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급하게 볼일을 보고 나서 학원에 도착하니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헐레벌떡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수정의 옆자리였다. 그녀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큰 눈을 말똥말똥 굴리며 내게 “너 바둑 둘 줄 아니?”라고 물었다. 웬 바둑? 어이가 없어 한참 그녀를 쳐다보았다. 더 어이없는 건, 이번에는 마치 꿈을 꾸듯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스카이 콩콩을 장착한 신발이 있었다면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거야.
나는 피식 웃어 버렸다. 수정의 그런 엉뚱한 모습이 희한하기도 했지만, 왠지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그 후로 그녀와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동아리 기수로 이제껏 마음을 터놓고 지내온 터였다. 주로 그녀가 먼저 결정하면 내가 따라가는 식이었다.
내가 동아리에 가입한 일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변화의 한 축을 이루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틀 안에서 안주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하나의 객체로 인식해 가는 계기였다고나 할까. 동아리는 사람의 인체와 우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동아리가 만들어진 순수한 목적보다도 제삿밥에 더 관심이 많던 시절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동아리 수련회를 갔던 일과 늦은 밤 근처 포차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마신 일, 그리고 회원들끼리 바둑을 두고 있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지겨워했던 일이 전부다. 그런데 왜 동아리에 가입했냐고? 내가 동아리에 가입한 이유를 묻자면, 음, 시시했다. 수정은 좋아했던 남자가 동아리 회장이어서였고, 나는 단짝 친구였던 수정이 가입해서였다. 수정은 입학식 날 처음 눈에 띈 남자가 동아리 회장이라고 했다. 그를 만난 다음날부터 그녀는 매일 나에게 동아리에 가입하자고 졸랐었다.
천상 비밀연구소. 동아리 이름도 희한했다. 별들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건 알겠는데 비밀까지야. 동아리 사무실에는 천상 비밀연구소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바둑판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이비 종교단체 같아 보였다.
신입생 환영회 날, 회장은 동아리 이름의 연유와 바둑 기원이 적힌 자료를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료에는 별자리의 흐름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이십사절기가 생겨난 연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모계사회 삼신으로서 북극성과 변하지 않는 하늘로서의 북극성, 그리고 육체가 사라짐으로써 북망산천인 북극성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 하늘의 우물인 은하수는 곧 여성 자궁을 상징하고, 모계사회였던 고대엔 처녀자리의 처녀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지도자로 섬겼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이‘알’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만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바둑이나 윷놀이 같은 놀이의 기원이 고대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도구로 발명되었다는 내용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천상 비밀연구소에서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의미인 북극성을 연구하는 모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수정에게는 사랑이 그랬다. 사랑이 종교처럼 버팀목이고 도피처였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녀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천문학이나 별자리, 바둑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미용이나 디자인, 의류 같은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수정은 꿋꿋하게 동아리를 지켰다. 많은 회원이 동아리에 가입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탈퇴한 것과 달리 수정은 졸업하는 그날까지 동아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아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 있었는데, 처음 내게 눈물을 보인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천문관에 잡다한 설비들을 수리하는 설비공이었어. 아버지의 어릴 적 꿈은 천문학자였나 봐. 근데,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못 하셨대. 미련이 남으셨는지 서재엔 온통 별들에 관한 책뿐이었어. 근데 웃기지. 정작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난 한 번도 본 적 없어.
수정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웃기는 건 뭔 줄 알아. 우리 아버지는 물탱크를 수리하다 죽었다는 거야. 천문관 직원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물탱크 말이야. 물탱크 압력을 잡아주는 와이어가 터진 거야. 고쳐야 했지. 그러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질식사하셨어.
