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모르는 사람 / 강정아
<당선작>
모르는 사람 / 강정아
월요일
내 방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돌아온 다음에야 서둘러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삼일 떠나 있었을 뿐인데 방의 풍경이 낯설다. 잠옷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고 침대 위 홑이불은 거칠게 벗겨져 있다.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 끄트머리에 물잔이, 그리고 그 물잔 부근에 물 얼룩이 두 방울져 있다. 행주는 쥐어짜진 채 바싹 말라서 살짝 밀면 굴러갈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때에 끊어진 일상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의 틈은 금세 메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흘 전 이 방을 떠났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손님처럼 침대 옆구리에 조심히 앉았다. 부모상은 오일 휴가라고, 문상 온 김 팀장이 알려 주었다. 그러고는 보너스처럼 덧붙였다. 근무일 기준, 공휴일 빼고. 침대 머리맡에 세워 놓은 달력을 보며 날짜를 짚어보았다. 토, 일 빼고, 일, 이, 삼, 사, 오, 그리고 다시 토와 일. 맙소사, 지나간 삼일을 빼고도 무려 육일의 휴일이 남아 있다. 하마터면 감사합니다, 하고 외칠 뻔했다. 달력 아래쪽 여백에 리치 가 106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다. 휘갈겨 쓰기는 했지만 내 글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리모컨을 집어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텔레비전을 켜자 주연급 영화배우 한 명이 실종된 지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낮에 짜장면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동생이 진찬혁이 죽었대,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진짜였다. 진찬혁은 죽은 배우가 출연했던 드라마 속 배역 이름이었다. 그 이름으로 그는 단번에 주연급 배우로 부상했다. 죽은 배우보다 더 인기 있는 배우인 그의 아내가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몇 년 전 둘의 결혼은 큰 화젯거리였다. 발목까지 오는 하우스 가운을 걸치고 맨얼굴로 나타난 미망인의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나는 옆으로 웅크린 자세로 누워서 비장하고 슬픈 음악이 흐르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발견되었던 날, 진찬혁은 사라졌던가 보다. 선량한 인상의 그 배우를 특별히 좋아한 건 아니지만 늘 웃고 있는 듯한 눈매가 보기 좋았다. 자기 집이 보이는 야산에 올라 목을 맸다니 순한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마지막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큰 빚을 졌고, 그의 사업을 돕다가 어머니와 형이 사기 혐의를 받고 있었고, 그 모든 것 때문에 아내와 불화설이 있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죽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걸까. 타던 차 안에 유서를 남겼다고 하는데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더 그 배우의 죽음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않았고 심지어 양말도 벗지 않은 채였다.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가 깼다. 마침내 멈추어 있던 내 방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게 한 것은 준제의 전화였다. 집에 왔어? 언제? 연락하지 그랬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밥은? 지금이라도 그리 갈까? 혼자 괜찮겠어? 나 내일 연가 냈어. 그냥, 너랑 같이 있으려고. 느지막이 먹을 거 사가지고 갈게. 준제는 내 옆에 있어 주어야 할지 혼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준제가 옆에 있는 게 좋은지 혼자 있는 게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좋은 건 없는지도. 아버지의 뼛가루가 담긴 도자기 그릇을 찬장 같은 데 넣어두고 돌아온 밤, 좋을 궁리를 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일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게 다 이상하고 어색했다.
방에 불을 켜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잠옷을 집어 들고 욕실로 갔다. 옷을 벗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서 오래전 일처럼 지난 토요일을 떠올렸다.
금요일에 준제와 싸워서 늦게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이참에 헤어져 버릴까, 헤어지고 나면 연애 따위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토요일 오전에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지만 준제일 것 같아서 받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전화벨이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발신인은 뜻밖에도 오빠였다. 왜? 마침내 짜증이 끝까지 오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아버지가 죽었대. 경찰이 전화할 거야. 네 전화번호를 알려 줬으니까 먼저 가 있어.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주말 늦은 아침에 느닷없이 아버지가 죽었고 경찰이 연락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대로 누워 있다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을 때, 처음 들어보는 이름 같아서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이름의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속히 오라고, 경찰이 말했다. 주소를 모른다고 했더니 경찰이 주소를 불러 주었다. 누운 채 몸을 뒤집고 손을 뻗어서 간신히 침대 머리맡 선반 위에 있던 달력과 볼펜을 잡을 수 있었다. 달력의 여백에 주소를 받아 적었다. 돌돌 말고 있던 홑이불을 단숨에 걷어차 버리고 벌떡 일어나 물컵에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한 모금 삼키는 순간 냉장고에 있는 생수 생각이 났지만 그대로 더 들이켰다. 물잔을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행주로 닦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급히 잠옷을 벗어던지고 욕실에 가서 대충 씻었다. 전날 입었던 옷을 걸쳐 입고 지갑과 차 열쇠를 챙겼다. 허둥지둥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되짚어 생각해 보니 오빠도 웃겼다. 어차피 나에게 전화할 거면서 왜 경찰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을까. 오빠도 당황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고, 파생해서 생긴 일들도 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꼭 그런 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씁쓸한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진짜 큰일이라며 오빠는 심란해했다. 가끔 상상했으며,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일이라 해도 실제로 일어났을 때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 우리 식구만 남았을 때, 그냥 헤어지기도 뭣하고 밥때도 되었기에 다 같이 엄마 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오빠는 뒤늦게 중요한 일이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넌 아무리 휴일이어도 그렇지 그때가 몇 신데 전화도 안 받고 자고 있었던 거야? 정작 나는 무슨 말인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엄마는, 아직도 술 처먹고 돌아다녀? 하고 나를 흘겨보았다. 올케가 풋, 웃었다. 그래도 날이 날이어서인지 지 애비 닮아서,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동생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반응이 없다가 진찬혁이 죽었다고 말했고 나는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화요일
