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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가리, 호랑이

 

 

나는 가끔 생각한다
범들이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거라고
범이 되고 싶었던 큰아버지는 얼룩얼룩한 가죽에 쇠촉 자국만 남아
집으로 돌아오진 못하고 병창[i] 아래 엎드려 있는 거라고
할애비는 밤마다 마당귀를 단단히 여몄다
아버지는 굴속 같은 고라댕이[ii]가 싫다고 산등강으로만 쏘다니다
생각나면 손가락만 하나씩 잘라먹고 날 뱉어냈다
우두둑, 소리에 앞 병창 귀퉁이가 와지끈 무너져 내렸고 
손가락 세 개를 깨물어 먹고서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밟고 다니던 병창 아래서 작살을 간다
바위너덜마다 사슴 떼가 몰려나와 청태를 뜯고 
멧돼지, 곰이 덜걱덜걱 나뭇등걸 파헤치는 소리
내가 작살을 움켜쥐어 물속 산맥을 타넘으면 
덩굴무늬 우수리 범이 가장 연한 물살을 꼬리에 말아 따라오고
내가 들판을 걸어가면
구름무늬 조선표범이 가장 깊은 바람을 부레에 감춰 끝없이 달려가고
수염이 났었을라나 큰아버지는,
덤불에서 장과를 주워먹고 동굴 속 낙엽잠이 들 때마다 
내 송곳니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짐승이 피를 몸에 바를 때마다
나는 하루하루 집을 잊고 아버지를 잊었다
벼락에 부러진 거대한 사스레나무 아래
저 물 밖 인간의 나라를 파묻어 버렸을 때
별과 별 사이 가득한 이끼가 내 눈의 흰창을 지우고 
등줄기 가득 가시가 돋아났다 심장이 둘로 갈려져,
아가미 양쪽에서, 퍼덕,
거,리,기,시,작,했,다
산과 산 사이 
沼와 여울, 여울과 沼가 끊일 듯 끊일 듯 흘러간다
坐向 한번 틀지 않고 수 십 대를 버티는 일가붙이들
지붕과 지붕이 툭툭 불거진 저 산 줄기줄기
큰아버지가 살고 할애비가 살고
해 지는 병창 바위처마에 걸터앉으면
언제나 아버지의 없는 손가락, 나는


 

[i]'절벽'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ii] '골짜기'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당선소감


"세 번 도리질했는데… 두 아이 이름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갑니다"

세상의 하고많은 배역 중
왜 제게는 나귀 한 마리와 
끝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주어졌는지

밤마다 손바닥을 들여다봅니다
후벼서 미안하다는 듯 흐르는 이 강을
오늘은 애수라고 불러봅니다
내가 강가에 마을 하나 지어 놓으면
밤나무 두 그루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떠갑니다
뇌운 용항 도돈 판운 멀리 주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울 가 삐익 삑, 
노루새끼 호드기 붑니다

고지를 받았을 땐 지실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아니요, 세 번 도리질 했는데
네 번 맞다고 해서 박달재를 넘을 땐
말씀으로 수태한 처녀 같았습니다
딱!
밤톨 떨어지는 소리가 만종처럼 울려 
다릿재 꼭대기 노을을 몰고 시속 팔십 킬로미터
붕붕 서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립고 고마운 이름이 왜 없겠습니까만
나경 해오니 두 아이의 이름 울금빛으로 적어놓고
또 밤길을 줄여야합니다

고형렬 선생님, 감사합니다



심사평


독특한 개성의 탄생…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 보는 듯

세 명의 심사위원이 투고작 전부를 나눠 읽고 거기서 추린 작품을 토대로 논의를 거듭한 결과 '쏘가리, 호랑이'(이정훈)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정훈의 작품은 요즘 우리 시단에서 보기 힘든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를 보여준다. 그 상상력은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산맥을 치달리는 호랑이로 치환시키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향토적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는 마치 이 땅에 산업사회가 도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언어의 구체성과 밀도를 획득하고 있다. 이 독특한 개성의 탄생을 축하하며 다만 그의 시편들에 내포된 일종의 아나크로니즘(의도적인 시대착오성)을 앞으로의 시작을 통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모색해주길 바란다는 권고를 덧붙이고 싶다.

'단풍나무 빵집'의 손현승은 심사위원들에게 오랜 망설임의 시간을 강요한 응모자였다. 대화체를 적절히 활용한 이 시는 대상이 되는 빵-빵집-빵집 여자에 범용한 일상성을 뛰어넘는 서정적 후광을 씌워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삶을 바라보는 따스하면서도 원숙한 시선이 인상적인 이 시는 읽다보면 고소한 빵냄새가 주변에 감도는 듯한 풍미를 선사한다. 심사위원 구성이 조금만 달랐다면 최종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를 만큼 이 작품이 주는 매혹은 상당했다.