동아리 회원들은 마치 전생에 각자 자신의 별자리에서 날아온 듯 뚜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성격은 동아리 모임 때 확연히 드러났다. 명왕성처럼 있는지도 모르다가 사라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화성처럼 용암을 품고 있는 이도 있었다. 반면, 동아리 회장은 잔잔했다. 그는 수정뿐만 아니라 별들에도 시큰둥했다. 그저 회장이라는 직함이 좋아서 동아리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수정이 두 번째 좋아했던 남자. 동아리 회장과의 인연은 시시하게 끝났다. 동아리 회장이 군대에 갔던 이유도 있었지만, 수정이 더 관심이 많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녀가 서로 피드백이 오가는 공전을 간절히 원했다면, 그는 항상 자전만 했다. 수정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그녀의 사랑은 별똥별처럼 자신만 불태우다 은하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수정은 동아리 회장과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의 틀 안에 갇혀있었다. 숫제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가슴을 조이며 매일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드디어 그녀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 나에게 미용실에 가자고 했다. 긴 머리를 고수했던 그녀가 짧은 커트 머리를 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렁임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에게 “넌 어때?”라던가, “넌 괜찮아?”라고 자주 물어본다는 거였다. 처음엔 그녀의 변화가 어색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응?”이라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졌다. 심지어 일렁임은 그녀가 걷는 걸음걸이에서부터 생활하는 모든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나중에 그녀가 말하길, 그 일렁임은 안개처럼 희미한 의식 같은 무엇이라고 하면서 “난 행성이 아니라 항성이 되고 싶어.” 했다.
그녀가 기섭을 만났다. 삼학년이 되고 난 뒤 동아리 첫 모임이었다. 봄의 전령이 아직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고 쩔쩔매던 날이 계속되고 있던 때였다. 쌀쌀했던 아침나절과 달리 점심때가 되면서 점점 따뜻해지더니 오후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갑자기 무더웠다. 그러다가 회원들이 모이는 저녁무렵이 되자 다시 쌀쌀해졌다. 마치 수정처럼 변화무쌍했다. 그때 수정은 동아리 총무를 맡고 있었다. 그녀는 여느 총무와 아주 달랐다. 으레, 임원진이 그렇듯 모임에서 끝까지 남아 회원들을 챙기곤 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모임을 시작하고 십 분쯤 지나면 계산부터 먼저 했다. 그리곤 저녁을 먹고는 별말 없이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동아리 모임 때마다 자주 그랬다. 총무가 왜 저래? 모두 황당해하며 한마디씩 했다. 기섭은 그런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른 회원들이 어쩌다 집안일로 모임을 빠질 때 꼬치꼬치 챙겨 묻던 때와는 너무 달랐다. 수정은 점점 베일에 싸여 갔다. 어쩌면 수정이 베일에 싸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이를 꼽는다면 바로 기섭이었다. 회원들이 아는 건 그녀가 동아리의 모든 경비를 책임지고 있다는 거였다.
밥값 내주고 술값 내주는 놈이 최고 아냐.
그녀에 대해 회원들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기섭은 그렇게 잘라 말했다.
어느 자리나 변화는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어느 밤 은하수가 처녀자리 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며 안개가 희뿌옇게 그 자리를 덮었다. 그런 날이 이삼일 반복되었다. 그리고 수정이 임신했다. 사 학년 마지막 여름 MT 때였고, 광란의 밤들이었다. 부드러운 모래밭 너머로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고, 모닥불에 불꽃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모두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고대에서 제천행사를 지금처럼 했을 거야. 그치?
누군가가 소리쳤고, 모두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내가 수정에게 “피임 안 했어?”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가만히 고개만 끄떡였다.
기섭의 아이야?
수정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살짝 미소만 지었다.
기섭은 수정의 임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책임질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수정에게 낙태를 권했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앞길이 창창한 기섭이 가족에 얽매여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녀 앞에서 기섭은 철부지 아이였다.
수정아. 너도 기섭이도 아직 너무 어리잖아.
아직도 어려. 둘 다 어른인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나중에 기섭의 어머니가 수정이네가 상가를 다섯 채나 가진 부동산 재벌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 수정에게 간드러진 웃음을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나는 수정이 기섭과는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미혼모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으니까.
이 아이는 내 아이야. 하늘이 내게 준 아이.
수정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제일 당황한 쪽은 기섭이었다. 그는 한동안 수정의 집 앞에서 서성거린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수정을 만날 수는 없었다. 기섭이 아무 말 없이 동아리를 떠났다. 그들은 마치 목동자리와 처녀자리 같았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천상 비밀연구소는 그들의 공백을 체감해야 했다. 동아리 회원들은 별다른 성과도 없이 표류하며 정체성을 잃어 갔다. 나도 그랬다. 회원들이 하나둘 동아리를 떠났다. 급기야 대학 행정실에서 동아리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연락을 받고서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천상 비밀연구소는 내가 졸업하던 그해 영원한 비밀을 간직한 채 해체되고 말았다.
선배. 선배는 너무 무책임하셨어요. 선배가 우리를 잘 이끌어 주셨어야죠?
