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빛의 그을음 / 허지영
<당선작>
빛의 그을음 / 허지영
언니의 결혼식이 일주일 남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 집에 널브러진 언니는 붙박이였다. 엄마와 언니에게는 나만 아는 암모니아 같은 냄새가 있다. 낫토처럼 끈적이는 점액으로 이어진 듯한. 혼자가 되어 허전하기도 서운하기도 할 텐데 엄마는 숙제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엄마는 언니를 늘 아픈 손가락처럼 감쌌다. 언니가 진짜 어디 아픈 거냐고 내가 모르는 병이라도 걸린 거냐고 그런 게 아니면 내가 어디서 주워 온 딸인 거라고 엄마에게 따진 적도 많았다. 스물다섯이었던 언니가 귀가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고 잠긴 현관문 밖에서 싹싹 빌고 들어온 후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스물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놀다 자정이 넘은 것을 알았고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엄마에게 전화했었다. 친구 집이라고 자고 가겠다고. 엄마는 흔쾌히 그러라 했다. 그날 이후 난 아주 영리하게 내게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사랑은 여러 번, 차는 것도 차이는 것도 매번 처음처럼 실컷 앓고 나왔다. 그때마다 언니에게 달려가 비밀이라고 털어놓았고 그로 인해 언니는 내 흑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사랑이 우선이라 자기애끼리 부딪치면 상처가 된다고, 상처는 안 주고 안 받겠다며 비혼주의를 선언했던 언니였다. 나는 언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언니의 투명한 일상은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언니는 대학 전공과는 거리가 먼 숍인숍 마사지사가 되었다. 엄마가 하는 화장품 가게 안에서.
사랑은 식초 같은 거 아닐까. 새콤달콤할 거라 착각하는 식초. 아무 준비 없이 삼키면 그 신맛에 부르르 떨게 되는. 노란 레몬이든 빨간 사과든 오랜 발효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식초가 되었겠지만, 해피엔딩은 아직이다. 청이나 술과는 다르다. 혼자서 맛을 낼 식초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꿀이나 설탕 한 스푼 필요하거나 올리브오일로 기름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이든 한데 버무리는 것쯤은 기본.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곱지는 않아도 고유의 맛을 찾아주는 데에 소금만 한 게 없다. 아주 소량이라도 식초의 마지막을 결정한다. 싱숭생숭했던 나에게 소금 같은 인간은 언니였다. 희생까지는 모르겠으나 내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걸림돌이 있을 때마다 비혼주의 입장이라며 적당한 거리에서 녹여낸 언니의 위로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도 언니였다. 두 살, 네 살, 서른네 살 남자를 챙기느라 부스스한 머리를 빗어 넘길 시간조차 없는 내가 보기에 스스로만 챙기면 되는 언니의 시간은 범접하기 어려운 귀족의 여유였다. 똥 기저귀를 두세 개씩 갈 때마다 언니의 꿈 같은 일상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게다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까지 독차지하고 있으니. 그런 언니였지만 이상하게 짠 내가 났다.
꿋꿋하게 비혼주의라고 외치던 언니는 가게 손님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놀랍게도 한 달 만에 결혼한다고 했다. 헤어 디자이너가 언니의 머리카락에 사정없이 가위질을 해댔다. 바람 소리 같은 가위 소리가 오늘따라 스산하게 들렸다. 머리를 좀 길어 보라고 할걸. 언니가 거울 속에서 입꼬리 한쪽을 짧게 올려 웃었다.
“언니 첫사랑 오빠 소식은 있어? 어디에서 뭐 해?”
“알고 싶지 않아.”