'곰이 돌아왔다'의 장유정도 아까운 응모자였다. 투고작 전부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견고한 시적 형상화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지의 조형이나 어조의 완급조절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시적 발상이 새롭지 않다는 난점을 갖고 있었다.

이밖에 '누군가의 단검'의 김지연, '애플파이 레시피'의 고태관, '골목은 모퉁이를 돌면 막혀 있다'의 유병현, '불룩한 체류'의 이문정 등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선보인 응모자들이었다. 이들 모두에게 건필의 응원을 보낸다.

 

 

 

"난 20년차 화물차 운전사… 마흔 사춘기에 시 배워"

■ 신춘문예 시 당선 이정훈씨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버지·아내에게 치여 바지저고리가 된 느낌
"이런 꼴 보려고 사나" 세상에 부대껴 힘들 때 무언가를 쓰고 싶어져

 

2013년도 신춘문예, 최고 화제의 인물은 아마도 시 부문에 당선된 이정훈(46) 씨가 될 것 같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보낸 이 씨의 투고작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아버지, 가족의 애증을 간결하게 표현해 일찌감치 심사위원들에게 낙점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끝낸 후 당선자 통보를 하기 위한 전화통화에서 이 씨는 "20년차 화물트레일러 운전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해 자리에 있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평창군에서 다섯 번째로 경운기를 살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모두 서울에서도 보낸 이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매달리느라 4학기 학점 '합계'가 2.0이 안 돼 학점미달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강원대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하고 선택한 직업은 화물트레일러 기사였다.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는 그 길을 택했다. 

"학교 잘리고 구치소에 갔다 오며 근골노동에 대한 선망이 생겼어요. 잘 난 세상을 잘나게 움직이려는 경향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청년시절)는 학벌지상주의라든가 이런 게 싫어서 팔다리 움직여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동해 삼척과 담양 제천 영월의 공장단지에서 전국 각지 레미콘공장으로 시멘트를 옮기는 것이 그의 일이다. 수하물 중 시멘트를 주로 옮기는 이유는 '노동의 현장'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란다. "몸보다는 노동여건이 열악한 점이 힘들어요. 20년째 운임비가 똑같은데, 이제는 화물차 번호판까지 3,000만원씩 거래돼서 3년 전에 화물차 회사에서 제 번호판을 강제로 떼어갔죠. 화물차는 제 소유인데 말이죠."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40대에 접어들면서라고 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 속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넘지 못할 산 같은 존재였고, 집안의 헤게모니는 자식세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정의 주도권마저 부인에게로 기울었다. 

"마흔 무렵이었는데, 잠이 안 오고 밥도 못 먹겠더라고요. 제 발로 정신과 상담을 하러 갔어요. 고해성사하듯 두 시간 떠들고 나니까 의사가 저에게 남아있는 게 뭔지 물어보더라고요. 40대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바지저고리가 된 느낌이 심했어요."

그때 우연히 듣게 된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강좌에서 고형렬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 씨는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기에 그에게 창작은 일종의 힐링이었다. "현실에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깨진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시는 보람이었고 기쁨이었죠."

주로 일하는 틈틈이, 트레일러와 식당에서 시를 썼지만 노동현장을 직접 담은 시는 거의 쓰지 않았다. 잘못 쓰면 선전문구처럼 읽히고, 잘 써봐야 80년대 민중시 아류처럼 보여서 피하고 싶었단다. 

"저는 기쁘거나 슬플 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꼴 보려고 사나?'할 때 뭘 쓰고 싶어져요(웃음). 세상에 부대끼면서 힘들면 힘들수록 옛날 살던 강가나 산골짜기, 나를 그렇게 예뻐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골방 같은 데로 가고 싶죠. 돌아갈 집이 없으니까 집을 허공에 짓는 거예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서 4년 전부터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투고를 시작했다. 노트북에 정리된 80여 편의 시는 고향과 가족에 관한 시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등단작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 씨의 시에서 아버지는 호랑이로 자주 비유된다. 

작은 문예잡지 공모전 최종심에서 몇 번 고배를 마셨다는 그는 3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당선됐다"는 장난전화를 받은 후부터 당선통보를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당선통보 전화통화에서도 "장난하지 말라"며 기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이씨는 "전화 끊고 나서 30분을 울었다"면서도 여전히 등단이 실감나지 않는 듯 인터뷰 당일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가족과 고향 말고 무엇을 더 쓸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도 이씨에게 시 쓰기의치유효과는 탁월한 듯 보였다. 짐짓 명랑하게 과거 상처들을 고백하며 들뜬 이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신춘문예 수상소감, 미스코리아 수상소감처럼 써볼 게요."