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김종보 / 이웃사촌
이웃사촌
김종보
이른 아침, 창밖 은행나무에서 넘어온 앙칼진 까치 소리가 속잠을 흔든다. 내가 사는 빌라 앞쪽 다님길에 수령이 족히 칠팔십년은 됨직한 늘품 있는 은행나무 한 쌍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혼인목이다. 주위 상가나 건물들이 ‘은행나무 세탁소’나 ‘은행나무 빌딩’ 등으로 첫 이름자를 지을 만큼 동네에서 명물이 된 존재이기도 하다.
“이웃이 좋으면 매일 즐겁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나란히 서있는 이 부부나무를 이웃 겸 친구삼아 지내는 재미는 독특하고 색다른 맛이 있다. 조선시대 특별한 나무에 벼슬을 내린 일이 더러 있었고, 지금도 나무가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고 자신이 보유한 토지로 재산세를 물고 있으니 나무의 인간취급이 엉뚱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나무들은 성현처럼 마음이 후하고 손이 커서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이들이 만드는 짙고 널찍한 그늘의 쉼터는 어린이들의 놀이교실, 문상객들의 술자리, 노인들의 사랑방 등 어느 것으로나 손색이 없다. 가을걷이에는 집집에 되가웃 정도의 구수한 은행알도 노느매기한다. 가을의 노란 단풍과 함께 육탈(肉脫)의 계절에는 높가지에 까치둥지도 두 채나 이고 있어 각박해지기 쉬운 도시생활에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니 고맙고 자랑스러운 이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나무들과 어릴 때부터 너나들이하며 자라왔다. 장미과(科)처럼 같은 종(種)이 수십 가지나 되는 복잡한 나무 족보도 있지만 은행나무는 한 종류만이 살아남아 곁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수종(樹種)이다. 오랜 세월을 홀로 문실문실 자라온 믿음직한 모습에 더 친밀감이 가는지 모른다. 이들에게는 옛날 길 가던 스님이 꽂아놓은 지팡이가 싹을 틔워 자랐다는 삽목(揷木)전설도 없고, 나라가 어려운 때 특이한 징조도 보이지 않는 거저 평범한 나무다. 나무를 건드려 동티를 시험한 적도 없어 마을의 수호목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
간혹 내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대문 앞에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감탄을 할 때면, 나는 이들을 “철학교수 부부”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생명체 앞에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는다. 인간과 자연의 문제는 철학적 주제이기 때문에 굳이 직업의 범주에서 가른다면 철학교수 이외의 선택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공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연유로 은행나무를 유교의 상징적 나무로 여긴다. 고지식한 동양 철학자를 연상해오다가 막상 마주대하면 의외로 산뜻한 모습에 놀라기 일쑤다. 이 부부의 새참한 차림은 주위 공간과 잘 어울리며 세련미가 돋보인다. 은행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사는 시간의 지도자답게 계절별 옷의 색상이나 모습의 다양성을 통해 인간에게 자연이 변해가는 이치를 깨우쳐준다. 갈맷빛 새싹이 여름을 거치면서 청청한 옷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현대의 젊은이들처럼 금발로 염색하는 멋도 부린다. 추위가 오면 옷을 홀랑 벗고 황금빛 이불 위에서 졸가리를 팔뚝처럼 올린 채 육체미선수 같은 튼튼한 밑동을 자랑한다.
이 부부는 화려한 꽃이나 향기를 내세워 곤충이 중매하도록 꾄 일도 없다. 한 쪽의 꽃가루가 직접 찾아가서 구애하여 결혼하였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한 티가 난다. 은행나무는 딴 꽃 가루받이로 암·수나무가 엄연히 구분 되어 후손의 유전적인 다양성도 대단하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는 암수 한 그루로 자가 수정이나 근친 교배를 하며 초라한 생을 이어가고 있어 윤리적으로 따지더라도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들이 결혼한 햇수는 알 수 없지만 늘 한 자리에서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걸 보면 금실이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본새 또한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거목 중에 플러터너스는 큰 잎을 펄럭이며 겉멋만 부려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우리 민족이 고고한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치는 소나무는 옹고집처럼 보여 말 붙이기가 어렵고 그 앞에선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돌다리목의 버드나무는 머리를 풀어헤친 두억시니 같아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는 음산한 기분이 든다. 묵묵히 서 있는 이 은행나무는 넉넉함과 느긋함이 가득해서 도무지 탓할 데가 없다.
젊은 시절에 이들은 맷맷하고 군살이 없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요즈음은 늙바탕 티를 내는지 나무껍질에 회색빛이 돌고 골이 깊게 패였다. 이는 학문이 더욱 깊어지고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의 이마 주름 같아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진다. 이들은 연장자로 떠세하는 일도 없이 줄기나 가장귀에 쌓인 더께에 날아온 다른 씨앗까지 발아시켜주기도 한다. 풀솜할미처럼 은행잎을 들추는 다람쥐나 청설모가 거처할 방도 내어주고 은행 알을 쥐어주며 손자 다루듯 애정을 쏟기도 한다.
이들의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격 또한 나를 매료시킨다. 은행나무를 주로 관가 뜰에 심은 것은 천심(天心)을 하강시키는 신목(神木)으로 여겨 백성들의 억울함을 보살피지 않고 악정을 베푸는 관원을 막기 위해서였다. 관리가 벌을 줄 때 죄인을 때리는 곤장 자리를 은행나무가 도맡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철학교수로서 당연히 계절특강이 있기 마련이다. 가을이 무르익는 밤이면 철학의 이치를 자연을 통해 가르친다. 소낙비 난무하듯 은행나무 잎을 쏟아내면 주위는 자연이 만든 숨 쉬는 언어가 쌓인다. 대 문호 괴테는 연인 마리안네에게 사랑의 징표로 짧은 시 한 편에 고운 은행잎을 실어 보냈다. 연서와 함께 보내는 노란 은행잎 하나에도 가을 하늘처럼 맑은 감정이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금빛은 아니지만 전체의 잎이 하나가 될 때 금빛을 발하게 된다. 이 거대한 가을의 불꽃은 우리의 힘든 삶을 일깨우는 지혜의 빛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계절이 오면 나는 이웃 친구의 허리에 등을 대고 그들의 체온을 몸으로 느끼면서 고전적인 철학 서적을 읽는 즐거움에 빠진다.
◌ 참고 :
* 예천 감천면 석송령(소나무: 천연기념물 제294호)- 세계 최초로 식물이 토지 소유자, 기네스북에 등재 작업 중
* 예천 금남리 황목근(팽나무: 천연기념물 400호) -한국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
<당선소감>
정말로 오랫동안 팽개쳐둔 글밭을 일구려니 힘들고 어려웠다. 초라하게 보이는 내 작품에 보여준 관심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기쁨이 배가(倍加)됨은 숨길 수 없다.
수필은 “삶을 생각하는 문학”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수필가의 진정성이 문학성을 결정하게 된다. 더욱 착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맛깔스러운 글맛을 남기는 글품쟁이가 되고 싶다.
나의 습작을 지켜보고 격려하신 문학평론가 김천혜교수와 영원한 편집장인 친구 안병화, 직업상 칼을 다루지만 펜을 좋아하는 의사 남기천의 성원에 고마움을 표한다. 매일 밥 싸주며 도서관으로 등을 떼밀던 고마운 아내와 아들의 응원도 빠뜨릴 수 없다. 여린 글 묘목을 화분에 심어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글의 숲 -아시아일보 신춘문예의 창을 두드린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글을 가꿀 수 있는 터를 마련해준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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