언니는 첫사랑을 물을 때마다 안면근육이 심하게 굳었다. 어릴 때 다섯 살 위의 언니는 분명 어른이었고 나에게 없는 신비가 있었다. 언니의 물건들까지 모두 빛이 나서 새로 산 신발보다 언니가 신던 신발이 더 좋았다. 언니 옷을 입고 언니 신발을 신어도 거울 속 나는 언니처럼 보이지 않아 속상했었다. 풀지 못해 낑낑대는 어려운 문제들이 언니 손으로 가면 단순하게 수정되어 깔끔한 답과 함께 내려왔다. 언니는 엄마와 달랐지만 내 눈에는 분명 어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는 말이다.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많이 아팠다. 방 안에 누워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넘지 못할 줄 알았던 언니의 키를 넘었고 언니보다 먼저 결혼해서 언니에게 없는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다. 언니의 시간은 다른 궤도에서 더 천천히 흘렀다.
유난히 많은 머리숱인데 좀 길어 보지. 웨딩드레스 입을 때 웨이브 한 머리가 어깨에 흘러내리면 어릴 적 언니를 다시 만날 것 같기도 했다. 언니는 결혼 이야기가 나온 후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들떠 있다가 갑자기 축 처지기도 하면서. 늦은 나이에 하는 결혼의 중압감이 있으려니 했다. 오늘은 언니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엄마가 아침부터 오늘만큼은 집에 있겠다고, 나 대신 아이들을 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엄마는 언니와 함께 신혼집에 들어갈 물건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한복집에서 한 번 입을 분홍색 한복을 맞추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엄마 나이에는 힘에 부치는 일들이었나 보다. 내가 결혼할 때는 퇴근 후나 주말에 남편과 함께 다니면서 번갯불에 콩 볶듯 해치운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도 기저귀 가방도 없이 하는 외출을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언니의 머리 염색이 끝나면 점심을 간단히 먹고 네일숍에 가기로 했다. 얼마 만인지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한 시간 동안 내 손톱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로또였다. 편하게 앉아 밥 한 그릇 먹은 기억조차 소실 중이었으니까.
핸드폰을 열고 언니가 미리 보내 준 체크리스트를 훑어보았다. 네일이 끝나면 다음은 웨딩홀에 가서 대형액자와 포토 테이블 액자들을 내려놓고 식권을 미리 가져와야 했다. 예약해 둔 신혼여행에 변경 사항이 있는지 여행사에 문의하는 것도 중요 일정이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엄마였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가슴이 덜컥했다.
“혜진아, 너 좀 들어와야겠다. 빨리. 옆에 혜영이 있지? 혜영이한테는 아무 말 말고.”
“애들 다쳤어요? 무슨 일이에요?”
“그런 거 아냐. 애들 잘 놀아. 혜진아, 빨리 좀 와 줘.”
아이들 사고가 아니라면 엄마가 다친 걸까. 그도 아니면 달리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짐작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심장은 본능적으로 불안하게 뛰었다. 번호 키를 막 누르려는데 엄마가 빠르게 문을 열었다. 엄마 뒤에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머리숱 많은 긴 머리에 큰 눈이 낯설지 않았다. 신발을 벗으면서 물었다.
“엄마, 누구?”
여자아이에게 물은 건 아니었다. 윤연우라고 대답한 아이는 잘못해서 들킨 얼굴로 서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이름보다 관계였다. 기억보다 선명하게 고등학생 모습 그대로의 언니가 보였으니까.
“들어와. 앉아서 얘기하자.”
엄마가 엉거주춤 앉으려는데 방에서 아이들이 누나를 불렀다. 여자아이는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배려처럼.
“혜진아, 이를 어쩌니.”
“무슨 일이야? 누구야?”
“놀라지 말고. 그러니까 그게. 언니 딸.”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 데시벨의 최고점을 찍었다. 엄마는 입에 검지를 가져갔다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조용히 앉으라 했지만 이미 내 몸은 보이지 않는 세포들까지 모두 일어났다 내려앉은 다음이었다.
“엄마, 아침 드라마 찍어? 말 같지 않은 소리 말고 진짜 누구야?”