조용한 것이 싫어서 텔레비전을 켰다가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다시 껐다. 또다시 조용한 것이 싫어서 라디오를 켰다. 그런 식으로 컴컴한 방안에서 일어났다 눕기를 반복하다가 날이 훤히 밝아오는 것을 보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준제의 전화를 받고 눈을 떴다. 목이 말랐지만 일어나기 싫어서 참았다. 핸드폰으로 죽은 배우의 장례식 관련 영상들을 찾아봤다. 그러다 다시 잠들어서 준제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 잤다.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살던 집은 변두리 사 층짜리 다세대주택 일 층에 있었다. 리치빌라 가동 106호.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는 일은 엄마가 주도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다시 집을 나왔고, 아버지가 동생네 집에 가서 엄마 있는 곳을 대라고 소란을 피웠고, 그 일로 내가 아버지와 전화로 언쟁을 벌였고, 그 후로 피차 외면하고 살았다, 또다시. 그 바람에 나는 그 집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대들고 모욕한 건 나인데 다 한통속이라 생각했는지 아버지는 다른 가족의 방문이나 전화도 매몰차게 거부했다. 일 년쯤, 아니 이삼 년 전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빌라 정문 앞에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서 있었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주차를 하고 육칠 라인 현관을 찾아 들어갔더니 경찰 한 명이 백육 호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맞는지 확인하라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연 끊고 살자고, 한 번만 더 동생이든 엄마든 건드렸다가는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소리를 꽥꽥 질렀던 그때도 이미 만나지 않은 지는 오래였었다.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고 너무 처참해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지만 한 순간에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니면 누구겠는가. 그토록 뻔뻔하게 아버지의 집 거실에 벌렁 드러누워 있을 사람이. 거실 벽에 제부와 올케까지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우리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서로를 묶어보려는 시도를 몇 번은 했었다는 증거였다.
경찰은 악취가 난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하여 자택 거실에서 숨져 있는 고인을 발견했고, 고인의 휴대폰에 잠금장치는 없었지만 통화 내역과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에 가족의 연락처가 하나도 없어서 애를 먹었다고 했다. 가족분들은 통 왕래가 없었나 봐요. 경찰이 톤을 바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인가 싶어 곧바로 네, 하고 대답을 했는데 굳이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변사자의 시신은 부검이 원칙이지만 현장에 범죄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고 유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으니 일단은 장례를 치르라고 했다. 과학수사대가 다녀갔고, 식탁 위 유리컵과 사체 주변에서 수거한 소주병 등을 국과수 의뢰해서 결과가 나오면 연락할 거라고, 그때 가족 중 한 명이 경찰서에 와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중년의 몸집 좋은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다가 적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딸인가 보네,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저 혼자 큰 줄 알지들. 금세 얼굴에 열기가 올라왔다. 아저씨, 다 속사정이 있는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조심하세요. 경찰이 그 남자에게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아가씨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아무리 못나도 아버지는 아버지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듯 남자는 반말을 썼다. 더 할 말이 있는지 도전적인 눈으로 경찰을 째려보다가 그는 지나갔다. 뒤따라 경찰도 철수했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았다. 자동잠금장치가 없는 문이었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지운 아버지가 죽은 채 누워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사람들은 고독사라고 부른다. 가족들이, 우리가, 내가, 아버지를, 한 사람을 그런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가족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살아서 정을 나눈 사람들이 곁을 지켜주는 가운데 눈을 감으면 고독하지 않을까. 나는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을까. 악다구니가 오가고 폭력과 파괴가 일상이었던 부모를 둔 나는 가족을 만들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족을 만들 마음이 없다. 같은 이유로 동생은 이른 나이에 집을 나가 떠돌다가 이른 나이에 가족을 만들었다.
수요일.
일상의 시간 감각이 돌아왔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낯선 허전함이 밀려왔다. 커튼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빠져나와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을 켰다. 죽은 배우의 발인식 영상을 내보내는 채널을 찾았다.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례식장 인근을 메우고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밝게 웃던 연예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일반인 사이에 섞여 있었다. 테두리를 국화로 장식한 커다란 영정을 들고 앞장선 이도 고인의 친한 친구로 알려진 유명 배우였다. 머리에 하얀 리본 핀을 꽂은 여배우는 양쪽에서 부축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한 채 무너지기 직전의 자세로 울고 있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다른 호실 유족들처럼 다 안 되어 보였다. 진짜 끝이라는 느낌과 충격은 화장장의 가족 대기실에서 절정에 다다를 것이다, 며칠 먼저 일을 치른 나는 저들이 지나온 이틀과 앞으로 겪을 일들을 그릴 수 있었다. 검은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버스에 실려서 화장장으로 갔다.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가 수시로 상품 팸플릿을 들고 와서 다음 절차에 필요한 용품을 고르게 했다. 장례지도사는 작은 체구의 젊은 남자였다. 검은 양복을 벗고 퇴근을 하면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떠들썩한 만남을 가질 나이였다. 발인 때 운구를 리무진으로 할지 버스로 할지 물었다. 리무진은 너무 튈 것 같다고 했더니 장례지도사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리무진을 빼달라고 했다.
