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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인형

윤승원


큰 고민 덩어리를 손톱만큼 작게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은 인형이 정말 아이의 걱정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자투리 천으로 팔다리를 만들고 몸통과 머리에 솜을 넣으니 드디어 인형이 완성되었다. 손톱만한 크기라 쉬울 줄 알았는데 바느질이 생각보단 더디고 어려웠다. 나는 정성이 모자랄까봐 한 땀 한 땀 마음을 쏟았다. 웃는 표정이어선 안 된다는 속설이 있어 마지막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그려 넣고 나니 어깨와 손가락이 결리고 아파왔다.


친구와 다투고 난 뒤 이대로 영영 멀어지면 어떻하냐며 걱정이 태산 같은 아이를 위해 시작한 작업이었다.


“에게! 이렇게 조그마한 인형이 어떻게 걱정을 덜어주지? 내 고민을 해결해주려면 인형이 백 개는 더 있어야겠다.” 지켜보던 아이는 지루한지 하품을 물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밤이 깊었다. 걱정인형이 손톱만큼 작은 이유는 아무리 큰 걱정과 많은 걱정도 고만큼 작게 만들어서 내다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인형아, 우리 막내 걱정을 말끔히 덜어주렴”


기도를 하며 잠든 아이의 베게 밑에 가만히 인형을 넣어주었다.


과테말라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에게는 옛날부터 ‘걱정인형(Worry Doll)’의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1.5센티미터 정도의 손톱만한 인형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잠들기 전에 어려운 문제나 속상한 일을 인형에게 말한 뒤 베개 밑에 넣고 자면 잠든 사이에 인형이 아이의 걱정을 멀리 내다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자신의 걱정거리가 없어진 걸 알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이에게 친밀한 인형을 사용하여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인디언의 지혜가 엿보인다.


결혼생활은 결코 평탄치가 않았다. 막내를 막 낳고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집달리가 들이닥쳤고 셋방을 전전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죽기보다 힘들었다. 오늘이 저물면 내일이 걱정이었다. 막내가 중학생이 되기까지 집안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산 삶은 걱정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걱정이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이 얼굴을 내밀었다. 남편은 그 후로 몇 개의 사업을 더 시도 했지만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났고 남편은 폐인처럼 변해갔다. 빚쟁이들이 셋방을 차지하고 눕기가 일쑤였다. 나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걱정의 늪에 빠져 익사직전이었다.


어느 날 이대로 삶을 포기 해야겠다 생각하고 유서를 적어놓고 아이들이 잠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자매는 세상의 걱정 같은 건 아랑곳없다는 듯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자고 있었다. 막내는 고단했는지 다리 하나를 제 언니의 배에 걸쳐놓고 있었다. 큰 애가 무거운지 떠밀어내면 막내는 잠시 뒤 다시 다리를 올려놓았다.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천진스러운지 나는 방문을 닫고 돌아와 유서를 찢어버렸다.


우리나라 전통베갯잇에는 꽃과 나비며 새가 수놓아져 있다. 부귀와 장수를 바라는 기원에서 비롯된 장식은 어쩌면 그것들로 마음의 근심을 덜어 보려한 것은 아닐까. 기복(祈福)의 성향이 강한 베갯잇의 자수는 근심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그 바탕을 이루었을 것이다. 걱정인형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인디언의 지혜와 우리 선조들의 베갯잇의 자수는 궁극적으로 같은 의미에 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기의 거장 나폴레옹은 평생 자신의 키가 왜소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천하를 차지한 진시황은 죽음이 두려워 불로장생의 처방을 구했고 중국의 절세미녀 양귀비도 평소 자신의 늙음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걱정 하나 없이 사는 삶은 없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크고 작은 걱정은 가지고 산다. 어떻게 보면 걱정은 즐거움과 함께 삶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정어리 운반차량들은 이동하는 동안 수족관에 상어를 넣어둔다고 한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야 하는 수족관 안에서 정어리들은 쉽게 지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대다수가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상어를 함께 넣으면 정어리들이 긴장을 하게 되어 장거리 이동에도 싱싱한 활어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어라는 걱정이 있음으로 해서 정어리들은 오히려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절망을 희망의 가치로 바꾼다는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는 엄마가 만들어준 걱정인형이 효과대박이라며 유쾌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다행히 친구와 화해를 한 모양이었다. 내심 걱정했는데 하루 사이에 얼굴이 환해진 아이는 더욱 예뻐 보였다. 요즘은 조금씩 남편의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방황을 끝내고 험한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이면 일을 나갔다. 조금씩 가세가 회복되어지고 산더미 같았던 걱정거리도 그 수가 차츰 줄어들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다. 아이들은 나를 지탱해온 힘이었다. 내가 절망하고 넘어지려할 때마다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가졌고 아이들이 있어 다시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 걱정인형이 아니었을까. 내가 잠든 사이 아이들은 손톱만큼 작아져서 내 머리맡에 있는 걱정거리를 멀리 산 너머 내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느라 고단했는지 막내가 코를 곤다. 여전히 다리 하나는 제 언니의 배에 걸친 채. 베개를 고쳐 베어주곤 아이들에게 입맞춤을 했다.