낯설지 않은 이목구비에 언니 얼굴이 겹치지 않았다면 웃고 말았을 거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번씩 크게 숨을 내쉬며 횡설수설했다. 내 귀에는 물속에서 울리는 먹먹한 소리뿐이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이었거나 중학교를 들어갔을 즈음이란 말을 반복했다. 머리를 쥐어 짜내도 퍼즐 한 조각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결에 낚였던 언니의 첫사랑 이야기가 이거였나 싶었다. 겨우 고등학교 삼학년이었던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는 충격적인 서사를 엄마는 어제 일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 엄마가 될지 모르는 여고생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두리번거리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알리기는 무섭고 도움은 간절했을 모순과 갈등이 옥죄어 올 때 언니가 숨은 곳이 겨우 이불 속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을 안 하길래 덮고 있는 이불을 젖혔을 뿐인데 언니는 악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나는 엄마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난 일이 있었다. 언니는 툭하면 분홍 이불 속으로 들어가 오랜 시간 나오지 않았다. 성격 참 이상해진 거 아냐고 사춘기는 나라고 언니 사춘기는 지났다고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동이 느껴진 고3 언니가 꿈틀거리는 배를 안고 매일 분홍 꽃무늬 오리털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던 것을 십팔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 방문을 열었다. 연우는 두 아이를 데리고 점토 놀이 중이었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점토 모양틀이 놓여 있고 점토 통과 분리된 뚜껑들, 그 속에서 빠져나온 각각의 색깔 점토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큰아이는 물고기 모양틀에 파랑 점토, 하얀 점토를 넣고 상어를 만드는 중이라 했고 둘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뭉치고 자른 점토들을 비어 있던 빨간 점토 통 속에 그냥 넣었다 뺐다 다시 쑤셔 넣으며 옹알거리고 있었다. 공룡 피규어들이 모두 바닥에 내려와 있고 방 한쪽에 레일이 깔린 것을 보니, 한바탕 기차놀이도 한 듯싶었다. 연우는 아이들이 만들어 준 점토 동물과 역할 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들어준 점토 요리를 냠냠 맛보면서 아이들의 작품을 진열해 놓는 중이었다.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조카가 눈앞에서 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 연우를 등 뒤에서 안았다.
토닥거리면서도 언니 걱정이 컸다. 등 뒤에서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아이들이 자기들도 안으라고 매달렸다.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언니가 보낸 문자였다. 웨딩홀에 가져다 놓을 대형액자와 포토 테이블 액자들이 내 차 안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는 언니는 자기가 놓칠 수 있으니 식권도 가져오라는 말을 꼭 해달라고 그래야 저녁에 형부에게 전해준다며 빨리 오라는 독촉 문자를 보내왔다. 조용해진 아이들을 연우에게 맡기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 언니한테 사진 주고 와야 해. 연우가 여기 온 거, 언니도 알아야겠지? 혹시 형부한테 연우에 대해 말했을까?”
“김 서방 몰라. 혜영이가 모르니까. 제 새끼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았어.”
“엄마!”
“연우 듣는다. 조용히. 그래. 내가 죄인이야. 내가 그랬어.”
수험생이라 입시 스트레스가 심한 줄만 알았던 엄마는 아이를 가졌다는 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이 아빠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이었고 군에 입대한 후 아무것도 모른 채 연락이 끊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고 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언니는 아기를 볼 수 없었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다. 놓쳐버렸다는 아기를 언니는 초점 없는 눈으로 찾았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태어난 아기를 안고 보육원으로 달려가 엎드려 사정했었다. 딸의 인생을 위해 딸의 딸은 나중이 되었다. 그렇게 연우는 보육원 아이로 자랐다. 엄마에게는 먼 훗날이었고 연우에게는 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을 보호 종료일이 지났다. 연우는 엄마 아빠를 만나겠다고 할머니를 찾아왔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조용했던 어항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왔을 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언니는 네일숍의 소파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얗고 긴 손톱에 작은 진주알들이 박혔고, 금빛 나비 한 마리도 앉아 있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잘 어울릴 듯했다. 짧은 머리가 원래 이렇게 세련된 스타일이었나 싶었다. 서른여덟의 언니는 서른셋의 나보다 한참 어리고 맑아 보였다.
“왜? 무슨 일인데?”