결정할 일이 많았다. 장례식을 일반실에서 할지 특실에서 할지, 영정 장식을 3단으로 할지 5단으로 할지, 상복을 검정색으로 할지 흰색으로 할지, 장례를 종교식으로 할지 전통 방식으로 할지, 수의를 삼베로 할지 인견으로 할지, 시신과 함께 태워질 관은 집성목으로 할지 오동나무로 할지, 상주들의 아침 식사를 죽으로 할지 누룽지로 할지, 조문객에게 나갈 음식에 편육을 넣을지 수육을 넣을지, 그것을 종이 그릇에 담을지 플라스틱 그릇에 담을지도 결정해야 했다. 유골함을 일반으로 할지 진공으로 할지 물었을 때 나는 그냥 다 싼 걸로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장례지도사가 샘플로 가져온 도자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일반 유골함에 담으면 유골이 금세 상한다고 말했다. 상한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일반으로 해달라고 말할 때는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장례지도사가 진공 유골함도 부패를 완벽하게 막는 건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곧바로 디자인과 색깔을 정해 달라고 했다.
누군가 죽어야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고도 다양했다. 내 뒤로 제일 먼저 아버지의 집에 도착한 건 운구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경찰보다 앰뷸런스와 견인차가 먼저 도착하듯이. 모두 위생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고인 모실게요, 따로 장례식장 결정하신 곳이 있으실까요? 마스크 중 한 명이 사근사근한 투로 말을 걸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그들은 아버지의 몸을 커다란 비닐로 감싸서 시신운구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가까운 대학병원 장례식장보다는 최근에 새로 생긴 장례식장이 시설이 좋다고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말했다. 그들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등장과 일사불란한 동작 때문에 변사자의 장례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 싶어 보고만 있었다. 한 남자가 내민 서류에 막 사인을 하려는데 오빠의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가입한 상조회사에서 사람들을 보낼 거라고,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학병원에 자리가 있대, 나는 그쪽으로 바로 갈 거야. 수상한 사람들이 벌써 와 있는 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오빠는 말했다. 상조회사에서 시신을 빼앗길까 봐 그것부터 조치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정말 그럴 뻔하기도 했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마스크 남자가 미련 없이 서류를 도로 집어넣었고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다시 가방에서 꺼내 원래 자리에 눕혔다. 사과도 해명도 따질 새도 없이 그들은 우수수 빠져나갔다.
입관식을 할 때도, 화장장에서도, 추모공원에서도, 아버지가 살던 빌라의 관리위원회에서도, 집을 내놓은 부동산에서도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웃돈을 요구했다. 유품 정리와 소독을 맡은 특수청소 업체와 도배장판 업자에게서 견적도 받지 못하고 달라는 대로 입금해 주었다. 거기다 엄마는 사십구재 준비를 한다며 아는 무당에게 뭉텅이 돈을 보냈다. 아버지처럼 한 맺힌 넋을 탈 없이 저승으로 보내려면 그 정도 돈이 든다고 했다.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준제가 남겨 놓은 쪽지를 뒤늦게 발견했다.
‘네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잘 자고, 내일은 좀 더 힘을 내보도록 하자. 내일은 출장이 있어서 좀 늦을 거야. 아무튼 전화할게. 냉장고에 죽 있으니까 데워서 먹어. 사랑해.’
어제 준제가 와서 낮부터 같이 술을 마셨던 것만 생각나고 다른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도 할 말이 없고 준제도 할 말이 없어서 계속 술만 마셨다. 원룸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절에서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가 슬펐다. 장례식장에서는 꺼질 듯 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토해내던 다른 호실 유족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죽을 듯이 울어보고 싶었다. 준제를 앞에 두고 내가 울었던가, 드디어 서럽게? 그게 기억나지 않다니 무척 섭섭했다.
아버지가 죽어도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몇 번인가 누군가에게 말했다. 대개들 늦기 전에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 나는 절대 후회할 일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로는 역시나 후회 같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예상과 달리 눈물이 줄줄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다른 호실 유족들처럼 애끓는 통곡은 아니었다. 내가 울면 오빠는 이상한 광경을 보는 표정으로 나에게 왜 우냐고 물었다. 동생은 오빠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럼 이 판국에 웃어야 정상이야? 오빠는 문상 온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때때로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선술집에 모여 앉은 것처럼 정다웠다.
억울하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절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다소곳이 몸을 굽힌 적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우리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을 때는 그러기도 했었다. 어느 해 설날, 한복을 입고 아버지 손을 잡고 큰집 뜰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때는 서툰 몸짓으로 절을 하고 세뱃돈을 받고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았었다. 아버지가 얼굴로 내 볼을 비볐을 때 까끌까끌한 감촉 때문에 간지러워서 목을 웅크렸다.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고, 술에 취해 부수고 때리고 욕을 하는 아버지만 기억하는 동생은 끝내 울지 못했다.