“고마워! 내 걱정인형들아” 
 

 

 


수필 당선소감 /윤 승 원

통점의 끝에서

매화 만발한 꽃길을 걸었습니다. 가도 가도 꽃길 속이라 나는 꿈속에서도 덜컥 겁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만 아름드리 꽃나무 아래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통증이 수반됐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하나의 아픔을 함께 앓았습니다. 아픔은 매번 새로웠고 감당하기 어려웠고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걱정인형을 쓰는 동안도 붉은 신열을 앓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손톱만한 인형들이 내 잠자리로 파고들어 고단한 시간들을 져다 날랐는지. 
무엇보다 무딘 손을 잡아주신 김영식 선생님과 같이 형설지공한 시거리문학회 문우들,  노심초사 응원을 아끼지 않은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이 한량없는 기쁨을 전합니다. 
오늘의 감격을 안겨준 동양일보관계자 여러분과 부족한 작품을 믿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학에 빠진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두 딸아이에게 고맙다고 전하며, 
“사랑해! 내 걱정인형들아”

 

  윤승원
   ●  1964년 경주 출생
   ●  3회 천강문학상 대상
   ●  10회 동서커피문학상 동상
   ●  2013 젊은 수필에 선정
   ● 경북 경주시

 

 

수필 부문 심사평


뛰어난 문장력 좋은수필 쓸 가능성 높아
지난해와 비슷한 145편의 정성 어린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며 당선권에 들 만한 우수한 수필을 몇 뽑고 거듭 다시 읽으며 공감하기도 한다. 
대부분 경제적 침체기여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삶들을 나타내기도 하고 노년을 슬기롭게 보내는 모습들도 있고 주변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출중한 여러 작품 가운데 당선작 하나만 선택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평범한 일상사를 깔끔한 작품으로 잘 빚은 ‘용돈’(박헌규)이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자칫 소홀하여 지나치기 쉬운 소재를 간결한 문체로 자연스레 읽히도록 만든 수완이 놀랍다. 신세대인 딸과 아내의 날선 공방과 아들과 어머니인 모자 간의 구세대가 마치 디지털과 아나로그시대로 대비되는 구도다. 용돈이 돈의 액수로 따지기보다 넌지시 전하여 주는 끈끈한 정이 얽힌 예전의 어머니에 진한 사랑을 느낀다. 가족 사이에도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깨우친다. 
‘걱정인형’(윤승원)은 아이의 걱정을 털어버리기 위해 손톱만한 인형을 만들며 인디언의 걱정인형을 생각하고 우리네의 베갯잇을 떠올린다. 
곤궁했던 결혼생활 중 한때 도저히 벗어나기 힘들던 시절에 ‘걱정의 늪에 빠져 익사 직전’으로 삶을 포기하려다가 아이들 때문에 마음을 다잡았던 때를 회상한다. 결국 마무리는 아이들이 걱정인형이란다.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이 팽배한 시절이라 그런지 요즈음은 걱정인형이 실제 유행이 되고 있나 보다. 
함께 보낸 ‘베틀’, ‘가마솥’도 이제는 사라져가는 생활문화재로서 애틋한 정을 느끼도록 그것들에 대한 추억을 성실히 그리고 있다. 문장력도 좋아 좋은 수필을 쓸 자질이 보인다. 당선작으로 민다.  
‘이명’(이상렬)은 스무 해나 앓던 귀에서 소리 나는 병을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밤이면 온갖 소리로부터 유린당하며 불면의 날을 보내는 고통도 훌륭한 글감이 된다.
‘굴뚝새의 기호’(박홍배)는 굴뚝새 부부와 새끼들에 대한 끈질긴 관찰은 자연과 인간의 사랑에서 비롯되어 부럽기까지 하다.      
■심사위원 : 조성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