나는 후배들의 원망을 달게 받았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 유난히도 초롱초롱했던 밤이었다. 내 방 창가에서 턱에 손을 괴고 앉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별은 숨바꼭질하듯 빛을 내 품었다 감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젠가 수정이 말하던 깜깜한 밤하늘엔 우리가 모르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수정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이년 뒤였다. 그때 나는 조그만 유통 업체에 다니고 있었는데, 별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바빴다. 회사에 내 출입 카드가 카운터가 되는 순간부터 물건을 분류하고 라벨을 붙여 택배회사에 넘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별이 뜨면 퇴근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하는 기계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그녀와 내가 만나기로 한 곳은 도심과 조금 떨어진‘산아래’라는 이름의 2층 카페였다. 카페 입구의 정원에선 보라색 라벤더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고 청춘 남녀들은 연신 그곳에서 스마트 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수정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두 살이나 아래인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이름이 상우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섭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헤어진 남자의 안부를 그토록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수정에게 내심 놀랐다.
해외 출장 중이래. 업무가 바쁜가 봐.
수정은 이 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좀 더 단단해 보였고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상우와 함께 지낸다고 했다. 내가 기섭은 어떡하고? 라는 물음의 눈을 동그랗게 치켜들자, 그녀는 “상우가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냥 쉬고 있다고 했다. 뉴스에서 그냥 일을 안 하는 젊은이가 많다더니 그가 그랬다. 내가 “생활은 어떻게 해요?”라고 묻자, 그는 “수정이 있잖아요.”하고 대답했다. 수정에게 기생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그가 못마땅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책임이라던가, 타인의 눈 이런 단어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가 “틀에 얽매여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했다.
아!
나는 더 이상 그와 수정을 세상의 틀에 갇힌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상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휴일마다 수정을 찾았다. 그가 심취해 있는 세계는 샤머니즘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무속인이거나 점성술사는 아니었다. 상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배운 책 그 어느 구절에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전하는 사람의 입에서 사심이나 어떤 의도가 있어 왜곡되고 변형된다는 거였다.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태초의 종교는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생겨난 거라고 주장했다.
고대에는 하늘에 순응해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가 실눈을 가늘게 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리를 떠나면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북극성은 고대인들에게 하늘 그 자체였죠. 거기에 의지해서 인간의 마음이 하나씩 보태져 이야기가 만들어진 거예요. 샤머니즘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 너무 허무맹랑한데.
내가 그렇게 쏘아붙이자 상우는 피식 웃었다.
상우 넌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거야?
할머니요.
할머니는 뭐 하시는 분인데. 부모님 이야기는 왜 없어?
할머니는 사람들의 길흉을 봐주세요. 흔히 무당이라고 하죠. 그의 눈빛이 일순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가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며 “아직 제가 태어난 세상에 자신이 없었나 봐요. 이젠 안 그러려고요.” 했다.
그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대대로 교육자 집안이었다. 집안에선 그의 아버지도 당연히 교육자가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틀에 박힌 일을 싫어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가진 어머니에게 매료된 것도 틀에 박힌 일을 싫어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헤어질 수 없다고 하자 본가에서는 아버지와의 모든 연을 끊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할머니 댁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무속의 세계는 멀리서 보았던 환상의 세계와는 달랐다. 가정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이,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 부자인데도 더 많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 더러는 남에게 해코지를 원하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때때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손님이 돌아간 다음 왜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으셨냐고 묻자, 할머니는 어떤 건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것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태어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 시작할 즈음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친할아버지에 의해 외국으로 보내졌다고 했지만,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스스로 떠났다고 했다.
네 아비는 네 어미의 무한한 세계를 감당하지 못해.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렸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눈이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머니의 외사랑을 하늘도 시기한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할머니는 어머니가 북극성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할머니.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야.
할머니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가 유치원에 갈 무렵 한 남자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그가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긴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를 한 번 안아주고는 떠났다. 그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상운의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들. 이름 모를 별들과 북극성, 은하수, 바둑, 윷놀이 이런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에 마음까지 담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끔 그가 엉뚱하게 둘러대는 것을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천문 연구원이 된 것도 그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상우는 기섭이 책임이라는 틀에 묶어 수정을 옭아매려 했을 때도“하늘이 내려 준 아이예요. 수정이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
별천지에 사는 놈이야.
기섭은 그런 상우를 신기한 놈이라고 했다.