오빠와 동생에게서 유산상속 포기 각서와 인감도장이 각각 도착했다. 아버지가 살던 집을 처분하려면 필요한 것들이었다. 엄마 것은 장례식이 끝난 뒤 미리 받아왔다. 다들 나더러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가족들은 서둘러 아버지를 정리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살던 집은 대출도 있었고 싼 집을 더 싸게 내놔서 남을 것이 없었다. 빚을 남기지 않은 것만 해도 우리가 상상했던 최악은 아니었다. 그 집을 사서 수리할 때 오빠와 나도 돈을 보탰다. 친척과 친구네 집을 전전하고 있던 엄마가 지낼 곳도 마련해야 했다. 적어도 부엌과 침실이 구분된 공간에서 살고 싶어서 부지런히 돈을 모았는데 그 때문에 나는 아직도 원룸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연예계 뉴스를 보면서 빈둥거리다가 말 잘 듣는 애인처럼 준제가 사다 놓은 죽을 데워 먹었다. 늦은 밤에 술에 취해 준제가 전화를 했다. 오고 싶다고.
목요일.
며칠 만에 원룸 밖으로 나갔다. 갈 데가 많았다. 먼저 경찰서에 갔다. 국과수에 의뢰한 물건들에서는 특이한 점이 나오지 않았다. 형사가 보여 준 사건 기록철에 아버지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의 사진들이 있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었다. 유서인지 메모인지 낙서인지 모를 글귀가 적힌 아버지의 수첩 사진도 있었다. 당연히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보고 있기가 미안했다. 조사는 형식적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 몇 번 하고 내 할 일은 끝났다. 조서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하면 형사가 모범답안을 알려 주었다. 담당 형사가 한글 문서 작성하는 데 서툴러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조서에 사인을 하고 민원실에 가서 사망확인서를 뗐다. 몇 통이요? 하는 질문에 머뭇거리고 있으니 민원실 여경이 넉넉하게 열 통 해드릴까요? 하고 도로 물어서 그러라고 했다. 사망확인서의 사인(死因)란에 불상(不詳)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망확인서를 들고 동사무소와 두 군데 은행, 우체국, 휴대폰 회사 고객센터, 법무사 사무소, 부동산, 국민연금관리공단까지 돌았다. 가는 곳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증명서니 내역서니 결산서니 하는 서류들을 받았다. 사망확인서를 제출할 때마다 불상이라고 적힌 글자가 도드라져 보였다. 동생과 오빠에게 한 통씩 보내고도 사망확인서 세 통이 남았다.
빈 시간에 핸드폰으로 죽은 배우의 기사를 찾아 읽었다. 묵은 스캔들과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들이 다시 소환되고 새롭게 들춰졌다. 유서의 일부도 공개되었다. 죽기로 결심한 진찬혁은 모친과 형, 아내, 그리고 실종되기 전까지 촬영이 상당히 진행되었던 영화 관계자에게 각각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한계에 부딪혔다고, 이기적인 선택을 용서해 달라고, 자기를 하루빨리 잊고 평안하게 살아가라고, 미안하다고.
사람이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냐고, 그런 말도 했었던 게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평생 딱 한 번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미안할 짓을 하지 말라고 더 크게 소리쳤다.
엄마가 보낸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초재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어찌 되었건 아버지 아니냐며, 죽은 사람한테 잘해야 일이 잘 풀리고 병이 없으니 이유불문하고 초재와 막재는 참석하라고 적혀 있었다. 말미에 극락암의 주소가 딸려 있었다. 불교와 유교와 미신이 범벅된 엄마의 단골 기도처였다. 이유불문. 언제나 이유를 들이대는 나를 겨냥한 것일 수도, 기독교 신도인 올케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도 있었다. 동생이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엄마를 말리기는 늦었고 내가 알아서 둘러댈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더니, 자신은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 때문에 일이 안 풀리고 병나고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싫어, 미신이라고 해도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 그리고 아버지하고 엮인 일은 이게 마지막일 거 아냐, 하고 동생이 말했다. 뭐라는 건가 싶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싸운 사람은 나지만 동생은 훨씬 전부터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려 했고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 있게 되면 유령 취급했다. 아버지가 무얼 묻거나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학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동생은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았다. 그 뒤로 집을 나가 살았다. 명절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자기 결혼식에 아버지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또 맞을 뻔했다.
동생이 집을 나간 몇 달 뒤 어느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는 없고 아버지 혼자 텔레비전 앞에서 마른 멸치와 고추장을 놓고 술을 먹고 있었다. 음식이 담긴 채 박살이 난 사기그릇 무더기가 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새벽녘에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한동 삼촌네 왔다, 달랑 한 문장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나가 살다시피 하던 오빠는 취업을 해서 다른 도시에 가 있었다. 주말에 빨랫거리를 들고 집에 왔다 가곤 했는데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에는 오지 않았다. 내가 제일 늦게 집을 떠났다. 냉장고 옆에 즉석밥 한 상자와 참치 통조림 한 묶음을 놓고 나왔다.
나름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처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버지의 집에 가서 마트에서 산 즉석밥과 밑반찬과 과일 같은 것을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아버지를 만나면 껄끄러워서 빠져나오기 바빴고 아버지가 집에 없으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결혼을 한 후에는 올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올케는 우리가 아버지와 남처럼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올케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했고, 그녀가 가족의 화합을 위해 기획한 여러 이벤트에 참여했다. 오빠와 동생의 결혼을 전후해서는 밖에서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기도 했고, 가족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하기도 했고,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동생네만 빼고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결과는 항상 파탄이었다. 매번 우리 중 누군가가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고, 아버지가 폭발하면 모두 합세해서 아버지와 싸웠다. 그가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다시는 아버지와 무얼 함께 할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중 어느 것이 마지막이었는지 모르겠다. 올케도 승산 없는 싸움에 오래 애쓰지는 않았다.