언니가 물었다. 지금 결혼식보다 복잡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리 없다는 확신으로 대충 묻는 언니 표정을 보며 언니 딸 연우가 지금 집에 와있다고 말할 뻔했으나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웨딩홀에 도착하자 언니는 조수석에서 내려 대형액자를 들었고 나는 포토 테이블에 올라갈 작은 사진들을 챙겼다.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받아 갔다. 우리는 사무실을 찾았다. 언니는 신부 화장과 혼주 화장 시간을 확인하고 예식 순서와 폐백까지 체크 했다. 분주한 언니 뒷모습을 보며 온통 연우 생각뿐이었다. 언니 딸이 언니 없이 십팔 년을 견뎠는데 언니 넌 지금 뭐 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이 모든 결혼 예식 준비가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괜찮을까. 그렇게 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결혼식 며칠 전에 나타난 신부의 딸을 고심 끝이라도 받아들일 신랑은 존재할까? 고개를 저었다. 몇 퍼센트의 확률로 있다고 해도 그게 형부일 리는 없었다. 결혼식 끝내고 말해야 하나. 형부가 아는 순간 언니의 평안한 결혼 생활은 장담할 수 없다. 언니는 물론 엄마와 나도 형부를 속였으니 셋 다 엄마가 말하는 죄인이 되는 거였다.“너 오늘 왜 그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야?”
“언니, 미안. 여행사 확인은 전화로 해도 되지? 엄마가 혼자서 애들 둘 보기 엄청 힘들대. 미안해. 집에 먼저 가 볼게.”
뭔가 있다고 중얼거리는 언니에게 차 키를 주고 택시를 탔다.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렇게 여리고 겁이 많은 엄마가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보육원으로 뛰어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코너에 몰리면 무서운 게 없어지는 걸까 싶다가 혼자 오랜 시간 긴장하고 살았을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동안 정성을 들였던 보육원 봉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연우라는 이유.
“혜진아, 결혼식 끝날 때까지만 연우가 여기 있으면 안 될까? 혜영이 결혼식 끝나고 신혼집에 들어가면 내가 데리고 갈게.”
“이게 며칠 숨긴다고 될 일이야? 아니, 지금 연우가 어디에 있는 게 뭐가 중요해. 그럼 언니한테는 언제 말할 건데? 형부는? 엄마, 언니랑 형부 얼굴 어떻게 보려고? 모르고 산 언니는 형부한테 뭐가 되고. 난 당장 애들 아빠한테 뭐라고 해?”
“혜영이 알면 결혼식이고 뭐고 다 엎을 거야.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에. 그래, 그때 말하자. 엄마 말 좀 들어 줘.”
결혼식을 엎는 게 결혼을 뒤집는 것보다 낫다고 해도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결혼식도 결혼도 엄마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고.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연신 미안하다만 했다. 그리다 시계를 보더니 언니와 형부가 온다고 저녁해야 한다며 서둘러 가버렸다. 방 안에서 연우가 나왔다.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근데 저, 엄마 인생 망치려고 온 건 진짜 아니에요. 보육원에서 나왔는데 막상 지원금이 다 떨어지고 나니까 깜깜했어요. 갈 데도 없고 생각나는 데가 없어서 찜질방에 있다가.”
나는 연우를 꼭 안았다,
“그래. 잘 왔어. 괜찮아. 미안해.”
연우 잘못이 아닌데 이 모든 결과는 오롯이 어린 연우가 받아내고 있었다. 슬픔은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이의 몫이었다. 방안에서 아이들이 뒤뚱거리며 나왔다. 한 녀석은 내 다리를 한 녀석은 연우 다리를 잡아당겼다. 아이들 손이며 옷에 묻어 있던 컬러 점토들이 눈물방울 대신 색색으로 떨어져 발아래에서 납작납작해졌다.
