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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오귀옥

 

맵시는 부족해도 푸근한 오지그릇이다. 아가리가 넓고 속이 깊은 건 제 안에 담긴 음식을 한껏 품어내기 위해서다. 그 안에서 노랗게 봉싯 부풀어오른 계란찜은 더없이 맛깔스럽다.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은 헛헛한 몸의 기운을 돋군다. 무게감 없는 양은냄비는 왠지 경박해 보이지만, 투박하니 묵직한 뚝배기에는 이름 그대로 뚝심이 배어 있다.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맛을 담아내는 데에는 뚝배기만한 그릇도 없다. 뚝배기는 완전한 것보다 조금은 허점이 있어야 더 친숙하다. 한두 군데 이가 빠진 아가리 둘레로 와글와글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며 국물이 끓어넘쳐야 제 맛이다. 자르고 찌르는 서양음식에 비해 입술을 쑥 내밀고 숟가락을 후후 불어가며 뚝배기에서 떠먹는 우리 음식에는 여유로운 정이 흐른다.

뚝배기의 질감은 매끈한 물감보다 가루가 묻어나는 크레파스에 가깝다. 계집애들의 보들보들한 손등이 아니라 평생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으신 우리네 어머니의 손등이다. 처자식 건사하기 위해 뚝심 하나로 묵묵히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고봉밥처럼 넉넉하고 속정 깊은 그릇이다.

어쩌다 나는 뚝배기로 먹고 사는 집으로 시집을 왔다. 삼계탕집을 운영하시는 어른들을 시부모로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갓 시집 온 새댁이 맨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뚝배기와 가까워지는 일이었다. 나는 반지르르하게 배를 닦아주는 것으로 뚝배기에게 손을 내밀었고 말을 텄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뚝배기는 며느리 자격부터 시험하려 들었다. 달구어진 뚝배기를 잘못 집었다가 데이고 물집이 잡히는 건 예삿일이었다.

잘 익은 수박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듯 금이 제법 굵게 간 뚝배기도 심심찮다. 필시 뜨거운 불 위를 어지간히 들락거렸으리라. 더는 못 쓰게 된 뚝배기는 망치로 톡톡 깨부수라고 시어머님은 내게 일러주셨다. 하지만 시집살이 스트레스가 어디 톡톡으로 해소될 일인가. 나는 시어머니 몰래 금간 뚝배기를 뒷마당 구석에 쌓아 올렸다. 그 뚝배기들이 어느 날은 내 키만큼 부쩍 자랐다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박살이 났다. 그 소리가 속을 후련하게 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걸까. 그날 오후에 시어머님이 삼계탕 솥을 들어내리다 펄펄 끓는 국물을 그만 다리에 쏟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게 어머님은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셨다. 당장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약이다시며 벌겋게 덴 자리에 감자를 갈아 붙이실 뿐이었다.

하루도 가지 않아서 어머님의 다리는 곳곳이 물풍선처럼 물집이 잡혔다. 결국 어머님은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셨다. 밤새도록 뚝배기 깨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려서 나도 뒤척거렸다. 다음날,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느냐는 의사의 지청구가 또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했다.

뚝배기 속 국물은 조금만 방치해도 속수무책으로 왁 넘친다. 국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기름기도 걷어내고 잡내 나는 불순물도 덜어내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그것조차 제대로 몰랐다. 무지한 나를 보다 못한 뚝배기가 스스로 기름기와 불순물을 내보내서 제 맛을 찾았던 것이다.

좋은 것은 품고 해로운 것은 가려서 뱉어낼 줄 아는 이치를 나는 뚝배기한테 배웠다. 그렇게 쩔쩔매던 며느리가 뚝배기를 만진 지 올해로 이십 년째다. 가게를 물려받은 뒤 팔에도 제법 힘을 올린 그 며느리가 지금은 어른들께서 물려주신 맛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린 닭을 손질해서 솥에 넣고 푹 고아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자면 허리가 뒤틀리고 어깨도 뻐근해진다. 그러면 온갖 상념에 빠진다. 고부갈등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다. 가족간에도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내겐 의무만 지워진 것 같아서 야속하기도 했다.