그냥 살던 곳에서 살도록 내버려두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거기서는 게이트볼 동호회 모임도 나갔고, 단골 술집도 있었고 그 술집에 가면 꼭 만나는 술친구도 있었다. 어디든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와 지하철의 노선도 아버지는 훤히 알았다. 가족이 없더라도 아니 없으니까 화낼 일도 없이 살았을 것이다. 남에게는 경우 바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엄마가 다시 아버지와 살아보겠다고, 며느리 사위도 그렇고 손주들 보기 민망하니 같은 집에서 살긴 살아야겠다고, 그렇지만 그 동네에 다시 들어가 살기는 남우세스러우니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살인지 무당인지 하는 사람이 그래야 집안 식구들이 평안하다고 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버지는 또 혼자가 되었다. 엄마 빼고 우리가 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엄마는 예상 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원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복수는 됐고,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 주는 것도 사실 많이 봐주는 거였다. 이해도 했다. 자기도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산 건 아닐 거라고. 아버지 연배의 남자들에게는 가족을 보살피고 아껴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함부로 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주 드문 일도 아니라고. 다 지난 일이고, 밥 대신 술 먹기를 일삼은 아버지는 늙고 마르고 작고 힘도 없었고, 여차하는 일이 생겨도 무섭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분했다. 예전에 당했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작은 일에도 단번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우리가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이었는지 아버지는 죽어도 모를 사람이었다. 모르니까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았고 갈수록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더 화를 냈다. 취한 아버지가 찾아와서 엄마 어디 있는지 대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를 듣자,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 조카가 있는 앞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대목에서 이성을 잃었다. 내 악다구니를 듣고만 있다가 아버지가 말했다. 대학 나온 사람이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경우 바른 사람 같은 말투였다.
금요일.
망설이다가 결국 극락암에 갔다. 집을 나올 때는 부동산에만 들렀다 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승복 비슷한 옷을 입은 무당 아줌마가 새 양말을 주어서 신었다. 동생은 열심히 절을 하고 드디어 조금 울기까지 했다. 오빠는 오지 않았다. 올케가 말렸을 것이다. 장례식에서도 올케는 우리가 절을 할 때마다 혼자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서서 묵념만 했다.
거기서는 절을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못마땅했다. 비참하게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들의 안녕을 챙겨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우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을 팔아 돈을 버는 무당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재가 끝나고 나서 나물에 밥을 비벼서 생선찜과 같이 먹었다. 그리고 과일과 소고기 산적과 새우튀김, 문어숙회 같은 비싼 음식 위주로 한 보따리 싸 들고 왔다. 새 양말도 몇 개 더 챙겼다.
원룸에 돌아와서는 핸드폰으로 죽은 배우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 읽었다.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깜깜해질 때까지, 연관 검색어를 옮겨 다니며 비슷한 기사들을 모두 읽었다. 준제가 오지 않았다면 밤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진찬혁의 형이 언론사 여러 곳에 자기 동생이 살해되었다고 제보했다. 강력한 증거로 유서를 꼽았다. 유서에 쓰인 문체가 평소 동생이 쓰던 호칭이나 어투와 다르고, 가족들만 알고 있는 일에 관한 언급이 하나도 없는 데다 온통 아내를 감싸는 내용인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고 했다. 동생이 쓰던 노트북이나 사무실 컴퓨터 어디에도 유서를 작성한 흔적은 물론 출력의 흔적도 찾지 못한 것이 타살의 증거였다. 가족과 유대 관계가 깊었던 동생이 어머니를 두고 그런 무서운 짓을 했을 리 절대로 없다고, 자살도 유서도 조작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고. 장례식에 온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한때 아버지와 죽이 맞아 같이 술을 먹고 다녔던 친척 어른도 장례에 참견이나 하려고 들었지 아버지가 마지막에 어땠는지 묻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과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뇨와 고혈압이 있었다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심한 편은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고령에 지병이 있고 혼자 사는 사람은 살해를 당해도 모를 일이었다. 석연치 않은 점들도 있었다. 은행 잔고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도, 지갑과 집 열쇠가 끝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외출복 차림 그대로 거실에 반듯하게 누운 자세였던 것도 그랬다. 죽지 않고 하루 더 살았다면 무슨 돈으로 살려고 했을까. 아버지는 주정뱅이이긴 했지만 열쇠나 지갑을 잘 잃어버리는 타입이 아니었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나에게 혼자 큰 줄 안다는 둥 대놓고 비난했던 덩치 큰 남자가 생각났다. 사람이 죽었는데 왜인지도 묻기 전에 가족 탓으로 몰지 않았던가. 길 건너 부동산 사장이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과 아버지가 자주 어울렸다고 했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그 집에서 악취가 새어 나올 때까지 그 집 문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고? 그가 아버지와 술을 먹다가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우발적일 수도 있고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거실에는 경찰이 수거해간 것 말고도 빈 소주병이 더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것들을 집안에 방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이 어지럽혀져 있다는 것이 버릇없다는 것 다음으로 자주 들먹이는 폭력의 이유였다. 아버지의 집은 그 소주병들 말고는 일하는 아줌마가 금방 다녀간 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찬혁의 형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버지의 은행 잔고는 전에도 몇 번 바닥을 드러냈다. 아마도 다음 날까지 살았다면 누군가를 찾아가서 돈을 빌렸겠지, 집을 팔아서 갚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집 열쇠와 지갑은 언제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고, 많이 취한 날은 횡설수설하다가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자기도 했었다. 설사 타살이고 전말이 밝혀진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더욱이 아무도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우주에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기를 원하기는커녕 아버지가 한때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사실조차도 없던 일처럼 지워지기만을 바랐다.