“연우야, 아이들 좀 씻기고.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늘 하던 대로 양팔에 두 아이를 안으려는데 연우가 막내를 훌쩍 안아 올렸다. 욕조에 아이들을 빠트리고 물을 채웠다. 다른 날 같으면 물놀이도 시켰을 테지만 큰아이부터 빠르게 씻기고 수건으로 감싸서 물기를 닦았다.
“연우야, 잠깐만 얘 좀 부탁해.”
둘째를 맡겨 놓고 나와서 로션으로 큰아이 몸을 문지른 후에 잠옷을 입히고 침대 위에 눕혀 놓았다.
사랑이 노력보다 본능이나 감정에 기울 듯이.
행복도 사랑처럼 이성의 영역이 아닌데
생각만 고친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될 것 같지는 않다.
애쓰고 힘쓰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둘째 잠옷과 타올 하나 들고 욕실에 들어서니 연우가 벌써 씻기는 중이었다. 좋다고 흥얼대는 아이를 받아서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혀 큰아이 옆에 눕혔다. 연우가 욕실 뒷정리까지 하려는지 쏴 물소리가 시원하게 났다. 따스한 물이 연우 가슴 속을 구석구석 씻겨낼 수만 있다면. 안방 옷장을 열었다. 홈쇼핑에서 사서 빨아 놓고 입지 않은 속옷을 꺼내고, 입고 싶어 샀지만 입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하얀 티셔츠와 검은색 고무줄 반바지를 찾아 연우에게 건넸다.
“연우야, 너도 씻어. 화장실 거울을 옆으로 밀면 새 칫솔 있을 거야. 이걸로 갈아입고.”
연우가 씻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안고 재웠다. 뽀얀 아기 냄새가 좋았다. 잠들 때 바라보면 완벽한 천사들이었다.
저녁 시간이 이렇게 편해도 될까 싶었다. 엊저녁만 해도 아이 둘이 서로 양쪽 다리를 하나씩 잡고 안아달라 업으라 하는 바람에 들고 있던 달걀을 손에서 놓쳤고 둘째는 달걀이 깨졌다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첫째는 들어 올리겠다고 잡은 노른자가 물컹하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자 손바닥째 바닥에 문질러버렸다. 그리고 울지 말라며 동생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달걀 하나가 남긴 면적의 크기는 예상 밖이었다. 바닥은 그대로 두고 큰 아이 손을 싱크대 위에서 닦은 후에 둘째를 안고 욕실에 가서 씻기고 나오다가 크게 넘어질 뻔했다. 욕실 문 앞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아이가 정수기 버튼을 누른 채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보다 크게 웃고 있었다. 정수기 온수 버튼을 꺼 놓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둘째를 안아서 거실에 앉히고 큰 수건을 가져와 물 위에 펼쳐 놓고 닦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큰아이가 울었다. 바다 만드는데 엄마가 망쳤다면서. 오늘 저녁 준비는 연우 덕분에 참 수월하다 싶다가 문득 이모가 돼서 연우의 두 살 네 살을 떠올릴 수 없다는 게 고구마를 꾸역꾸역 삼킨 것만 같았다. 나는 연우의 이모였다.
남편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다. 남편이 언니와 엄마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연우를 둘러댈 수 없었다. 남편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언니도 형부도 알아야 한다며 당사자들에게 맡기라 했다. 그래야 하지만 막상 결혼식 준비로 형부와 다투고 예민해져 있는 언니를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길었다. 미루기만 하다가 언니 결혼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버렸다. 엄마 집에 갔더니 아침부터 체크리스트를 보던 언니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혜진아. 오늘 나랑 옷 좀 사러 가자. 네 거랑 제부 거.”