닭이 고아지는 동안 다른 솥에 넣을 어린 닭을 또 손질한다. 내장을 말끔히 긁어내고 미리 준비한 인삼, 대추, 찹쌀 등속으로 그 안을 꽉꽉 채울 때는 마음이 또 요상해진다. 어느새 내 안의 작은 응어리까지 사그라든다. 이마에 잡혔던 주름도 저절로 펴진다. 그리고 두 시간 가량을 뭉근한 불에 푹 고아 뚝배기에 담아내면 어느덧 내 마음은 해감을 다 토해낸 바지락처럼 개운하다.

이제 뚝배기는 내 분신과 같다. 체질적으로 몸이 차가운 나와 열이 많은 뚝배기는 어쩌면 서로의 고단한 등을 토닥여주며 평생을 함께해야 할 운명공동체인지도 모른다. 뚝배기와 더불어 살아갈 날들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뚝배기를 닮고 싶다. 뚝배기처럼 담백하고 뜨거운 열정이 부럽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맘속에 금 간 뚝배기 하나를 걸어놓고 산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다. 겉모양은 보잘 것 없지만 내용은 그만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워도 차츰 정감있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훈훈하게 덥혀져 오는 사람,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늘 한결같은 사람이 바로 뚝배기다. 그런 사람을 하나라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늘 보양식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 이에게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은 날이다.

 

<당선소감>


바람 속 날 수 있도록 날개 달아 줘 감사

 

바람은 늘 한 곳으로만 불었다. 나는 그 바람 부는 방향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이 글이든 삶이든 방관자적 시선은 변두리에만 머물렀다. 이제는 그 바람을 내가 만나러 가야했다.

신춘문예 원고를 보내놓고 원피스 한 벌이 갖고 싶었다. 추위를 많이 타서 잘 입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원피스를 장롱 안에 걸어두고 싶었다. 그것은 내 안의 글의 바람을 끌어내기 위한 일이었다.

한동안 글 쓰는 일에 움츠러져 있었다. 수필은 알면 알수록 어려웠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 감동하고 다음 신작을 기다리며 사는 재미도 글 쓰는 일 못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문장에 대해 고민하고 참신한 소재거리가 없나 눈을 크게 떴다.

나의 동문이자 선배이자 멘토이신 송금례님. 내 속의 감성을 자극하여 글줄이 나오게끔 조용히 지켜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작 속에 수작이 나온다며 치열하게 쓰라고 용기를 주신 교수님, 부모님, 가족들 모두 고맙습니다. 존경하는 여천님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바람 속을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글을 한 번 써 보라는 격려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귀옥, 1968년 포항 출생,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졸, 가정주부

<심사평>


뚝배기에 얽힌 일상의 애환 꼼꼼하게 녹여내

수필을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에 수필 쓰기의 용이함과 어려움이 모두 들어 있다. '붓가는 대로' 누구나 쓸 수 있으되, '붓가는 대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닌 글이 바로 수필이라는 말이다.

예심을 거쳐서 마지막까지 논의가 되었던 것은 이정인의 '마당', 윤희순의 '바람꽃', 오서림의 '뚝배기' 세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완결된 한 편의 수필로서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각자 돋보이는 힘도 갖추고 있었다.

적어도 문장을 다룰 줄 아는 솜씨만으로는 '마당'이 가장 돋보였는데, 그게 또 이 작품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마당'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묘사 중심으로 나열하다 보니 현란한 수사는 읽으되 잔잔하게 읽는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바람꽃'은 임종이 엄마 남지 않은 노모와 그 막내딸이 산사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사실감 있는 문체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에 비해 '뚝배기'는 문체상의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뚝배기에 얽힌 일상의 애환을 꼼꼼하게 녹여낼 줄 아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수필가로 활동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당''바람꽃'의 필자들과는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뚝배기'의 필자는 더 좋은 작품으로 이번에 경합했던 다른 필자들에게 예의를 갖춰줄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 남영숙(수필가송영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