밤에 준제와 극락암에서 싸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술을 마셨다. 준제는 그렇게 해서 가족들 마음이 편해진다면 의미 없는 의식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고 진료비 냈다고 생각하라며.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 마음이 꼭 편해져야 하는 걸까, 나는 혼자 생각했다. 죽여 놓고 용서해 달라고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준제에게 이렇게 잔뜩 챙겨 와서 그나마 본전을 좀 뽑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아버지 상을 치른 딸은 어떤 표정이어야 할까. 주말이 지나면 출근해야 하고 아버지의 사망확인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신발장 안에서 상자를 꺼내 왔다. 아버지의 유품 몇 가지가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의 여권, 아버지의 수첩, 주로 아버지가 모은 기념주화들과 외국에서 생긴 잔돈들을 한 데 넣어둔 틴케이스, 금반지와 가죽 줄 손목시계, 그리고 사망확인서와 사망이 기재된 호적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은행에서 받아 온 거래 내역서 같은 것들. 사망확인서 한 통을 꺼내서 흰 봉투에 집어넣었다. 서류들 말고 다른 유품은 그 집에서 내가 가져 나왔다.
아버지의 여권과 수첩은 아직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상자에서 호적초본을 꺼냈다. 옛날 공무원이 손 글씨로 기록한 부분은 한자가 많이 섞여 있고 흘림체여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부모와 형제들이 어디에서 살다가 어떤 이름과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고 죽었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결혼을 하고 자식들이 차례로 태어나 이름을 얻은 기록도 있었다. 그들 중 둘은 결혼을 했고 분가를 했고 손주들이 태어났고, 마지막에는 본인이 사망했다. 사건 서류철에 붙어 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의 삶은 여러 이름과 날짜로만 남았고 죽음은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불상(不祥)이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진착혁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알지 못한다. 호적초본을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아버지의 집에는 나머지 가족들이 하나씩 집을 떠날 때 다 챙기지 못한 과거의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재 지낼 때 태울 옷 한두 벌만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아마 자기들이 무엇을 두고 왔는지 잊어버렸을 것이다. 텔레비전 장식대 서랍 안에 나의 중학교 때 일기장이 있었다. 서랍 속에는 동생의 머리핀과 싸구려 장식품 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 상자도 있었고, 가족 앨범 여러 권과 어릴 때 우리가 받았던 상장들을 모아 놓은 스크랩북도 있었다. 오빠가 한때 열심히 모았던 우표책도. 오빠는 그 우표책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자기 손에 돌아온 것을 잠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보더니 이내 아무렇게나 방치했다. 장례식장 가족 휴게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나중에 챙겨 갔는지 모르겠다.
작은 방의 옷장에는 유행이 지난 외투들이, 동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복 위에 입었던 코트와 오빠가 옛날에 다녔던 직장의 회사 잠바와 엄마가 입었던 각종 현란한 색깔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나와 동생이 같이 입었던 무거운 니트 코트와 내가 말랐을 때 샀던 정장도 있었다. 하나하나 세탁소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그런 것들을 왜 버리지 않고 정돈해 놓은 걸까. 아버지는 우리가 애지중지 모았던 종이 인형들과 딱지 같은 것들을 지저분하다며 몽땅 내다 버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을 상자에 보관하거나 정리를 하라고 일러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년의 아버지는 내가 알던 것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이었을까.
아버지의 옷 한 벌은 태워졌고 나머지 옷들과 우리의 과거를 담고 있는 모든 물건들은 폐기물 처리장으로 갔다. 내가 쓰다 말다 했던 일기장만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미치겠다와 죽고 싶다가 난무하는 내 일기장을 아버지가 읽었을까.