그러고 보니 애들 키우느라 새삼 제대로 된 옷을 산 적도, 입을 일도 없어서 혼자 석기 시대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들 낳기 전 입었던 옷들은 색이 바래고 먼지 덮인 유물이 되었을 거다. 설상 꺼내 입는다 해도 치수는 이미 내 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반색하고 따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지금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언니 손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드레스숍인데 급하게 재 피팅이 필요하다고 올 수 있느냐는 내용 같았고 언니는 바로 나갔다. 언니가 없는 사이 엄마는 연우를 엄마 딸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자고 할까, 목젖까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삼키고 아직도 엄마 눈에는 혜영이만 보이는 거냐고 연우는 안 보이느냐고 쏟아냈다. 엄마는 떨고 있었다. 내 속 떨림은 들키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언니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낼 뿐이었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비혼주의를 선택했던 언니는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결혼한다고 했다. 언니의 행복이 중요했던 엄마는 비혼에도 결혼에도 행복은 있다며 노력하기에 달렸다고 했다. 결혼도 이혼도 경험해 본 엄마의 말이라서 우리는 격하게 공감했다. 노력하면 행복해진다고. 그런데 연우 없이 결혼한 언니도 노력하면 행복해질까. 누군가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이라 했다. 사랑이 노력보다 본능이나 감정에 기울 듯이. 행복도 사랑처럼 이성의 영역이 아닌데 생각만 고친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될 것 같지는 않다. 애쓰고 힘쓰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뭉글뭉글 올라오는 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언니의 결혼 앞에 나타난 연우로 인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연우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간 건 내 잘못이었다. 신발장 앞에서부터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방의 액체들이 주범이었다. 큰아이는 간장을 식초 통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바닥에 깔린 물엿과 식용유를 손바닥으로 치며 놀고 있었다.
“그만, 그만.”
등을 돌리고 있는 연우는 액체 뚜껑을 닫고 바닥을 걸레로 닦으려고 했지만, 큰아이에게 뚜껑을 작은아이에게 걸레를 뺏겼다. 머리끝까지 화가 날 상황이었는데 연우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뚜껑 닫고 걸레로 닦아주겠다? 그럼 부탁해요.”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돌려 벽에 기대려다가 나를 발견한 연우는 얼굴에 웃음이 싹 가시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진짜 괜찮다고 했지만, 정작 연우는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이마를 만져보니 뜨거웠다. 데려다가 침대에 눕혔다. 어항 속을 헤집는 물고기가 아니라 엄마를 찾아 날아온 새 한 마리가 웅크리고 누웠다. 이 상태로 병원에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용기를 냈다. 바쁜 줄 아는데 중요한 일이 있으니 잠깐 집에 다녀가라고 언니에게 문자를 넣었다. 화면에서 아주 작은 숫자 1이 사라지고 언니의 답이 올라올 때까지 숨을 조금씩 나누어 뱉었다.
미안.
언니의 ‘미안’은‘안 돼’의 다른 말이었다. 빠르게 쓴 긴 문자가 바로 이어졌다. 지금은 형부 머리를 다듬는 중이고 오늘은 계속 형부와 같이 있을 거라고, 헬퍼 해 주는 분을 만나고, 부케를 확인하고, 양가 부모님 한복까지 찾아오려면 시간이 빠듯하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쓰다가 지웠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연우 좀 병원에 데려가야 할 거 같은데.”
엄마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려왔고 연우와 함께 나갔다. 나는 아이들을 씻긴 후 허물처럼 벗겨진 옷이며 수건들을 빨아야 했다. 세탁기 안에는 연우가 입었던 옷들이 이미 들어 있었다. 세제가 빨래 위에 뿌려진 걸 보니 세탁기 사용법을 몰랐나 보다. 세탁기 문을 겨우 열고는 당황했을 연우 모습이 그려져 안쓰러웠다. 일단 하얀 것만 골라 아이들 옷과 함께 돌려서 건조까지 시킨 후 소파 위에 두고 나머지 색깔 있는 옷을 돌렸다. 아이들 옷 먼저 개어 서랍에 넣어 놓고 보송보송 건조된 연우 옷들을 차곡차곡 개었다. 쿠팡에서 입을 만한 연우 옷 몇 벌도 주문해 놓았다. 몇 시간 후 엄마와 연우가 함께 들어왔다. 힘이 없어 보이는 연우를 침대에 눕혔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초기 감기래요. 아이들한테 옮기면 안 되는데.”