수정과 상우가 헤어졌다.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 되어 보였던 두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그녀에게 왜? 라고 묻지 않았다. 워낙 독특했던 두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며 헤어졌는지는 모른다. 상우와 헤어진 후 그녀는 아이를 한 명 더 낳았는데 내가 보기엔 상우의 아이 같았다. 내가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수정이 다른 남자와 사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섭과 다시 썸을 타는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정에게 상우의 아이냐고 물었다. 내 말에 그녀는 이마를 찡그렸다.
상우가 이야기 안 하던. 하늘의 아이라고.
수정이 또 정색하며 대답했다.
하늘의 아이. 또! 수정이 너 정말 왜 그래?
나는 화가 났다. 수정이 아무리 엉뚱해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는가? 아이의 인생은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그녀가 누구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지 안다. 대학 입학식 날. 교정을 들어서는 학생들 사이로 고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며 내 앞에서 멈췄다. 수정이 고개를 내밀어 나에게 타라고 했다. 그때 부모님은 좌판에 있는 꽃다발을 사느라 조금 떨어져 걸어오시던 중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걸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정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부모님이 계셔.” 수정이 몸을 비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수수한 차림의 중년 부부가 한 손에 꽃을 들고는 나를 향해 손짓하며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었다. 수정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의 생기발랄한 엉뚱함 뒤에 숨겨진 깊은 슬픔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고급세단이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 후로 그녀는 다시 나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가 귀하잖아. 나라도 애국자가 되어야지.
그녀가 더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내게 농담을 건넸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해 놓고 나도 모르게 또 그녀를 세상의 틀에 가두고 있었다.
수정이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다. 서른 살이 되기 육 개월 전이었다. 그녀는 공무원이 된 이유를 시간이 좋아서라고 했다. 그녀가 처음 맡은 보직은 주민자치센터 민원실의 서류를 발급해 주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부모의 그늘에서 보던 세상과 다른 여러 경험을 하고 있었다.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들. 이를테면, 남편이 부인의 인감을 위임장도 없이 발급해 달라고 억지를 피운다던가 아니면 기초생활 수급 자격이 탈락한 이가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리는 일들이었다. 그녀도 점점 현실 세계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면 천문 연구원이 된 나는 예전의 수정처럼 점점 엉뚱해지고 있었다.
너는 나이 서른에 아직도 별 타령이야?
내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변화를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수정을 바라보자, 그녀는 “너와 이야기하면 점점 괴리감이 느껴져.”하고 핀잔을 주었다. 하긴 변변찮은 연애 한 번 못 해 본 내가 어떻게 수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정말 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좋았다. 아니 어쩌면, 결혼이라던가 아이,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로 나는 점점 내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수정이 또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태성이라는 이름의 행정고시를 패스한 꽤 유능한 남자였다. 그와 처음 인사하던 날, 내가 “수정이 어디가 좋았어요?” 하고 장난스럽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가 “이쁘잖아요.” 라던가 “매력 있잖아요.”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너무 뜻밖이었다.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 같아서요.
나는 그의 대답에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품어 버릴 뻔했다. 그는 내심을 숨기지도 않고 결혼이 비즈니스라고 정의한 거였다.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수정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아!
지금 수정은 어떤 색깔의 사랑을 하는 걸까? 확실히 그들의 사랑은 심장이 펄펄 뛰는 붉은색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하늘의 별들처럼 노란색인가? 그것도 조금 애매했다.
거실 한쪽 벽면에 붙은 결혼사진 아래 하트 모양으로 장식된 혼인서약서가 눈에 띄었다. 혼인서약서에 쓰인 그들의 관계는 까만 바탕에 깨알처럼 쓰인 노란 글씨가 별처럼 유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랑을 막으려는 듯 하트 모양의 장식이 두텁게 울을 이루고 있었다. 정해진 틀을 싫어했던 그녀가 자신을 스스로 정해진 틀에 가둔 것이다.
수정아, 깜깜한 세상 이야기는 어떻게 해?
뭐?
네가 말한 밤의 이야기 말이야.
무슨 말이야? 정신 차려!
나는 배알이 뒤틀렸다. 조금 스산함이 느껴지는 가을밤. 그녀는 밤하늘 페가수스 이야기를 버린 것이다, 슬펐다. 이젠 나만의 밤하늘만 있을 뿐이다.