오후에 준제와 추모 공원에 다녀왔다. 오는 길,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동산이었다. 아버지가 살던 집에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하자고 했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누가 들어와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고, 돈을 보내면 알아서 달아놓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동산 사장은 시종일관 자기 집처럼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다. 특수청소팀과 도배장판업자도 직접 수배해 주었고, 일이 끝난 뒤 검사도 맡아주었다. 그 후에도 매일 아침저녁 모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환기하는 수고를 했다. 거래가 성사되면 수수료에 웃돈을 얹어달라는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약속한 액수보다 좀 더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부동산에서 아버지가 살던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벌써요? 내가 놀라서 묻자 싸게 내놓으면 어느 집이나 금방 임자가 나타난다고 했다. 왜 싸게 나왔는지 그쪽에서 아느냐고 물었다. 아마 알 거라고, 직접 이야기할 필요 없도록 알아서 하겠다고 대답했다. 매수자 쪽에서는 계약과 동시에 잔금까지 정리가 된다고 하니 일요일이지만 임자가 나타난 김에 바로 계약해 버리자고 했다. 갑자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한 일이었다. 필요한 서류는 법무사가 챙길 것이니 인감도장과 등기부 원본만 가져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준제와 함께 그 집에 갔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는 집이지만 현관문 앞에 서서 새로 설치된 도어락을 보니 마음이 쓰렸다. 문은 잠겨 있었고 나는 비밀번호를 몰랐다. 그렇게 잠깐 서 있다가 돌아 나왔다. 준제가 등을 쓸어주는 바람에 조금 울었다. 도어락 설치 비용을 입금하지 않은 것도 생각이 났고 중개수수료도 내야 해서 가까운 은행 ATM을 찾아갔다. 폰뱅킹으로 입금할 수도 있지만 그간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서 현금을 찾아서 두 개의 은행 봉투에 나눠 넣었다.
부동산 사무실에는 매수자 부부가 이미 와 있었다. 여자 쪽은 키가 작고 통통했고 남자 쪽은 큰 키에 호리호리했다. 둘 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젊은 커플이었다. 신혼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걸렸다. 부동산 사장이 기본적인 내용을 미리 입력해 놓은 계약서를 출력했다. 각자의 이름 옆에 자필로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고 간인도 했다. 위임장과 정산서에도 도장을 찍었다.
부동산 사장이 구석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계약서와 다른 부가 서류들을 두 개의 서류봉투에 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주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코입이 다 동글동글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알고 계시죠? 저희 아버지가 사시던 집이에요. 꺼려질 수도 있는데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테이블 뒤쪽의 책상 앞에 서 있던 부동산 사장이 고개를 획 치켜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그와 등지고 있던 여자는 내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희가 고맙죠, 경황이 없으실 텐데. 저는 그런 거 상관 안 해요,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요. 좋은 조건에 집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나동에서 전세 살고 있거든요. 마침 전세 기간도 끝났고. 거기 사시던 할아버지도 몇 번 뵌 적 있어요, 점잖고 정 많은 분이셨는데 다 사연이 있으려니 생각해요. 우리 사무실에도 몇 번 오셨어요. 시세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러 오셨을 때 과일을 사 가지고 오셨어요. 그런 사람 거의 없거든요. 굉장히 매너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죠, 아빠?
여자가 몸을 돌려 부동산 사장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계약서에 적힌 주소가 리치빌라 나동이었다. 예사로 보아 넘겼다. 예사로 보아 넘긴 것이 더 있었다. 동글동글한 여자의 얼굴이 낯익다 했다. 며칠 전 부동산 사무실에 들렀을 때 나가던 여자. 나 들어갈게, 아빠, 하던. 부동산 사장이 얼른 다가와서 서류봉투를 건네주며 수수료 입금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뭔가 어이가 없는 기분이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부동산 사장이 내 눈을 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 은행 문 여는 대로 대출 정리한 잔액이 입금될 거라고.
뒤늦게 분했다. 차 안에서 무슨 일이냐고 준제가 자꾸 물었다. 그러니까 자기 딸에게 넘기려고 그렇게 열심이었던 거다. 누가 이런 집을 사겠냐며 집값을 어이없을 정도로 후려쳤고 수수료 외 웃돈을 요구했고 마지막에는 새로 단 도어락 비용도 청구했다. 아니지, 뒤늦게 도어락 비용을 받아야겠다 싶어서 계약을 하루 미룬 거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웃돈에 웃돈을 얹어 주었다. 준제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어차피 그 가격에 팔기로 했고, 도어락을 달아준 것도 아침까지는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헛웃음이 나왔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남에게는 경우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웃다가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언제부터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살았을까. 누구라도 그 집의 문손잡이를 돌려 봤더라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무도 열어 보지 않는 그 문의 안쪽에서 아버지는 살았다. 단 한 명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만약 죽음이 무(無)가 되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완벽하게 죽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존재가 그토록 철저하게 소멸할 수 있을까. 고독 속에 아버지는 사멸했다지만 생의 반쯤을 삭제한 우리의 삶 또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아버지의 일은 끝났고 이제 나의 일만 남았다. 나는 차창을 열고 원망과 의문과 회한을 섞어 토해낸 숨을 밖으로 밀어냈다.
<당선소감>
글쓰기 부지런히 갈고닦을 것
처음으로 소설 한 편을 완성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입원기〉라는 단편이었는데 생애 첫 소설로 생애 첫 낙선을 경험했고, 스무 살이었습니다. 몇 년 뒤 〈뚱뚱한 여자〉라는 단편 소설로 신춘문예에 처음으로 떨어졌고, 설렘이 불안으로, 불안이 절망으로 이어지는 연말이 오래 반복되었습니다. 새해 첫날, 심사평을 찾아보고 당선작을 읽어 보면 내 작품보다 잘 쓴 것 같지도 않아서 상처 입은 마음이 더욱 깊이 파이곤 했습니다. 이제는 작품을 보낸 후에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심사평을 찾아보지도 않습니다. 길이 들었나 봅니다. 삼십 년이면 길이 들기만 했겠나요, 깎이고 파인 자리가 맨들맨들하게 다듬어져 제법 견딜만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받은 당선 소식이 아주 많이 좋습니다. 당선 연락을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렇게 결정이 나서 당선자에게 연락이 간 줄도 모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낯선 곳에서 걸려 오는 전화에 마음이 떨릴 다른 응모자들이었습니다.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곧 따라오십시오. 포기하지 마시고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작법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많이 읽고 흉내 내어 써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감사와 영광은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보태어, 다듬어지지 않은 원고를 던져주면 언제라도 성실하게 숙고해 준 수수와 윤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합니다.