“그런 걱정은 말고. 그리고 다른 데는 괜찮은 거래?”
“영양결핍이라고요. 링거 하나 맞으라고 해서 맞고 왔어요. 그리고.”
일어나려는 연우를 다시 눕혔다.
“누워있다가 저녁 먹을 때 나와. 내일은 할머니한테 애들 맡기고 이모랑 나가자. 머리 좀 하고 네일숍도 가자. 체크카드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 많네. 아, 세탁기 사용법도 빠트리지 말고 가르쳐달라 그래. 이모 자주 깜빡하거든.”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우리 언니가 보였다. 그때 이불 속에서 언니는 혼자 들썩거린 게 아니었겠다. 거기에 너도 있었겠구나. 나는 이불 속 연우를 안았다. 이불 속 언니도 이렇게 안아줄 걸 하면서. 방문을 닫고 나오자 엄마는 소파 밑에 앉아 주먹으로 가슴을 쳐대고 있었다.
“후유, 내가 죄인이여. 내가 저 어린 것을.”
엄마는 가방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쓰적거리며 꺼내 놓았다. 비닐 안에는 약이며 영양제가 잔뜩 들어있었다.
“난소에 종양이 있었다는데 보호자 없어. 수술비도 없어. 저게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 거야.”
연우가 처음 집에 온 날 저녁이었을 거다. 연우는 엄마와 살지 않아도, 할머니 집에 있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세상에 혼자만 아니면 뭐든 감사할 수 있다고. 그런데 한 번쯤은 엄마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혜진아, 혜영이 불러라.”
언니 번호를 눌렀다. 받을 때까지 계속.
“바쁘다니까 무슨 일이야?”
“놀라지 마. 언니를 꼭 닮은, 열여덟 살 연우가 우리 집에 있어.”
전화기 건너에서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열여덟 살 같은 언니 혜영이가 달려오고 있다.
<당선소감>
넓고 깊은 안목과 사유 갖고 소설쓰기 매진
어릴 때 학교 운동장 구석에 있는 철봉에 자주 매달리곤 했습니다. 양발이 땅바닥을 밀어냈다 차오르는 순간 어깨너비로 벌린 두 손이 훌쩍 가서 철봉을 잡습니다.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철봉을 잡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철봉에 매달리게 됩니다.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리면 하늘이 출렁이고 손바닥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오래오래 매달릴 수 있습니다.
이제 소설 쓰기에 매달려 봅니다. 글을 시작하려는 순간 철봉 아래에 옹송그리고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바닥에서 모래의 굳은살처럼 꾸덕꾸덕 마른 언어들이 올라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 듯 문장 사이사이에 잘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펜이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고 자판에서 빈 깡통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도 있겠지만 바닥을 밀어내고 훌쩍 오를 겁니다.
되도록 넓고 깊은 안목과 사유로 내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로 출렁일 때까지 매달리고 싶습니다.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탄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선 소식은 들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에야 비로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어머나, 정말요?’ 같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더 잘, 더 오래 매달리겠습니다.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첫 소설 쓰기부터 이끌어주셨던 신승철 교수님 그리고 곁을 내어준 문우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행운이 비켜 가지 못한 거라면 아마도 부모님과 동생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기뻐했던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 그대들의 울타리가 있어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자기인 줄 아는 친구들의 기다림과 타국에서 가족이 되어주신 분들의 따스함에 용기를 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작품을 읽어주시고 힘을 실어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소설로 꾸준히 보답하겠습니다.
● 서울 출생, 멕시코 거주
●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 그림책 <비밀이 들려요> 번역
<심사평>
회피하지 않는 결단 통한 온기 보여줘
본심에서 읽은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거나 일을 그만둔 휴직 상태이다. 노동 환경의 변화와 그 영향이 무엇보다 커보인다. 예전처럼 묵시록 종류의 거대 서사는 보이지 않았으며 AI 소재도 많지 않았다. 어두운 사회의 면면을 반영하듯 긍정보다는 비관에 기운 인물들이 많고 비혼주의자임을 고백하며,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불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설은 밝음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인물들은 이 모든 어려움을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헤쳐나가려고 한다. 이제 남은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듯, 바깥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위안을 찾지 않는다.