나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아직 여름날의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을 무렵이었다. 며칠을 앓아누웠는지 모른다. 아마 잠결에 내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스무 번도 더 났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눈을 뜨면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어디서 귀뚜라미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늘 깜깜했던 방안이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햇빛이나 전등 빛과는 다른 빛의, 그러니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그런 아련한 밝음이었다. 빛은 내방 창문가에서 흘러들어왔다. 눈부시게 흰 백조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황홀했다. 나는 백조의 목덜미와 날개 끝의 하얀 깃털을 쓰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백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히지 않았다. 백조는 내가 한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한 발 더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사위는 아직 깜깜한 밤이었다. 밤하늘에 커다랗게 네모가 그려지고 있었다.
수정이 아이를 낳았다. 태성을 닮은 짙은 눈썹에 갓난쟁이치고 제법 이목구비가 선명한 아이였다. 수정은 여느 아줌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는 바빴다. 그녀와 어쩌다 통화 중일 때 칭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통화 중에 갑자기 “잠깐 있어봐. 아기 변기통 챙겨주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쉬는 날, 내가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한 아이를 업고 다른 아이는 침대에서 재우는 중이었다.
육아 휴직은 이번 달까지야?
응. 다음 달부턴 엄마가 봐 주기로 했어.
힘들지 않아?
괜찮아.
큰애는 어디 갔어?
아차! 모른척할걸. 나는 아직도 기섭의 아이와 상우의 아이에 대한 꺼림직한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아빠랑 놀이터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문젠가? 그때 수정의 스마트 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성의 전화였다. 급하게 일이 생겨 큰아이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냈다고 했다. 수정은 갓난아이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는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현관문을 살짝 열어 놓고는 이마에 땀을 닦았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아이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기섭을 닮은 아이였다.
수정은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더니 익숙하게 아이를 씻기고는 옷을 갈아입혔다. 그러고는 유아용 컴퓨터 앞에 앉히고 영어로 된 동요를 틀어 주었다. 아이는 너무 익숙해서인지 시큰둥했다.
엄마! 나 게임할 거야.
안돼.
아이가 계속 보챘다. 수정이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별나라 여행 게임을 틀어줬다. 게임은 공룡이 우주선을 타고 황도 십이궁의 별자리를 여행하는 게임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 염소자리까지 날아라. 얏!
아이는 신이 나는지 혼자 소리치며 게임에 빠져 있었다.
기섭인 자주 만나니?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가끔. 기섭이 결혼했어.
나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기섭의 소식을 물었을까? 수정이 소중한 걸 자꾸 잃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게.
나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한 아이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하품을 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아! 상우. 아이의 까만 눈엔 상우처럼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이 담겨 있었다.
꼬맹이 일어났어?
수정이 미리 만들어 놓은 바나나 머핀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서 말했다. 아이가 쪼르르 달려가 수정의 다리를 감쌌다. 그녀는 아이의 눈가에 붙은 눈곱을 떼면서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기섭의 아이가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혼자 무리에서 떨어졌다고 느낀 걸까? 아이가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수정의 허벅지를 안았다. 수정에겐 등에 업은 태성의 아이와 왼쪽 무릎에 매달린 상우의 아이, 오른쪽 허벅지를 안은 기섭의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수정이라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별들처럼 보였다.
수정의 집을 나왔다. 거리에는 하늘의 별 대신 전등 빛이 요란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처럼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오피스텔에 막 도착하자마자 후두두 소나기가 퍼부었다. 나의 세상이 비에 젖어 온통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즐겨듣던 유행가 가사처럼 가로등도 졸고 있는 그런 밤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는 한참을 기대어 있었다.
얼마나 기대 있었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경비 아저씨였다.
차에서 주무시면 안 돼요. 술 드신 건 아니죠?
비가 그쳤는지 경비 아저씨는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미소를 보였다. 그가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별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명에 가려 보이지 않는 빛 사이로 별빛이 어렴풋이 보였다. 끝.
<당선소감>
기쁘고 떨리고 멍하고 ...두려움 앞서지만 이제 시작
당선 소식을 전해 받고 토요일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날리고 하늘은 온통 뿌옇게 덮여 있었다. 날씨가 험해 다른 날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좋은 소식은 부모님께 빨리 알려드리는 게 도리일 거라는 생각에 차를 몰았다.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자 거짓말처럼 눈발이 사라지고 햇빛이 비쳤다. 그래. 두렵다고 포기하지 말자.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후회하지 말자. 내겐 경험이라는 소중한 걸 얻을 수 있으니까.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떨리고, 멍하고,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이다.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길은 언제나 깜깜한 밤이고 내가 아니면 나의 길은 밝아질 수 없으니까.