생애 첫 당선작이 된 〈모르는 사람〉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삶’을 전제로, 죽음의 형태가 한 존재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쓴 작품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떤 답을 내어놓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장을 열어 준 경남신문사와 저의 가능성을 살펴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내보내 준 보람이 있도록 부지런히 갈고닦겠습니다.
● 1971년생
● 통영 거주
<심사평>
인물들 심리·탁월한 문장 돋보여
단편소설 185편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문학적 완성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작품의 소재는 가족, 학폭, 외국인 노동자, 난민,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고, 암울한 시대 속에 단절된 개인의 아픔을 내밀하게 파고든 작품이 많았다.
최종심에 올린 작품은 〈작은 것들의 노래〉, 〈캥거루 가족〉, 〈돌아오는 길〉, 〈모르는 사람〉 네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소재로 한 〈작은 것들의 노래〉는 복잡해진 한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사히라가 자신이 키우던 햄스터의 죽음에 트라우마를 겪는 후반부의 구성이 돋보이고, 난민을 배척하는 한국의 현실도 잘 드러났다. 다만, 중간 부분까지 주인공의 상황을 세심하게 그리는 데 치중하여 글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캥거루 가족〉은 보기 드물게 톡톡 튀는 문체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품이다. 고등학생 서술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읽히지만, 작품 전체를 이끄는 큰 얼개가 없어 각각의 에피소드로 글이 구성된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학폭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삼 년 후에 아이의 납골당에서 마주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학폭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가 겪은 감정의 대립도 팽팽하게 전개된다. 다만, 시간적 배경을 학폭이 일어난 삼 년 후로 설정한 개연성이 모호하여 그 시간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은 다른 식구와 분리된 채 고독사한 아버지를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와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견뎌야 하는 삶의 비루함,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인물들의 심리가 돋보였다. 탁월한 문장 역시 이 작품의 장점이다. 사유가 담긴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가 오랜 시간 단련했으리란 신뢰가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단편소설이 가지는 매력을 모두 갖춘 수작이라고 판단하여 〈모르는 사람〉을 당선작으로 하였다.
탈출구 없는 시대에도 문학은 새로운 세상을 지향한다. 소설의 힘으로 세상을 밝히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끝까지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이니, 모든 응모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손흥규, 김문주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작품 개요
작품은 아버지의 고독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단절된 가족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다룹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공 '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과 성찰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2. 작품의 구조적 특징
시간의 중층성
- 현재: 장례 절차와 집 처분 과정
- 과거: 가족사와 아버지와의 관계
- 진찬혁의 죽음: 공적 영역의 죽음과 대비
이중 서사 구조
- 아버지의 죽음과 진찬혁의 죽음 병치
- 사적/공적 영역의 죽음 대비
-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회상적 구조
3. 주제 분석
1) 가족 해체와 단절
- 폭력적 과거로 인한 가족 관계의 균열
- 소통 부재와 화해의 불가능성
-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한 거리두기
2) 죽음의 의미
- '-불상(不祥)'으로 기록된 죽음의 의미
- 공적/사적 영역에서의 죽음의 차이
- 죽음 이후의 관계 재정립
3) 기억과 망각
- 선택적으로 보관된 과거의 흔적들
- 재구성되는 관계와 기억
- 용서와 화해의 불가능성
4. 인물 분석
1) 화자(딸)
- 아버지와 마지막까지 대립한 인물
- 이성적 판단과 감정의 혼재
- 죽음 이후의 복잡한 감정 변화
2) 아버지
- 가족과 타인에 대한 이중적 태도
- 고립된 말년
- 완전한 소멸로서의 죽음
3) 가족 구성원들
-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받은 존재들
-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단절
- 화해하지 못한 관계의 영속
5. 현대사회적 함의
1) 가족 해체 현상
- 도시화와 핵가족화의 문제
- 단절된 관계의 회복 불가능성
- 고독사라는 현대적 비극
2) 죽음의 상품화
- 장례 절차의 형식화
- 죽음마저 자본주의적 거래 대상화
- 의례의 공허화
3) 소통의 부재
- 화해하지 못한 채 끝나는 관계
- 진실 규명의 무의미성
- 남겨진 자들의 공허함
6. 종합적 의의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죽음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절된 가족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불상'이라는 죽음의 기록이 상징하듯,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추구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품은 화해하지 못한 채 끝나버린 관계가 남기는 공허함과 상처를 통해, 현대인의 고립된 삶과 단절된 관계의 의미를 성찰하게 합니다.
'좋은 글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체어샷 / 박정현 (0) | 2025.02.17 |
---|---|
[2025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빛의 그을음 / 허지영 (0) | 2025.02.16 |
[2025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 / 김화순 (0) | 2025.02.15 |
[2024 현대경제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 민주의 방(房)들 / 한열음 (0) | 2025.02.12 |
[2024 한국불교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영장류의 골목 / 김보경 (1) | 202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