<피타고라스의 삼각형>은 재수생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재수생들 이야기는 나올 만큼 나왔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디테일이 좋고 서사적 전개가 뚜렷하다. 자신들의 처지를 피타고라스의 삼각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선분으로 비하하는 아슬아슬한 재수생들의 일상이 리얼하다. 그러나 세 명 중 한 친구가 자살하는 설정은 익숙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보였다.
<엔터>는 예술가들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소설이다. AI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미술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의 이야기로, 진심인 마음 하나만 가지고도 예술은 이루어질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의지와 영감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던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과 달리 AI의 프롬프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 사이에 서 있는 예술가의 딜레마를 표현한 소설이다. 그러나 주제를 적시하는 문장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소설은 어떤 예술보다도 삶을 닮은 장르이기 때문에 소설에 가져오는 정보나 설명은 의외로 힘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소설은 어쩌면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름의 대안을 찾아보는 시도도 필요하다.
<빛의 그을음>은 단순한 구조의 소설이다. 십대 때 언니가 낳은 아이의 존재를 지금, 오늘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생의 시점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언니에 대한 묘한 경쟁심과 박탈감 사이에서 은근하게 드러나는 대한민국 차녀들만의 감정도 읽을 수 있다. 별다른 갈등 없이 하나의 감정선을 지킨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았다. 어린 연우에게 이토록 많은 어려움을 얹는 것이 가혹하다면 가혹했다. 잠시나마 화자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장면도 베이비 시터처럼 보여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재단하고 밀어내고 부정하는 것도 방향이지만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것도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빛의 그을음>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회피할 수 없었던 일을 다시 회피하지 않는 결단을 통해 온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심사위원 : 강영숙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개요: 허지영의 "빛의 그을음"은 결혼을 앞둔 언니의 과거에서 드러난 비밀스러운 모성과, 그로 인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18년 전 입양 보낸 딸의 등장으로 촉발되는 가족의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구조적 분석:
1. 시간적 구조
- 현재: 언니의 결혼 준비 과정
- 과거: 18년 전 입양 사건
- 두 시간의 교차를 통해 진실이 점진적으로 드러남
2. 상징적 요소
- "빛의 그을음":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한 그림자
- "어항 속 물고기": 평온한 일상을 깨뜨린 변화
- "이불 속": 숨겨진 비밀과 상처의 공간
인물 분석:
1. 주요 인물
- 혜진(화자):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째 딸
- 혜영(언니): 과거의 상처를 안은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첫째 딸
- 연우: 18년 만에 나타난 혜영의 딸
- 엄마: 딸의 미래를 위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 인물
2. 인물 간 관계
- 복잡한 모녀 관계(혜영-연우)
- 자매 간의 이해와 연민(혜진-혜영)
- 새로운 가족 관계의 형성(혜진-연우)
주제 의식:
1. 핵심 주제
- 가족의 비밀과 진실 직면
- 모성과 책임의 무게
-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
2. 부차적 주제
- 여성의 삶과 선택의 문제
- 사회적 편견과 차별
- 행복의 본질에 대한 탐구
문학적 특징:
1. 서술 기법
- 1인칭 시점을 통한 섬세한 심리 묘사
- 현재와 과거의 교차 서술
- 감각적 묘사와 은유적 표현
2. 문체적 특성
- 섬세한 감정 표현
- 일상적 소재를 통한 상징성 구현
- 내면의 독백과 대화의 조화
작품의 의의:
1. 문학적 가치
- 가족 관계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포착
- 현대 사회의 윤리적 딜레마 제시
- 인간 심리의 깊이 있는 탐구
2. 사회적 의미
- 미혼모 문제와 사회적 편견 조명
- 가족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
- 용서와 화해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 제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직면한 문제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화해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합니다. 특히 여성의 삶과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과 고통을 섬세하게 다룸으로써 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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