토요일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준 오영수 문학관, 무한한 상상력을 길러주신 엄창석 선생님, 늘 선배로서 소설가의 꿈을 잃지 않도록 조언해 주신 소설가협회 여러 선생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 울산시 生
● 주택관리사
● 아파트 신문 기자
<심사평>
재기 발랄 상상력·톡톡 튀는 대사로 독자 사로잡아
350여 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그라운드호그 데이’, ‘호상’, ‘오직 모음의 작품’, ‘프리다’, ‘물의 물고기’, ‘떼’, ‘진주’, ‘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 ‘100미터씩 걸어가는 길’이다. 이 작품들은 장단점을 골고루 지니고 있었다. 이 말은 작가가 다시 작품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더 좋은 소설로 거듭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들 중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초반부의 너무 직접적인 진술, 화자의 생활환경에 대한 도식적인 설명이 봄을 기다리는 겨울 다람쥐라는 좋은 상징을 방해하고 있었다. ‘100미터씩 걸어가는 길’은 아빠와 바람났던 여자의 장례식장을 엄마와 함께 찾아가는 밤길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올해의 당선작으로는 ‘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으로 선정했다.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힘을 지녔다. 재기 발랄한 상상력, 톡톡 튀는 대사, 모계사회를 꿈꾸는 듯한 세계관 등등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행성(行星)이 아니라 북극성 같은 항성(恒星)의 삶을 꿈꾸던 수정의 변신도 흥미로웠다. 다만 화자인 미향의 역할이 내레이터 정도에서 머물러 있는 게 다소 섭섭했다. 자, 이제부터는 네모난 우주 속에서 수정이 만든 둥근 세상으로 우리도 함께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심사위원 : 이경자, ·김도연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줄거리]
이 소설은 주인공 미향과 그녀의 친구 수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미향과 수정은 대학 시절부터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해왔고, 그들의 삶의 여정과 사랑, 그리고 각자의 성장을 다룹니다. 이야기는 수정이 네모난 공간에서 우주를 느낀다는 독특한 발언으로 시작됩니다. 수정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미향에게 충격을 줍니다. 이 결정을 통해 수정의 자유로운 영혼과 전통적인 사회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수정은 여러 명의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찾아가지만, 그녀의 사랑은 항상 어떤 모호함과 불확실함을 동반합니다. 기섭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게 되지만,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를 하늘이 준 선물로 여깁니다. 그녀는 상우라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지만, 그와의 관계도 결국 끝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정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합니다.
미향은 천문 연구원이 되어, 별과 우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수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정의 자유롭고 엉뚱한 모습은 미향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며,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습니다.
[분석]
소설의 구조적 분석:
이 소설은 '나'라는 화자가 친구 수정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수정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 그리고 화자의 내면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제 분석:
1. 자유로운 삶의 추구
- 수정은 "네모에서 우주를 느낀다"는 말로 상징되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존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 결혼, 출산, 양육 등에서 conventional한 방식을 거부합니다
2. 사회적 통념과의 갈등
- 미혼모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
- 여러 남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시선과의 충돌
- 전통적 가족 개념에 대한 도전
상징적 의미 분석:
1. 별과 우주의 상징성
- 별은 각 인물들의 독립적 존재를 상징
-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의미
- 북극성은 중심이 되는 모성을 상징
2. 가족 관계의 재해석
- 수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성
- 혈연관계를 넘어선 사랑과 책임의 의미
- 각각의 아이들이 별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모습
인물 분석:
1. 수정의 성격과 변화
- 엉뚱하고 자유로운 영혼에서 시작
- 여러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
-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안정된 삶을 구축
2. '나'의 성장과 변화
- 처음에는 수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 점차 수정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
- 천문 연구원이 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
현대사회적 함의:
1. 가족 개념의 확장
- 전통적 가족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가족 제시
- 사랑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관계의 의미 탐구
-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수용 가능성 제시
2. 개인의 자유와 책임
- 자유로운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의 의미
- 모성과 개인의 독립성 사이의 균형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과 그 결과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 가족의 의미, 사회적 통념과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별과 우주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과 삶의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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